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24화 (124/236)

<제124화>

정민은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 듯 여전히 핸드폰을 한 손에 든 채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평소에는 웃음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지금은 어떠한 표정도 없었다.

그 모습이 짐짓 화난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악보랑 싸우려는 건가.’

그만큼 집중하고 있는 게 아닐까.

여기서 내가 뭐라고 얘기해도 듣지 못할 거 같아, 정민의 뒤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정민이 핸드폰을 눌렀다.

-흐으응~ 흐음~ 드드듬.

허밍을 넣는 정민의 흥얼거림과 함께 피아노 반주가 흘러나왔다.

그걸 들으며 고개를 까딱거리던 정민은 재생되던 음악을 정지하더니, 마우스에 손을 가져다 댔다.

딸깍, 딸깍.

모니터에는 알 수 없는 글자들과 그림들이 이리저리 박혀 있었다.

정민이 얘기하길, 레코딩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저 프로그램에 펼쳐진 각 세션에 음을 담으면 음이 출력되며 조화를 이뤄 곡을 만든다고 했던가.

정민이 마우스를 움직이며 이런저런 버튼을 눌렀다.

잠시 키보드로 뭔가를 입력하더니, 키보드 옆에 놓인 전자드럼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탓, 타닷, 닷. 탓닷.

규칙적인 리듬감과 그 사이사이 들어가는 변칙적인 드럼.

‘방금은 피아노였던 거 같은데.’

손가락으로 일정한 규칙의 킥드럼 박자를 맞추던 정민이 이번에는 신시사이저를 이용해서 드럼의 박자에 음을 더했다.

-딴단단, 딴, 딴.

킥드럼 위에 신시사이저가 만든 화음이 더해졌다.

“여기서 베이스를 살짝 넣고….”

중얼거리던 정민이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베이스를 넣었다.

신시사이저와 킥드럼이 만든 가벼운 음악에 베이스가 무게감을 잡아주기 시작했다.

“호우! 하라하~.”

그러더니 레코딩 마이크에 입을 가져다 대며 입으로 소리를 내었다.

‘이게 들어가도 되나?’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정민이라도 저런 소리는 소화를 못 시킬 거 같은데.’

라고 생각하자마자. 정민이 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였고.

소리가 바뀌었다.

처음보다 음이 살짝 올라가며 오토튠이 붙었고, 거기에 에코가 들어가면서 그럴듯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소리는 지금까지 만들어진 멜로디의 포인트가 되었다.

“이야.”

흥미로웠다.

나도 모르게 감탄할 정도로.

정민이는 여전히 작곡에 열중한 듯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이제는 꽤 그럴싸한 소리가 되었다.

아직은 5%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어깨가 씰룩거릴 정도로 신나는 노래인 건 맞았다.

그리고 정민은 다시 한번 신시사이저에 손을 올렸다.

-따라란. 다단, 따라라단….

아까 처음 핸드폰에서 들었던 그 멜로디였다.

마치 도둑이 몰래 살금살금 집에 들어가는 것처럼 멜로디의 소리가 작았다.

통통 튀는 멜로디의 세션이 지나가고, 정민의 표정이 바뀌었다.

-따다단! 따란! 다라라란!

지금껏 정민이 만든 화음에 마지막으로 멜로디가 얹어졌다.

거기에 하나의 레이어를 더하고, 비슷한 느낌의 조금 다른 화음을 더했다.

몇 번의 반복 작업이 끝나고.

-♩♬~♪♪♬! ♩♩♩!

처음 내가 들었던 핸드폰의 노랫소리와 비슷한 음악이 귓가를 간지럽히는 아름다운 화음이 되어 펼쳐졌다.

“흐으음, 나나나난. 나난~.”

정민이 그 위에 허밍을 얹었다.

만족한 얼굴이었다.

눈을 감고 입꼬리가 올라간 채로 허밍을 더했다.

이건 됐다.

음악에 문외한인 내가 듣자마자 좋다고 느낄 정도면, 말 다 했다.

아마 차기작 앨범에 나올 거다.

저 허밍은 가사가 들어갈 음이겠지?

멜로디와 허밍이 얹어지면서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던 부분이 메워졌다.

완벽한 하나의 노래가 되었고, 정민은 완성된 노래를 다시 한번 감상했다.

“허….”

화면은 정민이 만든 세션으로 가득했다.

이리저리 제멋대로 흘러나온 소리의 구성이 모여 하나의 음악이 되는 과정을 생중계로 본 거다.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에 온전한 음악이 만들어졌다.

예전에도 봤지만.

‘진짜 재능이 흘러넘친다.’

정민이 진짜 작곡에 미친 재능을 가진 것만은 확실했다.

‘기대되네.’

그가 지닌 S급 스킬 미래의 마에스트로가 SS급 스킬인 마에스트로로 각성하는 순간이 말이다.

짝짝짝.

나는 박수를 쳤다.

“진짜 대단하다.”

“흐아아악!!”

그제야 뒤를 돌아본 정민이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 기겁을 했다.

“그 반응 뭐야? 진짜 섭섭해질 것 같은데.”

“까, 깜짝이야. 거, 건하야. 언제 왔어?”

“너 핸드폰 들고 레코딩한 거 듣고 있을 때부터.”

“그럼 다 봤겠네?”

“본의 아니게. 대답이 없길래 끝날 때까지 기다렸지.”

“아, 부끄럽게. 하하하.”

정민이 머리를 긁적이며 얼굴을 붉혔다.

들키지 말아야 할 걸 들킨 사춘기 소년처럼 말이다.

“크흠, 어땠어?”

“좋았다. 최고였어.”

“후우, 다행이네. 곡 만들 때는 진짜 즐거웠는데, 항상 만들고 나면 이래. 내가 잘 만든 게 맞나 싶을 때가 있어.”

“진짜 좋았어. 이런 좋은 노래가 순식간에 뚝딱 만들어지는 거 보고 놀랐다니까.”

“하하, 그렇게 금방 만들어진 건 아니야. 며칠 전부터 계속 이 노래만 생각했거든. 녹음 메모 하나 만들어서 비슷한 느낌으로 몇 번이고 녹음해 보고, 괜찮은 소리 있나 여기저기서 따와도 보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그만큼 치열한 고민이 있던 거다.

백조가 수면 위에서는 우아하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그의 다리로 필사적으로 헤엄을 치고 있는 것처럼.

내가 본 건 잠깐이지만, 그 이전부터 이어온 고민이 완성된 거겠지.

“그런데 악상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거야?”

“가끔 팟! 하고 튀어나오는 걸 빠르게 메모해서 적는 편이지.”

“신기하네.”

“건하 너도 나름 이쪽에 재능 있으니까 작업 한번 해보는 거 어때? 저번에 'New Taste’도 네 도움으로 만들었으니까.”

“됐어. 나는 나를 잘 알아.”

정민의 말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때는 정말 얻어걸린 거다.

물론 정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 너도 생각이 있을 테니까. 네 몫까지 내가 열심히 할게.”

아마 내가 자신을 배려해서 작곡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 그런데 여기엔 어쩐 일이야?”

“아니 뭐, 우주는 우주카페 PD랑 회의한다고 가고, 성훈이 형도 <명곡 배틀> 때문에 방송국에 가고, 호진이랑 둘이서만 연습하다가 쉬는 시간 돼서 잠깐 놀러 왔지.”

“아, 연습 끝났어? 호진이는?”

“연습은 끝났는데, 걔는 연습 더 하겠다고 아직 연습실에 있어.”

“다들 독하네.”

나는 그런 정민을 가만히 보았다.

그가 음악 작업을 하는 걸 지켜보는 동안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이 하나 있었다.

정민이는 어쩌다가 아이돌이 된 걸까.

정민이 노래를 만드는 걸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굳이 아이돌을 하지 않아도 작곡은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이 든 이유는 이종민 때문이었다.

그는 나름대로 성공한 가수지만, 본인 스스로가 만족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가수라는 직업이 주는 부담감.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무한 경쟁의 사회.

그 부담감이 주는 처절함이 피부에 와닿았다.

그 순간 의문이 들었다.

다른 멤버들은 왜 아이돌이 되고 싶었던 걸까.

윤건하는 왜 아이돌이 되고 싶었던 걸까.

그 답을 알고 싶었다.

윤건하의 기억이 없으니, 다른 멤버들의 이유를 들으며 조금이라도 추측하고 싶었다.

멤버 중에 정민이가 먼저 떠올랐던 건.

가장 대화가 잘 통하고, 나름대로 진중하게 대답해 줄 만한 사람이라 그런 거아닐까?

“정민아, 너는 왜 아이돌이 되고 싶었던 거야?”

“나? 왜 아이돌이 되고 싶었냐고?”

“응.”

“흐음….”

정민이 턱을 괴며 고민했다.

“글쎄. 사실은 노래를 만들고 싶었어. 멋지잖아. 머릿속에 떠오른 악상을, 내 귀에만 들리는 음악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거 말이야.”

“그건 아이돌이 아니라 작곡가여도 가능하잖아.”

“그렇긴 하지.”

“꼭 아이돌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어?”

“음….”

잠시 고민하던 정민이 웃으며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이 잘생긴 얼굴을 그냥 두기엔 아깝잖아.”

“…….”

“아, 왜. 반응 좀 해줘. 민망하잖아.”

“미안. 잠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어.”

“와, 나보다 잘생겼다 이거야?”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니긴 한데.”

“너무하네. 못생긴 사람 서러워서 어디 살겠나.”

토라진 척 인상을 쓰던 정민이 물었다.

“그럼 건하 너는 왜 아이돌을 하고 싶었던 건데?”

“…음. 모르겠어.”

“어?”

“지금이야 무대에 서는 게 즐겁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는 모습이 좋아서 계속 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한데. 왜 아이돌을 하고 싶었던 건지 기억이 나질 않아.”

내 말에 정민이 당황한 듯 입을 다물었다.

“간혹 그럴 때가 있다고 하더라. 너무 현재를 열심히 살다 보니, 과거를 잊는 일들 말이야. 연습생 시절이 빡세긴 했지. 잊어버릴 만해.”

정민은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거 같았지만, 진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이돌을 내 의지대로 시작하지 않았거든.

아이돌은 ‘윤건하’의 바람이었다.

“잘생긴 얼굴을 버리기엔 아깝다라. 조금 의외의 이유네.”

“반은 진담이야. 솔직히 연습생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거든.”

정민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호진이를 보고, 다른 아이돌 선배들 실물을 보고, 그리고 네 얼굴을 보고 그 생각이 꺾여 버렸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너 잘생긴 거 맞아.”

“엎드려 절받기야. 늦었어.”

삐진 정민의 입이 쑥 나왔다.

“오늘 노래 잘 나와서 봐주는 거야. 아니었으면 국물도 없었어.”

“고맙다.”

나는 정민을 보며 웃었다.

마주 보며 웃던 정민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사실 진짜 이유는 내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였어. 전문 작곡가가 되면, 내가 만든 노래를 부르진 않을 것 같았거든. 쓰는 것에만 만족했을 것 같달까?”

방금과는 달리 목소리에 진중함이 묻어 있었다.

아마 지금 한 말이 진심일 거다.

자기가 만든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가 대중의 사랑을 받아서 여기저기서 들린다.

“멋진 일이지. 지금 그러고 있잖아. 지금도 길거리에 나가면 정민이 네 노래가 여기저기서 들리니까.”

“맞아. 반은 이뤘지. 조금 더 많이 불러줬으면 좋겠어. 그래서 더 노래를 만드는 거고.”

그의 눈동자에서 의지가 불타올랐다.

다음 앨범 대박 나겠다.

진짜로.

“참, 그러고 보니 성훈이 형 진짜 괜찮을까?”

“뭐가?”

“이제 2주 뒤면 투어인데, <명곡 배틀> 사전회의 때문에 벌써 추가 스케줄에 끌려갔잖아. 진짜 일주일에 한 번만 가는 거겠지? 설마 계속 부르는 거 아니야?”

“설마.”

아무리 방송국이 나쁜 놈들 투성이라지만, 투어 일정까지 잡힌 연예인을 그렇게 굴리겠어.

과거 아이돌과 연예인을 자기들 멋대로 굴린 방송사들의 뉴스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문에 방송사도 욕을 엄청나게 먹었지.

그러니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선을 지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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