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화>
만장일치로 호진이네 집에 가기로 했다.
“근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형네 집으로 놀러 가자고 한 거야?”
“딱히 무슨 일이 있던 건 아니고….”
그러면서 나를 힐끗 봤다.
아.
나 때문인가.
예전에 호진의 집안 사정을 해결해 줬었다.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서 준 도움이었지만, 그 도움으로 호진이는 집안의 빚을 해결했고 나는 포인트를 벌었다.
‘호진이네 어머니가 집에 찾아오라고 몇 번이나 연락하셨지.’
앨범 활동을 시작했을 때, 호진이 어머니께서 문자를 보냈다.
-건하야, 너튜브에 나온 앨범 영상 봤단다. 이번에 노래가 정말 잘 나왔더라. 노력한 만큼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아줌마는 믿어. 올리오스 파이팅~!
친부모인 윤택수 회장에게도 듣지 못한 격려를 호진의 어머니인 이복순 여사님에게 받았다.
아마 언젠가 한번 초대하는 게 어떠냐는 얘기를 들은 게 아닐까.
“근데 호진이네 어머니 정말 오랜만에 뵙는 거 아니야? 예전에 반찬 보내주셨던 거 진짜 맛있었는데.”
“그러게. 호진이 형, 그런데 우리가 가도 괜찮아? 어머니 엄청 바쁘시다고 하지 않았어?”
다들 호진이 어머니를 몇 번 본 모양이었다.
“괜찮아. 힘든 일은 다 끝나서 연말에는 쉰다고 하셨어.”
“그래도 너무 신세 지는 거 아닌가 싶은데.”
“괜찮아. 아마 좋아하실걸?”
아직 우리 중 아무도 운전면허를 따지 않은 터라, 이두현이 차로 대신 데려다줬다.
“내일 다시 픽업하러 찾아올게. 괜한 일은 하지 말고. 너희가 그럴 애들은 아니라는 거 아는데, 혹시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이두현이 떠나고, 우리는 호진이네를 찾았다.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작은 집이었다.
낡고 허름한 반지하.
문을 열자.
통통통통.
칼이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어, 왔니?”
“엄마, 저 왔어요.”
이복순 여사님이 고개를 들어 우리를 보았다.
“다들 어서 들어와.”
그녀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들의 친구를 맞이하는 반가운 웃음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호진이가 왜 저리 착하게 자랐는지, 잘 알 거 같았다.
“마침 밥이 다 됐단다. 앉아서 기다리렴.”
“실례하겠습니다.”
“저희가 도와드릴 거 없나요?”
“괜찮아. 원래 손님은 앉아서 기다리는 거야.”
우리는 요리하는 이복순 여사를 도왔다.
상을 미리 펼쳐놓고, 준비된 반찬을 깔았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정민 역시 간을 맞추는 걸 도와드렸다.
집은 좁지만, 따뜻했다.
따뜻한 방바닥, 보글보글 끓는 찌개 소리, 북적북적한 우리의 소리까지.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분위기였다.
“자, 실컷 먹으렴.”
된장찌개와 계란말이, 거기에 불고기와 이제 막 씻은 배추에, 심지어 손이 많이 간다는 갈비찜까지 차려져 있었다.
진짜 과장 아니고, 상다리 부러질 정도로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에 우리는 입을 쩌억 벌렸다.
“찾아오면 배부르게 밥 먹이고 싶어서, 오랜만에 아줌마가 힘 좀 썼단다.”
“잘 먹겠습니다!”
“맛있게들 먹어.”
밥은 맛있었다.
메뉴 하나하나 모두 어머니의 손길이 느껴졌다.
뭐랄까.
먹는 순간 가슴이 따뜻해진다고 해야 할까.
밥을 먹는 우리를 흐뭇하게 보는 이복순 여사의 표정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잘 먹네. 소속사에서 밥 안 주고 그러는 거 아니지?”
“아니에요. 활동할 때는 식단 때문에 음식을 가려먹긴 하지만, 소속사에서도 신경을 많이 써줘요.”
“다행이네.”
밥을 싹싹 비웠다.
오랜만에 먹은 집밥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그냥 맛있었다.
솜씨가 좋으셨다.
이게 엄마의 손맛이라는 걸까.
“TV에서 봤다. 축하해. 상도 받고, TV 틀면 안 나오는 곳이 없어서 보기 좋더라.”
“감사합니다.”
“정말, 잘돼서 다행이야.”
이복순 여사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아들에 대한 걱정이 많이 컸을 거다.
아이돌이라는 게 워낙 힘든 길이었으니까.
부모의 입장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겠지.
눈물을 훔치는 이복순 여사를 보다, 문득 거실 벽에 붙어 있는 올리오스 멤버들의 사진을 보았다.
호진이 찍힌 브로마이드와 사진들이 벽 곳곳에 붙어 있었다. 우리 사진도 사이사이 끼어 있었다.
아들을 응원하는 마음에, 자랑스러운 마음에 여기저기 걸어놓은 거 같았다.
“호진이 사진이 많네요.”
“아, 현진이가 얘기하더라. 인터넷에서 굿즈 같은 거 판다고. 그거 다 현진이가 인터넷으로 산 거야.”
현진이라면 얼마 전 수술을 마친 호진의 동생이었다.
“어? 현진이는 잘 지내나요?”
정민의 질문에 이복순 여사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얼마 전에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서 지금 병원에서 입원 중이야. 아마 다음 달이면 퇴원도 할 수 있을 거야.”
“정말요? 잘됐네요!”
“전부 건하 덕이지. 정말로 어찌나 고마운지….”
그녀의 말에 모두가 나를 보았다.
왜 내 덕이냐고 묻는 얼굴이었다.
“수술비가 없었는데 건하가 그 돈을 빌려줬지 뭐니. 나중에 앨범이 무조건 성공할 테니 그때 갚으면 된다고…. 정말, 너무 고마워.”
울음을 꾹 참는 목소리로 말하는 이복순 여사의 말에 다른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우주의 감탄 뒤에는 황룡그룹의 외아들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을까.
“푹 쉬다 가렴. 내일 해돋이도 같이 본다고?”
“네. 저기 산에 올라가서 보려고요. 저희들끼리 신년에 다짐도 할 겸 해서요.”
“그래. 아마 아줌마는 지금부터 현진이 보러 가야 해서, 내일 아침까지 못 올 거야. 반찬으로 불고기 재워뒀으니까 그거 저녁에 먹고.”
“네! 감사합니다! 정말 맛있었어요!”
현진이의 병문안을 위해 짐을 챙기던 이복순 여사가 손뼉을 짝 치며 내게 분홍색 편지 봉투를 내밀었다.
“어머머, 내 정신 좀 봐. 현진이가 오빠들한테 편지 썼거든? 이거 받으렴.”
“편지요?”
“호진이가 올리오스 친구들 데리고 온다고 하니까 못 보는 게 아쉽다고 편지를 줬더라.”
분홍색 편지봉투 바깥에는 깔끔한 글씨체로 우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To. 건하 오빠
-안녕하세요. 호진 오빠 동생 현진이에요. 숫기 없는 우리 오빠를 잘 돌봐줘서 고마워요. TV에서 많이 봤어요. 건하 오빠가 우리 오빠를 챙겨주는 모습을요.
수술비를 빌려주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놀랐어요. 적은 돈이 아니라고 알고 있었거든요. 수술은 다 포기하고 있었어요.
제 수술보다는 빚을 갚는 게 우선이니까요. 강한 척했는데, 그때 구세주처럼 오빠가 나타났어요. 우리를 도와줬다는 건하 오빠를 보자마자 마음이 풀려서 눈물이 줄줄 흘렀어요. 그때 울지 말았어야 했는데. 너무 못난 모습만 보여준 거 같아서 슬퍼요.
그때 등장한 건하 오빠는 마치 영웅 같다고나 할까? 참, 나중에 컨셉으로 그런 거 잡으면 어때요? 어려운 사람을 위해 등장하는 히어로 같은 거요. 왜 있잖아요. 브론즈맨이었던가? 그런 유명 히어로들. 잘 어울릴 거 같아요.
아무튼, 고마워요. 직접 만나서 감사 인사를 하고 싶은데…. 아직은 안정을 위해서 입원하라고 해서 이렇게 편지로 대신 보냈어요. 늘 응원하고 있어요. 오빠도 건하 오빠도.
나중에 몸 다 나으면 콘서트도 갈게요! 그때는 직접 만나서 고맙다고 인사할 거예요! 그러니까 기다려주세요. 다 나을 때까지. 간호사 언니가 이제 자라고 하네요. 여기까지 쓸게요. 그럼 뿅!
편지에서도 느껴지는 기운찬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큰 수술이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무사히 잘 마친 모양이었다.
나는 편지를 읽는 다른 멤버들을 보았다.
호진의 어린 동생이 보낸 편지에 다들 흐뭇한 얼굴로 읽었다.
감수성이 풍부한 정민은 눈가에 눈물까지 맺힌 채였다.
“진짜, 아우…. 많이 힘들었을 텐데.”
언젠가 현진이가 다 나으면 콘서트장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 모두 그랬다.
* * *
다음 날, 우리는 해가 뜨지 않은 새벽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허억, 허억. 생각보다 산이 험하네.”
제일 뒤에서 따라오던 우주가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해발 고도도 낮아서 우습게 봤는데, 생각보다 힘드네.”
성훈이도 함께 숨을 몰아쉬었다.
30분간 춤을 춰도 끄떡없을 우리였지만, 새벽에 산을 오르는 건 느낌이 달랐다.
유독 경사가 깊은 데다가 눈이 길을 소복하게 덮고 있어서 꽤나 애를 먹었다.
산행을 대비해서 신발 밑창에 철로 된 아이젠을 박았는데도 그랬다.
“이제 곧 정상이야.”
이 길에 익숙한 호진이 제일 선두에서 올라갔다.
“그 말만 벌써 다섯 번째야.”
정민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헬스장에서 트레이너 형들한테 자주 듣잖아. 자, 마지막 한 세트!”
“으아악. 그 얘기 하지도 마. 듣기만 해도 다리가 저려.”
내 말에 정민과 우주가 발작하듯 부르르 떨었다.
“이제 저기만 넘으면 정상이야 라는 말은 그런 느낌이야.”
“으으으. 호진 트레이너님, 진짜 마지막인가요?”
정민의 울부짖음을 들은 호진이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응, 이번엔 진짜야.”
이제 슬슬 동이 터 오르려고 한다.
정말 정상이 아니라면 곤란해.
동쪽에서부터 푸른 기운이 올라왔다.
10분 정도만 지나면 해가 뜨지 않을까?
정말 마지막이라는 말에 우리는 젖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정상에 올랐다.
“진짜 끝이네.”
산의 정상임을 나타내는 비석과 함께 정상에 올랐다.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애초에 해돋이를 보려고 산행할 사람들은 여기가 아니라 다 강원도 쪽으로 갔을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아…. 진짜 힘들다.”
정상에 오르자마자 우주가 풀썩 주저앉았다.
엉덩이에 눈과 흙이 묻었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정상까지 올랐네.”
정상에 오른 우리는 숨을 고르며 해가 뜨길 기다렸다.
날씨는 맑았다.
구름이 조금 껴 있었지만,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볼 수 있을 거다.
올해 첫해를.
“배고프다. 빨리 컵라면 먹고 싶다. 정상에서 먹는 컵라면이 최곤데.”
“해 뜨는 거 보고 먹자. 보온병에 끓는 물 챙겨왔으니, 언제든 먹을 수 있어.”
“후우.”
배고프다는 우주를 달래고 얼마나 지났을까.
점점 하늘이 밝아지며 동쪽에서 해가 떠올랐다.
“뜬다. 해가 떴다.”
어둠을 밝히는 붉은 태양.
어우러진 산들을 넘어 떠오르는 태양은 점점 노랗게 색이 변하며, 도시를 비추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진 어둠이 가라앉았던 산과 도시에 햇빛이 따스하게 내리쬐었다.
“예쁘다….”
올라오면서 겪었던 고생을 잊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이 장면을 보기 위해 이렇게 고생해서 올라왔지.
“꼭 우리 같지 않아?”
올해의 첫해를 보던 정민이 말했다.
“우리?”
“응. 우리도 비록 낮지만, 정상에 서서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봤잖아. 신인상을 타고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았을 때가 딱 이 기분이었던 거 같아.”
무언가를 이뤘다는 성취감.
정상에 오르고, 신인들 중 최고라는 타이틀을 얻었던 순간.
그리고 그때 무대 아래에서 우리를 비추던 조명.
지금 동쪽 하늘에 떠오르는 태양이 우리를 비추던 조명 같았다.
정민이 말이 무슨 뜻인지 단번에 깨달았다.
우리는 작은 산을 오른 거다.
해발 고도가 낮은 작은 산.
그럼에도 올라가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랬기에 성취감이 느껴졌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중에는 더 높은 산에도 오르고 그러자. 우리는 충분히 올라갈 수 있어.”
내가 말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는 우리가 해외에서도 충분히 먹힐 거라고 봐. 누구보다 높은 자리까지 오를 수 있을 거야.”
멤버들에게 내 야망을 보여줬다.
한진성에게만 말했던 세계 최고의 아이돌이 된다는 목표.
작은 산을 정복한 지금이라면 말해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해외?”
“그래. 나중에는 빌보드 차트 1위도 찍고, 해외 유명 쇼에 나가서 인터뷰도 하는 거지.”
“갑자기 난이도가 에베레스트 급으로 올라갔는데?”
우주가 내 말을 받아쳤다.
“유명 등산가들도 동네 뒷산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
정민이 말을 이었다.
“못할 건 없지.”
성훈도 내 말에 동조했다.
처음보다는 다소 얼굴이 진중해졌다.
이런 얘기가 의외여서일까?
아니면 너무 높은 목표여서일까?
다문 턱에 힘이 들어갔다.
“그럼 에베레스트 오르기 전에 한라산부터 올라야겠네.”
호진의 말에 모두가 그를 보았다.
“국내 최고부터 되자는 뜻이지?”
내 질문에 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래야지. 국내 최정상 찍고, 한라산 올라간 뒤에 에베레스트 노려야지.”
기분이 좋았다.
그 누구도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멤버가 없어서.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어서.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우리는 첫해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럼 빌보드 1위 찍으면 오늘처럼 에베레스트 올라가서 새해 첫 해돋이를 보는 건가?”
성훈이 진지하게 에베레스트를 오를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매사 진지한 성훈이었기에, 그 말이 더욱 무섭게 다가왔다.
“에베레스트는 농담이지.”
해돋이를 본 우리는 미리 챙겨온 컵라면을 먹었다.
끓는 물이 아니라 조금 설 익었지만, 그게 또 정상에서 먹는 라면 맛 아닐까.
새로 마음을 다잡고 먹은 라면은 정말로 맛있었다.
라면을 먹는 내내 유독 성훈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는 것이 불안했다.
정말 에베레스트를 오를 생각인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