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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27화 (127/236)

<제127화>

부산으로 내려가면서 최대한 쉬었다.

차 안에서 잠깐 눈을 붙인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잤지만, 잔 것 같지 않은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그 시간조차도 소중했다.

황이서는 내려가는 내내 조수석에서 전화로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어, 좋아요. 진행 상황 계속 공유해 주세요. 내려가고 있습니다. 당장 새벽부터 대기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거 생각하고 움직여 주세요.”

며칠 전부터 계속 준비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당장 내일이 첫 공연이니 신경 쓸 게 더 많아지기 마련이었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여기가 너희가 머물 숙소야. 2인 1실이고, 두현이까지 해서 여섯 명이 방 3개를 쓰면 될 거다.”

벡스코 근처에 있는 호텔이 우리가 머물 숙소였다.

“우와. 나 호텔 처음 와봐.”

“나도.”

우주와 호진이 부산의 넓은 호텔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민과 성훈도 말을 하지 않을 뿐, 어린아이처럼 설렘을 주체하지 못했다.

호텔을 보는 애들의 얼굴은 마치 장난감을 선물 받은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싱글벙글했다.

“환상을 깨는 거 같아서 미안한데, 호텔이라고 해도 대단한 건 없다.”

황이서가 웃으며 말했다.

황이서가 대수롭지 않게 말한 것과는 별개로 호텔 내부는 깔끔했다.

로비부터 숙소 선정에 공을 들인 티가 났다.

“여기 방 카드야. 2인 1조로 방을 쓰면 될 거다.”

카드키를 받자마자, 성훈이 말했다.

“두현이 형이랑은 내가 같이 쓸게. 형, 괜찮죠?”

“상관없어. 나야 뭐. 하하.”

그럼 남은 건 나랑 호진, 우주와 정민이었다.

“앉았다 일어났다로 정할까?”

“오케이.”

게임으로 팀을 짜자는 우주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하나, 둘, 셋!”

나와 호진이 앉았고, 정민과 우주가 일어섰다.

“일단 푹 쉬고 있어. 나는 내일 있을 콘서트를 위해서 점검할 게 많아서. 두현아, 애들 잘 돌봐.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말하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

말을 마친 황이서가 바삐 나섰다.

“자, 일단 방에 들어가서 짐 정리하자.”

“네!”

이번 투어를 위해 챙겨온 짐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깔끔했다.

싱글 침대가 두 개, 환한 조명에 작은 책상이 붙어 있는 방이었다.

화장실은 깨끗했고, 간단한 세면도구가 있었다.

사업가 시절, 5성급 이상의 호텔을 수없이 경험했던 내가 보기에도 훌륭한 방이었다.

“와…. 좋다.”

짐을 정리한 호진이 침대 위에 풀썩 앉았다.

푹신한 침대에 엉덩이가 푹 꺼졌다.

“우와, 침대 완전 푹신푹신하다.”

호진이가 어린아이처럼 침대 위에서 몸을 들썩거리며 좋아했다.

숙소 침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푹신한 침대에 대자로 누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좋다. 이렇게 좋은 침대는 처음이야.”

호진이 천장을 바라보게끔 누운 채로 내게 말했다.

“우리 내일 잘할 수 있겠지?”

공연에 대한 걱정.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와중에도 이번 공연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당장 내일이 공연이다.

“잘할 수 있어. 연습 많이 했잖아.”

투어 준비만 한 달을 넘게 했다.

하지만 막상 이번 공연을 위해 우리가 준비한 시간은 그보다 더 길었다.

앨범을 준비했던 시간, 앨범 활동을 하며 올리오스를 알린 시간, 그보다 이전에 연습생으로서 데뷔하기 위해 준비한 시간.

이번 투어는 그런 모든 노력과 시간이 담긴 공연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 잘할 수 있을 거야.”

호진의 눈에 총기가 돌아왔다.

나는 그런 호진을 보며 물었다.

“호진아.”

“응?”

“너는 어쩌다가 아이돌이 되겠다고 한 거야?”

“왜 아이돌을 시작했냐고?”

“그래. 호진이 너는 숫기도 많이 없어서 낯선 사람들 앞에서 말도 잘 못 했잖아. 어쩌다가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했어.”

“음….”

천장을 바라본 채로 생각에 잠긴 호진.

한참 동안 진지하게 생각에 잠긴 호진이 다시 입을 열기 시작한 건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였다.

“역시 가족 때문이지.”

“가족?”

“응. 엄마랑 현진이한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 특히 현진이는 몸이 많이 아프잖아. 그래서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도 노력하면 다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남들 앞에서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낯을 가리는 호진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것.

그건 수많은 사람 앞에 서는 거였다.

“그래서 아이돌이 된 거구나.”

“응, 내가 제일 못 하는 게 사람 앞에 서는 거잖아. 그걸 할 수 있게 되면 현진이도 힘을 낼 수 있을 거 같았거든.”

진지한 이유였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꺼낼 정도로 무거운 이유이기도 했다.

“하다 보니까 춤에 재능이 있더라고. 주변에서 칭찬도 해주시니 더 힘도 났지. 언젠가 진짜 현진이 앞에 서서 오빠가 해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

호진이 나를 보았다.

“그래서 건하 너한테 고마워.”

“나?”

“응. 늘 성공할 수 있다고 우리한테 자신감을 줬잖아. 아직 현진이에게 보여줄 정도로 성공하지 못했을 때, 갑자기 악화된 동생이 수술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건하 네 덕이고.”

“갑자기 얼굴에 금칠을 해주면 부끄러운데.”

“사실이니까 너무 부끄러워 마.”

“크흠흠.”

얼굴에 열이 올랐다.

“별거 아니었어. 그때 너한테 준 돈은 일종의 투자금이었으니까. 아, 내가 돈이 많다고 자랑하는 거 아니다.”

“알아. 어떤 의미로 줬는지. 그때 다 말해줬잖아.”

“그래.”

“아무튼 덕분에 기운도 많이 났어.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음도 다잡았고. 부끄럽다고 물러서면 안 된다는 것도…. 깨달았지.”

문득 댄스스포츠에서 호진의 모습이 떠올랐다.

뭔가 한 걸음 더 나아간 느낌으로 무대에 섰던 호진의 모습 말이다.

예전이었다면 절대 혼자서 그런 무대에 서지 않았을 텐데.

“아체대 댄스스포츠 때 생각나네.”

“아…. 그거 진짜 부끄럽더라.”

“왜. 잘 나왔는데.”

“엄마랑 현진이가 SNS에 사진 올리고 전화했는데…. 나도 모르게 끊어버릴 뻔했어.”

“부끄러워서?”

“응. TV에 비치는 모습이 엄청 민망하더라. 하하핫.”

머리를 긁는 모습에서 순수함이 엿보였다.

우주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순수함이었다.

우주는 어린 느낌이 물씬 풍기는 순수함이라면, 호진이는 시골 청년 같은 느낌의 순수함에 가까웠다.

얼굴을 붉히는 모습에 괜히 놀려주고 싶었다.

“다시 보기가 여기에도 있을 텐데.”

“거, 건하야. 잠깐….”

“왜?”

“안 보면 안 될까?”

와.

이거 진짜 놀려주고 싶은 표정이다.

지금 당장 리모컨을 들고 아체대를 키면 부끄러워 죽을 표정 지을 거 같은….

“형들 뭐해? 밥 먹으러 가자.”

그때 우주가 문을 두드렸다.

“까비.”

“뭐, 뭐가 아까운 건데?”

“방금 되게 좋은 표정을 볼 수 있었을 거 같은데, 아쉽다.”

“너 진짜…?”

그래도 밥이 먼저지.

내일 공연 중에 쓰러지지 않으려면 든든하게 먹을 필요가 있었다.

우주를 맞이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호진이 물었다.

“그럼, 건하 너는 왜 아이돌이 되려고 했어?”

“나?”

정민이와 얘기를 나눈 후, 한참을 생각했었다.

나는 왜 아이돌이 되고 싶어 했던 걸까.

아니, 윤건하는 왜 아이돌이 되고 싶어 했던 걸까.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핸드폰에는 윤건하에 관련된 어떤 메모도 적혀 있지 않았다.

내가 그에 대해서 알 수 있었던 정보는 딱 두 개.

빈약한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듯한 담백한 전화번호부와.

내 춤과 노래를 녹화했던 수백, 수천 개의 데모 테이프.

이걸로 유추하자면, 건하는 아이돌에 진심이었다는 거다.

본인이 재능이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어떻게든 성공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된 건하의 가족 배경에는 재벌인 아버지, 윤택수 회장이 있었다.

그래서 감히 추측하자면, 재벌가의 외동아들이라는 무게가 주는 부담감.

건하는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

“해보니까 즐겁더라. 무대에 서는 것도 재밌고,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며 환호할 때도 신나.”

아이돌을 잘 시작한 거 같냐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돌이 좋아.”

만족스러웠다.

동시에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윤택수 회장과 약속 때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내 목표이기도 했다.

‘진엔딩.’

어떻게든 진엔딩을 보고 말겠어.

그 이후에 내가 어떻게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생각해 봤자 머리만 아프다.

“지금은 자유로운 거 같아?”

가만히 내 말을 듣던 호진이 물었다.

“응, 예전보다 훨씬 더.”

내가 말한 예전은 사업가 시절 윤건하였다.

하지만 호진이 이해한 예전은 다른 시절일 것이다.

“다행이네.”

“형들! 빨리 나와! 나 배고파.”

우주의 재촉에 우리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마스크를 쓴 채로 우주가 미리 적어뒀던 맛집 노트의 맛집을 찾았다.

돼지국밥 집이었다.

상당히 맛있었다.

호불호는 갈린 것 같지만 말이다.

* * *

“올리오스 지나가실게요!”

벡스코 근처에는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가득했다.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

“꺄아아악!”

“올리오스다!”

“사랑해요!”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팬들이 환호를 질렀다.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시그니쳐가 된 인사말을 내뱉으며 포토존에 섰다.

첫 투어 콘서트였기 때문에 입장까지 전부 보여 주겠다는 황이서의 기획이었다.

“안녕하세요.”

포토존에 선 우주가 마이크를 들었다.

“어제부터 갑자기 확 추워졌네요. 많이들 추우시죠?”

“아니요!”

“괜찮아요!”

팬들의 열정은 초봄의 추위로 막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저희 이번 투어를 위해서 준비 정말 열심히 하고 왔어요! 진짜 최선을 다해 좋은 공연 보여드릴게요!”

짧은 인사와 함께 우리는 벡스코 안으로 들어갔다.

이후에도 GH 엔터의 스타들이 입장했고, 마지막으로 몬스터즈가 입장했을 때의 함성은.

꺄아아아악!!!

그야말로 천지개벽 수준이었다.

* * *

“잘 들어요. 제가 신호를 주면 여기 점프대에서 뛰어 올라와서 무대에 설 거예요. 5초 정도 잠시 선 채로 스탠바이하면 반주 들어갈 겁니다.”

무대 담당 PD와 함께 최종 리허설을 준비했다.

“‘All we once’를 출 때 멤버들은 런웨이를 지나서 저기까지 나갈 거예요.”

메인 무대부터 시작된 기다란 런웨이, 그 끝에는 원형의 작은 무대가 더 있었다.

“저기가 리프트군요.”

황이서가 사전에 보여준 공연 설계도에서 봤다.

“맞아요. 저기서 멤버들이 리프트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를 겁니다.”

“알겠습니다!”

“자, 그럼 최종 리허설 진행하겠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리허설까지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관객 입장합니다!”

이제 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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