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8화>
환호성이 들렸다.
투어 첫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이 내는 웅성거림과 쇼의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멘트, 그에 호응하는 팬들의 외침까지.
무대 뒤 대기실에 앉은 우리에게 들릴 정도로 투어의 열기는 대단했다.
쇼의 시작은 몬스터즈.
이번 투어의 첫 공연, 부산에서의 공연의 시작과 끝은 모두 몬스터즈가 풀고 맺는다고 했다.
이렇게 팬들의 열기가 강하게 느껴지는 건 공연에서 뛰노는 사람이 몬스터즈이기 때문일 거다.
“후우, 후우.”
이제는 익숙한 그들의 모습.
사람들의 환호.
다만 지금까지 공연했던 무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크기에, 평소보다 크게 환호하는 팬들 앞에 서서 공연한다는 사실에 떨렸다.
몬스터즈와 함께 섰던 연말 콘서트의 무대 경험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서 더욱 비교되는 걸지도 모른다.
“잘 되겠지.”
“끄으으…. 찌뿌드드하다.”
기지개를 켜는 우주와 자리에 앉은 채 눈을 감으며 명상하는 성훈, 호진은 대기실 한 편에서 춤을 추고 있었고, 정민은 성훈의 옆자리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기재율 PD는 카메라에 담았다.
“긴장이 많이 되나 봐요?”
기 PD가 물었다.
“네. 첫 투어라서 더 떨리네요.”
“심지어 몬스터즈 선배님들 바로 다음이라 더 떨려요.”
“비교당할 텐데….”
나는 몬스터즈의 리허설을 떠올렸다.
리허설 때도 그들의 패기가 느껴질 정도로 훌륭한 무대였다.
본무대는 얼마나 더 좋을지.
같이 무대를 서봤으니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리허설 때 무엇보다 놀란 건 몬스터즈가 아니었다.
“아, 여기에 있었군.”
선배 가수 이종민.
이번 투어에서 자기는 뒷전이라며 프로듀서에게 가서 따지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하지만 리허설에서 보여준 모습은 그 누구보다도 프로페셔널했다.
게다가 놀랄 정도로 노래를 잘 불렀다.
음원으로 들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음색이었다.
왜 저평가를 당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첫 투어 무대 준비 잘했지?”
“예, 그렇습니다.”
“아까 리허설 때 보니까 잘하더라.”
“선배님도 멋졌습니다!”
우주가 선배에 대한 존경을 담은 채로 외쳤다.
그 말에 이종민이 가볍게 웃었다.
“하하, 저번에 너희가 녹음하는 모습 보면서 자극을 많이 받았거든. 이번 투어에서 많은 걸 보여주려고 준비 단단히 했다.”
그런 거 같았다.
누가 봐도 목 관리부터 창법까지 신경 쓴 티가 났다.
“열심히 해보자. 내가 너희 다음 무대니, 조금은 힘 좀 빼주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종민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별도로 준비된 모니터로 공연장의 모습을 보았다.
몬스터즈의 노래에 맞춰 응원봉이 흔들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겠지?”
“그렇게 해야지.”
이제는 몬스터즈 팬만 있는 건 아닐 테니까.
“올리오스 입장하실게요!”
FD가 찾아와 우리를 불렀다.
이제 슬슬 우리 차례가 다가왔다. 이제는 백스테이지에서 기다려야 할 때였다.
“화이팅.”
언제나 무대를 시작하기 전엔 가슴이 떨렸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벡스코 무대에 찾아온 부산의 팬들을 위해 최고의 무대를 보여주는 것.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긴장도 잊곤 했다.
“후우.”
백스테이지에서 몬스터즈의 모습을 보았다.
이제는 익숙한 광경.
그들의 모습에 긴장하는 것보단 도전의식이 생겼다.
저들을 넘고 싶다.
같은 소속사인 이상 몬스터즈와 직접적인 대결은 어렵겠지만, ‘아직’ 대중들은 몬스터즈가 올리오스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할 것이다.
라는 발칙한 상상을 했다.
그리고 그 상상이 상상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거라고 자신했다.
“이제 저 곡이 끝나면 우리 차례야.”
나는 스태프들의 도움으로 인이어를 차고, 마이크를 붙인 멤버들을 보았다.
예전과는 다르게 멤버들의 얼굴엔 약간의 여유로움이 남아 있었다.
굳이 내가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 가열차게 말할 필요도 없어 보였다.
장문의 연설 대신 나는 손을 내밀었다.
“내가 올리오스 하면, 파이팅하는 거다?”
처음 몬스터즈와 연말 콘서트를 했을 때 달달 떠는 멤버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했던 파이팅 자세였다.
내 손을 본 멤버들의 얼굴이 편안해졌다.
하나하나 내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올렸다.
우주, 성훈, 정민, 호진.
다섯 개의 손이 한곳에 모였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아니, 이제는 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내가 하는 행동에 담긴 말과 의지가 이미 멤버들에게 전부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한 차례 멤버들을 돌아본 나는 외쳤다.
“올리오스!”
“파이팅!”
마치 경기에 들어가는 스포츠 선수들처럼 우리는 비장하게 의지를 다졌다.
“올리오스 스탠바이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이제 슬슬 몬스터즈의 공연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곧 우리 차례였다.
예전에는 몬스터즈가 무대에 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그 무대에 참여했다면.
이제는 온전히 우리만의 무대였다.
그러니.
절대로 실망하게 해선 안 된다.
몬스터즈에게 쏟는 저 환호가 우리에게도 쏟아질 수 있도록 보여주는 거다.
심장을 울리는 베이스 소리와 전신을 진동케 하는 팬들의 함성을 들으며 손에 땀이 차는 걸 느꼈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다.
컨디션은 최고조였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몬스터즈 공연 끝나면 올리오스의 영상을 모니터로 송출할 거예요. 이후에 제가 신호 보내드릴 겁니다. 신호에 맞춰서 점프하시면 돼요. 아까 리허설 했죠?”
우리는 점프대에 서서 현장 PD의 지시를 들었다.
“네!”
“전원 동시에 올라갈 거니까, 참고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귀를 찢을 것 같은 음악 소리 때문에 집중해야 거의 들릴 정도였다.
목이 터져라 외치는 PD의 말이 끝날 때쯤.
“감사합니다! 이따 마지막 공연에 봐요!”
몬스터즈의 공연이 끝이 났다.
노래가 꺼지고, 몬스터즈가 퇴장했다.
여전히 팬들의 함성이 들렸다.
그 함성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나는 멤버들을 보았다.
바로 옆에 선 우주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를 보며 씨익 웃은 우리는 PD의 지시를 기다렸다.
-이제 카운트다운 들어가겠습니다. 조명 꺼진 뒤에 제가 셋을 셀 테니까 그때 뛰시면 돼요.
현장을 통제하는 현장 PD의 목소리가 인이어에서 들렸다.
곧 조명이 꺼졌고, 팬들이 응원봉을 흔들었다.
“올리오스! 올리오스!”
몬스터즈를 연호했던 목소리가 꺼지고, 우리를 연호하는 소리가 서서히 들렸다.
아마 지금 무대에 설치된 대형 화면에 우리의 모습이 송출되는 듯했다.
-지금부터 신호 들어갑니다. 1, 2… 3! 뛰세요!
우리 다섯은 PD의 신호와 함께 점프대 위에서 뛰었다.
점프대 바닥이 우리를 밀어 올렸고, 일반적인 사람이 뛸 수 없는 높이까지 치솟았다.
거의 2미터는 뛴 거 같았다.
쿵!
꺄아아아악!!
우리를 향한 함성이 들린다.
응원봉을 흔드는 팬들이 보인다.
실내에서 환호를 지르는 팬들의 목소리가 주는 진동이 느껴진다.
우리 다섯은 잠시 팬들을 마주 보며 그들의 환호를 느꼈다.
그리고.
-♬♪, ♩♩♬~.
우리들의 데뷔곡, ‘Angel’의 반주가 시작됐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데뷔곡의 반주를 들으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시작했던 ‘Angel’, 지금은 우리에 대한 확신에 가득 차 이전보다 매끄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자신할 수 있었다.
데뷔곡을 불렀을 때보다 지금 ‘Angel’을 더 잘 소화한다고.
‘풋풋함은 덜하겠지만.’
6개월 차이도 크다고?
무대 등급은 실시간으로 올라갔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이전보다 더 멋지게 노래를 소화했다.
정민이는 훌륭한 음색으로 포인트를 살렸고, 우주의 춤에는 상큼함이 더해졌다. 메인 댄서인 호진이는 시선을 사로잡을 멋진 춤을 췄고, 가장 걱정했던 성훈은.
기다리고 있어.
세지 못할 만큼 그 많은 우연 중.
하나를 만나 네가 내게 다가오기를.
훌륭한 고음으로 노래의 클라이맥스를 불태웠다.
그의 화끈한 목소리가 벡스코를 가득 메웠고.
그에 맞춰 응원봉이 흔들거렸다.
-환! 상! 고! 음! 유! 성! 훈!
첫 무대, ‘Angel’이 끝났다.
시작이 조금 떨렸을 뿐이지, 다음은 막힘없이 이어졌다.
공연은 이어졌고, 우리는 ‘All we once’를 부르며 무대에 설치된 기나긴 런웨이를 달렸다.
달리면서 무대 아래에서 응원하는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제는 그럴 여유마저 갖췄다.
특히 우주가 그런 팬서비스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우리는 리프트 위에 올라탔고.
더 높이 올라갔다.
높이, 더 높이.
무대보다도 더 높이 올라간 우리는 그 위에서 ‘All we once’의 마지막 후렴구를 불렀다.
성훈의 고음을 내가 받쳐줬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성훈과 눈을 마주치며 노래를 부르던 나는, 마치 성훈의 머리 위에.
[관중의 환호(S)]
스킬 효과가 뜬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그럴 정도로 완벽한 무대였다.
[무대 랭크: S]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무대 등급을 받아냈다.
첫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 * *
부산에 거주하는 올리오스 팬클럽 ‘원스’의 회원 장유빈은 부산에서 하는 GH 엔터 투어 콘서트의 티케팅을 성공했다.
서울로 올라가지 못하는 그녀에게 부산 투어 콘서트는 가뭄의 단비만큼이나 달콤했다.
아이돌 팬에게 있어 직관을 할 수 없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를 거다.
몬스터즈까지 함께하는 공연이라 티케팅의 난이도가 상당했지만, 그녀는 해냈다.
“사람 억수로 많네….”
TV로 보긴 했는데, 막상 직접 보니 모인 사람들 때문에 혼잡했다.
들어가기도 전에 진이 빠진다고 해야 할까.
장유빈, 쫄지 말자.
그녀는 공연을 보기 위해 찾아온 인파를 따라가며 지정된 좌석을 찾았다.
아직 공연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지쳐버렸다.
집에서만 덕질하던 집순이 장유빈에게 이런 바깥 외출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진짜 올리오스 보러 온 거 아니었으면 집에 갔을 거다.”
시작은 몬스터즈였다.
멋진 무대였다. 역시 국내 아이돌 원탑이라는 소리를 듣는 그룹다운 무대였다.
하지만 그건 장유빈이 기다리는 무대가 아니었다.
그녀가 기다리는 건.
-♬♪, ♩♩♬~.
‘Angel’의 반주와 함께 무대 위 모니터에서 올리오스의 영상이 흘러나왔다.
데뷔 때 무대 영상과 무대 아래에서 카메라를 보며 장난치는 모습들, 그리고 벡스코에서 만나자는 라이브 때의 인사까지.
올리오스의 등장을 알리는 영상이었고.
쿵!
멤버 다섯 명이 높게 점프하며 등장했다.
“와아아!”
장유빈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그 짧은 순간만큼은 정말 올리오스가 천사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조명을 받은 올리오스의 모습은 누구보다 멋지고 아름다웠다.
올리오스에게 콩깍지가 씐 장유빈에겐 몬스터즈보다, 아니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더 멋졌다.
이건 진심이었다.
첫 등장에 보여준 올리오스의 퍼포먼스에 푹 빠진 그녀는 이후 그들이 보여주는 무대를 넋을 잃고 바라봤다.
이곳에 오기까지 겪었던 온갖 짜증들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오길 잘했다.”
장유빈은 리프트 위로 올라가 하늘을 나는 것처럼 공중에 뜬 올리오스 멤버들을 보았다.
부서지는 조명 속에서 빛나는 멤버들의 모습에 진짜 천사가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하고 말았다.
“진짜 미칬따.”
그녀는 부산 본토의 억양이 물씬 묻어나는 감탄사를 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