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103화 (103/236)

<제103화>

정보가 샐 거라는 건 예상했다.

언제든 어떻게든 터질 거라고도 생각했다.

대응 기사를 얼마나 많이 준비했는데.

이 기사를 준비한다고 한석원 팀장부터 홍보팀 전체가 상당이 애를 썼지.

우리가 각잡고 숨긴다고 해도, 윤건하가 황룡그룹의 윤택수 회장의 아들이라는 건 머지않아 알려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요란하게 사무실로 찾아와서 건하를 찾고 단둘이 차에 탔는데 말이야.

어떻게 모를까.

보는 눈이 많았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

건물에 고용돼서 일하기 시작한 사람들.

황이서 자신과 간부들, 그리고 올리오스 멤버들까지.

예상대로 둘이 있는 사진이 찍혔고, 본인의 아들이라고 했다는 걸 들었다는 관계자의 증언이 본문에 실려 있었다.

예상한 일이지만, 시기가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몬스터즈 컴백 때문에 회사의 모든 인력이 몬스터즈에게 몰렸을 때라니.

심지어 사진까지 또렷하게 찍혀 있어 이건 부정도 불가능했다.

빼도 박도 못한다.

-올리오스의 윤건하, 황룡그룹 윤택수의 아들?

-연예계 데뷔 청탁 의혹. 이래도 되는가?

언론사에서 미리 보내준 기사엔 추측과 추정이 전부였다.

‘그럴지도 모른다.’, ‘했을 것이다.’라는 식의 허망한 말뿐이지만, 이 기사가 나갔을 때 대응하면 늦다.

이미지 타격은 피할 수 없을 거다.

코어 팬층이 떨어져 나가지는 않겠지만, 대중에게 그리 좋은 시선을 받지는 않겠지.

특혜, 낙하산, 빽으로 데뷔했다는 얘기가 오갈 거다.

이렇게까지 나왔다는 건.

지금 당장에도 포털 메인 링크에 걸 정도로 준비를 마쳤다는 뜻이었다.

사진이 붙은 기사 뒤편에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꼭 이곳에 연락해 달라는 듯한 번호.

아는 번호다.

유명 신문사인 국민일보의 연예부 기자.

최상록 기자.

황이서는 수화기를 들었다.

-보셨습니까?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았건만, 기다렸다는 듯 여유로운 목소리.

-아시겠지만 올리오스의 윤건하 군이 윤택수 회장의 아들이라는 증거 사진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많이 닮았더군요. 재벌 2세 연습생과 데뷔조 마지막 한 자리… 자연스럽게 연상이 되더라구요?

말도 안 되는 루머다.

이건 나를 흔들려는 거다.

올리오스를 미끼로 잡고 뭐든 먹으려는 속셈.

몬스터즈 기사를 못 써도, 거물이라 불리는 윤택수 회장의 아들에 대한 기사를 독점으로 보도하면 사회면에도 올라갈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넘어가지 않는다.

루머는 루머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고, 우리는 결백하니까.

MAE 쪽이 변수지만, 건하가 빽으로 들어가려고 했으면 애초에 GH 엔터가 아닌 MAE에서 데뷔했겠지.

그러니 황이서의 목소리는 당당했다.

“가타부타 말 말고 본론부터 넘어 가겠습니다. 사흘만 엠바고 걸어주십쇼. 당장 내일이 몬스터즈 컴백입니다. 지금 내시면 우리 난리 나요.”

다만 저자세로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

인력이 몬스터즈 쪽으로 다 쏠려서, 대처가 늦어진다.

만약 몬스터즈에 붙은 홍보팀의 인원을 빼서 최대한 빨리 대처한다면, 몬스터즈 컴백에 그만큼 인원이 구멍이 생긴다.

곤란하다.

뭐가 됐든 곤란했다.

-저희가 왜 그래야 합니까.

목소리에 여유가 넘친다.

개 같은 놈.

지가 갑이다 이거냐.

“하아,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저희가 못 해 드린 게 없잖습니까.”

빌어먹을 놈. 이 인간이 이런 식으로 기사를 긁어대는 바람에 홍보팀이 고생을 한 걸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예전에도 몬스터즈 가지고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트렸지.

-그에 걸맞은 정성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개새끼.

“제발 사흘만 미뤄 주십쇼. 기사를 내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적어도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을….”

-이틀. 그리고 대신 기다리는 동안 시간 때울 건 마련해 주시겠지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왜 그러십니까. 프로들끼리.

씨발 놈.

그의 더러운 성정은 업계에서도 유명했다.

“그건 안 됩니다.”

-우리 황 프로님 눈치가 많이 없으시네.

없는 게 아니라.

눈치가 있으니 못하겠다고 말하는 거다.

욕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못한다면 내일 바로 기사 나가는 겁니다. 몬스터즈 때문에 바쁘실 텐데, 많이 곤란하시겠어요?

이를 깨물던 황이서는 마지막으로 제의했다.

“그건 안 됩니다. 저희 GH 엔터 그런 곳 아니라는 거, 기자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이건 황이서가 제의하는 마지막 ‘선’이다.

절대 할 수 없으니 다른 걸로 만족하라는 제의.

황이서도, 그가 속한 GH도 절대로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었다.

“다른 쪽으로 얘기를 나눠보시죠. 서로 괜히 얼굴 붉히지 말고요.”

-말씀드렸습니다. 프로듀서님. 대표님한테 얘기해서 방침 바꾸시던가 아니면 그냥 기사 맞으시죠.

이성의 끈을 놓을 뻔했다.

진정하자.

여기서 터지면 지금까지 참아왔던 걸 다 잃어버리는 거다.

황이서는 올리오스와 몬스터즈의 얼굴을 떠올리며, 겨우겨우 분노를 참아냈으나.

“그건 안 되겠군요. 죄송합니다.”

황이서는 전화를 끊었다.

“한석원 팀장!”

회유는 물 건너갔다. 그렇다면 남은 건 정면돌파다.

* * *

몬스터즈의 컴백.

정규 4집을 들고 컴백한 몬스터즈는 이번엔 아예 이를 갈고 나왔다는 듯, 컴백하자마자 차트를 한가득 차지했다.

흔히 말하는 차트 줄세우기.

이번 정규 총 9곡.

1위부터 9위까지가 전부 다 몬스터즈의 노래였다.

-노래 미침.

-안 좋은 노래가 없어.

-전부 카이 작곡에 다른 멤버들 작사임. 진짜 이젠 아티스트다.

-스트리밍 인기 상위권으로 돌리면 몬스터즈 노래밖에 안 나오는 게 말이 되냐?

파급력이 달랐다.

최고의 아이돌 그룹이라는 명성이 부끄럽지 않은 성적이었다.

앨범이 나온 지 네 시간도 지나지 않은 성적이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저 순위를 지킬까.

입이 쩍 벌어지는 성적이었다.

“우리가 어떻게 1등을 찍었는데…. 몬스터즈는 이걸 첫날에 했네.”

“격의 차이가 느껴진다.”

감탄과 동시에 경쟁심이 느껴졌다.

몬스터즈의 모습이 내가 윤택수 회장에게 말했던, 기업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는 잠재력이었다.

빌보드 차트를 저렇게 가득 메울 수 있다면.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무한한 가치를 창출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할 수 있어.’

나뿐만이 아니라 멤버들도 성장시킬 수 있는 스킬인 트레이닝(S).

몬스터즈 그 이상의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을 거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멤버들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최우주]

[나이: 20]

[노래: B]

[춤: A]

[외모: B]

[예능: A]

[스킬: 친화력(A), 청산유수(B), 원샷을 위하여(B)]

[안호진]

[나이: 21]

[노래: D]

[춤: A+]

[외모: A+]

[예능: D]

[스킬: 남다른 춤선(C), 끈기(B)]

[정민]

[나이: 20]

[노래: B+]

[춤: B]

[외모: B+]

[예능: C+]

[스킬: 작곡(B), 미래의 마에스트로(S) - 성장 중: 담당 멘토 카이]

[유성훈]

[나이: 22]

[노래: A]

[춤: B+]

[외모: B+]

[예능: D+]

[스킬: 고집(A), 폭포수 같은 고음(A)]

모두의 스탯이 한눈에 보였다.

‘누구부터 올려주는 게 좋을까.’

우주의 댄스를 B+에서 A로 올리고 350만 포인트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얻은 20 마일리지를 이용해 이땅 어때에 남아 있던 5억짜리 땅을 전부 처리했다.

[이땅 어때 보유금액: 5억 85만원]

이제 이땅 어때의 모든 보유 금액을 탕진했다.

‘이건 이제 못 써먹겠군.’

나는 이땅 어때 어플을 삭제했다.

5억으로 만든 508만 포인트.

남아 있던 367만 포인트를 포함하면 875만 포인트.

이걸로 누굴 올려줘야 하나.

아직까지는 애들의 강점을 살리는 게 우선이었다.

‘당장 정민은 스탯을 올리지 않아도 되겠어.’

상위 스킬인 마에스트로를 가진 카이가 스승으로 붙었다.

내가 당장 트레이닝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클 거다.

그러니 당장은 성장을 하지 못한 두 멤버.

안호진, 유성훈.

이 두 친구의 스탯을 올려줄 생각이었다.

우선은 호진의 댄스를 S로 만들고, 성훈의 노래를 A+로 만든다.

무대에서 가장 돋보이는 두 사람의 강점을 극대화할 생각이었다.

[트레이닝(S)을 이용해 안호진의 스탯을 올립니다.]

[기존 포인트의 2배가 소모됩니다.]

[춤: A+ → S]

[500만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노래: D → C]

[100만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트레이닝(S)을 이용해 유성훈의 스탯을 올립니다.]

[기존 포인트의 2배가 소모됩니다.]

[노래: A → A+]

[250만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있는 포인트를 전부 사용해, 무대에서 빛나는 쌍두마차의 스탯을 올렸다.

당장은 티가 나지 않겠지만, 연습하고 연습하다 보면 달라질 거다.

우리가 다시 복귀할 즈음엔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질 거다.

어쩌면, 이 두 사람이 다음 앨범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번 앨범은 작곡자였던 정민과 개인 예능을 시작한 우주가 가장 큰 수혜자였다.

그러나 언제나 두 사람만 돋보이면, 균열이 생기기 마련.

이제는 두 사람이 돋보여야만 했다.

‘이 정도면 됐어.’

잠재력의 최대치를 올려놨으니, 나머지는 연습과 노력으로 충족할 수 있으리라.

멤버들은 여전히 몬스터즈의 노래를 들으며 감상 모드에 빠져 있었다.

그때였다.

“건하야, 잠깐….”

연습실로 들어온 황이서가 나를 불렀다.

그러다 연습실에 올리오스 멤버밖에 없다는 걸 확인한 황이서가 안으로 들어왔다.

“아니지, 너희 모두 아는 게 좋겠다.”

“무슨 일 있나요?”

문을 닫은 황이서가 연습실 안을 잠시 살폈다.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한 그가 입을 열었다.

“30분 뒤에 건하가 윤택수 회장님 아들이라는 게 알려질 거다.”

“기사가 나오나 보네요.”

“그래. 어떻게든 막으려고 노력해 봤는데, 못 막았다. 미안하다, 모두.”

연예인이 재벌가 아들이라는 소식은 그리 달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종종 사업가나 연예꼐 관계자의 가족이 연예인으로 데뷔하는 경우, 개그코드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에나 가능한 일.

오히려 지금 같은 시기면 좋지 않은 소문으로 떠들썩할 거다.

“네 아버지가 우리한테 뇌물을 줘서 아이돌이 됐다는 억측까지 나올 수 있다.”

“그럴 리가요!”

황이서의 말에 정민이 외쳤다.

우리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중학생 때부터 아이돌이 되기 위해 이곳저곳 전전했다.

중학교를 나와 MAE에서 연습생 계약을 했다.

거기서 쫓겨난 뒤에도 GH에서도 3개월이나 추가로 더 연습해서 데뷔했다.

장수 연습생이라는 오명을 달고, 치열하게 버티고 살아남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데뷔하는 과정을 가까이서 보지 못했다.

모르니 오해하는 것도 당연.

그게 결코 우리에게 좋은 영향으로 다가오진 않을 거다.

“너희가 보여준 게 있지만, 기자들이 마음먹고 쓰면 어떻게 될지 몰라.”

이런 화제는 하이에나들이 몰리기 마련.

경험해 봐서 알고 있다.

억측을 막기 위해선 확고한 증거로 빠르게 대응기사를 올리는 게 중요했다.

문제는 지금 몬스터즈 일 때문에 다 바쁠 텐데.

“어떻게든 몬스터즈한테 이목 쏠려 있을 때 몬스터즈랑 GH, 올리오스를 엮어보려고 수를 쓰는 거야.”

황이서는 비장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어떻게든 반박 기사 낼 거다.”

결연한 얼굴로 나를 보던 황이서의 얼굴이 순간 풀어졌다.

“윤 회장님께 부탁하는 건, 안 되겠지?”

“예. 안 해주실 겁니다.”

“후우, 어쩔 수 없지. 우선은 건하 네가 아이돌 활동에 갖고 있는 진정성을 알려줄 거야. 개인 인터뷰도 할 거고, 네가 MAE에서 받았던 처우까지 보도로 때리면….”

진정성이라.

“제가 아이돌에 진심이었다는 증거가 필요한 건가요?”

“간단히 말하면 그렇지.”

그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갤러리를 열었다.

내가 중학생 때부터 혼자서 춘 춤을 매일같이 녹화했던 영상.

배경은 전부 사방이 거울로 가득한 연습실.

차이가 있다면, 처음에는 허름한 동네 연습실부터 시작했고, 중간에는 MAE의 연습실, 가장 최근 영상에는 GH 엔터의 연습실로 바뀌었다는 것밖에 없었다.

아, 조금씩 성장했다는 것도.

-안녕하세요. 윤건하입니다. 오늘 출 곡은 블루커버 선배님의 ‘My Love’입니다.

-안녕하세요. 윤건하입니다. 오늘 부를 노래는 라이언 선배님들의 ‘Tell us’입니다.

-안녕하세요. 윤건하입니다. 오늘 출 곡은….

-오늘 부를 노래는….

중학생의 앳된 윤건하부터 원래 고등학생이었을 시절의 윤건하.

그리고 지금의 나까지.

화면 속 윤건하는 노래가 끝날 때까지 춤을 추는 걸 멈추지 않았다.

항상 영상의 마지막엔 내가 달려와 핸드폰을 집는 것으로 영상이 끝났다.

수백 개의 영상.

“이건 어떤가요?”

데뷔하고서도 종종 찍었다.

내 춤 실력이 얼마나 변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혼자서 연습할 때 찍었다. 잘못된 자세가 없는지 찍기도 했다.

우주의 자세를 알아본 것도 이런 영상 덕이었다.

대중적인 히트곡부터 댄스팀이 너튜브에 올린 사소한 춤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노래도 마찬가지였다.

형편없던 시작부터 놀랍도록 기량이 발전한 최근 영상까지.

영상은 윤건하가 아이돌이 되기 위해 지금까지 달려온 노력의 흔적이었다.

몰라서 오해가 생긴다면, 알게 만들면 된다.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달려왔는지.

윤건하가 얼마나 절박하게 아이돌을 원했는지.

“너 이 새끼.”

영상을 본 황이서가 감탄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GH 채널에 이 영상 올려도 돼?”

“예. 얼마든지요. 이것보다 좋은 반박 기사는 없을 테니까요.”

돈 주고 산 자리가 아니라는 걸 증명할 최고의 물건이었다.

날짜는 따로 없었지만, 괜찮다.

점차 성장하는 어린 건하가 그 영상에 그대로 있었으니.

그리고 정확히 30분 뒤, 내가 윤택수 회장의 아들이라는 기사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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