<제129화>
첫 곡이 끝나고 우리는 마이크를 잡았다.
“이번에 투어 덕분에 부산에 내려왔는데, 돼지국밥을 한번 먹어 봤거든요? 진짜 맛있더라고요. 혹시 추천해 주실 부산 명물, 더 있나요?”
“밀면이요!”
“물떡이요!”
우주를 시작으로 멤버들이 각자 마이크를 잡고 한마디씩 내뱉었다.
가벼운 토크였다.
무대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준비하다가 일어난 소소한 에피소드도 팬들과 공유했다.
“첫 투어 공연이 부산이라서 더 좋은 거 같아요. 밑에서부터 올라가는 느낌?”
“부산은 벚꽃이 조금 더 일찍 핀다고 들었는데, 아직 피지 않았더라구요. 같이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못 봐서 그런 게 조금 아쉽죠.”
무대 공연 사이사이에 팬들과의 소통도 잊지 않았다.
바로 다음 곡을 불렀다.
다음 곡은 ‘New Taste’였다.
‘Angel’보다 반응이 좋았던 노래였다.
-♪♬♩♩, ♩♬♬!
꺄아아악!
반응이 좋았다.
현장을 채운 팬들 중에서 올리오스 팬들도 상당했는지, 우리 노래를 직접 따라 부르기도 했다.
떼창.
훅 부분에 팬들이 거의 동시에 노래 구절을 외쳤다.
-귀를 닫지 마! 눈을 감지 마!
-우리가 여기에 있잖아!
팬들이 우리보다 더 크게 노래를 부르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나왔다.
팬들을 보며 씨익 웃던 나는 우주와 정민이 나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게 보였다.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신이 났다.
몇 번을 경험해 봤지만, 무대에서 노래를 통해 팬들과 소통한다는 사실은 언제나 새로웠다.
객석을 가득 메운 팬들이 우리의 노래를 불러준다는 사실에.
그들의 뇌리에 우리의 노래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벅차게 했다.
‘New Taste’ 이후에도 정규 앨범에 수록된 노래를 몇 곡 불렀다.
곡이 끝나고, 현장 MC가 마이크를 쥐고 빠르게 무대 위로 올라왔다.
“아주 좋은 공연이었습니다. 보다 보니까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춤을 추고 있더라고요. 하하핫!”
넉살 좋은 미소를 지은 MC가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그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동안 우리는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자, 그럼 다음 순서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GH 엔터의 대표 가수, 이종민 님입니다!”
그러는 동안 MC의 소개와 함께 이종민이 무대 위로 올라갔고.
-너를 잊지 못해
리허설에서 들었던 이종민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무대를 가득 채웠다.
이종민의 무대는 과연, 경험이 허투는 아니라고 증명하듯이 훌륭했다.
응원봉을 좌우로 흔드는 저 많은 팬 중에 일부는 분명히 귀갓길에 그의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할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GH 엔터의 여러 스타의 무대가 끝이 났다.
마지막 차례, 다시금 몬스터즈가 무대 위로 올라갔을 때.
꺄아아악!
다시 한번 객석을 울리는 함성이 들렸다.
“확실히 몬스터즈 선배님들은 다르다.”
“그러게.”
공연을 마치고 같은 대기실에서 쉬고 있던 이종민이 TV를 보며 씨익 웃었다.
“몬스터즈야말로 대한민국 최고 아이돌이지. 그런데 너희도 밀리지 않잖니.”
우리를 보는 이종민의 눈빛이 따사로웠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솔직하게 얘기한 거지. 하하하.”
“이렇게 말하면 건방지게 들으실 수 있을 거 같지만, 선배님 노래 정말 잘 들었습니다. 너무 좋았어요.”
“맞습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성훈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의 눈은 진효원과 이야기를 할 때 못지 않게 빛나고 있었다.
“크하하하! 우리 후배들이 사회생활을 잘하네. 고맙다. 덕분에 힘이 나네.”
시원하게 웃던 이종민이 성훈을 보았다.
“참, 성훈 군이 이번에 <명곡 배틀> 간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너무 긴장하지 마. 거기 사실 별거 아니야.”
“그렇습니까?”
“나도 올라가 봤는데, 생각보다 간단해. 무대도 여기보다 훨씬 좁아. 방송국 카메라가 좀 있다는 거 말고는 다를 거 하나 없다.”
성훈이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부담감을 조금 덜어주려는 듯 이종민이 과장되게 말하며 안심시켰다.
“하지만 나름 경연 대회 아닌가요? 1등 못하면….”
“1등 못하면 어떠냐. 어차피 이미 더 좋은 곳에서 1등 했잖니.”
“아.”
“음악 방송 1등에 음원 차트 1위. 그게 <명곡 배틀>에서 1등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거다. 그리고 예능인 이상 실력 외적인 것도 어느 정도 개입되고.”
“감사합니다.”
선배의 진지한 조언에 성훈이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감사 인사는 됐어. 나도 너희 덕분에 다시금 기운을 차릴 수 있었으니까.”
“아….”
투어를 위해 녹음을 했던 그날 이야기일 거다.
“서로 돕고 사는 거지. 하하하!”
그때였다.
“마지막 곡 스탠바이 해주세요! 전 가수분들 스탠바이 부탁드리겠습니다!”
스태프가 마지막 공연을 위해 준비해 달라며 찾아왔다.
무대의 피날레를 위해 모든 가수가 엔딩곡을 부르는 것.
그게 이번 무대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GH 투어 무대의 마지막은 출연한 가수들이 모두 나와 부르는 합창이 필수라고 했다.
몬스터즈의 노래가 끝나고, 우리는 모두 무대 위로 올라갔다.
마지막 노래는 ‘이젠 안녕’. 연말 분위기가 물씬 나는 발라드였다.
엔딩곡을 부르는데, 꽃가루가 사방에 퍼졌다.
첫 투어가 끝났구나.
살랑살랑 떨어지는 꽃가루를 보며 생각했다.
그렇게 부산에서 시작한 첫 GH 투어의 무대가 끝이 났다.
* * *
“투어 첫 공연,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 두 달간 다들 힘내봅시다!”
황이서의 외침과 함께 자리에 있던 이들이 소리높여 인사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첫 무대가 끝난 후, 성공적으로 끝난 걸 기념해 스태프들이 한곳에 모여 뒤풀이를 진행했다.
뒤풀이라고는 하지만 동시에 첫 투어에 대한 피드백 자리였다.
혹시 실수한 부분은 없었는지, 음향 쪽에 문제는 없었는지, 있었다면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다음 무대를 더 좋게 꾸미기 위한 대화가 이어졌다.
벌써 밤 11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아직 공연의 여운이 남아 있을 때 나눠야 할 대화가 있었다.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 문제점을 개선할 방법을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야,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테니까.
“음향은 조금 더 키울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벡스코는 괜찮은데, 야외 무대에선 소리가 더 넓게 퍼지니까요.”
“초반에 관객들 컨트롤이 잘 안 됐어요. 가드들 동선이 꼬인 것 같은데, 업체에 한번 말을 해봐야겠습니다.”
“암표를 최대한 걸러내긴 했는데, 뭔가 대책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예전보다 줄기는 했는데….”
“무대 진행 중에 스피커 하나가 잠깐 나갔습니다. 바로 복구되긴 했는데 점검 한번 필요할 것 같습니다.”
“스피커는 계속 확인해.”
“리프트나 점프대 다 반응이 좋았어요. 폭죽이랑 불꽃도 좋았고요.”
무대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올리오스의 리프트랑 점프대가 특히 반응이 좋았어요.”
“몬스터즈는 몬스터즈했죠. 사실 굳이 더 얘기할 필요는 없을 거 같습니다.”
“이종민 씨가 무대에서 굉장히 좋은 모습 보여 줬습니다. 확실히 베테랑은 다르더라고요.”
가만히 얘기를 듣던 황이서가 물었다.
“몬스터즈가 없는 공연이 하나 있는데, 이건 반응 어떨 거 같습니까?”
“예매율이 조금 낮긴 한데, 그래도 현장 발권까지 생각하면 만석 찰 거 같습니다.”
“암표가 문제네요.”
“현장에서 최대한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탁할게요.”
한숨을 푹 내쉰 황이서는 스태프들을 향해 말했다.
“투어의 시작을 잘 끊었으니, 이후에도 지금처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마지막까지 잘해봅시다. 나머지는 내일 오후에 한 번 더 만나서 얘기하도록 하죠. 다들 내일은 오후 출근하세요.”
“넵!”
늦은 시간에 이어진 짧은 회의가 끝났다.
* * *
다음 날, 호텔에 돌아온 황이서가 우리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수고 많았다! 너희가 최고였다. 진짜 최고였어! 하하하!”
호탕하게 웃은 황이서가 우리를 꽈악 껴안았다.
수염 때문에 까끌까끌해서 피하고 싶었는데.
“아아악!!”
불가능했다.
이건 갑질이야.
프로듀서의 불공정한 갑질.
“여태껏 했던 투어 첫 공연 중에서 반응이 제일 좋았어. 진짜 너희가 복덩이다. 크하하핫!”
시원하게 웃은 황이서가 우리의 어깨를 두드렸다.
“성훈이는 벌써 올라갔냐?”
“예. 새벽에 두현이 형 차 타고 올라갔어요. 기 PD님도 성훈이 형이랑 같이 갔어요.”
“성훈이가 메인 보컬이라 제일 고생했는데…. 고생했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 했네.”
“내일 다시 올 테니까요. 저희도 서울로 올라가나요?”
“그래야지. 오랜만에 내가 운전하는 차 타겠네?”
“프로듀서님이 운전하시나요?”
“너희 담당 매니저가 먼저 올라갔으니까.”
가만히 우리를 보던 황이서가 입을 열었다.
“바로 가기에 아쉬우면 유명 관광지 있는데 거기 찍고 갈래?”
“유명 관광지요? 어디에요?”
“태종대라고 바다 경치가 예술이야. 소속사 근처도 아니고, 마스크 쓰고 가면 많이 몰라볼 거다. 아침 일찍 잠깐 갔다가 아점 먹고 바로 올라가면 어때?”
황이서가 데려간 태종대의 풍경은 그의 말대로 환상적이었다.
* * *
“고생이 많다.”
“아닙니다. 두현이 형. 형이 더 고생하시죠. 저 때문에….”
“괜찮아.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
룸미러로 성훈을 보던 두현이 태연하게 웃었다.
“성훈이 너는 늦게까지 공연했는데, 바로 올라가서 노래 연습에 사전 촬영까지 해야 하잖아. 힘든 건 네가 더 하지.”
“하하, 좋게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짜식, 내가 너희 열심히 하는 걸 가장 가까이서 보는데 모를 리가 있겠어? 좀 자둬. 도착하면 깨울 테니까.”
“감사합니다.”
공연에서 느낀 흥분감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새벽 4시에 출발하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났다.
사실상 두 시간도 자지 못했다.
지금 올라가는 길에 자두지 않으면, 쓰러질지도 모르겠다.
성훈은 잠을 자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러자 무대 위에서 보았던 풍경이 펼쳐졌다.
빛나는 조명, 사람들의 환호, 흔들리는 응원봉.
그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자신.
춤을 춘 뒤 부르는 시원한 고음.
무대에서 느꼈던 감각을 떠올렸다.
무대 위에서 시원한 고음을 냈을 때, 평소보다 훨씬 더 목소리가 뻗어 나갔다.
특별히 연습을 더 한 것도 아닌데도 더 좋은 목소리가 났다.
신기한 일이었다.
평소에도 자신이 무대 체질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컨디션이 좋아.’
손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신경이 살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뭐든지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괜찮아. 잘할 수 있을 거야.’
푹 쉬자.
잘 쉬고 간다면 <명곡 배틀>의 사전 촬영에서도 큰 문제가 없을 거다.
여기서 잘 해낸다면, 본 무대에서도 좋은 모습 보여줄 수 있겠지.
성훈은 의식이 점점 멀어짐을 느꼈다.
기분 좋게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