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8화>
연습을 마친 우리는 연습실 바닥에 앉아 아까 황이서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투어라니…. 뭔가 떨린다.”
정민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말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투어를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성공한 아이돌 그룹의 상징 같은 거잖아.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찾아와주는 팬이 있다는 뜻이니까.
물론 단독 콘서트 투어는 아니었다.
몬스터즈와 함께 하는 GH 엔터의 투어.
하지만 황이서가 말하길.
‘너희만 올라가는 무대가 있을 거다. 몬스터즈만 올라가는 무대도 있을 거야.’
올리오스만 무대에 오르는 콘서트도 있다고 했다.
‘올리오스의 팬클럽도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 컸고, 이제 하나 정도는 너희가 담당해도 될 테니까. 솔로 콘서트 생각하면, 라이브 경험도 계속 쌓아야 하고.’
그 말에 기운이 더 샘솟았다.
업계에서 오랫동안 일한 그에게 인정받을 정도면, 이제 올리오스 역시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다는 얘기일 테니까.
“앨범 활동 때만큼 바빠지겠지?”
“그보다 더 바쁠 수도 있어. 지방에 가고, 국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녀야 하니까.”
우주의 말에 정민이 대꾸했다.
“어쨌든 한 번은 우리만의 콘서트를 할 수 있다는 거잖아.”
“그렇지. 그만큼 더 열심히 해야 해. 우리의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한테 최악의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으니까.”
성훈이 그답게 열정과 연습을 강조하는 말을 뱉었다.
다른 GH 소속 인원들도 나오니 온전한 우리만의 콘서트는 아니지만, 언젠가 다가올 솔로 콘서트에 대한 기대감도 은근히 느껴졌다.
“힘내자.”
호진이 조용하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앞으로 있을 투어를 대했다.
“투어 때문에 지방에 다니면, 맛집 여행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설레하는 우주의 말에 정민이 고개를 저었다.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식단 관리해야지. 살찐 채로 팬들 앞에 서려고?”
“아, 맞네.”
“뭐 먹고 싶으면 지금 먹어둬. 투어 시작하면 그것도 힘들 테니까.”
“으으, 아쉽다. 리스트도 쫙 짜놨는데.”
품에서 핸드폰을 꺼낸 우주가 우는 연기를 하며 메모장을 켰다.
강원도.
정선 ? 올챙이 국수, 메밀 전병.
강릉 ? 옹심이 칼국수, 메밀 막국수, 짬뽕 순두부.
춘천 ? 닭갈비.
충청도.
대전 ? 선심당. 두부두루치기.
천안 ? 호두과자.
…….
빼곡하게 적힌 메모장에는 지역별로 주요 맛집 리스트가 적혀 있었다.
심지어 메뉴별로 어디가 맛집이고 주소가 어떻게 되는지까지 세심하게 적어놨다.
“우주야, 설마 이거 다 먹으려고 체크한 거야?”
“당연하지. 나중에 언제 갈지 모르니까 미리 준비했던 건데…. 하아, 아쉽다.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하나.”
풀이 죽은 우주의 모습에 성훈이 등을 두드렸다.
“맛집 여행은 투어가 아니더라도 갈 수 있다. 차라리 이번에 시간 있을 때 한번 갔다 오는 것도 괜찮겠네.”
“정말?”
“투어 전에 하루 정도는 휴가받아서 단체로 놀러 가도 되지 않겠어?”
의외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훈이 그런 말을 하다니.
성훈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에 우주도 벙찐 얼굴로 그를 마주봤다.
“왜? 나도 놀 땐 논다고.”
“방금 전에는 연습해야 한다면서.”
“너희가 하루 이틀 놀러 간다고 해이해질 거 아닌 걸 잘 아니까.”
아무래도 일전에 우주와 있던 일이 계기가 된 듯했다.
무조건 연습을 강요한다고 실력이 느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다.
그걸 우주가 제대로 보여줬으니, 성훈이도 느낀 거겠지.
굳이 강요할 필요는 없다는 걸 말이다.
“누구 덕분에 제대로 알았지.”
말하던 성훈이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야, 그런데 너 왜 나를 보냐?
“적당히 쉬는 것도 연습 아니겠어, 건하야?”
“잘 쉬는 것도 연습이지.”
쉬는 것도 장기적으로 가기 위한 중요한 전략이다.
쉬지 않고 달리기만 한다면, 금방 퍼질 테니까.
“나 잠시 바깥 공기 좀 쐬고 올게.”
“그래. 5분 뒤에는 돌아와야 한다.”
“오케이.”
멤버들이 투어에 맞춰 각자 다른 방식으로 준비하는 만큼, 나 역시 이번 투어를 위해 준비할 게 있었다.
밖으로 나온 나는 핸드폰을 봤다.
이번 투어에 맞춰서 우리 올리오스의 스탯과 역량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최우주]
[나이: 20]
[노래: B]
[춤: A]
[외모: B]
[예능: A]
[스킬: 친화력(A), 청산유수(B), 원샷을 위하여(B)]
[안호진]
[나이: 21]
[노래: C]
[춤: S]
[외모: A+]
[예능: D]
[스킬: 남다른 춤선(C), 끈기(B)]
[정민]
[나이: 20]
[노래: B+]
[춤: B]
[외모: B+]
[예능: C+]
[스킬: 작곡(B), 미래의 마에스트로(S) - 성장 중: 담당 멘토 카이]
[유성훈]
[나이: 22]
[노래: A+]
[춤: B+]
[외모: B+]
[예능: D+]
[스킬: 고집(A), 폭포수 같은 고음(A)]
‘전체적으로 좋아.’
100% 완벽한 능력치는 아니었지만, 각자 한 부분씩 특화되어 있는 것이 명확히 보였다.
이번 투어에 앞서 뭔가를 올릴 부분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스탯을 올릴 정도로 포인트가 많지도 않고.
앞서서 트레이닝으로 멤버들의 스탯을 올린 이후에 많은 마일리지를 얻은 것도 아니었다.
반복 퀘스트로 소소하게 마일리지를 얻은 것과 체육대회에서 얻은 18 마일리지, 구희성의 모델 퀘스트로 얻은 15 마일리지.
가지고 있는 총 마일리지는 33 마일리지.
‘스탯보다는 스킬 구입이 더 필요할 거 같은데.’
어떤 스킬을 뽑는 게 좋을까.
역시 무대 관련 스킬을 뽑는 게 제일 좋을 거다.
천장 두 번 정도는 칠 수 있었다.
‘이번 스킬 뽑기 픽업 스킬이….’
[스킬 뽑기]
[픽업 스킬: S급 스킬 ? 관중의 환호]
[효과 1: 관중의 환호를 보다 쉽게 끌어낼 수 있습니다.]
[효과 2: 무대 위에서만 발동합니다.]
범용성이 그리 높지 않은 스킬이었다.
무대 위가 아니라면 발동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단점인 스킬.
한계점이 명확했기 때문에 이걸 뽑기 위해 마일리지를 소모할 정도로 좋은 스킬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름: 윤건하]
[나이: 20]
[스킬: 과금(EX), 평범함(F),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칼각(S), 빛나는 스타덤(SS), 호소력 짙은 목소리(B), 트레이닝(S), 네 사진 속에 저장(A)]
[노래: 61 (A)]
[춤: 62 (A)]
[외모: 72 (S)]
[예능: 40 (C)]
이제 예능을 제외하곤 전부 A급이 넘은 지금.
애매하게 스탯을 올리는 것보단 차라리 스킬을 하나 더하는 게 효과적이었다.
‘스킬을 하나 더하는 것도 괜찮은 거 같은데.’
[M&L주식증권 ? 7억 5,400만 원]
나는 마일리지 중 30 마일리지를 사용해 750만 포인트를 뽑아냈다.
이거면 천장을 두 번은 칠 수 있는 양이었다.
이 중 스킬 뽑기에 사용할 포인트는 300만.
천장 한 번 찍으면 최소 1억 정도는 새롭게 입금될 거다.
이제는 포인트로 스탯을 올리는 효율이 점점 안 좋아질 테니, 고정적인 포인트로 효과를 낼 수 있는 스킬이 더 효자 상품이 될 거다.
‘그렇다고 스킬을 무한히 지정할 수는 없는데….’
한 번에 스킬을 쓸 수 있는 한도는 총 10개.
중간중간 내가 가진 스킬을 없애거나 교체할 수는 있지만, 교체를 하는 순간부터 해당 스킬은 사라지는 시스템이었다.
[스킬: 과금(EX), 평범함(F),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칼각(S), 빛나는 스타덤(SS), 호소력 짙은 목소리(B), 트레이닝(S), 네 사진 속에 저장(A)]
지금 내가 가진 스킬은 현재 총 7개.
남은 스킬은 이제 고작 3개.
새로 스킬을 넣으려면 조금은 신중해질 필요가 있었다.
기존의 스킬과 겹치지 않게끔 말이다.
‘평범함을 없앨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럼 7개가 아닌 6개.
숫자의 부담감이 훨씬 줄어들었다.
그때였다.
[평범함(F)을 제거하기 위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제거가 불가능합니다.]
잠깐, 디버프 스킬을 제거할 수 있다고?
“진짜 없앨 수 있는 스킬이었어?”
저것만 없앤다면 앞으로 올릴 스탯의 효율이 2배로 좋아질 거다.
저 효과 때문에 드는 포인트 소모량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왔다.
‘평범함을 없앨 수 있는 조건이라.’
감이 잡히는 게 하나 있었다.
유일하게 A를 찍지 않았던 스탯인 예능.
예능까지 A를 찍는다면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감이었다.
지금까지 시스템의 방식을 생각해보면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었다.
특정 조건이 맞춰지면 능력이 해금되는 방식이었다.
혹은 새로운 기능이 생기거나.
‘평범함도 그렇게 하면 없어지지 않을까?’
최소 A급 스탯이라는 건 누가 봐도 평범함을 뛰어넘은 수치니까.
아쉽게도 당장 예능을 A급으로 올릴 수 있는 포인트가 남지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모자랐다.
‘당장은 없앨 수 없으니 아쉽지만….’
처음 계획대로 당장은 스탯을 올리는 것보단 스킬을 뽑는 게 맞았다.
될지 안될지 모르는 계획을 시행하는 것보단, 적어도 성공이 보장된 방법을 택하는 게 더 좋으니까.
이번 픽업 스킬인 S급 관중의 환호 스킬은 빛나는 스타덤과 유사한 스킬이었다.
내가 가질 필요는 없는 스킬이었지만, 이번 투어에선 여러모로 활용이 많이 될 스킬이기도 했다.
내가 가지고 있어서 중복 적용이 되지 않는다면.
‘다른 멤버에게 주면 그만이지.’
이미 누구에게 줄지도 생각해뒀다.
“그럼 시작해볼까?”
나는 300만 포인트를 소비해서 600 연차를 돌렸다.
역시나.
픽업 스킬은 나오지 않았다.
너무하네.
빌어먹을 놈들.
내가 운이 없는 건 아는데, 이건 너무하잖아.
끝까지 정가로 사야겠어?
한 번은 나올 법하잖아.
운을 뛰어넘는 돈으로 찍어 누른다고는 하지만 마음이 답답한 건 사실이었다.
나는 뽑기를 돌릴 때마다 얻는 음표를 살 수 있는 ‘음표 교환소’에 들어갔다.
[관중의 환호(S) 구매: 600 음표]
[구매하시겠습니까?]
물론이지.
[구매하셨습니다.]
[S급 스킬 ? 관중의 환호]
[효과 1: 관중의 환호를 보다 쉽게 끌어낼 수 있습니다.]
[효과 2: 무대 위에서만 발동합니다.]
무대에서 효과가 극대화되는 스킬.
그렇다는 건.
무대에서 가장 돋보이는 사람에게 이 스킬을 주는 게 제일 좋겠지.
역시 눈이 가는 건.
[유성훈]
[스킬: 고집(A), 폭포수 같은 고음(A)]
유성훈이었다.
올리오스에 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두 사람을 꼽자면, 메인 댄서인 안호진과 메인 보컬인 유성훈일 거다.
나는 아니냐고?
내 입으로 내가 최고라고 하는 건 조금 민망하니까.
‘우선 성훈이한테 주자.’
메인 보컬에 준다면 분명 좋은 호응을 얻어낼 거다.
스킬을 뽑은 나는 유성훈에게 스킬을 수여하기 위해 연습실로 다시 돌아갔다.
연습실에서만 트레이닝 스킬을 부여할 수 있으니.
[유성훈에게 관중의 환호(S)를 수여합니다.]
[관중의 환호(S): 관중의 환호를 보다 쉽게 끌어낼 수 있습니다.(무대 위에서만 발동됩니다)]
[400만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포인트가 줄줄 샌다.
예능도 A로 올려야 하는데, 포인트가 또 나가네.
‘이번 투어가 시작하기 전에 저 평범함을 지울 방법을 찾아야겠어.’
나는 속으로 의지를 다졌다.
이게 내가 이번 투어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이었다.
짐을 없애고 더 좋은 스킬을 갖고 말겠다.
“후우.”
허리띠 바짝 조이고 모으자.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중복 스킬들을 갈아 스킬 조각들을 만들었다.
조각마저 필요없는 스킬은.
[뽑은 아이템을 소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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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인한 금액은 최소 1억.
내 지갑의 돈이 되었다.
* * *
“또 무슨 일로 우리 집에 온 거야?”
한진성은 대뜸 자기 집으로 찾아온 구희성을 보았다.
저번처럼 불 끄고 기다리고 있던 건 아니었다.
마치 자기 집처럼 TV를 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유명 드라마였다.
선배 배우들의 연기를 모니터링 중인 모양이었다.
“그 애, 최고더라.”
“누구? 건하?”
“응. 그 친구 크게 될 거 같아.”
“내가 말했잖아. 장난 아니라고.”
“리더가 왜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아.”
“화보 모델 시켰다면서.”
“들었구나?”
“프로듀서 형이 얘기해줬어. 그런데 진짜 연기 시키려고?”
“그러고는 싶어. 그런데 연기를 시키면 말이야….”
구희성이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나를 금방 뛰어넘을 거 같아서 걱정이야. 좋은 재능을 가진 후배가 나온 건 좋은데, 그 친구가 나를 넘길 거라는 생각을 하니까 가슴이 답답해.”
“…….”
“이런 생각이 든 적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뭔지 알지.”
경쟁심이었다.
한진성은 몇 번이고 느꼈던 감정.
물론 후배 중에서 그 경쟁심을 일으킨 건 건하가 처음이었지만 말이다.
갑자기 TV를 보며 모니터링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일 거다.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그 감정을 적당히 가지면 발전을 하더라.”
진성은 말없이 TV를 보는 구희성의 옆에 앉았다.
아껴뒀던 과자 봉지를 꺼내 구희성에게 내밀었다.
감자칩인데 단짠의 조합이 완벽한 녀석이었다.
와작.
“맛있네.”
“내 최애야.”
한진성은 구희성이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한참 옆에서 함께 드라마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