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화>
“내 녹음 시간이 아니었던가?”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당황한 건 담당 PD였다.
“아, 이종민 씨 오셨습니까? 제가 오후 4시로 알려드리지 않았나요?”
“매니저한테 받은 문자는 오후 2시로 왔었는데.”
“하아, 이거 전달이 잘못된 거 같은데요. 종민 씨 작업은 4시에 있습니다.”
“허허, 그래? 이거 착오가 좀 있었나 보네.”
“죄송합니다. 종민 씨.”
“아니야, 됐어. 나도 스케줄이 없었으니까 조금 일찍 출근했다고 생각하지 뭐.”
말은 괜찮다고 하지만, 이종민의 표정은 전혀 밝지 않았다.
당연히 그럴 법도 한 게, 소속사 직원의 실수로 스케줄이 꼬여 버렸으니.
그것도 두 시간이나 붕 떠버린 거다.
‘화가 날 수밖에.’
아마 그가 억지로 표정 관리를 한 건, 소속사 후배들 앞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을 거다.
아니었다면, PD에게 목청껏 소리를 질렀을지도.
“시간이 조금 엇갈렸나 보군. 잠시 여기 있어도 되겠지? 딱히 갈 곳도 없어서 말이야. 실례가 안 된다면.”
“괜찮습니다.”
우주를 시작으로 우리는 옆으로 움직여 자리를 만들었다.
이종민이 옆에 앉았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이렇게 얘기하는 건 처음이네. 저번 앨범 잘 봤어. 아주 깔끔하게 잘하던데? 보컬들 실력도 좋고.”
“감사합니다.”
“뭐, 애매한 선배의 칭찬이 좋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허허허.”
멋쩍은 웃음 속에 숨겨진 자격지심이 느껴졌다.
“아닙니다, 선배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나와 우주를 시작으로 정민과 호진이도 선배에 대한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선배님처럼 좋은 가수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라도 얘기해주니 고맙네.”
후배 가수를 보는 이종민의 얼굴에는 부러움과 동시에 체념이 담겨 있었다.
우리가 모르는 여러 사연이 녹아든 얼굴이었다.
눈가에 새겨진 짙은 주름이 새겨지는 과정에서 여러 슬픔과 버거움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건 잠깐이었다.
카메라에 자주 노출되는 직업이라 그럴까.
이종민은 자신의 표정을 숨기는 것에 능숙했다.
“자, 그럼 바로 녹음 들어갈게. 처음부터 다시 한번 해보자.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끊을 테지만, 끊지 않으면 이상한 것 같아도 신경 쓰지 말고 계속 가.”
“알겠습니다.”
“좋아. 그럼 갈게.”
다시 자리에 앉은 PD의 주도하에 녹음이 시작되었다.
-♪~♬♩♬~♩♩.
짧은 반주와 함께 성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녹음실에 있는 모두가 성훈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건 이종민도 마찬가지였다.
“허….”
바로 옆에 앉은 탓에 들렸다.
이종민이 내뱉는 작은 탄식을.
성훈의 노래가 나빠서 내지르는 탄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의 노래가 좋았기에 내는 탄식이었다.
벽을 마주한 사람이 내는 신음이 이러하지 않을까.
턱에 힘이 들어가 턱 근육이 꿈틀거렸다.
침을 꿀꺽 삼키고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성훈이 녹음하는 내내 입을 다물고 그를 바라봤다.
마치 성훈이 내는 모든 소리를 듣고 머리에 저장하려는 듯이 말이다.
작은 움직임조차 없었다.
그가 이걸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의 닫혀 있던 입은 성훈의 노래가 다 끝나고 나서야 열렸다.
“하아.”
성훈이 노래를 부르는 동안 숨 하나 쉬지 않았던 것처럼.
“정말이지…. 재능이 반짝반짝 빛나네. 허허.”
생각이 많아진 듯 입을 다물었다.
“저 친구가 메인 보컬이지?”
“네. 맞습니다.”
“후우. 라이브는 조금 충격이군.”
왜 성공했는지 알 것 같아.
그가 작게 되뇐 목소리는 옆에 붙어 앉은 나도 듣기 어려울 정도로 작았다.
“부럽네. 정말 부러워. 저렇게 젊은 나이에 실력을 가졌다는게.”
지친 남자의 얼굴이었다.
나는 그의 옆모습을 오래 보지 못했다.
“건하 씨, 지금 들어가셔서 녹음 시작하시죠.”
내 차례가 왔으니까.
성훈이 나오고, 나는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크흠흠.”
목을 가다듬으며 PD의 사인을 기다렸다.
부스 안의 공기는 언제나 그렇듯 특유의 방향제 냄새가 났다.
마이크 앞에 서고, 헤드폰을 썼다.
그러는 와중에 부스에서 나온 성훈과 이종민이 대화를 나누는 걸 보았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걸까?
-아까 성훈 씨가 하는 거 봤죠? 잘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마이크 앞에 설치된 가리개에 입을 가까이 대고 PD의 말에 대답했다.
-그럼 시작합니다.
“네.”
-하나, 둘, 셋, 큐.
사인과 함께 음악이 흘렀다.
시선이 느껴졌다.
멤버들의 시선뿐만 아닌, 이종민의 시선이.
누구보다 강렬했다.
-빨리 네가 와주길.
내 파트의 첫 소절을 부르는 순간, 부스 너머 이종민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게 내 마지막 감상이었다.
음악에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았고, 이제 타인의 시선은 내 관심 밖이었다.
흐르는 멜로디 속, 녹음된 멤버들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그 사이에서 노래를 불렀다.
내 목소리와 반주, 비트와 멜로디가 하나의 하모니를 이뤄냈다.
둠칫둠칫, 리듬을 타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나는 녹음을 하는 내내 노래를 즐겼다.
그게 내가 이 노래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정민이 만든 노래는 즐거웠으니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르는 사람으로 하여금 즐기게 만드니까.
그래서 노래에 깊게 심취하며 불렀다.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밀폐된 부스가 후끈해졌다.
선명하고 정밀한 녹음을 위해 에어컨도 난방도 전부 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아직 겨울의 냉기가 전부 사라진 것도 아닌데도 여름처럼 땀이 흘렀다.
“하아, 하아.”
-좋았어요. 확실히 느낌이 좋네요.
PD의 만족스러운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눈을 떴다.
이종민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아까 성훈의 노래를 들었을 때와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15분에 걸친 녹음이 끝났다.
-이 정도면 될 거 같아요.
“벌써요?”
-충분해요. 나머지는 튜닝이랑 음정 작업만 살짝 맞추면 될 거 같아요. 추가 녹음은 불필요할 정도예요. 하하하!
편곡을 담당한 PD의 만족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성훈도 비슷했던 것 같은데.
너무 좋게 봐주네.
“알겠습니다.”
부스 밖으로 나가자, 정민이 들어갔다.
“이러다간 서브 보컬 자리 뺏길 거 같은데.”
정민이 엄살을 떨었다.
모르는 소리다.
정민이 가진 음악적 센스는 음색으로 넘길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음악을 만져서 그런 건지, 본능적으로 음을 활용하는 센스가 기가 막혔다.
아마 녹음 시간은 우리 중에 제일 짧을걸?
“건하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선배님.”
“…예전에 기사로 봤을 때, 연습을 많이 한다고 봤는데. 맞나?”
“맞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이렇지 않았단 말이지?”
“예. 예전에는 형편 없었습니다. 노래도 춤도.”
“허….”
그때 우주가 끼어들었다.
“건하 형이 연습하는 거 보면 진짜 놀란다니까요? 저희도 처음 봤을 때 이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양인가 싶었어요.”
“…….”
이종민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생각에 잠긴 듯 아무런 말도 없이 턱을 괴었다.
한참의 침묵이 끝나고.
“타고난 재능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었네. 내 한계를 스스로 정하고 포기했었지. 한데 건하 자네를 보니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이종민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전부 다 포기를 했었는데…. 허허.”
말을 마친 이종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PD, 나는 잠시 2녹음실에 가 있겠네.”
“아, 종민 씨. 2녹음실에 가십니까?”
“그래. 녹음 끝나면 불러주게. 잠깐 연습을 좀 하고 있겠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이종민은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나 녹음 들어갔을 때 선배님이랑 무슨 얘기 했어?”
내 질문에 성훈이 대답했다.
“그냥 물어 보시던데, 언제부터 노래했는지.”
“그게 다였어?”
“응. 연습생 초창기 시절 때부터 했으니까 벌써 5년은 넘었네. 그렇게 얘기하니까 놀라시더라. 재능이라고.”
“하긴, 성훈이 형이 재능이 넘치긴 하지. 진효원 선배님도 칭찬하신 보컬이잖아.”
“크흠흠. 그, 그렇긴 하지.”
진효원 선배 얘기에 성훈이 당황했다.
롤모델의 칭찬 얘기가 나오니, 기분이 좋아진 걸 거다.
“그러다가 네가 노래 부르는 거 보고 물어 보시더라.”
“어떤 걸?”
“너는 노래 언제부터 했는지.”
“아.”
“본격적으로 실력이 는 건 얼마 안 됐다고 했지.”
올리오스 멤버들은 내 예전 보컬 실력까지 전부 다 알고 있었다.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형편이 없었다는 걸.
그래서 내가 나오자마자 물어본 거였구나.
“건하 네가 연습으로 실력 늘었다는 거 듣고 생각이 많아지신 거 같더라.”
“…….”
나는 이종민이 나간 문을 보았다.
아무래도 나와 성훈이 중견 가수의 꺼져버린 열정에 다시 불을 붙인 것 같았다.
처음에 이종민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와 같은 가수는 되지 않겠다고.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마주쳐서 무너진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다.
한계가 있다면 그 한계를 돌파해 버리는 게 윤건하의 좌우명이었으니까.
‘아무래도 그 한계를 깬 거 같네.’
물론 누군가는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제 데뷔 12년이 넘은 가수는 변할 수 없다고.
나이 40줄이 넘은 가수는 발전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 모든 게 스스로 한계를 규정짓는 일이야.’
나는 그런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번 투어가 선배님께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
그저 건방진 후배의 생각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정민의 녹음이 시작되었다.
녹음은 순조로웠다.
* * *
“그림 좋네.”
촬영분을 확인한 기재율 PD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아주 좋은 구도였다.
데뷔한 지 오래된 한물간 선배 가수, 이종민.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후배 아이돌, 올리오스.
상반된 두 사람의 만남은 묘하게 어울리면서도 언밸런스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소속사의 미스로 인해 이뤄진 두 팀의 만남은 다소 어색한 시작을 연출했다.
특별한 다툼도 없었지만, 다소 가라앉는 녹음실 분위기.
숨이 턱턱 막히는 이 순간에 이종민은 성훈의 녹음을 지켜보겠다며 앉았고, 성훈과 건하의 녹음 장면을 보던 이종민의 얼굴이 굳어졌다.
연달아 훌륭한 녹음을 보여준 후배의 모습에 각성해 녹음실로 향하는 선배 가수.
“좋아. 좋아.”
브이로그로 남기기엔 아쉬웠다.
“비하인드 컷으로 쓸 수 있겠어.”
방송용으로 쓰기 위해서는 여러 군데를 상당히 잘라야겠지만 말이다.
“투어의 결과에 따라 달라지겠네.”
기 PD는 벌써 투어가 기다려졌다.
“역시 얘들이랑 하길 잘했다니까.”
기 PD가 기지개를 켜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 * *
“정민아, 뭐해?”
나는 혼자 작업실에서 녹음하는 정민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