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화>
“고생이 많으십니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N-스포츠에서 제공해준 헬스장을 찾았다.
실내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찍기 위해서였다.
박한솔은 그냥 스튜디오에서 찍는 건 맛이 안 산다면서 내부 디자인이 깔끔한 헬스장을 N-스포츠에 요청했고, 제안이 받아들여져 N-스포츠는 해당 본사에 위치한 내부 헬스장을 비워줬다.
“건강미를 살리는 느낌으로 갈 거예요. 우리 우주 씨는 스트레칭을 해주시고 정민 씨랑 성훈 씨는 웨이트 하시는 모습을 찍을 거예요. 건하 씨는 아체대에서 보여줬던 것처럼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걸 찍을 거고요.”
“알겠습니다.”
“호진 씨는 이따가 덤벨을 들어주시면 됩니다.”
촬영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데, 구희성이 들어왔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오셨습니까?”
우리는 소속사 대선배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들 잘 어울리네.”
광고용 스포츠 웨어를 입은 우리의 모습을 감상하던 구희성이 말했다.
우주는 밝은 톤의 트레이닝복을, 정민과 성훈 그리고 호진은 몸에 달라붙는 기능성 반팔 체육복에 N-스포츠의 새로운 운동화를 신은 채였다.
나는 러닝화와 우주의 트레이닝복과 같은 디자인이면서 색상만 어두운 제품을 입고 있었다.
우선 각기 개인 화보를 찍은 뒤에 단체샷을 찍을 예정이었기에, 통일성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건하 거는 짙은 청색이네.”
“그렇죠. 하하.”
“옷이 많이 준비되어 있구나.”
“땀 흘리면 바로 교체할 수 있게 넉넉하게 준비해 뒀다고 하더라고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던 그가 나를 보았다.
“잘할 수 있겠어?”
“화보 촬영을 안 해본 것도 아니고, 광고 촬영도 몇 번 해봤는데 이 정도는 익숙하죠.”
그 말에 구희성이 그 특유의 졸린 눈을 구부러트리며 웃었다.
“자신감 넘치네.”
드문 일이다.
저렇게 웃는 모습이라니.
“잘 보고 있을게. 좋은 결과물 나왔으면 좋겠다.”
“실망하진 않으실 겁니다.”
“아, 그리고 아체대에서 기록 세웠더라?”
“네? 아….”
달리기 기록을 얘기하는 걸 거다.
그냥 다른 아이돌보다 조금 일찍 들어온 것뿐인데 왜 다들 그리 난리인 건지.
아체대가 끝나고 여기저기에서 연락이 왔다고 들었다.
진지하게 체육인으로 뛰어볼 생각이 없냐는 제안도 왔다고 황이서가 말할 정도였다.
물론 당연하게도 전부 거절했다.
체육인으로 뛸 이유가 전혀 없지.
흥미가 가지 않았다.
메리트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거절했다.
애초에 나는 올리오스 활동하느라 바쁘다고.
“자, 이제 촬영 들어갈까요? 우선 호진 씨부터 시작할게요.”
호진이 15kg짜리 덤벨을 양손에 들고 카메라 앞에 섰다.
헬스장 거울에 촬영장 스태프들이 다 비치는데 괜찮은가 싶었다.
“그런 건 걱정 안 해도 돼.”
내 옆에 선 구희성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런 건 후작업으로 다 지워주거든.”
“그렇군요.”
신기하네.
화장품 사업을 하며 몇 번이고 광고를 내봤던 입장이었지만, 그렇다고 촬영장에 매번 갔던 건 아니었다.
호진이 덤벨을 움직일 때마다 춤으로 다져진 근육이 꾸물거리면서 움직였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핏줄이 바짝 선 근육의 매력보다, 입을 앙다문 채로도 프로답게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호진의 얼굴이었다.
근육은 성이 나서 울룩불룩 움직이는데, 얼굴은 평온했다.
얼굴만 잘라서 보면 양손에 무거운 덤벨을 들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호진이도 잘하네.”
구희성의 말에 우주가 말을 더했다.
“호진이 형이 무대 위에서 춤출 때 연기하는 거 보면 장난 아니에요.”
“이진규도 무대 위에만 서면 진지하게 연기를 잘하긴 하지.”
“무대 체질이 있나 봐요.”
우주와 희성이 조곤조곤 떠드는 동안 어느새 호진의 촬영이 끝났다.
다음으로 정민과 성훈이 차례대로 웨이트 운동을 하며 카메라에 찍혔다.
여러 차례 사진을 찍으면서 최고의 샷을 찾기 위해 셔터를 수도 없이 눌렀다.
땀이 너무 난다 싶으면 스타일리스트가 와서 땀을 닦고 화장을 고쳤다.
반팔이라 온전히 드러난 팔뚝이 힘을 줄 때마다 팔에 붙은 잔근육이 쩍쩍 갈라지며 뱀처럼 꾸물거렸다.
두 사람이 얼마나 관리를 열심히 했는지 보이는 순간이었다.
“좋아요. 한 장 더!”
사진을 찍는 박한솔의 얼굴에 미소가 서렸다.
다음에 이어진 우주의 촬영도 마찬가지였다.
스트레칭이라 근육이 드러나거나 살결이 비추지는 않았지만, 해맑게 웃으며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에 촬영장의 분위기가 절로 가벼워졌다.
“조금 더 옆으로 틀어볼까요?”
우주는 지시에 따라 적극적으로 자세를 바꾸며 촬영에 임했다.
여러 번의 예능 촬영이 카메라와 더욱 가깝게 만든 듯했다. 촬영 담당과의 소통, 표정 연기 등 자잘한 부분들에서의 관록이 확실히 눈에 보였다.
우주의 개인 촬영도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이제 내 차례.
“건하 씨, 러닝머신 위에서 달려주시면 됩니다. 촬영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건하 씨는 계속 뛰면서 자세 유지만 해주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몸은 다 풀었다.
손발을 털며 러닝머신 위에 올라가자.
“잘 보고 있을 테니, 열심히 해봐.”
구희성이 응원 아닌 응원을 했다.
“알겠습니다.”
러닝머신을 작동했고, 카메라가 나를 향했다.
탓. 탓. 타닷.
박한솔이 셔터를 눌렀다.
[스킬이 발현됩니다.]
[내 사진 속에 저장(A)]
[인생샷을 찍었습니다.]
* * *
구희성은 가만히 촬영에 몰입하는 건하를 지켜봤다.
런닝머신 위에서 개인 촬영을 시작으로 가벼운 덤벨, 그리고 지금 올리오스 팀의 단체 촬영까지.
‘역시.’
희성은 굳이 시간을 내서 여기까지 찾아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회의에도 참여하고 싶었다.
어떤 자세로 촬영에 임하는지 A부터 Z까지 전부 보고 싶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몬스터즈 활동을 뒤로 미룰 수는 없었으니까.
아쉽지만 촬영장에서 건하의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자기뿐 아니라 광고하는 제품에도 시선이 몰리게끔 하고 있어.’
본인이 아닌, 제품을 돋보이게 만든다.
이거야말로 광고 모델이 가져야 하는 중요한 자세였다.
의외로 이걸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탑급 스타는 굳이 자신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
그 유명세를 원해서 광고를 맡기는 거니까.
올리오스는 그런 탑급 스타와는 아직 거리가 있는 아이돌 그룹이었다.
물론 인지도를 상당히 쌓아왔지만, 대중에게 이미지만을 내세워 어필하기엔 아직 부족했다.
그랬기에 보다 광고 효과를 더 내기 위해선 올리오스 본인을 숨기고 제품을 돋보이게 만드는 기술이 필요했다.
‘쉽지 않은 스킬이지.’
하지만 건하는 단번에 그걸 해냈다.
박한솔이 찍은 사진을 보는 순간, 올리오스의 화보라는 느낌보단 N-스포츠의 신제품이 더 보였으니까.
의도적으로 자신을 숨긴 거다.
윤건하라는 존재감을.
‘이걸 해낼 줄은 몰랐는데.’
그리고 그건 연기자가 가져야 할 필수 덕목이기도 했다.
연기자는 연기자 본인을 지우고 배역을 돋보여야만 하는 직업이니까.
구희성은 더더욱 건하가 마음에 들었다.
‘너무 일찍 봐버렸어.’
건하가 연기를 하려면 아직 시간은 한참 남았다.
경력이 꽤 쌓여야겠지.
재능만 있다고 가능한 게 아니었다.
건하는 연기를 잘하는 유망주이기 이전에 아이돌이었다.
이미 걸어본 길이기에 구희성은 알고 있다.
연기돌의 길이 쉽지 않다는 걸.
사람의 몸은 하나다.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하나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생겼다.
‘본인이 어디에 더 생각이 있는지 지켜 봐야겠지만….’
한 번 피어오른 욕심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좋아요. 좋아요. 조금 더 표정을 다채롭게 가져가 보죠.”
카메라를 든 박한솔의 얼굴이 밝아지는 게 보였다.
그녀 역시 자신과 같은 생각일 거다.
촬영이 끝나면 최고의 모델이라며 극찬하겠지.
지금은 티를 내지 않을 거다.
다른 멤버들도 있으니.
구희성은 올리오스의 단체샷을 찍는 것도 지켜봤다.
“좋네.”
그는 화면 속 올리오스를 보며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예상대로였다.
건하에게는 사람의 시선을 끄는 재능이 있었다.
멤버 중에서 유독 구희성의 시선을 끌었다.
다른 멤버들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아니었다.
외모나 매력이나 올리오스 멤버들 중에서 빠지는 애들은 없었다.
사진 밖에서 보면 누구 하나 견줄 거 없이 빛났다.
하지만 사진 앵글 안에만 들어가면.
“자꾸 눈이 간단 말이지.”
사람들의 눈을 끄는 것, 그건 스타의 재능이었다.
‘어설픈 엑스트라로 나가면 감독이 욕먹겠네.’
영화에 조연밖에 안 보인다고.
연출을 어떻게 한 거냐고.
건하를 중심으로 올리오스 멤버들이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뭐 때문인지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냥 느낌이 그랬다.
구체적으로 뭔가를 말할 수는 없지만, 직감이 얘기하고 있었다.
멤버 모두가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이는 건 건하 덕분이라고.
모두를 포근하게 안아줄 거 같은 정민의 미소.
코를 찡긋거리며 웃는 우주의 상큼한 미소.
트레이닝복의 지퍼를 끝까지 올린 호진이 짓는, 조금은 부끄러워하는 듯한 표정.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묵묵히 카메라를 응시하는 성훈의 진중한 멋까지.
하나같이 모두 시선을 강탈하는 매력이 있었지만, 동시에 각자의 개성이 워낙 뚜렷해 처음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왼편에서 담백한 이미지로 어필하는 건하를 중심으로 시선은 점점 퍼져나가고, 모두의 개성과 매력이 한 장의 사진 안에 어우러지고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하나 확실한 건, 다들 본인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는 거다.
박한솔의 디렉팅과 멤버들의 컨셉 이해.
그게 잘 맞물렸다.
“좋네. 진짜 좋아.”
박한솔도 만족한 얼굴이었다.
“희성아, 이건 되겠다.”
그녀의 말에 구희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이건 분명 대박을 칠 거다.
구희성이 확신을 하는 동안, 건하의 핸드폰에는 새로운 알람이 떴다.
[구희성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돌발 퀘스트를 성공했습니다.]
[보상: 15 오픈 마일리지]
[구희성이 당신의 실력에 감탄합니다.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추가 보상으로 구희성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
“정민아, 곡은 잘 나오고 있어?”
“주기적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생각보다 쉽지 않네요. 하하.”
황이서의 말에 정민이 머리를 긁적였다.
어색하게 짓는 그의 미소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말로는 쉽지 않다지만, 분명 잘 나오고 있으리라.
그게 아니라면 저런 표정을 짓진 않았을 테니까.
“다음 앨범 복귀는 6월 정도로 잡았다. 4개월 정도 남았으니까 차근차근 준비해.”
“넵!”
“이번에도 강행군이네요.”
내 질문에 황이서가 입을 열었다.
“데뷔 때부터 계속 좋은 흐름이 이어지고 있으니까. 힘들기는 하겠지만, 지금 멈추면 흐름을 놓치고 잊혀질 수도 있어. 조금만 더 힘내자.”
“그럼 이제 다시 바빠지겠군요.”
“그래. 그리고 말이다. 너희도 알다시피 3월 중순부터 5월 초까지 GH 엔터의 투어 일정이 잡혀 있다.”
GH 엔터 투어.
GH 엔터에서 매년 주기적으로 벌이는 투어 행사로, 이전까지는 연말 행사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몬스터즈의 투어로 인식되었던 행사였다.
몬스터즈의 콘서트에 GH 소속 연예인들이 참여하는 느낌으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몬스터즈 말고는 이렇다 할 성공한 그룹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올리오스와 몬스터즈가 번갈아서 투어 행사를 진행할 거야. 우리 엔터 소속 가수들과 같이 무대를 꾸려나갈 거고.”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4월, 5월에 대학교 축제에 행사 무대에도 많이 오를 거다.”
“벌써 다 잡혔군요.”
“이미 일정이 꽉 찼어. 너희 아마 컴백하는 6월까지 정신없이 다닐 거야.”
말을 마친 황이서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많이 바쁠 테지만, 잘 넘겨보자. 알았지?”
“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