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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98화 (98/236)

<제98화>

“형, 미안해.”

“네가 미안할 거 아니야.”

성훈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무대에서 실수하면 안 된다는 말.

그의 말처럼 우리가 아이돌이라는 걸 자각해야만 했다.

예능도 할 수 있고, 연기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무대에서 팬들에게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러니 성훈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문제는 방식의 차이였다.

그렇지 않아도 스케줄이 바쁜 우주였다.

그런데 여기서 연습 스케줄을 더하겠다고? 그럼 다른 스케줄이 더 생기면 어떻게 할 건데.

그러면 연습량이 부족한 만큼 더 하겠다는 건가?

시간은 유한했다.

우리가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었다.

그러니 그 시간을 얼마나 알뜰하게 쓸 수 있느냐, 얼마나 효율적으로 연습할 수 있느냐가 중요했다.

나는 그런 연습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갖고 있었다.

‘트레이닝(S).’

한 달간 반복 업적으로 얻은 4 마일리지.

정상에서 새로운 목표를 가졌을 때 추가로 얻었던 10 마일리지.

우주의 단독 예능 프로 MC가 확정됐을 때 10 마일리지.

이런 식으로 새로 얻은 신규 업적을 깨서 모은 마일리지가 총 24 마일리지.

이걸 포인트로 환산하면 600만 포인트.

6억 원짜리 포인트였다.

음악 방송에서 1등을 한 덕일까?

하나의 리미트를 깬 이후에 받는 추가 마일리지 보상이 꽤나 쏠쏠했다.

활동하지 않는 한 달간 적지 않은 마일리지를 모았을 정도니까.

우주의 춤 스탯은 현재 B+.

B+에서 A로 올리는데 필요한 포인트는 250만 포인트.

지금 마일리지로도 충분히 올릴 수 있는 포인트였다.

‘급작스러운 포인트 소비지만, 투자라고 생각하면 괜찮아.’

[스파이크 보유금액: 6억 2200원]

이번에도 어플을 구매해서 얻은 600만 포인트.

그중 250만 포인트를 우주의 스탯 상승에 박았다.

[트레이닝(S)을 이용해 최우주의 스탯을 올립니다.]

[기존 포인트의 2배가 소모됩니다.]

[춤: B+ → A]

[250만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이걸로 포텐셜은 올려놨다.

이제 남은 건.

우주와 함께 일주일간 연습을 해서 실수를 없애는 거다.

새로운 안무가 공개되는 공연까지 남은 시간은 2주일.

우리가 연습해야 하는 게 많았다.

최대한 빨리 완벽하게 마친다.

그게 내 목표였다.

우주는 지금도 죽을죄를 지은 것처럼 얼굴을 푹 숙이고 있었다.

기운은 많이 차렸음에도 성훈의 말이 가슴 속에 남아 있는 거다.

“일단 예능 촬영에 집중해. 연습하는 건 나랑 쉬는 시간에 같이 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절대! 춤에 대해서 생각하지 마.”

“알겠어. 따라오게 해서 미안해.”

“괜찮아.”

오늘은 우주카페의 기획 회의가 있는 날.

본래라면 우주 혼자서 두현이와 함께 방송국에 갔을 거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우주와 함께 따라왔다.

연습을 뒤로 미루고 우주를 돕기 위해서.

내 파트 연습은 우주가 자기 일정을 하고 있을 때 따로 연습하면 그만이었다.

지금은 나보다 우주의 케어가 중요한 상황.

“회의 잘 마치고 와.”

“금방 갔다 올게.”

나는 이두현과 회의실 밖에 앉아 우주의 회의가 끝나길 기다렸다.

“두현이 형, 잠깐만 춤추는 거 봐 줘.”

“알았어.”

함께 1등을 찍고 점점 가까이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서 그런지, 우리는 두현에게 말을 편하게 놓았다.

우주를 시작으로 우르르 놓았지.

낯을 많이 가리는 호진이마저 두현이를 편하게 대했다.

커다란 덩치와는 다르게 순박한 미소와 가끔 보이는 어벙한 행동이 다가가기 편하게 도와줬다.

사람 자체가 배려심이 많아서 그런지, 대하는 것도 쉬웠다.

천상 매니저였다.

아무튼, 두현이는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옆에서 우리의 안무를 모두 보고 들은 게 있었다.

나름대로 옆에서 외워서 틀린 부분을 지적해 주기도 한 두현이었기에, 우주가 일하는 동안 연습 파트너로 쓸 생각이었다.

나는 널찍한 방송국 복도에서 무반주로 수록곡의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무반주로, 그것도 복도에서 한다는 게 부끄럽고 민망했지만,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따로 연습할 시간이 없었다.

내가 연습하는 파트는 우주가 연습하는 내내 실수를 했던 2절 시작부터 훅으로 넘어가는 파트.

그리 어려운 동작은 아니었지만, 빠른 발이 필요했다.

리듬을 조금이라도 놓치면 발이 쉽게 꼬일 수 있는 부분이라, 익숙해질 때까지 꽤 시간이 걸리는 구간이었다.

리듬감, 박자, 그루브 등 생각할 부분이 많았다.

이 동작만 문제는 아니었다.

우주는 전체적으로 무난하게 넘겼었지만, 곳곳에 같은 동작에서 같은 실수를 해왔다.

아무리 단순한 동작의 조합이라도 3~4분 길이의 안무를 다 외우다 보면 헷갈리거나 틀리는 부분이 많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조금 더 효율적으로 깨닫게 만들기 위해 연습에 신경을 써야지.

“그런데 건하 너는 이거 더 안 해도 되지 않아? 저번에 보니까 곧잘 하던데.”

두현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우주한테 알려주려면, 우주가 왜 그 부분을 실수했는지 알 필요가 있잖아요. 거기서 영상 좀 간단하게 찍어주세요.”

“열심이네.”

“동생이 힘들어하는데 형이 도와줘야죠.”

웃으며 무반주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깨와 발을 둠칫둠칫 움직이면서 리듬을 탔다.

반주 없이 춤을 춘다는 게 조금 어색했지만, 그래도 한 명의 관객이 있으니까 끝까지 췄다.

“후우, 어땠어요?”

“느낌 좋은데? 반주가 없는데도 박자가 확실하게 맞았어.”

땀을 닦으며 두현이가 찍은 영상을 확인했다.

“반주가 없으니 춤이 더 잘 보이는 거 같네요. 반주가 없어 날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무반주 댄스를 보던 나는 두현에게 물었다.

“우주가 연습하는 걸 찍은 영상이 있나요?”

“있을걸? 너희 연습용으로 확인한다고 내 폰으로 몇 번 찍었으니까. 잠시만.”

잠시 핸드폰을 뒤진 두현이 댄스 영상을 하나 틀었다.

방금 내가 췄던 춤의 반주 버전이었다.

“흐음….”

“뭐가 이상하니? 왜 그래?”

“아니, 그냥…. 자꾸 눈에 걸리는 게 있어서.”

나는 우주가 자주 실수하는 부분을 돌려봤다.

5초, 10초.

단순히 실수한 부분이 문제가 아니었다.

‘여기서부터 박자가 밀렸어.’

정확히 실수한 곳의 10초 전부터 반 박자 정도가 밀렸다.

정말 미세해서 보기 쉽지 않을 정도로 작은 차이.

안무 자체가 빠르게 딱딱 끊어지는 방식이 아니라 쉽게 티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짧은 차이가 실수를 만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연습량이 부족한 우주가 다급하게 쫓아가려다 보니, 까다로운 부분에서 실수가 나온 거였다.

“왜 실수했는지 알겠네.”

“이유를 찾았어?”

“예, 찾은 거 같아요.”

나는 다음으로 우주가 자주 실수하는 부분을 확인했다.

역시 비슷한 이유였다.

실수하기 5초 전에 살짝 밀리는 박자.

해결법을 찾은 거 같다.

* * *

우주의 스케줄에 건하가 따라가면서 연습실에는 세 사람이 남았다.

건하 본인이 따라서 가겠다는데 말릴 수는 없었다.

애초에 그는 누구보다 자신의 역할을 잘해주고 있었다.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는 말을 채남영 트레이너도 몇 번이고 강조했으니까.

며칠 연습실에 없어도 될 거다.

‘따라가서 쉬는 시간에라도 연습할 할 놈이지.’

건하는 그만큼 성실한 멤버였다.

“형, 그래도 너무 심했던 거 아니야?”

연습이 끝나고 잠깐의 쉬는 시간, 가만히 있던 정민이 말했다.

“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우주가 연습을 아예 안 하는 것도 아니었잖아.”

호진이도 한마디 거들었다.

성훈은 이 착하디착한 멤버들을 보았다.

“정민아.”

“응.”

“너 슬럼프에 갇혀서 곡도 못 짜고 고민하고 있을 때, 진짜 너한테 도움이 되었던 게 뭐야?”

“노래가 아쉽다면서 건하가 한소리 했던 거….”

“그래. 잘 알고 있잖아. 듣기 좋은 소리는 아무런 도움이 안 돼.”

“하지만 형, 우주는….”

“다르다고 말하지 마. 작곡에서 예능으로 바뀐 것뿐이지. 정민이 너도 그때는 지금의 우주만큼 바빴어.”

쓴소리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만 했다.

성훈은 그 사실을 건하를 통해 배웠다.

혹시나 정민이 주눅 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접근했을 때, 그는 자신의 슬럼프를 깨지 못했다.

정작 슬럼프에 빠진 정민을 도와준 건 건하의 따끔한 충고였다.

지금의 방식보다는 다른 느낌으로 변주를 주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

그게 지금의 정민과 ‘New Taste’라는 좋은 노래를 만들었다.

구체적인 해결책 없이 마냥 좋다는 얘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이미 한 번 겪지 않았던가.

‘건하 그 자식도 다 알면서 왜 그러는 건데.’

성훈은 이해하질 못했다.

다른 멤버들이야 착한 애들이니까 그렇다고 쳐도, 정작 정민을 따끔하게 혼내고 도움을 줬던 경험이 있는 건하는 왜 그러는 건데.

‘단순히 밀어붙인다고 고쳐질 문제가 아니라고.’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내뱉었던 건하의 말이 떠올랐다.

우주에게 달라붙어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보겠다는 윤건하.

성훈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저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건지.

웃긴 게 뭔지 알아?

건하의 그 눈을 바라보고만 있으면.

‘진짜 해낼 것 같단 말이지.’

그가 말하는 대로 다 이뤄질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를 거다.

지금 우주의 문제는 절대적으로 연습량이 부족해서 생긴 현상이었다.

연습량을 늘리지 못하면 해결할 수가 없어.

그랬기에 따끔하게 한마디 했던 거다.

일주일.

건하는 일주일을 달라고 했다.

그 안에 우주가 바뀌지 않는다면, 연습하지 못한 일주일만큼 더 열심히 해야겠지.

그 책임 또한 건하가 우주와 함께 짊어질 거다.

“나쁜 역할은 내가 할 테니까 너희 둘은 지금처럼만 해. 혹시 우주가 힘들어하면 위로해주고, 도와줘. 특히 호진이 네 도움이 많이 필요할 거다.”

“…알았어.”

성훈은 건하가 한 것과는 다른, 또다른 각오를 품었다.

올리오스를 위해서라면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을 각오였다.

* * *

“우주 씨, 잘 듣고 있어요?”

“아, 네. 들었어요. 이번에 오시는 게스트 분이 힙합을 하시는 분이라고.”

“맞아요. 아마 약간의 앨범 홍보도 할 거예요. 그 부분은 능청스럽게 소개해 주시면 될 거 같습니다. 홍보하러 왔냐고 살짝 까면서 말이에요.”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겠어요.”

“좋아요. 다음으로는….”

우주는 회의하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 지울 수 없었다.

답답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성훈의 말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우리는 아이돌이라는 것.

무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

지금도 계속 같은 부분에서 실수하고 있는데, 예능을 한다고 이렇게 오는 게 맞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방송사와 맺은 계약을 파기할 수도 없었다.

방송 반응은 역대급이라고 했다.

1회는 벌써 300만을 넘겼고, 2화는 올리오스가 나온 1화의 조회 수를 빠르게 쫓고 있었다.

담당 PD님은 벌써 다음 시즌을 하자고 얘기를 꺼냈다.

소속사와 할 얘기라고 돌리긴 했지만, 계속 시즌 2를 얘기하는 게 PD님은 진심인 모양이었다.

예능이 잘 되는 건 좋다.

‘하지만 나는 아이돌인데.’

이제는 뭐가 맞는 건지 모르겠다.

“우주 씨, 표정이 안 좋은데 혹시 아픈 거 아니에요?”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하하. 그냥 생각할 게 많아서요.”

“몸 관리 잘해요. 우주 씨 아프면 우리 다 죽어요. 하하하.”

우주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 PD가 소리 높여 웃었다.

“프로그램이랑, 게스트, 일정이랑 주의점, 이번에 들어갈 컨셉까지 다 얘기했으니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죠. 혹시 궁금한 거 있나요?”

우주는 고개를 저었다.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프로그램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10분만 쉬고 대본을 점검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지금까지 한 건 프로그램 회의. 그리고 이후 있을 회의는 대본을 보며 수정점을 짚고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맞다. 우주 씨. 저기 복도에서 춤추고 있던 사람 말이에요. 우주 씨랑 같은 올리오스 멤버 아닌가요?”

“복도에서요?”

우주는 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회의실 옆, 넓은 복도에서 건하가 무반주로 춤을 추고 있었다.

익숙한 춤이었다.

자신이 실수를 많이 했던 그 구간이었다.

안무를 다 춘 건하가 핸드폰을 보더니 뭔가 깊이 생각하는 듯 골똘히 몰두하고 있었다.

‘설마 내가 회의하는 동안 계속 생각하고 있던 거야?’

건하 형이 나 때문에 저렇게 고뇌하고 있는데, 지금 나는 뭘 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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