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16화 (116/236)

<제116화>

N-스포츠의 김주성 실장은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아체대를 시청했다.

올리오스가 아이돌 체육대회에 참가했다는 황이서 프로듀서의 말 때문에.

애초에 설날에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는 것도 한몫했다.

특집이라고 이런저런 파일럿 프로그램이 방영했지만, 김 실장을 만족시키는 방송은 하나도 없었다.

아체대를 틀면서 올리오스가 얼마나 잘했을까 기대도 조금 품었다.

‘이왕이면 체육 실력도 좋은 게 좋지.’

그래도 스포츠 웨어 화보다.

스포츠에 재능이 없다면 곤란해질 수도 있는 문제였다.

물론 올리오스를 캐스팅한 건 스포츠 재능 때문이 아니었다.

너튜브 채널에서 보여줬던 끝없이 노력하는 모습, 새로운 아이돌 중에서 제일 성공했다는 상징성. 그리고 잘생긴 외모.

기존 스포츠 스타가 주는 이미지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물론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 몸치는 아니었다.

나름 운동도 열심히 했을 테지.

‘금메달 하나는 따면 좋겠네.’

그럴 거라 확신했다.

“여보, 이것 좀 도와줘요.”

“알겠어요.”

김주성은 아내와 어머니가 떡국을 끓이는 동안, 상을 내오고 식기를 세팅했다.

반찬을 이리저리 내오면서도 그의 눈은 아체대에 향했다.

가족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떡국을 먹으면서 아체대를 보았다.

그리고 올리오스 팀이 아쉽게 풋살에서 떨어지는 걸 보았다.

분투했지만, 상대가 너무 강했다.

‘그래도 투지는 있었어.’

다음은 단거리 육상.

건하가 출전한 종목이었다.

김 실장은 그를 응원했다.

그의 광고 모델이니 최대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좋았다.

타앙!

출발하자마자, 건하의 옆에 선 다른 아이돌이 그의 옷을 붙잡고 늘어졌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카메라가 슬로우로 잡아서 볼 수 있었다.

레녹이 의도적으로 건하의 옷을 잡고 늘어졌다는 걸.

“저저, 나쁜 새….”

김주성 실장은 자기도 모르게 욕이 나올뻔한 걸 참았다.

가족들 앞이다.

아무리 과몰입을 한다고 해도 욕은 곤란하다.

“아이고.”

“저저, 반칙 아니야?”

김 실장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입을 모아 외쳤다.

“어떡해.”

그의 아내도 놀라 외쳤다.

아이돌들의 체육대회라도 엄연한 스포츠.

순위를 겨루는 자리였다.

그런 자리에서 벌어진 반칙은 보는 이들에게 하여금 공감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짧은 순간 비틀거린 건하가 뒤늦게 스퍼트를 올렸다.

“오오, 달린다!”

“따라잡는다!”

“그래. 반칙한 애한테는이겨야지!”

김주성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지는 걸 느꼈다.

빠르다.

만약 처음에 있던 반칙이 아니었다면 분명 1등을 했을 정도로.

반칙한 아이돌 레녹을 지나치고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간 윤건하가 예선을 1등으로 통과했다.

“이겼다!”

“와아아아!”

명백한 반칙을 당했다는 사실 때문이었을까.

경기를 보던 김 실장의 가족은 모두 환호를 질렀다.

예선 경기만으로 모두 건하의 편이 되었다.

“저 형 이름이 뭐야?”

이제 유치원에 들어간 어린 아들이 물었다.

“윤건하라는 형이란다.”

“당신, 아이돌을 잘 아네요? 원래 스포츠 스타 아니면 관심 없던 거 아니었어요?”

“아, 이번에 우리 회사의 화보를 찍어줄 친구들이라서요.”

“저 애들이?”

“그래요.”

“왜 말 안 했어요?”

“궁금했거든요.”

김주성 실장은 가족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광고 모델이 어디까지 통할지 말이에요.”

이제 예순을 훌쩍 넘기신 김 실장의 아버지와 어머니.

이제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과 동갑인 부인.

자신과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동생 부부.

그리고 올해부터 초등학교에 갈 아들.

흔히 아이돌의 팬이라고 하는 세대가 아니더라도 올리오스라는 그룹이 통할까?

타겟은 20대지만, 만약 타겟 세대를 확장한다면 어디까지 더할 수 있을까.

보고 싶었다.

집계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잡은 표본 집단이었지만, 확인하고 싶었다.

“제대로 통했나요?”

“네. 확실하게요.”

김 실장은 확신했다.

올리오스를 광고 모델로 세운 자신들의 제품이 제대로 통할 거라고.

아쉬운 건, 그들이 메인 광고 모델이 아니라는 거다.

“당신이 좋게 본 아이돌이니 운동을 잘하겠네요. 금메달 따겠죠?”

“그러지 않을까요?”

말을 마친 김 실장은 단거리 결승을 보았다.

카메라는 윤건하를 중심으로 맞추고 있었다.

그가 당했던 반칙, 그걸 이겨내고 결승까지 올라간 걸 해설자와 캐스터가 강조하고 있다.

마치 이 경기의 주인공은 윤건하라는 듯이.

그리고 그런 캐스터와 해설들의 말을 들으며 김 실장의 가족은 모두 윤건하를 응원하고 있었다.

묘했다.

올림픽도 이렇게 응원했던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그가 보여준 기적 같은 예선 통과가 이 자리에 있던 김 실장의 가족을 홀린 거다.

모두 숨을 죽이며 경기를 기다렸다.

-선수들 출발 라인에 섰습니다.

타앙!

-달립니다!

신호와 함께 출발선에 선 선수들이 달렸다.

출발과 함께 윤건하가 앞서나갔다.

압도적인 차이였다.

그의 몸이 다른 아이돌들보다 훨씬 더 앞서 나갔다.

한 걸음, 두 걸음.

아득하게 차이를 벌린 윤건하가 누구보다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리고 기록은?

60m 단거리 1등: 윤건하 ? 7.08초.

“이런 미친!”

김주성 실장은 가족이 있다는 것도 전부 잊어버린 채로 벌떡 일어나 욕을 뱉었다.

욕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냥 1등도 아니고, 아체대의 기록을 갱신한 기록이었다.

심지어 윤건하의 저 기록은.

“진짜 선수급 아냐?”

뒤이어 들어오는 골든트랙의 이진우가 7.58초.

그 역시 훌륭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상대가 나빴다.

‘이거 본 체육계가 들썩이겠네.’

아쉬운 인재를 한 명 놓쳤다면서 울부짖을 게 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부터 정식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닌 아이돌이 7초라니.

만약 제대로 엘리트 육상 교육을 받고 뛰었다면?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선수가 되지 않았을까?

분명 그랬을 거다.

“이거 대박이네.”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팡팡 터졌다.

잭팟이다.

김주성 실장의 머리에선 윤건하와 올리오스 멤버들을 데리고 어떻게 광고를 할지 생생하게 떠올랐다.

“할머니! 아빠가 욕했어.”

그리고 뒤늦게 김 실장은 가족들과 함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죄, 죄송합니다. 어머니. 하, 하하하.”

* * *

“생각보다 반응이 엄청나네.”

“그러게.”

“건하 형 기록이 진짜 대단한 거였구나.”

내가 금메달을 받을 때 말하는 해설의 멘트는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기록이에요. 7.08초라니요! 건하 선수, 이 정도면 거의 선출인데요?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물론이죠! 100m 달리기와 단순 비교를 할 순 없지만, 저 정도 기록이면 달리기에 재능이 있다는 겁니다. 우수한 선생이 있었다면 한국에서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나왔을걸요?

신나서 말하는 해설과 캐스터.

우우웅!

김 실장에게 문자가 왔다.

-아체대 봤습니다. 이런 기록을 세웠으면 말해주시지 그러셨어요. 새로운 컨셉 하나 같이 짜시죠.

문자만으로 흥분했다는 게 느껴졌다.

이 사람 호진이 댄스스포츠까지 보면 기절하겠네.

-저 정도면 진짜 선수 뛰어도 되겠는데?

-춤보다 달리기를 더 잘하는 거 실화?

-와 근데 정말 빠르다.

커뮤니티에는 이번 아체대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보인 내 얘기로 가득했다.

꼭 커뮤니티 얘기만은 아니었다.

-올리오스 윤건하, 아체대에서 압도적인 달리기를 선보여.

-육상 전설 강국현, 윤건하 체육계에서 제대로 키웠다면 아시안 게임 금메달도 노려볼 수 있어.

연예계 뉴스가 내 얘기로 가득했다.

한국 육상 레전드가 자신의 너튜브 채널에서 한 얘기가 기사화가 됐다.

심지어 스포츠 뉴스에도 올라가더라.

“확실히 아체대가 파급력이 있구나.”

놀랐다.

이렇게 얘기가 많이 오갈 줄은 몰랐거든.

아체대의 시청률이 7%에서 10% 사이라던데.

설날에 연령을 가리지 않고 보는 프로그램이어서일까.

평소 예능에 나가는 것보다 더 많은 기사가 올라왔다.

“형 얘기밖에 없어.”

“크으, 우리도 조금 더 분발했어야 했는데.”

“그러니까.”

아쉬워하는 우주와 정민이었다.

“워낙 강한 상대였으니까.”

성훈은 덤덤했다.

육상과는 달리 씨름에서는 형편없이 떨어지는 모습으로 인간미도 챙겼다.

성훈도 강적을 만나 아쉽게 떨어졌다.

“나중엔 음역대 경기 같은 거 안 나오려나.”

일찍 떨어진 게 아쉬웠던 걸까.

아무렇지 않은 척했던 성훈은 본인의 장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종목을 희망했다.

그리고 2부에 호진의 댄스스포츠가 나왔다.

환상적인 춤사위에 우리는 잠시 입을 다물고 그의 춤을 감상했다.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만큼 아름다웠다.

춤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현장에서 봤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카메라 줌인으로 약간 긴장한 표정이 보였다.

너 긴장 많이 했었구나?

결과는 우리 모두 알다시피 1등.

놀라울 정도로 화려한 성적에.

-끄아아악!

김 실장이 기절하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어쩐지 그의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분명 웃고 있을 거다.

* * *

“진짜 이런 식으로 뒤통수 맞을 줄은 몰랐네요.”

회의를 위해 모인 박한솔 디자이너와 김주성 실장이 우리를 노려봤다.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왜 미리 말하지 않았어요? 나는 성적이 이 정도로 좋을 줄은 몰랐는데.”

“말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방송 결과를 스포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내 뻔뻔한 말에 두 사람이 입꼬리를 올렸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당돌하네요.”

“그래도 나쁘지는 않잖아요? 이런 식으로 놀라는 건요.”

“하하, 당연하죠. 사건이나 사고로 뒤통수를 맞으면 얼얼하지만, 이런 뒤통수는 몇 번이고 맞을 수 있습니다.”

박한솔 디자이너와 김주성 실장 모두 입을 모아 웃었다.

“올리오스가 이번에 보여준 체육인다운 모습도 어필할 필요가 있겠어요. 그래서 우리 김 실장님과 함께 컨셉을 몇 개 추가해 봤어요.”

박한솔 디자이너의 말에 김 실장이 덧붙였다.

“그리고 이번 아체대 결과를 윗선에 보고했습니다. 다들 보셨더라고요. 아마 여러모로 긍정적인 이야기가 오갈 겁니다. 잘하면 제가 말했던 장기적으로 함께 커가는 것도 가능할 거예요.”

함께 커간다라.

좋은 얘기였다.

물론 우리에게도 다양한 광고가 오고 있는 상황.

그렇다고 해도 업계 관계자가 우리를 좋게 봐 주는 건 전혀 나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더 좋은 입지를 다질 수도 있을 테니까.

다짐하던 나는 우리를 찍고 있는 사진 작가를 가리켰다.

“그런데 이것도 화보에 올라가는 건가요?”

“아, 이건 내가 설명할게요.”

박한솔 디자이너가 사진 작가를 소개했다.

“앞으로 작업 과정을 찍어줄 사진 작가예요. 패션 화보만 찍고 헤어지면 아쉽잖아. 올리오스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컨셉으로 몇 장 남길 거예요.”

일종의 촬영장 비하인드 컷이었다.

“어떤 느낌인지 알겠네요.”

“사진 유출은 걱정 마요. 그런 일은 없을 거니까요.”

“믿고 있습니다.”

업계 1등 회사가 그런 사고를 일으킬 리는 없었다.

그랬다면 1등을 지킬 수 없을 테니까.

“자, 그럼 컨셉 이야기를 더 해볼까요?”

촬영 전 마지막 회의가 끝이 났다.

회의를 마친 우리는 곧장 화보 촬영 준비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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