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5화>
우리는 이두현에게 부탁해 동물 가면을 준비했다.
얼굴 전체를 가리는 가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만큼 좋은 게 떠오르지 않았다.
적당히 어그로도 끌리면서 평범한 사람은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물건.
동시에 아이돌이라고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물건이라 함은, 이런 파티용 동물 가면이 아닐까.
“이거… 써도 괜찮을까?”
호진이는 말 가면을 들고 나를 보았다.
“당연하지. 우리라는 거 절대 모를 거야.”
“너무 눈에 띌 거 같은데.”
“손에 셀카봉 들고 서 있으면 너튜버라고 생각하겠지.”
누가 아이돌이라고 생각하겠어.
절대 그렇게 생각 못 하지.
“마스크로는 호진이 형이랑 건하 형 외모를 감출 수가 없으니까 두 사람은 필수긴 해.”
양 가면을 든 우주가 나와 호진을 가리켰다.
“마스크를 써도 두 사람이 찾아가면 분명 눈치챌걸? 아이돌 생일 축하 광고 앞에 서 있는 미남? 무조건이지. 음음.”
우주의 상상에는 나와 호진이 인파에 둘러싸인 모습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이 종이로 만든 표범 가면이 내 건가?”
성훈의 질문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주인공이니까 멋있는 거 쓰고 가야지.”
한 마리의 야생 표범처럼 생긴 게 성훈과 딱 어울렸다.
“근데 확실히 아이디어 좋지 않아? 혹시 우리 알아보는 분들 생기면 시민들한테 민폐니까.”
우주가 으쓱으쓱 어깨를 올리며 양 가면을 썼다.
지금 이 상황을 굉장히 즐기는 듯했다.
분명 특별한 이벤트라고 생각하고 있을걸?
우리 중에 가장 신나 보였다.
“나도 찬성. 오히려 요란하게 가는 게 더 주목받지 않을걸? 그런 말도 있잖아.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우리가 요란하게 꾸미고 나가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정민이는 우주의 의견에 동조하며 시바견 가면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런가.”
긴가민가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성훈은 마지못해 가면을 썼다.
그나마 제일 좋은 방법이었으니까.
“그럼 다들 준비하자. 다섯 명이 빠르게 우르르 몰려가서 사진 찍고 오는 거야.”
“오케이!”
“떨린다. 으으으. 성훈이 형은 어때?”
“뭐…. 괜찮아. 아직은.”
나는 무슨 가면이냐고?
호진과 비슷한 재질의 기린 가면이다.
주둥이가 툭 튀어나와 있어서 얼굴 형태도 알아볼 수 없는 그런 가면.
“최대한 빨리 찍고 돌아와야 한다.”
역 근처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댄 이두현 매니저가 말했다.
“금방 올게요.”
문이 열리고, 동물 가면을 쓴 다섯 명의 가면 히어로가 차에서 내렸다.
그중 셀카봉을 드는 역할은 내가 맡았다.
최대한 빠르게 찍고 돌아온다.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그게 우리의 심플한 계획이었다.
사람은 꽤 적었다.
시간이 시간이라 그런가.
우리의 걱정보다 상당히 한가했다.
아마 출퇴근 시간에 왔으면 사람들로 가득했을 거다.
역으로 들어간 우리는 광고판이 설치되었다는 개찰구 쪽으로 향했다.
개찰구는 역에서 타고 내리는 사람들이 모이는, 가장 북적북적한 공간.
거기서 우리는 보았다.
“와.”
“진짜 미쳤다.”
“이야.”
사진에서만 보았던 성훈의 생일을 축하하는 광고판을.
-성훈아 스물두 번째 생일 축하해. 유성훈. 02.06.
-가.
광고판에 미리 인쇄된 성훈의 사인까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가만히 성훈을 축하하는 광고판을 보았다.
마치 이 지하철역에 우리와 광고판만 있는 기분이었다.
뭐랄까.
정신이 광고판에 홀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 받은 생일 축하 광고판.
그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화려했다.
이 넓은 지하철역에 있는 광고판 중 하나였지만, 그 광고판 하나가 가지는 빛은 그 어떤 것보다 크고 밝았다.
옅게 깔린 남색 배경.
마이크를 쥔 채 노래를 부르는 성훈의 모습.
두근두근.
나를 위한 생일 축하도 아닌데, 가슴이 벅차오는 걸 느꼈다.
당사자는 어떨까?
성훈이 우두커니 광고판 앞에 선 채로 한참을 바라봤다.
빨리 찍고 돌아간다는 계획을 잠시 잊은 듯 멍하니 보고 있었다.
가면 안의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눈이 반짝거리며 감상하고 있을 거다.
저 광고판에 걸린 자신의 모습을, 팬들의 축하 메시지를 오랫동안 눈에 담고 있을 테지.
아마.
잠시 성훈의 세계는 멈춘 걸지도 모르겠다.
첫 생일 축하 광고판.
아이돌이 되어서 받은 최고의 선물.
그게 지금 성훈의 마음을 흔들고 있었다.
“형, 빨리 찍자.”
마음은 알지만,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애초에 이목을 끈 탓일까?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씩 몰리고 있었다.
물론 우리가 아이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듯했다.
어디 관종 너튜버가 인기를 끌려고 온 게 아닐까 생각하는 걸지도?
성훈이 광고판 앞에 섰다.
나는 핸드폰을 들고 광고판 앞에서 선 성훈을 찍었다.
검은 표범 한 마리가 커다란 광고판과 함께 찍혔다.
다음은 나와 정민, 호진과 우주가 그 옆에 섰다.
셀카봉을 들고 광고판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찰칵.
선명하게 찍혔다.
비록 우리의 얼굴을 요란한 가면이 대신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이것도 기념이라면 기념이지.
이런 식으로 찍은 사람은 없었을 테니까.
“진짜 얼굴은 찍지 못해서 아쉽네.”
“나중에 사람이 없는 밤에 또 와. 사람이 좀 적은 시간에 형 혼자 가면 괜찮지 않을까?”
“그러려나.”
성훈의 고개가 광고판에 고정된 채로 떨어지질 않았다.
성훈은 지금 느끼는 이 감동을 조금 더 느끼고 싶은 거다.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올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으니까.
다 함께 오려면 이게 최선이었다.
물론 밤늦게 혼자 오는 거라면 모르겠다.
사람이 적어서 괜찮을지도.
“우리 다섯 명 사진 하나만 찍고 가자.”
“괜찮겠어?”
“괜찮아. 충분해.”
못 알아볼 거다.
물론 다섯 남자가 주르륵 줄지어서 서 있는 걸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올리오스 팬이 아니고서야 우리 멤버가 다섯 명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없을 거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핀 나는 마침 눈을 마주친 여자에게 다가갔다.
“커흠흠.”
목소리를 살짝 변조해서.
“아, 안녕하세요.”
목소리를 깔며 다가가자, 여성이 흠칫 놀라며 나를 보았다.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꺅! 사, 사진이요?”
“네. 친구들끼리 왔는데 단체 사진을 하나 찍고 싶어서요.”
“아, 친구들끼리…. 그렇죠? 친구들…. 음음, 알았어요. 찍어 드릴게요.”
뭔가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핸드폰을 받았다.
“여기 누르시면 돼요.”
“아, 넵넵!!”
긴장한 듯 고개를 끄덕이던 여자에게 촬영 방법을 알려준 뒤 멤버들에게 합류했다.
“건하 형, 괜찮아?”
“응. 못 알아보시더라. 우리 팬은 아니신 거 같아.”
“다행이네.”
“우리 분장은 완벽해. 못 알아본다니까.”
핸드폰 카메라를 든 여성이 우리에게 말했다.
“그럼 찍겠습니다. 일, 이!”
잠깐.
보통 사진 찍을 때 하나둘 하면서 찍지 않나?
다섯 명의 단체 사진을 찍은 뒤 핸드폰을 받으러 다가가자.
“핸드폰 여기요. 친구 분한테 생일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사진을 찍어준 여성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핸드폰을 받았다.
성훈이 생일인 걸 어떻게 알았지?
“아, 그리고 동물 가면도 귀여워요.”
“아뇨. 제가 감사하죠. 찍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어째선지 아이처럼 동동 뛰며 신나 하면서 떠나가고 있었다.
뭐지?
“저분이 뭐랬어?”
“동물가면 귀엽대. 그리고 생일 축하한다고 전해달라시던데?”
“뭐?”
나를 제외한 넷이 흠칫 놀라며 나를 봤다.
“그럼 완전히 들킨 거 아냐?”
“…생각해 보니까, 안 들키는 게 더 이상한 것 같다.”
맞네.
남자 5명이 아이돌 사진 앞에 줄지어 서 있는 걸 보면 눈치를 채는 게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우리 다 기럭지가 평범하지는 않았으니까.
“설마 알아보실까 했는데.”
“그래도 우리를 알아봤다니까 뭔가 기분 좋네.”
“빨리 가자. 너무 오래 있었던 것 같아.”
맞는 말이었다.
사람이 더 모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시간대라는 것과 우리를 알아차리고도 존중해 준 팬의 배려 덕분에 무사히 사진을 찍고 돌아갈 수 있었다.
“생일 축하해! 성훈이 형!”
숙소로 돌아간 우리는 성훈의 생일을 축하했다.
* * *
핸드폰을 들고 성훈은 한참을 고민했다.
“어떻게 올리는 게 좋을까.”
이런 식의 감정 표현에 서툰 그였다.
가족끼리 생일 축하도 덤덤하게 넘어가는 게 성훈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느끼는 건 그보다 훨씬 크고 짙은 그런 감정이었다.
“감사합니다…는 너무 딱딱하고, 그렇다고 너무 요란하게 인사하는 것도 나답지 않고.”
손가락이 멈춘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뭐라고 쳐야 더 이 감정을 더 솔직하게 전할 수 있을까.
성훈은 광고판 앞에 섰을 때 감정을 떠올렸다.
기쁨.
고마움.
설렘.
감동.
수많은 감정이 한순간에 몰아쳤다.
무대에 섰을 때 느꼈던 감각과 비슷했다.
분명 많은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대에 선 것도 아니었다.
몸을 울리는 베이스와 귀를 두드리는 함성이 들린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느껴졌다.
무대에서 들었던 함성이.
-성훈아, 축하해!
팬들이 부르는 생일 축하 노래가 귓가에 들리는 기분이었다.
눈을 감고 잠시 그때 느꼈던 감동을 다시 떠올렸다.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이 감동을 전하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그저 감사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방법이 없네.’
잠시 생각한 성훈은 조금 더 자기다운 글을 올리기로 결심했다.
조금은 딱딱하고 재미없을지라도.
이게 팬들이 좋아하는 자신이었으니까.
올리오스의 유성훈이었으니까.
성훈은 별스타에 글을 하나하나 적기 시작했다.
* * *
-오늘 팬분들이 걸어주신 광고판을 봤습니다. 제 생일을 축하해주는 메시지와 사진이 올라간 광고판을 본 순간, 한참을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어요. 무대에 올라갔을 때 느꼈던 감동과는 또 다른 기분이 그 순간의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구나. 내 생일을 축하해 주는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그 감동을 다른 연예인 선배님들처럼 해시태그로 표현하고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간단하게 표현하기 어렵더라고요. 재미없게도 이렇게 장문의 글로 감사를 표현하게 되었네요.
바다의 파도와 해류는 지구와 달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 때문에 생긴다고 들었습니다. 여러분들, 원스라는 달이 지금 제 마음이란 바다에 깊고 큰 파도를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이 만든 파도 위에서 마음껏 헤엄치면서 설레는 밤을 보낼 것 같아요.
언제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원스_#사랑합니다_#올리오스_#화이팅
종이로 만든 검은 표범 가면을 성훈이 원스가 만든 생일 광고판 앞에서 찍은 장난기 어린 사진과 함께 상반된 장문의 게시글이 성훈의 SNS에 올라왔다.
“올라왔다!”
오늘 지하철 광고판 앞, 올리오스의 사진을 찍어준 유아린은 성훈의 게시글을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이거 내가 찍어준 사진이네?”
다섯 명의 단체 사진도 떡하니 박혀 있었다.
찍을 때 손이 덜덜 떨려서 잘못 찍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선명하고 또렷하게 잘 찍혔다.
“후우.”
우연의 일치였다.
우서역 근처에 외근을 나왔던 그녀는 지하철역에 설치됐다는 생일 광고를 실물로 영접하기 위해 역으로 향했다.
그때 보인 다섯 명의 가면 히어로.
보는 순간 직감했다.
올리오스라는 걸.
‘다가가서 사인이라도 받을까? 팬이 있다는 걸 알면 좋아해 줄 텐데.’
그러나 그녀는 꾸욱 참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이 사람이 많은 지하철 역이었으니까.
가면까지 썼다는 건, 올리오스도 사람들의 시선이 너무 몰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뜻일 테니까.
그녀는 생일 광고판을 보며 좋아하는 올리오스 멤버들을 바라봤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영상이나 사진으로만 보던 멤버들이 아니라 연스러운 일상을 살짝 엿본 것 같아서 더 좋았다.
그리고 기린 가면을 쓴 멤버가 다가왔고.
“사진 좀 찍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낮게 깔린 목소리를 듣자마자 건하라는 걸 알았다.
와.
와! 와! 와!
미쳤다, 미쳤어!
유아린 너 진짜 성공했구나?
휴대폰을 받으면서 손가락이 살짝 스쳤을 땐 그야말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침착함을 가장하며 사진을 찍었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럼 찍겠습니다. 일, 이!”
입에 배어버린 올리오스 숫자법을 외치고 말았다.
팬클럽인 원스 사이에선 이 독특한 외침을 따라 하곤 했으니까.
그래서 말해줬다.
알아본 사람들이 조금 있다고.
정말 고맙다며 웃는 모습이 기린 가면의 아래에서 느껴졌다.
기린 가면이 우습게 좌우로 흔들리지만 않았다면 감동했을 텐데.
“오히려 유니크해서 좋지. 그런 건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성훈의 SNS 댓글엔 장문의 게시글에 감탄하고 생일을 축하하는 댓글과 함께.
-와! 그게 올리오스였다니ㅠㅠㅠㅠㅠ 그냥 지나갔는데ㅠㅠㅠㅠㅠ.
-봤으면 그냥 컨셉인 줄 알았을 듯….
-이 게시물만 올라오길 기다렸어! 축하해. 성훈아!
-아니 저걸 어떻게 못 알아봐ㅋㅋㅋㅋㅋ
그런 그들을 봤다는 댓글이 있었다.
알아본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
각자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도 하나 적어야겠다.”
-그때 사진 찍어드렸던 원스예요! 진귀한 경험이었어요. 멤버 다섯 명이 정말 행복해 보여서 보기 좋았어요. 행복한 생일 보내세요.
그리고 그 아래에 성훈의 댓글이 달렸다.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원스 여러분들 정말 고맙고 사랑합니다. 사진 찍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미쳤어.
“꺄아아악! 진짜 모른 척하길 잘했다.”
유아린의 평생의 기억으로 남을 일이었다.
성훈을 시작으로 우주, 호진, 정민 그리고 건하까지 전부 각자 SNS에 성훈의 생일을 축하하는 댓글을 올렸다.
다 각자 자신이 썼던 가면을 손에 든 채로 인증한 셀카까지 함께 올렸다.
유아린은 저 사진을 찍는 모습도 전부 봤다.
그래서 더욱 이 경험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진짜 친하구나.”
SNS에서도 멤버들이 친하다는 게 보였다.
그 모습에 그녀가 기분이 좋아졌다.
뭐랄까, 친한 친구들의 모습에 힐링이 된다고 할까.
“다음엔 나도 생일 조공에 꼭 참가해야지.”
이런 경험이 있는데 어찌 그냥 지나갈까.
유아린은 의지를 다졌다.
* * *
한민족의 대명절 설.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는 날.
아쉽게도 우리는 가족을 보러 가지 못했다.
나 때문이었다.
윤 회장이 설에는 내려오지 말라고 연락이 왔다.
‘네 앨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우리는 안 보는 거다. 이유는 네가 잘 알고 있을 거다.’
이 깐깐한 아저씨.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정을 주지 않겠다는 거겠지.
마음은 이해한다.
채찍질이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니까.
지금이 그럴 때라고 생각한 걸 테고.
문제는 다른 멤버들이었다.
내가 고향에 안 내려간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럼 나도 남을게.”
“건하 혼자 남기고는 못 가지.”
“나, 나도 남을게.”
“…부모님도 이해해주실 거다.”
멤버들마저 가지 않고 함께 하겠다고 선언했다.
“너희는 가. 아체대 나오는 거 가족들이랑 같이 봐야지.”
“됐어. 아체대는 다음 추석에도 나갈 테니까.”
“나는 활약도 못 해서 같이 보기 민망해.”
“동의한다.”
활약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우주, 정민, 성훈 모두 각자 분량이 확실하게 있을 거다.
첫 아체대 출연인데, 가족이랑 못 보는 건 아쉬운데.
나는 호진을 봤다.
“너는 댄스스포츠 1등까지 했잖아.”
“다들 있는데 나 혼자 가는 것도 그래. 그리고 어머니나 현진이도 사정을 말하면 이해해줄 거야.”
“…고맙다. 다들.”
그렇게 우리끼리 숙소에서 설을 보내게 됐다.
“아체대 보자. 오늘 한다고 하지 않았어?”
“봐야지. 우리 첫 체육대회인데.”
“건하 형이랑 호진이 형 금메달 따는 거 봐야지.”
우리는 TV를 켰다.
* * *
-윤건하 선수 달립니다! 격차가 벌어집니다! 압도적인 차이! 결승선을 통과하는 윤건하 선수! 아체대 신기록을 세웁니다!
“이런 미친!”
TV를 보던 N-스포츠의 광고 담당자인 김주성 실장은 자기도 모르게 욕을 뱉었다.
가족들과 있는 자리라는 걸 잊을 정도로 놀랐다.
“이건 대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