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94화 (94/236)

<제94화>

올리오스의 정규 앨범, 의 활동은 끝났지만, 그렇다고 스케줄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앨범 활동을 하지 않는 중간 공백기에도 TV에 나가지 않을 뿐, 아이돌 그룹은 개별 콘서트를 열거나 여러 공연을 돌아다니며 바쁘게 움직였다.

특히 행사가 많은 연말과 연초, 학교 축제가 몰려있는 4월에서 5월 등.

행사가 몰려있는 기간엔 TV 출연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잘 나가는 아이돌은 멤버마다 개별 스케줄이 따로 있고, 아이돌 자체 콘서트의 규모도 커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하지 않던가.

올리오스도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바쁜 스케줄을 보내고 있었다.

1월엔 수요일과 목요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공연이 있었다.

공연을 마치면 무대용 메이크업을 지우고 연습실로 돌아와 연습을 이어갔다.

활동 중에도 더 좋은 무대를 만들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앞으로의 다음 앨범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새로운 춤을 연습하고, 더 좋은 노래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선배들의 공연을 보면서 참고하기도 했다.

정민은 이렇게 멤버끼리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만들어가는 과정을 굉장히 좋아했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돌 활동 중에서 이 시간이 제일 좋았다.

아마 아이돌을 하지 않았다면, 황이서 프로듀서처럼 프로듀서를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의 무대를 만드는 것.

단순히 노래만 만드는 게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무대에서 무엇을 보여주고 어떤 걸 할지를 기획하는 재미가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도화지에 새로운 걸 그리는 것만큼 즐거운 게 어디에 있을까.

서로 아쉬운 점을 피드백하고 좋은 부분을 얘기하다 보면 새로운 방향이 나오는 것도 좋았다.

그래서 늘 이 시간이 기다려졌다.

그런데 오늘은….

“성훈이 형, 무대 방향성 이렇게 가져가면 안 돼. 화려하기만 해서 어쩔 건데?”

“보여주는 무대잖아. 화려함을 찾지 않으려면 뭘 찾을 생각이야?”

“화려함만 찾다가 호흡 관리를 못 해서 음정이 플랫 났잖아.”

“그 부분은 내가 부족했던 거 맞아. 미안해. 다음에는 그럴 일 없을 거야.”

“형한테는 한 번의 실수일 수도 있을 텐데, 무대에서 팬들에겐 그 한 번이 평생의 기억일 수 있다고.”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그 실수 한 번 이후엔 깔끔하게 끝냈다고.”

“그렇다고 실수한 게 사라지는 거 아니야.”

“더 나아지기 위한 과정이었어.”

웃으면서 즐기기엔 조금 살벌했다.

정민은 눈앞에서 서로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는 건하와 성훈을 보았다.

종종 이런 식으로 다투는 경우가 있었다.

무대, 노래 구성, 보컬 등등을 맞추는 과정에서 말이다.

둘 다 고집이 세고 직설적인 스타일이라, 말을 돌리는 것보다는 직접 말해서 고치는 걸 선호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심하게 다투는 건 처음이었다.

“아무리 작은 무대라도 실수하면 안 돼. 형이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

“나도 알아. 그런데 실수가 두려워서 아무것도 안 하면 변하는 것도 없어.”

“그만큼 연습이 된 상태에서 올라가야지.”

정민은 살벌하게 다투는 건하와 성훈을 보았다.

둘이 이렇게까지 싸우는 이유는 하나였다.

더 좋은 무대를 위해서.

그러나 두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지향점은 확실히 달랐다.

둘의 이야기를 듣는 정민의 입장에선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변화를 주려면 확실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건하의 말도.

변화를 주기 위해선 과감해야 한다는 성훈의 말도.

모두 일리가 있었다.

“이렇게 과감하게 변하지 않아도, 좋은 무대를 보여주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올 거야.”

“사람들이 좋아하는 무대를 보여주려면 더 돋보여야 해.”

정민은 그런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자, 둘 다 진정해. 내가 봤을 때 둘 다 틀린 말이 없어서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할 거 같으니까 여기까지 하자.”

그의 만류에 건하와 성훈 모두 한 걸음 물러섰다.

더 좋은 무대를 위한 피드백이지, 싸울 생각은 두 사람 모두 없었기에.

정민은 건하와 성훈을 보았다.

발단은 새해 첫해를 봤을 때 나눈 대화부터였다.

세계 최고를 노리겠다는 건하의 말에 올리오스 멤버들 모두가 동의했다.

목표가 큰 탓일까.

그날 이후로 성훈의 피드백이 더욱 날서졌다.

정민은 성훈의 변화가 높은 곳을 보겠다는 각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워낙 철저한 형이기 때문에 이렇게 할 거라고는 예상했다.

이렇게까지 치열하게 시작할 줄은 몰랐다.

“미안하다.”

성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실수를 한 건 성훈 쪽이었다.

다음 곡으로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다음 곡에서 3단 고음을 넘어선 5단 고음을 보였지만, 그렇다고 실수가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잠깐 쉬었다가 다시 하자. 오늘 피드백은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다.”

건하의 말에 모두가 끄덕였다.

* * *

“후우.”

연습실을 나간 성훈은 한숨을 쉬며 복도에 몸을 기댔다.

“너무 심하게 얘기했나.”

이래서 감정적으로 얘기하지 않으려고 했던 건데.

성훈은 감정적으로 변한 자신의 말투가 다소 공격적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집안 내력이었다.

군인 출신 아버지에 경찰인 어머니.

직업 특성상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부모님은 굳이 집에서 말을 많이 하지 않으셨다.

두 분이 말을 많이 하실 때는 늘 자신을 혼낼 때나, 조언을 주실 때가 전부였다.

그 정도로 집안의 분위기는 늘 경직되어 있었다. 아들에게까지 규율과 원칙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분들은 아니셨지만,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성훈 자신도 감정 표현에 능숙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무뚝뚝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을 갖게 되었다.

자신에겐 엄격하게 대했지만, 굳이 그걸 남에겐 강요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부모님 또한 자신에게 강요하지 않으셨으니.

‘하지만 높은 곳을 바라본다면….’

국내 최고가 아니라 세계 정상을 노릴 거라면 빡빡한 자기 성찰과 과감한 판단은 필수라고 생각한 그였다.

그래서 성훈이 내린 결론은 변화였다.

남들이 하지 못한 우리만의 특별한 걸 보여주자.

그 과정에서 실수는 있었지만,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의외로 건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건하라면 자신과 같이 우리만의 특별한 무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을 거라 봤으니까.

건하만큼이나 성훈 역시 자신의 생각에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빡세게 피드백을 했다.

건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우리의 것을 열심히 한다는 것 좋다.

하지만 특별하지 않으면 돋보이지 못하는 곳이 아이돌 판이었다.

지금 잘 됐다고 조금이라도 방심할 수 없다.

어제의 1등이 오늘의 꼴찌가 될 수 있는 곳이니까.

우리의 팬들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하지만, 목표가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거라면.

우리가 가진 특별한 무기를 보여줘야만 했다.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실수는 다시 하지 않으면 된다.

* * *

나와 성훈이 서로 격하게 다퉜지만.

그렇다고 성훈이 싫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피드백을 하며 생기는 약간의 말다툼은 지금보다 좋은 결과물을 만드니까.

이렇게 싸우는 건 나나 성훈 모두 팀을 그만큼 아끼고, 우리가 정한 목적을 더욱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과하면 곤란하다.

그러면 감정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의도라도 팀의 분위기가 깨지면 안 돼.’

나와 성훈만의 팀이 아니었다.

나아지기 위한 과정이라도, 우리 팀을 생각해야지.

나랑 성훈의 갈등은 성장통이나 마찬가지다.

성장통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 좋다고 하더라도 그 성장통이 너무 심하다면?

결코 좋은 현상은 아니었다.

‘한동안은 적당히 싸워야겠어.’

성훈이도 알고 있겠지.

“자, 그럼 성훈이 형 돌아오면 바로 연습 시작하자.”

나는 처진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일부러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아, 미안. 나는 오늘 연습 빠져야 할 거 같아.”

“오늘 우주가 X-라이브 하는 날이었나?”

“응.”

새해 첫 해돋이를 보고 난 후, 서로 각오를 다졌던 우리는 그만큼 더 열심히 하기로 각자 약속했다.

그래서 각자 개인 스케줄이 조금 많아졌다.

특히 우주.

예능 쪽에서 유독 좋은 이미지와 재미를 준 덕일까.

벌써 깜짝 게스트로 촬영을 마쳤다고 들었다.

아직 방송으로 나오진 않았지만, 같이 간 이두현의 말로는.

‘우주가 촬영장을 휘어잡았다.’

라며 좋아했다.

의미 있는 순위를 얻고 상까지 받은 만큼 업계 관계자들의 눈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우주의 예능 출연 말고도 여기저기서 문의가 들어왔다고 들었다.

광고도 몇 개 제안받았다고 했다.

아직 얘기를 듣지 못해서일까.

솔직히 실감이 되지는 않았다.

우리가 인기가 생겼다는 걸 실감하는 건, 연습하던 도중 사무실 근처에 나갈 때였다.

사무실 근처에서 대기하던 팬들의 사진 요청이라던가.

길에서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들의 사인 요청을 받을 때면 우리도 꽤 인기가 많아졌다는 걸 실감했다.

“갔다 와. 우리는 연습하고 있을게.”

“금방 갔다 올게!”

우주가 도도도 뛰어갔다.

우주도 방송하는 거 참 좋아한다니까.

태생이 연예인이야.

“그럼 우리도 시작하자. ”

우주를 보낸 우리는 다시 돌아온 성훈과 함께 연습을 이어갔다.

* * *

“이걸 다 어쩐다….”

황이서는 수북하게 쌓인 제안서를 보며 솟아오르는 입꼬리를 주체하질 못했다.

전부 다 올리오스에게 온 제안서였다.

광고, 예능, TV 출연.

작년 올리오스의 활약을 눈여겨본 관계자들이 보낸 제안서였다.

“광고 단가를 세게 잡아줬네.”

모든 광고를 다 받을 수는 없었다.

욕심으로는 다 받으면 좋지.

하지만 광고로 자주 노출되면 아이돌의 이미지가 손상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최대한 올리오스의 이미지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받는 게 최고였다.

“이걸 언제 정리하냐. 흐흐흐.”

투덜거리는 황이서의 입가엔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최고의 하반기였다.

데뷔 전, 올리오스를 보며 자신이 했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말이다.

아이돌, 특히 남자 아이돌은 여기까지 올라오는 게 제일 어렵다.

기반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남들에게 알려지기까지.

여기를 다다르지 못해 사라지는 아이돌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우리 애들은 누구보다 빠르게 자신들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렸다.

이렇게 광고가 쏟아질 정도로.

“물론 대부분 화보와 라디오 광고가 전부지만, 이것만 해도 어디냐.”

광고 제안서를 정리하던 황이서는 유달리 두꺼운 파일을 확인했다.

“예능 기획서….”

유명한 케이블 방송국, KTV에서 보낸 기획서였다.

처음 이 기획을 받았을 땐, 곧바로 반려했다.

생각할 것도 없었다.

이유가 뭐냐고?

-우주포차.

-올리오스 우주가 가진 입담과 재치를 활용해서 너튜브 채널용 예능을 만들 계획.

-우주가 차린 작은 포차에 게스트가 찾아와 수다를 떠는 컨셉으로, MZ세대의 상상력 가득한 시선으로….

작년 기준으로 고3이었던 우주를 상대로 포차 컨셉이라니.

제정신인가 싶었다.

PD에게 전화해서 애가 고등학생이라 아직 안 된다고 반려를 했더니, 이렇게 다시 기획서를 보냈다.

제목은.

-우주카페.

마찬가지로 우주를 메인 MC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컨셉만 살짝 바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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