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화>
생일.
원래 삶에서도 굳이 챙기지 않았다.
사업 초기엔 가끔 직원들이 챙겨주곤 했지만, 일에 치여 살고 바쁘게 다니다 보니 그냥저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날짜를 까먹은 건 아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면.
‘나는 얘 생일을 모르는데.’
<마이 아이돌>의 수많은 아이돌의 생일은 알고 있다.
왜?
공략에 필요했으니까.
그리고 한 번쯤 플레이를 했으니까.
그러나 윤건하의 생일은 내가 유일하게 모르는 아이돌의 생일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단 한 번도 윤건하를 멤버로 기용했던 적이 없으니까.
공략한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알 필요가 없었다.
“음….”
침묵이 가라앉았다.
멤버들은 내 말을 기다리느라 말이 없었고, 나는 윤건하의 생일이 언제인지 고민하느라 말이 없었다.
다들 난처해하는 얼굴이었다.
“처, 천천히 생각해도 돼.”
우주마저 당황한 눈치였다.
이 세계의 윤건하의 생일은 모른다.
그러나 원래의 내 생일마저 모르는 건 아니었다.
최근 들어 챙기지 않았을 뿐이지, 한때는 직원들이 매년 챙겨 줬으니까.
9월 14일.
머리에 땀이 나도록 더운 한여름이었다.
생일이 지나고 2주 정도 지나면 선선해지기도 했고.
‘진짜 윤건하도 같은 날에 생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알 도리가 없었으니, 너도 이해하지?
“9월 14일이야. 연습생 기간 동안 하도 안 챙겨서 잠깐 잊고 있었어.”
“정말?”
“응.”
실제로 골든트랙의 멤버들과 사이가 좋았던 건 아니니까.
내 말에 우주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럼 안 되지! 형, 올해 생일은 진짜 우리끼리 작게 파티라도 하자!”
“나도 그날엔 필살 요리 준비할게.”
정민이도 가세했다.
성훈이 말없이 내 어깨를 붙잡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호진이는 혼자서 주먹을 말아쥐었다.
내가 MAE에서 쫓겨났다는 것부터 재벌집 외동아들이라는 것까지 전부 알고 있는 멤버들이었다.
아마 생일도 잊고 지낼 정도로 무심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다들 나를 가엾게 여기며 한마디씩 건넸다.
그런 올리오스 멤버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아마 예전의 나였다면, 사업가 시절 나였다면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탓했을 얘기였다.
이제는 이런 일이 익숙해져서일까.
그게 아니라면 원래 윤건하의 영향일까?
“그러자.”
멤버들의 호들갑에 기분이 좋아졌다.
올해 생일은 조금 기다려질지도 모르겠다.
“성훈이 형, 혹시 빠른이야?”
“왜? 빠른이면 친구 먹자고 하려고?”
나는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거렸다.
“2월생이긴 한데, 빠른년생은 아니야. 예전에 부모님이 굳이 1년 빨리 보낼 필요 없다고, 순리대로 가는 게 맞다고 하셨거든.”
“아하.”
“그러니까 내가 너보다 한참은 형이다. 녀석아.”
음.
그 말에 반박해주고 싶었지만, 꾸욱 참았다.
어른스러운 얼굴로 말하는 성훈의 모습이 어른인 척하는 동생 같아서 꽤 귀여웠으니까.
“참, 그러고 보니 우리도 그거 받을 수 있을까?”
“뭘?”
우주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그, 있잖아. 팬들이 보내주는 생일 광고 말이야.”
“음…. 어때요? 성훈이 형 이제 곧 생일인데.”
우리는 이두현 매니저를 향해 물었다.
“글쎄? 어떨까?”
자동차 룸미러 속 이두현 매니저가 씨익 웃고 있었다.
* * *
올리오스의 열성팬 김다빈.
그녀는 오늘도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최근 들어 너무 바쁜 하루의 연속이었다.
은행원이 다 그렇다.
연말과 연초에 일이 미친 듯이 몰려서 그 일을 다 처리하다 보면 어느새 설날 시즌. 설날 시즌에도 고객들이 붐비는 게 은행이었다.
설날에 용돈을 주기 위해 신권을 뽑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어르신 고객이 많아서 대응하기 유독 피곤한 것도 사실이었다.
벌써 그런 시기였다.
겨울의 절정인 1월 말.
이제 설날까지 열흘도 남지 않았다.
게다가 오늘은 후배가 저지른 자잘한 실수를 처리하느라 더 피곤했다.
“흐아! 진짜 죽는 줄 알았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졌다.
“오늘은 더 힘드네.”
최근 들어 의욕이 나지 않았다.
일이 바빠도 이렇게 힘이 빠지는 경우는 없었다.
아마 최애돌인 올리오스가 휴식기에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휴식기는 모든 아이돌에게 있는 일이었다.
언제나 TV에 나올 수는 없으니.
하지만 오랜만에 깊게 덕질한 탓이었을까.
상실감이 평소보다 훨씬 컸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핸드폰을 열어 올리오스가 나오는 방송을 트는 게 그녀의 일과였다.
그게 사라지니, 뭔가 가슴에 구멍이 뻥 하고 뚫린 기분이었다.
“후우. 팬클럽이나 들어가 볼까?”
그녀는 침대에 누운 채로 핸드폰을 들었다.
“성훈이 생일이 다음 주 아니었나?”
역시나 팬클럽은 그 얘기로 시끄러웠다.
팬클럽 회장이 총대를 메고 GH 엔터의 소속사 근처에 있는 지하철역에 지하철 광고를 달았다는 공지를 올렸다.
-[공지] 성훈이 조공! 오늘부터 2주간 지하철 광고판 한자리를 차지합니다.
지하철역의 한쪽 벽면에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성훈이 찍힌 사진이 커다랗게 박혀 있었다.
옅게 깔린 남색 배경 덕분에 마이크를 잡은 채 조명을 받은 성훈의 모습이 도드라졌다.
사진 아래에는 유성훈의 사인이 선명하게 자리 잡았다.
-성훈아 스물두 번째 생일 축하해. 유성훈. 02.06.
-가.
올리오스의 팬클럽 이름 원스가 함께 들어가 있었다.
2주면 아마 생일이 지나고 설날까지 올라가 있을 거다.
“진짜 했구나.”
벌써 팬들이 십시일반 모아 생일 조공을 보냈다는 말에 조금은 아쉬웠다.
너무 바빴기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게.
저 광고판에 그녀가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게.
잠시 현생을 사느라 이 중요한 이벤트를 놓쳤다는 게 아쉬웠다.
“깔끔하게 했다.”
확실히 팬카페를 운영하는 팬클럽 회장이 총대를 메서였을까.
사진 디자인도 멘트도 깔끔하고 좋았다.
“으으으! 나도 참여했어야 했는데!”
그녀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놈의 일이 웬수지.
일만 아니었으면 무조건 보냈을 텐데.
“아, 부러워! 부러워! 너무 부러워. 으으.”
한참을 발을 구르던 그녀가 대자로 쭈욱 뻗었다.
“하아, 됐다. 지금 와서 짜증 내면 뭐해. 다음이 중요하지.”
한숨을 푹 내쉰 그녀는 다시 화면을 보았다.
우서역이면 그리 멀지 않았다.
“나중에 휴일에 구경 갈까.”
다음에는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한 김다빈은 캘린더에 일정을 적었다.
-우서역 방문.
* * *
“이야, 화려하네.”
예능 촬영을 위해 방송국으로 떠난 우주를 제외한 우리는 핸드폰을 감탄했다.
“이게 팬들이 작업해서 실어준 겁니까?”
“그렇지.”
우리가 눈을 반짝이며 보고 있는 건 황이서의 핸드폰이었다.
엄청난 뉴스가 있다면서 내민 그의 핸드폰에는 지하철 한쪽 벽면에 커다랗게 자리 잡은 성훈의 사진이 있었다.
팬들이 성훈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만들어준 광고판이었다.
“오늘부터 올라갔다. 원래 미리 알려줄까 했는데, 광고판이 올라간 뒤에 알려주는 게 더 좋을 거 같아서.”
황이서가 우리를 기특하게 바라봤다.
“이런 생일 축하 광고를 받으려면 시간이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많이 빨랐다. 그만큼 고생했다는 뜻이지.”
그의 말에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소속사에서 하나 만들려고 계획하기도 했는데, 원스 측에서 먼저 연락이 오더라. 자기들이 만들겠다고.”
“그래서 팬 분들이 이렇게 해주신 거군요.”
“그렇지. 예전에 우리가 아체대에서 해준 역조공에 감명을 받았다고 하더라. 스케줄이 있는데도 짧게나마 공간 대여를 해서 팬미팅을 해준 게 고맙다고.”
“아.”
우리를 응원하기 위해 고생한 팬들을 위한 잠깐의 이벤트였는데.
“우리가 부담을 준 게 아닌가 싶네요.”
“그건 아닐 거다.”
황이서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작은 이벤트에 팬들은 감동하는 법이거든. 너희가 팬들을 생각하고 고마워 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니까.”
“그렇습니까?”
“그래. 그 덕분에 다들 너희 생일을 챙겨주는 거고. 그게 아니었더라도 챙겨줬을 테지만.”
황이서가 우리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보러 가도 괜찮겠습니까?”
내 질문에 황이서가 당연한 질문을 왜 하냐는 듯 나를 보았다.
“당연하지. 한번 가 봐. 사람들 드문 시간대에 가서 인증샷 찍어야지.”
사람이 많은 시간대에 가면 곤란했다.
자칫 잘못하면 소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었다.
좋은 의미로 해준 팬들의 선물이었다.
이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면 우리는 물론 팬들의 이미지도 나빠질 게 뻔했다.
그런 불상사는 막아야지.
“생일 주인공은 꼭 가고.”
“성훈이 형, 언제 갈 생각….”
성훈에게 계획을 묻던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아랫입술을 깨문 채로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감정 표현이 드문 성훈의 얼굴에 표정이 드러났다.
눈동자에 눈물이 살짝 맺혀 보이는 거 같은 건 기분 탓만은 아니리라.
한참을 입을 다문 채 사진을 보던 성훈이 주먹을 말아쥐며 고개를 위로 올렸다.
울음을 참느라 눈가가 새빨개졌지만, 그 누구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자기한테 누구보다 엄격한 애였으니까.’
그만큼 부담감 역시 컸을 거다.
억지로 참고 버틴 것도 많았겠지. 그게 팬들이 보낸 축하로 터진 거다.
무대 위에서 울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확실히 아이돌은 다 감수성이 높다니까.’
아닌 척해도 다 그렇지.
“내일 바로 가겠습니다.”
“좋아. 너희도 다 같이 가. 성훈이 사진도 좀 찍어주고. 다 같이 단체 사진도 한 번 찍고. 그건 어려우려나? 하하하!”
황이서도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그 역시 설렌 듯했다.
“부럽다. 성훈이 형이 가장 먼저 지하철 광고 떴네.”
정민과 호진이 화면 속 광고를 보며 진심 가득한 부러움을 표현했다.
그때였다.
우주 카페의 마지막 화 촬영을 마친 우주가 숙소로 돌아오면서 외쳤다.
“형들 대박! 완전 대박 뉴스! 성훈이 형 생일 광고 떴….”
“우주야, 오늘은 좀 늦었다.”
“어라? 다 본 거야?”
“그럼. 내일 사진 찍으러 갈 거야.”
* * *
단체 사진 찍으러 가는 것? 좋다.
인증샷으로 남기는 것도 좋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
“뭔데?”
“우리가 다 가면 분명 눈에 띌 거야. 맞지?”
“그렇…긴 하지.”
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5인조 그룹 올리오스의 멤버 성훈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사진을 찍는 다섯 명의 남자들.
어떻게 보더라도 올리오스였다.
우리 말고 거기서 사진을 찍을 남자 다섯 명이 어디에 있을까.
“다섯 명 전원은 못 가려나?”
“가면 혼잡해지겠지.”
호진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건 안 돼. 거길 다니는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면 안 되니까.”
성훈이 한마디를 더 했다.
“그렇지. 그러니까 다섯 명이 한 번에 가는 건 보류.”
“그럼 성훈이 형 혼자 가는 거야?”
그건 곤란하지.
기념비적인 첫 생일 조공인데 성훈이 혼자 가는 건 아쉽잖아.
“그럼 이건 어때?”
우주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는 듯 입을 열었다.
“가면 있잖아. 동물 가면 같은 거로 얼굴 가리면 우리인 줄 모를 거 같은데.”
그 말에 나는 N컷 마당에서 찍었던 스티커 사진의 기억을 떠올렸다.
“오, 나쁘지 않아. 그거 괜찮은데?”
단순히 마스크랑 선글라스로 숨기는 건 너무 티 나잖아.
얼굴을 완전히 가릴 수 있는 가면을 쓰면 좋을 거다.
“인기 없는 관종 너튜버 같은 느낌이면 더 좋겠다.”
이목이 쏠려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끔.
“이거면 다섯 명이 다 같이 가도 되겠지?”
우주가 싱글벙글 웃으며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