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05화 (105/236)

<제105화>

몬스터즈의 순항이 이어졌다.

단단한 상위권 차트 점령은 이틀째 계속되었다.

몬스터즈 수록곡끼리 순위가 바뀌는 경우는 있었는데, 다른 가수의 노래에 9위를 뺏기는 일은 없었다.

몬스터즈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는 듯 말이다.

“우와, 역시….”

오랜만에 하는 컴백이라 팬들이 더 이를 악물고 차트 수성을 하고 있는 거라고 들었다.

애초에 노래가 좋아서 일반 대중에게도 어필이 잘 되었고 말이다.

“이제 다음 주면 아체대 촬영 있는 날이네.”

정민의 말에 나는 달력을 보았다.

그게 벌써 다음 주였나.

이번 설날에 방영할 아체대라고 했다.

겨울이다 보니, 실내 촬영이 많을 거라고도 말했다.

아체대.

팬들도 가수들도 고생한다는 아이돌 체육대회.

남자 아이돌, 여자 아이돌 상관없이 모두 체육관에 모여 다양한 종목으로 경쟁을 하고 팀별로 나눠 점수를 정하는 대회로 알고 있다.

넓은 체육관에 아이돌 팬들도 모두 모여서 현장에서 응원한다고도 들었다.

아이돌과 팬이 모일 수 있는 또다른 방식의 이벤트.

문제는 이게 최초 의도와는 달리 최근에는 여러 문제로 인해 팬들에겐 애증의 이벤트가 되어 버렸다는 거다.

처음에는 모두가 좋아했던 대회였다.

유명 아이돌부터 무명 아이돌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이는 대회. 그것도 지상파 예능. 심지어 현장에는 수많은 팬이 보고 있었다.

무명 아이돌에겐 어떻게든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자리였다.

팬들에겐?

당연히 좋아하는 아이돌이 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또 하나의 팬 서비스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깨끗한 물도 오래 고이다 보면 썩는 법.

참가자에 대한 스태프의 폭행 문제, 과격한 종목에서 발생하는 부상 문제, 악마의 편집, 현장 관리 미흡과 팬끼리 다툼 등.

셀 수 없이 다양한 사건 사고가 아체대에서 벌어졌다.

그랬기에 팬들에게 있어선 이 아체대는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대회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가야만 했다.

왜?

여전히 시청률이 높거든.

체육대회의 플롯 자체가 그리 많지 않을뿐더러, 명절 특집으로 나오는 프로그램 중에서 화제성이 제일 높다.

그렇다고 아이돌 그룹이 나가지 않는다고 보이콧이라도 한다면?

방송국의 눈 밖에 나버린다.

완전히 갑인 방송국의 눈 밖에 나버리면, 적어도 한국에서 활동하는데 어려움이 생겨버렸다.

기획사도 팬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방송국에선 꼭 진행하고 마는 프로그램.

그게 아체대였다.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분명 화제성은 확실했다.

명절날 아체대의 평균 시청률이 10%에 가까우니까.

절대 무시 못 할 시청률이었다.

여기서 주목을 받는다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방송국의 갑질이 뭐 같기는 해도.

‘기획사 입장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는 부분이지.’

확 윤택수 회장한테 말해버려?

아니.

그건 안 된다.

절대로! 아이돌로 성공하는 데 윤 회장의 힘을 빌려선 안 된다.

한 번 기대기 시작하면 버릇이 되어버려.

세계 최고를 노리겠다면, 적어도 거래는 깔끔하게 해야지.

기브 앤 테이크.

꼭 명심하자.

내가 윤 회장에게 도움을 받는 건, 성공에 대한 내기로 받는 투자.

그것만이 전부다.

‘애초에 그런 식의 투정을 들어줄 양반은 아닌 거 같지만.’

나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달력에 표시된 아체대 일정을 보았다.

* * *

“진성이 형, 몬스터즈도 이번 아체대 나가나요?”

“아체대?”

한진성이 고개를 저었다.

“아마 이번에 몬스터즈는 참가 못 할 거야.”

“앨범 스케줄 때문인가요?”

“응. 진짜 오랜만에 복귀라서 다들 활동하기 바쁘거든. 진규만 초반에 아체대에서 선서하려고 얼굴 비출 거다.”

“왜 진규 선배만 보는 거죠?”

“얘가 가위바위보에서 졌거든.”

한진성의 말에 이진규가 이를 드러내며 분해 했다.

“바위만 안 냈어도!”

“너 맨날 처음에 주먹을 내잖아.”

“남자는 주먹이지!”

저 한마디로 이진규의 캐릭터를 대번에 이해했다.

열혈.

딱 열혈 그 자체였다.

‘게임에서도 그랬지.’

열정 넘치는 댄서.

불과 같은 아이돌이었다.

“그런데 건하야.”

“예, 형.”

“너 왜 나보고 형이라고 부르는 거야?”

“기억 안 나세요? 형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안 자겠다고 저한테 말했잖아요.”

그 말에 한진성의 미간에 주름이 새겨졌다.

“…내가 그랬다고?”

“정말 기억 안 나요?”

“…….”

기억이 안 나는 얼굴이다.

“얘 기억날걸?”

이진규가 한마디 덧붙였다.

마치 자기가 아체대에 가는 걸 화풀이 하려는 듯이.

“저번에도 기억 안 난다고 거짓말한 적 많아. 얘 취했어도 자기가 한 거 다 기억한다고. 예전에 우리 약속한 것도…. 으읍!!”

한진성이 다급하게 달려와 이진규의 입을 틀어막았다.

“조용히 해.”

“읍읍읍?”

반응 보니까 기억하는 거 같네.

얼굴이 시뻘게진 한진성은 버둥거리는 이진규를 제압했다.

“푸하! 왜? 후배한테 형이라고 부르라면서 끈덕지게 달라붙은 게 부끄러워?”

“이진규!”

“왜? 거짓말도 아닌데, 건하야~ 계속 형이라고 해. 형.”

진규가 짓궂은 목소리로 한진성의 성대모사를 하며 낄낄 웃었다.

투닥투닥.

두 사람이 친한 사이라는 게 여과없이 드러났다.

예전에는 이런 모습을 잘 안 보여줬던 거 같은데, 뭐라고 할까.

함께 술을 마시고 조금 편해진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멋진 선배여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느낌이 들었다.

“저도 선배보다는 형으로 부르는 게 편해요. 그러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그런 놈이 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선배님, 선배님 하면서 거리를 둔 거야?”

“천하의 몬스터즈 선배님들에게 어떻게 먼저 친한 척할 수 있겠어요.”

이진규의 입을 막던 한진성이 힘을 풀었다.

“하아, 그래. 기억난다.”

얼굴이 빨개진 한진성이 헛기침을 하며 인정했다.

“앞으로 지금처럼 형이라고 불러. 건하만 형이라고 부르는 건 이상하니, 너희도 편하게 형이라고 해.”

올리오스 멤버들에게도 호칭 정리를 마쳤다.

“진성이 형, 아체대 선배로서 할 말 없어요?”

“음, 조심해야 할 건 몇 개 있지.”

우리는 한진성의 말에 집중했다.

“뭔가요?”

“첫 번째, 너무 열정적으로 하지 마.”

“그거 맞는 조언인가요?”

“당연하지. 아체대가 주목받기 좋은 프로그램은 맞지만, 거기서 다쳐서 활동에 영향이 가면 곤란해.”

“맞아. 거기 맨날 바닥 관리도 안 되고, 엉망진창이야. 거기서 발목 다치고 쓰러진 애가 얼마나 많은데.”

이진규가 끼어들어 한진성의 말에 힘을 더했다.

관리 때문에 문제가 많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아이돌 중 최고참 중 한 명인 몬스터즈마저 고개를 저을 정도라니.

“그러니까 절대 의욕을 앞세우다가 다치지 마.”

“알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이자, 마지막 조언. 사방에 카메라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몸조심해. 체육대회가 진행되는 열다섯 시간 동안 카메라는 늘 너희를 보지 않더라도 팬들의 눈이 너희를 지켜보고 있어.”

이는 뼈 있는 조언이었다.

행동거지를 잘하라는 말.

괜히 신경질적으로 굴다가 인성 논란을 터트리거나 다른 아이돌과 지나치게 밀착해 구설수를 만들지 말라는 뜻이다.

“알겠어요.”

“명심하겠습니다!”

나를 비롯한 올리오스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몸 잘 챙겨. 이건 진심이다.”

“안 다쳐요. 걱정 마요.”

열심히는 하겠지만, 다칠 정도로 몰입하지는 않을 거다.

우리가 비록 앨범 활동을 하지 않는 시기라지만, 이 사이에도 공연 일정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그러니.

무조건!

다치지 않고 녹화를 마치는 게 우선이었다.

* * *

몬스터즈가 스케줄 때문에 급히 나간 이후.

황이서가 우리를 불렀다.

“무슨 일이에요?”

“올리오스가 첫 활동 시작하고 벌써 4개월 정도 지났지?”

“예. 맞습니다.”

성훈의 대답에 황이서가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그렇게 됐네. 워낙 많은 일이 일어나서 그런가. 너희랑은 이상하게 오래 한 것 같단 말이지.”

황이서의 말대로 4개월간 많은 일이 있었다.

데뷔하기도 전부터 온갖 일로 바빴지만, 데뷔 이후엔 몇 배는 더 바빴다.

정민의 자작곡인 ‘New Taste’와 함께 냈던 싱글 앨범 . 싱글 앨범 데뷔곡으로 앨범 차트인.

그걸 유심히 본 국민 여가수인 진효원과 공동 작업. 진효원×올리오스의 ‘Vocalist’.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낸 정규 앨범 . 정민의 자작곡이자 의 타이틀곡인 ‘All we once’.

그 곡으로 음원 차트 1등과 음악 방송 1등.

말하지 않았지만, 그 중간중간에 있었던 여러 예능 프로와 연말 콘서트, 그리고 행사들까지.

내 인생에서 제일 바쁜 4개월이었다.

‘벌써 이렇게 됐네.’

많은 일이 있어서였을까?

분명 짧은 기간이었지만,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우리 고생 엄청 했구나.

그만큼 보상이 주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보다 바쁘게 다님에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아이돌이 수두룩했으니까.

“그래서라고 말하긴 뭐하지만, 너희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

좋은 소식이면 스케줄 이야기일까?

그게 아니라면 벌써 다음 앨범 일정이?

“너희 정산금 나왔다.”

“정산금이요?”

“그래. 정산금.”

생각보다 일찍 나왔는데?

아이돌 정산은 늦기로 유명했다. 유명 아이돌들도 1년간 정산을 하나도 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이유는 회사가 아이돌을 키우는 데 들이는 돈 때문이었다.

아이돌 한 팀을 키우는데 드는 비용은 대략적으로 4억에서 7억 정도. 큰 규모의 회사는 10억, 아니 20억을 훌쩍 넘기는 곳도 많았다.

그 비용은 모두 회사가 껴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렵게 투자한 아이돌이 망해도 그 실패에 대한 비용적 책임은 회사가 떠안는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조금은 얘기가 달라진다.

회사는 손익 분기점, 그러니까 투자금을 회수하기를 원한다.

그들이 투자한 돈이 있으니 말이다.

때문에 해당 아이돌 그룹을 키우는 투자금의 손익 분기점을 넘기기 전까지는 정산이 뒤로 미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짧으면 1년 길면 몇 년은 더 걸리기도 한다고 들었다.

이해는 한다.

뮤직비디오도 돈이고 스타일리스트, 매니저를 구하는 것도 돈이며, 사무실, 직원 그리고 각종 장비 모두 돈이었으니까.

아이돌이 돈을 버는 건 대부분 본격적으로 콘서트와 앨범수익, 예능과 연기 등, 기타 외부 활동으로 갚는 구조였다.

우리가 행사도 많이 다니곤 했지만, 아직 정산금을 받을 정도로 수입이 나지는 않았을 걸로 알고 있다.

‘벌써 정산금을 준다고?’

의아한 눈으로 황이서를 바라보자, 그 눈빛을 읽었다는 듯 그가 웃었다.

“첫 앨범도 성공적으로 마쳤는데 정산금이 아예 없으면 성취감도 못 느낄 거라고, 대표님이 말씀하셨거든.”

최강훈 대표의 제안이었구나.

“알다시피 이번 앨범의 수익과 행사 대금의 대부분은 회사의 투자금을 회수하는데 처리했다. 저번 싱글 때랑 이번 앨범까지 합쳐서 나온 금액 중 일부를 너희한테 보내는 거니까. 아껴서 써.”

말을 마친 황이서가 정산표를 각 멤버들에게 내밀었다.

“너희가 예전에 알려줬던 계좌번호에 전부 입금했다. 건하 너는 따로 알려준 게 없으니, 계좌 알려주면 바로 입금할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산표를 보았다.

-\2,400,000

정산표에 찍힌 금액이었다.

부대 비용으로 나간 금액을 제외해도 240만 원.

신인 아이돌의 정산금이라 생각하면 적지 않은 돈이었다.

물론 많은 돈 역시 아니었다.

특히 몇천억을 주무르던 내겐 무척이나 적은 돈이었다.

스킬 뽑기로 제공되는 돈보다도 적었다.

그러나 괜찮다.

이건 내가 아이돌 윤건하로 일해서 받은 첫 정산금이었으니까.

뭐든 처음은 모두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와….”

“감사합니다! 프로듀서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올리오스 멤버들도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행복해했다.

본인이 일해서 번 돈이 손에 들어오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세상에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심지어 그게 첫 정산이라면.

기대하지 못한 곳에서 들어오는 돈이라면.

더더욱 기쁠 것이다.

“대표님한테 고맙다고 해. 이번 결정은 대표님이 하신 거니까.”

“넵! 알겠습니다!”

모두가 목청껏 외쳤다.

애들의 목소리에 기쁨이 가득 찼다.

“돌아가 봐. 내일 아체대 일정이지? 너무 무리하지 마라. TV 앞에서 잘 보이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게 너희 건강이니까.”

“넵!”

황이서의 사무실에서 나가고.

“건하야, 잠깐 얘기 좀 해.”

호진이 나를 따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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