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화>
바로 옆에 선 나도 간신히 들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한 듯 반응이 없었다.
크리키 식스.
우리 정규 앨범 첫 무대에서 만났던 선배 아이돌 그룹이었다.
나름 경력이 꽉 찬 고참 아이돌.
우리를 보자마자 시비를 걸었던 그들이었다.
시비를 건 이유가 뭐였지?
‘진효원 같은 선배들 백 믿고 기세등등하지 말라고 했던가?’
기억도 잘 안 난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니까.
“집에 돈 많으면 다냐?”
“…….”
내 바로 옆에 선 채로 적개심을 드러내는 크리키 식스의 리더 레녹.
왜 저렇게 우리를 저렇게 싫어하는 거지?
답은 간단했다.
열등감.
크리키 식스는 하지 못한 대선배와 콜라보.
그걸 심지어 이제 막 데뷔한 신인 그룹이 했다는 것에 화가 난 것이다.
‘애초에 성격이 그리 좋지 않은 걸로 유명한 놈들이더만.’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알게 모르게 떠다니는 루머가 많았다.
멤버 간 다툼과 폭언이 상당하다고 들었다.
여자 문제도 심각하다고 했는데 크리키 식스의 소속사인 해피데이가 숨겼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런 소문들이 전부 사실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게 돌아다닌다는 것만으로도 크리키 식스 멤버들의 평소 행실과 성격을 알 수 있었다.
‘게임에선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성능이 구려서 주력으로 쓰지는 않지만 레녹을 비롯한 크리키 식스 멤버도 나름 엔딩을 봤던 캐릭터들이었다.
작지만 애정을 담았던 캐릭터들이 망가진 모습이 씁쓸했다.
그러나 그건 먼 과거의 이야기였다.
지금 나는 게임 속 GH 엔터를 운영했던 윤건하가 아니다.
나는 몸을 푸는 척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선배님, 잘 부탁드립니다.”
“이 새끼 끝까지 착한 척하려고 하네.”
카메라 앞에서 싸울 생각이 없었다.
다퉈서 얻을 게 없었다.
내가 발끈해서 덤비면 선배에게 덤비는 건방진 후배로 보일 테니까.
의도적으로 긁는 거다.
21살 젊은 혈기를 가진 윤건하였다면 한 번쯤은 발끈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겐 하찮은 도발이었다.
“싸울 이유가 없잖습니까.”
여기서 웃으면서 넘기면 나는 언제나 여유를 잃지 않는 나이스한 후배 아이돌이 되는 거다.
그리고 나를 긁으려는 레녹의 얼굴은 어떻게든 카메라에 잡힐 거다. 편집한다고 해도 분명 잡힐 테지.
아니, 편집을 할까? 화제라면 어떻게든 잡을 PD가?
‘사방에 카메라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몸조심해.’
한진성의 조언이 어느 때보다 도움이 됐다.
삐익!
가볍게 몸을 풀자, 아체대의 심판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선수들 준비해 주세요!”
스타트 라인에 선 선수들이 손을 땅에 집고 자세를 잡았다.
심판의 손이 올라갔고.
타앙!
방아쇠를 당겼다.
바로 자리를 박차고 앞으로 달렸다.
앞으로 나아가는 순간, 레녹이 교묘하게 내 옷자락을 당겼다.
옷이 늘어졌다.
찰나였다.
승부욕에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고 여길 정도로 짧았다.
하지만 그 짧은 늘어짐만으로 몸의 균형이 살짝 어그러졌다.
‘이 새끼가?’
가속이 늦었다.
같이 스타트를 끊은 다른 아이돌들이 조금 앞서나가는 게 보였다.
다리 근육에 힘을 더 줬다.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반 발자국 정도 늦어졌던 거리가 한순간에 좁혀졌고, 레녹을 지나쳤다.
나는 레녹을 시작으로 앞으로 달리고 있던 다른 아이돌들을 빠르게 지나치며 선두로 나섰다.
레녹이 손을 뻗으면서까지 어떻게든 나를 잡아채려고 했지만,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60m 단거리 1차 예선의 선두는 나, 윤건하였다.
“후우….”
미안하네. 내가 달리기엔 자신이 있어서.
“선배님, 고생하셨습니다.”
“하아, 하아, 이 새끼….”
나는 올리오스의 자리로 돌아가면서 레녹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명분은 충분했다.
승부욕에 못 이겨 나를 방해한 아이돌 선배를 위로한다는 명분이면 웃으며 다가가기 충분하지.
나는 웃는 얼굴로 그의 귀에 가까이 가져다 대며 말했다.
“아까 돈 많으면 다냐고 여쭤 보셨잖습니까?”
“뭐?”
“많으니까 좋더라고요.”
시비를 거는 상대를 그냥 두지 않는다.
그게 내 소신이었다.
“굳이 제게 여쭤본 걸 보니, 선배님은 많으신 적 없어서 모르시는가 봅니다.”
레녹이 이를 악무는 게 보였다.
“웃으세요. 카메라랑 팬들 많습니다.”
“이 새끼….”
레녹도 경력이 좀 있는 아이돌이었다.
지금 여기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아마 은근슬쩍 옷을 잡아당긴 것도 그 때문일 거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좋은 소리는 못 듣겠지만.
그런데 그거 알아?
그래 봐야 이미 늦었어.
분명 찍혔을 거거든.
“앞으론 이런 걸로 넘으려고 하지 말고 앨범으로 붙어요. 이렇게 추하게 지는 건, 조금 그렇잖아요.”
나는 웃으며 레녹의 등을 두드렸다.
겉으로 보면 두 선후배가 경기 중에 있던 열정적인 대결을 마치고 인사를 하는 것처럼 보일 거다.
“다른 경기에선 좋은 모습 보여주시길 기대할게요.”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체육대회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승부욕이 다소 과열되어서 멤버들끼리 살짝 신경전을 벌이는 경우가 있었지만, 방금처럼 경기가 끝나면 서로 웃으며 넘어갔다.
씨름은 16강부터 진행되었다.
나와 성훈은 모두 8강에서 떨어졌다.
아쉬운 성적이었다.
유도 선출이었다던 선배에게 당했다.
단순히 힘만 좋은 게 아니라, 기술이 엄청 좋아서 당해내지를 못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전년도 씨름 우승자라고 했다.
“어쩐지….”
달리기는 좀 잘하지만 내가 상체 힘 쓰는 건 좀 약하거든.
우리는 육상과 댄스스포츠를 제외하곤 전부 떨어졌다.
체육대회 연습은 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팬들 앞에서 조금이라도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데.
체육대회의 열기는 점점 뜨거워졌다.
조금이라도 카메라에 잡히기 위해 무리수를 던지는 아이돌도 종종 보였다.
각자의 컨셉을 최대한 살리며 체육대회에 임했다.
어떻게든 자기를 미디어에 노출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게 아이돌이었으니까.
경기에 나갈 수 없는 우리는 응원에 조금 더 힘을 쏟았다.
‘떨어지면 리액션이라도 확실하게 해둬.’
‘틈틈이 팬들한테 인사도 해주고.’
선배 아이돌인 한진성과 카이의 조언이었다.
조언을 잊지 않았다.
손을 흔들며 우리를 찍고 있는 팬들의 카메라와 눈을 마주쳤다.
수많은 카메라가 있었지만, 묘하게 나를 찍는 카메라가 느껴졌다.
이것도 스킬인 빛나는 스타덤(SS)의 효과인.
[효과 1: 팬들에게 호감을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 덕이지 않을까.
어느새 체육대회의 1부 순서가 끝을 보였다.
1부의 마지막은 60m 결승전.
60m 단거리 예선에서 통과한 아이돌들이 하나둘 모였다.
“잘 부탁한다.”
같이 결선에 오른 이진우가 손을 뻗었다.
“너도 통과했어?”
“당연하지. 너 아까 비틀거릴 때 떨어지는 줄 알았다.”
피식 웃은 이진우가 목소리를 낮춘 채로 말했다.
“난 그 인간처럼 반칙은 안 할 거니까 걱정 마.”
“이진우 사람 다 됐네.”
예전에 보였던 싸가지는 여전했지만, 비겁하다는 느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과거 MAE를 떠날 때 봤던, 떼로 뭉쳐다니면서 시비나 걸던 그 양아치 같은 모습은 상당히 옅어져 있었다.
“반칙 써서 이기는 건 의미가 없거든. 지고 울지나 마라.”
“울 생각 없어. 금메달은 내가 가져갈 거니까.”
“재수 없는 건 여전하네. 윤건하.”
마지막으로 발을 풀었다.
삐이익!
심판이 휘슬을 불며 선수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모두 각자 자세를 잡았다.
“이제 준비하네요.”
팬들의 환호 사이에서 현장 해설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꺄아아악!!
윤건하 파이팅!!!
이진우 파이팅!!!
우리 팬과 골든트랙의 팬, 그리고 함께 결선에 참여한 여러 아이돌 팬들의 함성이 체육관을 가득 메웠다.
다른 의미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질 수 없다는 승부욕에 불타올랐다.
“후우.”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정신을 집중했다.
심판이 스타트건을 위로 들며 한쪽 귀를 막았다.
이제 곧 시작의 신호다.
스타트라인에 선 모두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엉덩이를 치켜세웠다.
전부 치열한 예선을 이기고 올라온 이들.
달리기 실력 하나만큼은 뛰어난 아이돌이었다.
그들은 전부 자신이 1등을 한다는 욕망으로 가득했다.
조금이라도 화면에 담기기 위해서는 여기서 1등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무관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이왕 참가했다면 상 하나는 타야지 않겠어?
타앙-!
심판이 방아쇠를 당겼고, 우리는 그대로 뛰쳐나갔다.
결승전다운 빠른 속도였다.
바람이 내 몸을 갈랐다.
다리가 가벼웠다.
아주 조금.
같은 라인에 선 다른 아이돌보다 아주 조금 내가 앞서 있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차이는 점점 벌어졌다.
옆에서 뛰던 이진우가 점점 뒤로 가는 게 보였고, 그를 비롯한 다른 아이돌들도 전부 뒤처지는 게 느껴졌다.
선두였다.
그것도 압도적인 차이로 선두.
누구보다 앞서 달린 내가 결승선을 상징하는 하얀색 선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1등.
금메달이었다.
비록 음악과는 전혀 상관없이 아이돌 간 벌어진 체육대회에서의 우승이었지만, 승리한다는 것. 그건 언제 맛보아도 즐거움을 주었다.
달콤했다.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내게 향하는 그 순간이.
“개 빠르네….”
이진우의 입에서 욕설이 나올 뻔했다.
그는 곧 카메라가 많다는 걸 깨닫고 입을 꾸욱 닫았다.
“축하한다. 또… 졌네.”
이진우는 2등으로 들어왔다.
그 역시 빨랐지만, 다소 아쉬운 패배였다.
“나중엔 진짜 무대에서 붙어보자. 그땐 무조건 이길 거다.”
내 어깨를 두드린 이진우가 미련 없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그의 눈가에 물기가 고이는 걸 보았다.
아닌 척하지만, 마음이 꽤나 쓰였을 거다.
여기서 위로하는 건 기만이다.
차라리 모른 척해주는 게 그를 위하는 일이었다.
크리키 식스의 레녹과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두 사람 모두 내게 열등감을 갖고 있었지만, 이진우는 그 열등감을 양분 삼아 내 뒤를 쫓았고. 레녹은 그 열등감으로 인해 무너졌다.
‘골든트랙….’
다음 앨범은 정말 좋은 노래로 돌아올 거라는 걸 확신했다.
MAE에 이를 갈며 차기작을 준비하는 골든트랙의 합작품.
조금은 기대됐다.
나는 금메달을 받음으로써, 올리오스의 최초로 아체대 메달을 수여받았다.
“우와아아아!!! 건하 형! 역시 믿고 있었어!”
“축하한다!”
“윤건하! 윤건하! 윤건하!”
멤버들이 우르르 달려와 나를 껴안았다.
첫 우승이 단독우승이라는 건 아쉽지만, 다들 좋아해주니 마음이 가벼웠다.
1부가 끝났다.
경기장의 세팅을 갈면서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아이돌 소속사는 해당 아이돌을 응원하러 온 팬클럽을 위한 식사를 준비했다.
GH 역시 여기까지 찾아온 원스를 위해 식사와 커피, 그리고 디저트를 대접했다.
커피차와 밥차에는 우리 다섯 명의 사진이 떡하니 박혀 있었다.
내 돈도 일부 들어갔다.
조금이라도 더 맛있는 걸 먹이기 위해서.
잘 먹어야 때깔이 좋다는 말도 있으니까.
밥을 먹기 전, 팬들을 찾아가 잠깐의 대화를 나눴다.
“다들 맛있게 드시고, 이따 2부에도 저희 많이 응원해 주세요. 2부엔 호진이의 댄스스포츠가 있으니까요.”
“네!!”
셀카도 찍었다. 식사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짧은 팬미팅을 마치고 우리도 밥을 먹기 위해 체육관으로 들어갔다.
짧은 팬미팅이었지만 다들 만족해 준 느낌이었다.
도시락을 먹고 나니, 스태프가 찾아와 2부 시작을 알렸다.
댄스스포츠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예선이 따로 없이 바로 결선으로 진행됐다.
앞선 팀이 멋진 무대를 선보였다.
차차차에 룸바를 섞은 아이돌 선배의 춤은, 이성 파트너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춤사위를 보여줬다.
첫 공연이 끝나고, 이제 두 번째 팀인 호진의 차례였다.
“최근 화제의 아이돌! 올리오스의 안호진입니다!”
사회자의 외침에 호진이 무대 위로 나왔다.
“호진이 형 나온다!”
“왜 내가 긴장되냐.”
우주와 정민이 오돌오돌 떨며 무대를 보았다.
“너무 긴장하지 마. 침착하게 응원해 주면 호진이도 알 거다.”
성훈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성훈의 손가락도 부자연스럽게 떨리고 있었다.
호진이 긴장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알고 있기에 더욱 떨렸다.
보는 사람마저 긴장하게 만드는 무대였다.
무대의상을 갖춰 입은 호진이 사람들 앞에 섰다.
그의 옆에는 이번 댄스스포츠 준비를 위해 함께 도와준 전문 댄서가 함께 서 있었다.
‘힘내.’
나는 속으로 호진을 응원했다.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