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화>
아체대가 무사히 끝났다.
이영일 PD와 짧은 대화를 마치고 돌아온 후, 미리 준비하고 빌린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안녕하세요!”
“꺄아아악!”
그리고 현장에 응원을 왔던 팬클럽과 짧게나마 소통할 수 있는 팬미팅 자리를 만들었다.
팬들과 아체대 뒤풀이를 위한 자리였다.
뒤풀이라지만, 카페를 빌리고 그곳의 음료를 제공하는 것이 전부였다.
스케줄 때문에 우리가 함께할 시간은 15분 남짓이지만, 그 짧은 시간이나마 우리를 찾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갖고 싶었다.
황이서와 이두현 매니저가 내내 고생을 해줬다.
아체대 일정이 정해지고 팬들이 온다는 걸 확인하자마자 소속사에서 미리 예약한 공간이었다.
카페 전체를 빌리는 데 꽤 애를 먹었다고 했다.
‘두현이 형, 음료랑 간식 무제한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사장님께 말씀 좀 부탁드릴게요.’
나는 먼저 이동하는 이두현에게 슬쩍 말했다.
원래는 장소 예약까지 내 돈으로 하려고 했지만, 황이서는 절대로 안 된다며 끝까지 거절했다.
아이돌로서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대비용을 아이돌이 사비로 낸다는 것을, 황이서로서는 용냡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100명이 들어올 정도의 카페를 통으로 빌리고 다과까지 마련하는데 드는 비용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지원을 하기로 했다.
기존 소속사에서 지불한 음료와 간식 가격에 추가로, 팬들이 최대한 편하게 쉬고 갈 수 있도록. 적어도 먹는 것만큼은 걱정하지 않았으면 했다.
우리 올리오스를 위해 귀한 시간을 써서 와주고 목청껏 응원까지 해주신 분들이었으니까.
금액이 너무 많이 나와서 어쩔 수 없이 청구하겠다면 기꺼이 받아들이지 뭐.
그러지는 않겠지만.
황이서가 했던 말을 스스로 번복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
내게 절대 부담을 주려고 하지 않겠지.
내 고집이 섞여 만들어진 자리였다.
“응원해 주셔서 고마워요. 덕분에 이렇게 메달도 딸 수 있었어요. 물론 제가 딴 건 아니지만. 하하하.”
역시나 우주가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고 분위기를 띄웠다.
“감사합니다. 응원해 주셔서….”
아직은 팬들과 만나는 게 어색한 호진은 마이크를 통해 키워도 듣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그래도 장족의 발전이다.
예전에는 이 정도도 말하지 못했지.
그래서 이전 팬미팅 때도 입을 자주 열지 않은 채로 병풍처럼 서 있었다.
그러나 타고난 목소리가 좋은 데다가, 춤도 끝내주게 잘 춘 덕분에 여전히 인기가 많았다.
오늘도 댄스스포츠 끝나고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이 시선을 얼마나 끌던지.
땀에 젖은 머리카락과 뺨에 흐르던 땀방울, 카메라가 줌인하는 장면이 체육관에 있던 스크린에 뜨자마자 환호성이 장난이 아니었다.
팬들도 그런 호진의 평소 모습을 알기 때문일까. 짧은 인사였음에도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분들이 꽤 보였다.
“진짜 조금 전에 건하 형이 첫 스타트 때부터 사람들 제치고 나가는 거 보고 엄청 놀랐다니까요? 여러분도 봤죠?”
“네에에!”
너튜브 채널이라지만, 예능 MC도 보고 있는 우주 덕분에 팬미팅은 부드럽게 흘러갔다.
사회자가 따로 없이 오로지 아이돌과 팬끼리 소통하는 자리였지만, 오히려 우주 덕분에 그 어떤 때보다 더 활기찼다.
‘우주카페 MC 하고부터 애가 완전히 프로가 됐네.’
예전에는 약간 실수하거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가 어려운 느낌도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능글맞게 넘기기도 했다.
물론 이전보다 훨씬 더 좋아졌다는 의미였다.
진짜 MC와 비교하면 한참 부족할지는 몰라도 지금 이 팬미팅장에선 우주가 바로 국민 MC였다.
“감사합니다.”
나는 일어나 팬들에게 고맙다며 허리를 숙였다.
“우승할 거 같았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하늘을 보는데 구름이 없이 맑은 게 어떻게든 금메달을 딸 거 같더라고요. 물론 씨름에서는 광탈했지만.”
선출은 반칙이지.
자신감 섞은 농담에 분위기가 좋아졌다.
사실 이곳에 있는 팬들은 무슨 말을 해도 웃어줄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좋아서 새벽부터 찾아와 이 시간까지 자리를 지켜준 사람들이었으니까.
돈을 받는 것도, 누가 인정해주는 것도 아닌데 경기장까지 찾아와 아이돌을 응원하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로지 우리만을 보고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누군가 인정을 해줘야 한다면 그건 반드시 우리여야만 했다.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거고.
“씨름은 진짜 아쉬웠어요!”
“맞아. 그때 진짜 나도 모르게 탄성 질렀었는데.”
위로하려는 듯 외치는 팬들의 말에 우주가 한마디 더 했다.
“지긴 했지만 진짜 멋있었어. 그 기억 나? 지고 나서 형이 옷깃으로 코랑 입을 가렸잖아. 그때 진짜 선수 같더라.”
“내가 그랬나?”
기억이 잘 안 난다.
패한 순간 느껴진 분함에 나도 모르게 머리가 핑 돌았거든.
조금만 더 잘했으면 이길 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꺄아아악!”
그러나 우주와 팬들은 그 장면을 똑똑히 기억했는지, 반응이 왔다.
대체 뭘 했길래 저러지?
진짜 모른다는 눈빛으로 우주를 바라보자, 우주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아까 매니저 형이 찍어줬어.”
씨름에서 패배한 뒤에 체육복으로 얼굴을 가린 사진이었다.
땀에 젖은 손에는 씨름판의 모래가 빼곡하게 박혀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린 채로, 상의를 잡아당겨 하관을 가렸다.
눈에는 패배의 굴욕감과 패배감으로 피어나는 분노가 가득했다.
고작 아체대 경기인데, 표정만으로는 무슨 월드컵에서 떨어진 축구선수 같았다.
그리고 옷을 잡아당길 때 상의의 옷자락이 올려졌는데.
그 탓에 아랫배가 살짝 드러나며 복근이 비쳤다.
운동과 춤으로 다져진 근육이었다.
“내가 이런 포즈를 했다고?”
“눈빛이 무슨 영화배우 같아. 그렇죠?”
“네에에!”
진짜 인지하지도 못했다.
“나중에 아체대에 노래 부르기 같은 거 안 나오려나. 가창력 대결하면 안 질 자신 있는데.”
성훈이 반은 진지한 농담을 뱉자, 다들 깔깔 웃었다.
우리는 각자 이번 아체대에서 있던 일과 그 이전에 있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15분간의 짧은 팬미팅을 마쳤다.
“끝내기 전에 저희 셀카 한 번 찍어요!”
마지막으로 팬들과 찍은 셀카로 마무리를 지었다.
“오늘 와주셔서 정말 고마웠어요. 멀리 사시는 분들은 막차 끝나기 전에 어서 댁으로 돌아가세요.”
* * *
“고생 많았어.”
운전대를 잡은 이두현 매니저가 룸미러를 통해 우리를 보며 말했다.
우리만큼이나 바빴던 사람이 바로 매니저였다.
아체대에서 활약하는 내내 우리를 서포트해 주고, 팬클럽과 소통을 하면서 이후 팬미팅 장소는 물론 식사와 커피, 차를 챙기는 등, 가장 바쁘게 움직였다.
“형도 고생 많았어요.”
“너희가 더 고생했지. 하하하하.”
이제 슬슬 밤 9시를 넘긴 시각.
새벽 4시부터 시작된 스케줄의 끝이 드디어 보였다.
“집에 가면 일단 씻을래. 아까 대충 체육관에 있는 시설에서 간단하게 씻긴 했는데, 너무 갑갑해.”
“화장 빨리 지우고 싶어.”
“으으, 피곤해.”
각자 앓는 소리를 하며 숙소로 돌아갔다.
우리를 숙소로 데려다준 매니저 역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오늘의 스케줄이 끝났다.
* * *
[업적 - 아체대에서 본인이 금메달 1/1]
[업적 - 아체대에서 본인을 제외한 멤버가 금메달 1/1]
[업적 - 아쉬운 패배 1/1]
[…….]
[보상: 10 오픈 마일리지]
[보상: 5 오픈 마일리지]
[보상: 3 오픈 마일리지]
이젠 패배에도 마일리지를 주네.
이번 아이돌 체육대회로 총 18 마일리지를 받았다.
내 금메달로 10 마일리지, 호진의 댄스스포츠 금메달로 5 마일리지. 아쉬운 패배로 3 마일리지.
확실히 본격적으로 트레이닝을 사용하게 된 이후부터 마일리지 지급량이 눈에 띌 정도로 많아졌다.
“이건 좋네.”
소비처가 많아질수록 공급처도 많아졌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포인트를 소모할수록 내 통장에 돈이 조금씩 더 쌓일 거다.
이 스킬 덕분에 황룡그룹의 재벌 아들이라는 타이틀이 없어도 충분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과금이 효자란 말이지.”
든든했다.
앞으로 더 많은 도움이 되어줄 거라 확신했다.
* * *
“끄으으읏!”
오늘은 스케줄이 따로 없는 날이었다.
아체대로 고생 좀 했으니, 오늘 하루는 푹 쉬라는 황이서의 배려…였으면 좋겠지만. 그냥 스케줄이 없었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매일 일만 가득 차 있으면 좋겠지만 늘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렇다고 그냥 쉬는 건 적성에 맞질 않았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 사무실을 찾아왔다.
정확히는 사무실에 있는 작은 헬스장.
소속 연예인들을 위한 GH 엔터의 복지였다.
복지라고 하기엔 강제로 시키지만.
“땀 좀 뺄까.”
어제 아체대에서 조금 무리를 해서 근육 이곳저곳이 비명을 질렀다.
근육통을 해결하기 위해선 운동만 한 게 없지.
조금은 뻐근한 몸을 이끌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몸에 딱 달라붙는 반팔 티를 입은 채로 거울에 비치는 나를 보며 몸을 좌우로 틀었다.
운동할 때는 몸이 드러나는 옷을 입는 걸 선호했다.
이런 재질의 옷이 땀을 잘 흡수하는 것도 있지만, 운동할 때 옷이 몸에 짝 달라붙어 팔랑거리지 않는 게 좋았다.
내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근육이 움직이는 게 은근슬쩍 보였다.
‘이 정도 단점이야 참고 넘길 수 있지.’
이리저리 몸을 풀며 스트레칭을 시작하고 러닝머신에 오르려는데.
드르륵.
문이 열리고, 몬스터즈의 구희성이 들어왔다.
“희성 선배, 안녕하세요.”
“응.”
“일찍 나오셨네요. 오늘 스케줄 없으신가요?”
“응.”
참 말이 없다.
호진이만큼 말수가 없는 아이돌이었다.
물론 호진이와 결정적인 차이는 있다.
호진이는 타인과 얘기하는 게 부끄러워서 입을 열지 못하는 거라면, 구희성은 그냥 사람과 말하는 걸 귀찮아한다는 것 정도?
‘그런 애가 어떻게 아이돌을 하게 된 건지.’
심지어 배우도 겸업으로 하고 있다.
연기할 때 보면 말을 유창하게 하던데.
캐릭터 한번 특이했다.
게임에서는 이상함을 잘 느끼지 못했는데, 막상 실제로 겪어보니 곤란했다.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도 어렵다고 해야 할까.
헬스장에 들어온 구희성은 탈의실로 가 민소매 티셔츠와 반바지만을 입고 나왔다.
민소매 티 사이로 드러나는 각진 몸매.
춥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맨살 노출이 많았다.
반팔 티를 입고 있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바지는 따뜻하게 입었다고.
내 시선을 느꼈던 걸까.
그는 잠깐 나를 보더니 내 옆에 있는 러닝머신 위에 올라타며 입을 열었다.
“추운 상태로 땀 빼는 게 좋아.”
“아, 네….”
어색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어색한 공기가 나를 조였다.
러닝머신 위를 달리며 땀을 빼고 있는데,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
구희성이 달리는 자세 그대로 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입을 꾹 닫고 살짝 졸려 보이는 눈으로 나를 계속 보는 게, 꼭 일발 장전된 한소리를 내뱉으려는 얼굴이었다.
“하실 말씀 있습니까?”
“…….”
조급은 답답해서 무시할까 싶은 순간.
“너 눈빛 좋더라.”
“예?”
“무대에서 보여준 눈빛 말이야. 연기해도 될 정도로 좋았어.”
이거 칭찬이지?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는 걸 보면, 놀리려는 건 아닌 거 같았다.
“아, 감사합니다.”
“혹시 말이야.”
갑자기 말문이 트인 듯 구희성이 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너는 연기할 생각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