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화>
트레이닝(S)을 전 멤버에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 명 한 명 들어가는 포인트가 얼만데.
이 정도면 지금까지 받은 포인트보다 몇 배는 더 들어와야 소화가 가능할 거다.
그냥 대책없이 트레이닝을 열어 준 건 아닐 테고.
당연히 그만큼 더 많은 보상을 줄 거다.
난이도는 더 어려워지겠지만, 상관은 없다.
얼마나 어렵든 다 해결하면 그만이니까.
지금까지 쉬운 퀘스트는 전혀 없었다.
다들 나름대로 난이도가 존재했고, 그것을 해결하면 그 정도의 보상을 주었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내가 해결 못 할 건 없어.
그리고 올리오스는 무조건 해낼 거야.
나도 멤버들도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까.
새로 얻은 포인트와 마일리지를 정리하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일단 당장 포인트가 많지 않으니 각 멤버의 특기를 더욱 극대화하는 게 좋을 거 같아. 꽉 찬 육각형으로 키우면 좋겠지만, 재화는 한정적이고….’
그 모습에 오해를 산 걸까.
“건하 형, 무슨 생각해?”
“벌써 다음 앨범 생각하고 있는 거야?”
“건하라면 그럴 만하지.”
애들이 나를 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마치 내가 굉장한 발언이라도 할 것처럼.
“집에 가자. 너무 많이 움직였더니 배고프다.”
“그게 다야?”
벙찐 애들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집에 돌아가서 먹을 저녁 메뉴 생각하고 있었다고.”
나라고 언제나 일 생각만 하는 건 아니라고.
* * *
팬미팅도 끝나고, 연이은 공연도 끝이 났다.
연초에 있는 여러 행사가 다 끝나고, 우리에게도 흔치 않은 휴가가 주어졌다.
여기저기 행사나 공연을 쉬지 않고 다닌 것에 대한 보상으로 사흘 정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어도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빡센 일정 사이에 맛보는 반가운 휴가였다.
우리는 휴식을 얻었지만, GH 엔터는 여전히 바빴다.
그 이유는 바로 몬스터즈의 컴백.
드디어 오랫동안 준비한 몬스터즈의 컴백이 시작되었다.
-몬스터즈 컴백 기념 쇼케이스.
쇼케이스부터 시작해서 앨범 티저, 앨범에 관련된 각종 이벤트까지.
몬스터즈의 이름값만큼이나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오죽하면 아이돌 1팀이고 2팀이고 죄다 달라붙어서 일을 처리할까.
덕분에 우리는 다소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늘 하는 건데도 떨리네.”
떨린다고 말하는 것과는 달리 한진성은 여유롭게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선배님, 표정은 전혀 긴장한 티가 안 나는데요?”
“아, 그래? 하하하. 사실 이번 앨범은 진짜 자신이 있거든. 이를 갈고 만들어서 말이야.”
한진성이 큭큭 웃으며 말하자, 그의 옆에 함께 앉아 있는 카이가 함께 웃었다.
오늘 나는 몬스터즈 한진성의 집을 찾아갔다.
복귀 앨범 나오면 한창 바빠질 테니, 그 전에 집에 놀러 오라는 한진성의 부탁 때문이었다.
올리오스 전원이 그의 집을 찾아갔다.
몬스터즈도 전원 한진성의 집에 있었는데, 들어보니 컴백 무대 전 단합 모임이라고 했다.
10명이 옹기종기 앉아 있어도 한참이나 공간이 남을 정도로 넓은 집이었다.
북적북적한 거실에서 GH의 선후배가 모여 파티를 즐겼다.
“올리오스의 신인상 수상과 댄스 퍼포먼스 수상을 위하여!”
다소 뒤늦은 축하와.
“선배님들 이번 앨범도 화이팅입니다!”
몬스터즈의 성공을 바라는 인사들이 오갔다.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소소하게 술 한잔 마시면서 떠들며 노는 것이, 소소한 연말 파티 분위기가 났다.
이미 연말은 진작 지나고 신년 분위기마저 옅어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다들 모였다는 게 중요하지.
“건하 형은 술 절대로 마시지 마.”
“넌 안 돼.”
멤버들이 하나같이 내 술잔에는 사이다와 콜라를 따랐다.
절대로 안 된다며 막는 모습이 무슨 수호대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건하 술주정이 그렇게 심해? 주량이 어떻게 되는데?”
“맥주 한 잔 마셔도 애가 가요.”
“그 정도야? 의외네.”
억울하다.
원래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술고래라고 불리기까지 했는데, 이렇게 술찐 대접이라니.
억울함을 삼키며 사이다를 홀짝이고 있는데, 한진성이 물었다.
“아, 맞다. 너희 그 영상 봤니?”
“무슨 영상이요?”
술 한 잔을 마신 한진성은 살짝 달아오른 얼굴로 실실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얘, 술 마시면 웃음이 많아지는 스타일이구나.
“너희 KTV에서 무반주로 춤 춘 거 영상 올라왔던데?”
“KTV요?”
한진성의 말에 호진과 성훈이 눈을 끔뻑이며 우주를 보았다.
아, KTV.
우주와 연습을 한다고 무반주로 춤을 췄던 그 장면인 모양이었다.
우주의 얼굴이 빨개졌다.
“우주야, 너 아는 얼굴인데. 무슨 영상이야?”
“아, 그게….”
우주가 나를 힐끗 보더니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무반주로 춤을 춘 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냐.
고개를 들어라. 우주야.
너의 열정이 드러난 영상이잖아.
“말로 하는 것보단 보여주는 게 낫겠다.”
한진성이 영상을 틀었다.
“내가 이거 보고 너희 귀여워서 미치는 줄 알았어. 신곡은 아닌 거 같은데, 수록곡에 새로운 댄스 넣은 거지?”
그 말에 다들 짐작한 얼굴이었다.
한진성이 영상을 틀었다.
화면 속 최우주와 내가 ‘Re:play’의 안무를 연습하고 있는 영상이었다.
성훈과 호진, 그리고 정민이 말없이 영상을 보았다.
복도에서 수치심을 이겨내며 몇 번이고 연습하는 우주의 모습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열정 때문일 거다.
“촬영 때문에 간 거였어? 잠깐 쉬는 시간에도 엄청 열심히 하던데?”
“맞아요. 건하 형이 제가 회의하는 동안 무반주로 추면서 제가 자주 하는 실수를 알려 줬거든요. 연습실에 돌아가기 전에 맞춰보자고 해서…. 이게 이렇게 찍힐 줄은.”
부끄러워하면서 머리를 긁적이는 우주에게 호진이랑 정민이 달려들었다.
“이 자식! 너 이렇게 우리 안 보는 곳에서 열심히 하면 우리가 모를 줄 알았어?”
“우주야!”
성훈은 내게 왔다.
“무반주로 밀린 박자 찾아낸 건 어떻게 생각해낸 거야?”
“그냥 순전히 운이야. 사람들 많으니까 정보 유출을 최소화하려고 무반주로 춘 거지. 그러다 보니까 살짝 박자가 밀린 게 보였고. 프레임 단위로 쪼개보니까 반 박자 정도 밀렸더라고.”
“…….”
나를 보는 성훈의 눈이 흔들렸다.
“왜?”
“아니야. 아무것도. 그냥…. 놀랐어.”
[성훈의 호감도가 올랐습니다.]
갑자기 호감도가 올라갔다는 메시지가 왔다.
왜 오른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만큼 나를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시스템이 말하는 호감도는 단순한 호감뿐 아니라 인정, 존경 등이 다 포함된 이야기로 보였으니까.
“다들 열심히 하고 있잖아. 뭐라도 도움이 돼야지.”
나는 멋쩍게 웃으며 영상의 댓글을 보았다.
-신곡인가?
-올리오스 바이럴 아님?
┖바이럴은 아닌 듯? 이거 팬미팅 기념 공연에서 보여준 춤임. ‘Re:play’ 수록곡에 댄스 넣었음. 저렇게 연습까지 했구나.
┖아니 애들을 얼마나 굴리면 쉬는 시간에 무반주로 수록곡 댄스를 연습함…?
┖올리오스가 데뷔 때부터 노력 많이 하기로 유명했지.
┖노력 안 하는 아이돌이 어디 있다고.
-뒤에 로고 보니까 KTV인 거 같은데, 우주카페 녹화 중에 연습한 건가. 연습벌레네 다들?
무반주로 추는 우리가 귀엽다는 말 말고도 칭찬이 많았다.
여기저기 보이는 칭찬들 속에서.
-그런데 그거 들음? 윤건하 재벌집 아들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한 댓글을 보았다.
재벌집 아들이라는 소문.
‘윤택수 회장.’
윤건하의 아버지인 윤택수 회장.
그가 GH 엔터에 방문한 순간부터 소문은 퍼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재벌집 어쩌구하는 댓글에 대댓이 달렸다.
-재벌 아들이라고? 소문도 그럴듯한 소문을 내세요. 뭐 그런 근거도 없는 소문을 가지고 그러는 거임?
┖윤택수 회장 아들이라는 얘기가 있음.
┖윤택수 회장 본인임?
수없이 떨어지는 반박 댓글에 원 댓글이 묻혀버렸다.
그러나 그 댓글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윤택수 회장 아들이라는 게 알려지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말이다.
물론 다른 멤버들은 그 댓글을 보지 못한 듯했다.
“흐음.”
“왜 그렇게 표정이 어두워?”
얼굴이 발간 한진성이 내게 어깨동무를 하며 물었다.
달짝지근한 술냄새가 풍겼다.
많이 마셨구나.
아까 웃는 것도 그렇고, 한진성은 술에 취하면 스킨십이 많아지는 타입인 모양이었다.
아까부터 착 달라 붙으려고 하는데, 그 빈도수가 점점 더 많아졌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흐음, 그래? 근데 우리 후배님.”
“예, 진성 선배.”
“언제까지 그렇게 딱딱하게 선배님 선배님 할 거야?”
“예?”
“형이라고 불러.”
얘가 왜 이래.
한진성이 눈을 게슴츠레 뜬 채로 나를 보았다.
“형, 말입니까?”
“말입니까도 너무 딱딱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이제 같은 아이돌인데. 형이라고 불러.”
형이라고 부르라니.
솔직히 성훈을 보고 형이라고 부르는 것도 어색했다.
겉모습은 스물하나지만, 속 알맹이는 서른이 훌쩍 넘었다고.
이래 봬도 너희보다 한참 형이야.
하지만 씨알도 안 먹힐 소리였다.
누가 믿을까.
알맹이는 서른이 훌쩍 넘겼다고 말하면, 이상한 아재개그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다면서 농담으로 넘기겠지.
나는 다른 몬스터즈 멤버를 보았다.
카이나 이진규, 최도현 모두 고개를 저었다.
저들에겐 익숙한 광경인 듯 했다.
“또 나왔네. 술 취하면 마음에 드는 사람한테 달라붙는 거.”
“예전에는 진규한테 많이 했었지?”
“이제 타겟 바뀌었네?”
“그만큼 건하를 아낀다는 거 아니겠어?”
각자 맥주잔을 손에 쥔 채로 낮게 웃었다.
저기 웃지만 말고 도와주지?
나와 시선을 교차한 선배들이 씨익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 모습은 마치 전장에 나가는 기사를 응원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건하야, 빨리 형이라고 불러 봐.”
형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을 기세였다.
“진성이 형.”
“그래. 건하야.”
한진성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구잡이로 쓰다듬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완전히 헝크러졌다.
“형 모레 컴백 무대 하는데, 기운 좀 받아갈게. 너희 별스타에 무조건 올려야 한다?”
“알겠어요. 그러니까 이제 좀 자요.”
많이 취했다.
이러다가 실수하겠다.
“자다니. 아직 이렇게 쌩쌩한데.”
“많이 취했어요. 자러 가요.”
“집주인이 자면 너희들 맘대로 할 거 아니냐. 절대 안 돼.”
“여기서 형 물건 건드릴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방금 뭐라고 했어?”
실실 웃으며 나를 보는 한진성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형이라고 했어요.”
“벌써 적응한 거야?”
“됐어요. 빨리 자요.”
하아.
술주정 되게 끈덕지다.
진성을 방으로 질질 끌고 가다시피 데려간 뒤, 강제로 눕히고 나오자 몬스터즈 멤버들이 나를 보며 말했다.
“이제 우리 마음이 이해가 가?”
“뭐가?”
“건하 너도 진성 선배만큼 심했어.”
“아니, 더했지.”
성훈이 담담하게 한마디를 더했다.
“내가 진성이 형보다 더 심했다고?”
거짓말하고 있네.
“진짜야. 나중에 다른 사람들한테도 물어봐.”
진짜 내 주정이 저랬다고?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 * *
“이렇게 노골적으로 찍힌 사진이 있었다고?”
황이서 프로듀서는 아랫 입술을 깨물며 턱을 긁었다.
그의 손에는 윤택수 회장이 윤건하를 찾기 위해 GH 엔터에 온 날의 사진이 들려 있었다.
윤택수 회장의 아들이 윤건하라는 사실.
이건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폭탄이었다.
충분히 대비하고 대처 방법도 다 짜뒀지만.
“하필 이럴 때.”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몬스터즈로 팀 전력이 전부 집중될 때 터트리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