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화>
“대신 먼저 사과하세요.”
-이두현 씨한테 말씀이죠?
“네.”
-물론이죠. 그게 내기 조건이었으니까요. 그게 인터뷰 조건인가요?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인터뷰하는 날 찾아가도록 하죠. 그때 말했던 것처럼 이두현 매니저한테 정식으로 사과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대신 사과에 성의가 없으면 저희 인터뷰 못 합니다.”
-이해합니다.
이범영 기자가 확신을 가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진심이라 느껴질 정도로 확실하게 보여드리죠.
* * *
“이범영 기자?”
“예, 인터뷰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황이서가 놀랍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 인간이 먼저 너한테 연락했다고? 저번에 둘이 했던 내기 때문이야?”
“맞습니다.”
“참, 그거 들었을 때 얼마나 웃었는지. 그런데 그 인간이 올리오스 기사 써준다고 그랬다고?”
“네. 그게 내기 조건이었어요.”
턱을 한 차례 쓰다듬은 황이서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 시기에 이범영 기자한테 기사 받는 거, 좋지 않은데….”
그가 말한 이 시기는 최근 우리에 관한 이야기로 인터넷이 후끈할 때를 말하는 거였다.
소속사 나름대로 기사를 올리고 있는데, 그리 반응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현장에서 티를 낼 정도였으니.’
인터넷에서는 더 심했을 거다.
“본인 말로는 우리가 이번 상을 받을 가치가 있다는 기사를 써준다고 했어요.”
“그래? 신기하네. 어그로에 환장한 인간이…. 그 인간 성격상 분명 좋지 않은 기사 쓸 거 같았는데.”
생각을 정리하던 그가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대신 그 현장에 나도 간다.”
“알겠습니다.”
황이서가 있다면 저번 같은 허튼짓은 안 할 거다.
적어도 인터뷰를 할 때는 말이다.
“혹시 모르니까 우리도 영상 쓸 수 있게 카메라도 가져가야겠다.”
이범영 기자와 인터뷰가 통과되었다.
소속사 사무실은 이번 수상으로 인해 여러모로 시끄러웠다.
라이언의 팬덤이 워낙 극성이어서였을까.
종종 우리 사무실로 욕을 하는 전화도 왔다고 들었다.
“괜찮니?”
오죽하면 몬스터즈 선배들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특히 한진성은 자기가 도와주지 못해 안달인 표정이었다.
“괜찮아요.”
“사실 우리도 너희가 받을 자격이 있다고 멘션 올리려고 했는데, 이서 형이 하지 말라고 하더라. 괜히 일 커진다고.”
올해가 끝나고 1월 첫째 주부터 몬스터즈의 활동 시기였다.
제일 바쁜 시기였고, 동시에 조심해야 할 때였다.
황이서의 말이 맞았다.
괜히 들쑤셨다가 팬덤 싸움이 되어버리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일이 커질 테니까.
특히 국내에서 1위와 2위를 다투는 몬스터즈와 라이언이었다.
묘한 경쟁 심리를 지닌 두 팬덤의 대립에 우리가 새우 등 터진 느낌이기도 했다.
‘이번에 올리오스한테 난리 치는 것도 우리가 GH 소속이라 그렇다는 말도 있으니까.’
복귀를 앞두고 사건은 피하고 싶은 거겠지.
“알고 있어요.”
“미안하다. 도움이 못 돼서.”
“이미 많이 도움을 받았는데요. 뭘.”
지금까지 몬스터즈에게 무대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번 일은 아이돌의 손에서 끝낼 수 있는 건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범영 기자와의 인터뷰가 중요했다.
* * *
우리는 이범영 기자가 올 때까지 사무실에서 기다렸다.
음악 방송으로 마지막 일정까지 전부 끝난 터라서 별도의 스케줄이 없었기 때문에 방송 일정 중에 만날 수도 없었다.
이두현에게 사과도 해야 했기에, 그가 직접 GH 엔터의 사무실에 방문하기로 했다.
“언제 오시려나.”
멤버들은 다소 불안한 얼굴로 이범영을 기다렸다.
이미 메일을 통해 어떤 식으로 인터뷰를 실을지, 기사를 올릴지는 공지를 들은 상태였다.
‘간단해요. 기존 올리오스의 춤 영상을 보여주고, 이 자리에 오기 위해서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는지 영상으로 편집하면서 인간 승리. 이런 느낌으로 연출할 생각입니다. 당연히 라이언에 대한 존중은 보여야겠죠.’
기획만 들어선 나쁠 게 없어 보였다.
그가 미리 보내준 사전 질문에도 문제 될 건 없었다.
“걱정 마라. 금방 올 거다.”
황이서의 얼굴에 묘한 웃음이 맺혀져 있었다.
묘하게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
뭘 들은 걸까.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이번 라이언 팬덤과의 일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그였다.
그러나 오늘은 유독 표정이 밝았다.
마치 모든 일을 해결했다는 듯이.
‘뭔가 들은 게 있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이범영 기자를 믿는 걸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사무실 밖이 소란스러웠다.
이범영 기자의 팀이 GH 엔터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오랜만이에요. 많이 기다렸습니까?”
이범영 기자의 뒤에는 카메라 기자를 비롯한 다수의 스태프가 함께 서 있었다.
‘이렇게 많이 왔다고?’
인터뷰만 따는 거 아니었나?
그런 것치고는 스태프가 많았다.
“음악 방송 1등, 음원 차트 1등, 올해의 신인 남자 아이돌 상에다가 댄스 퍼포먼스 상까지. 이번 앨범으로 대한민국을 뒤집어 버렸네요. 하하하!”
이범영이 호쾌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 모습이 그리 좋게 보이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막 데뷔했던 우리를 어떻게든 이용해 먹으려고 했던 기자였으니까.
‘그건 그거고.’
지금은 좋은 의미로 만난 상황이다.
굳이 얼굴 붉힐 필요는 없지.
“아, 황 선배님, 반갑습니다. 오랜만이네요.”
“그러게. 저번에 우리 애들 데리고 허튼짓하려고 했을 때 얼굴 보려고 했는데.”
“하하하, 무섭게 왜 그러십니까. 저번처럼 안 그럽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너 이 새끼…. 진짜 내가 이번 일 아니었으면 안 봐줬을 거다.”
“하하하.”
일일이 인사하던 이범영의 눈이 이두현 매니저에게 향했다.
그의 얼굴이 사뭇 진중해졌다.
“인정할게요. 미안합니다. 저번에는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이범영 기자가 머리를 숙이며 정중하게 사과했다.
“기, 기자님….”
당사자인 이두현도 당황한 얼굴로 이 기자를 보았다.
“너무 단면만 보고 빠르게 결론지었어요. 누구에게나 잠재력이 있기 마련인데 말이죠. 정식으로 사과하겠습니다. 이두현 매니저와 올리오스 모두에게 말이에요.”
이렇게까지 정식으로 사과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오로지 인터뷰를 위한 사과라고 할지라도 이렇게까지 진심을 보이면 사람의 마음이 풀리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사실 놀랐다.
이렇게 진심으로 사과를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과도 시늉만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주저 없는 그의 사과를 보며 왜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나름대로 업계에서 공고한 자리를 갖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자기 일에는 확실한 사람이구나.
“미안합니다.”
“괘,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않았어요. 다들 열심히 해서 잘 될 거라 생각했어요.”
이두현의 말을 듣고 나서야 이범영 기자가 고개를 들었다.
“사과 받아주셔서 고마워요. 건하 씨한테 들었거든요. 이 매니저님이 자기 일을 확실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그런 매니저가 옆에 있으니, 성공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고개를 든 이범영 기자의 말이 끝나자, 황이서가 입을 열었다.
“그럼 바로 인터뷰 시작하죠.”
이범영의 속 시원한 사과를 끝으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올해의 활동에 대한 인터뷰를 계속해서 이어갔다.
이범영 기자의 화두는 하나였다.
꾸준한 연습.
“올리오스의 하루 연습량은 어떻게 되나요?”
“제2의 몬스터즈라는 별명이 큰 짐처럼 느껴졌는데, 그걸 헤쳐나가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죠?”
“그 정도로 군무를 맞추려면 일반적으로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데….”
조금은 이범영답지 않은 인터뷰였다.
뭐라고 할까.
‘너무 부드러운데?’
어그로에 환장한 기자 아니었나?
그런 거 치고 너무 부드러운데?
속으로 이상함을 느낄 즈음.
다시 한번 밖이 소란스러웠다.
아까 이범영 기자의 팀이 들어올 때와는 달리.
“어?”
“어어?”
“꺄아아악!”
의아한 외침과 환호가 섞였다.
황이서 프로듀서와 이범영 기자가 동시에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문이 열리고.
“어?”
나와 멤버들이 거의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안녕하세요.”
라이언이었다.
이번 댄스 퍼포먼스 상을 받지 못한 인기 아이돌 그룹.
너희가 왜 거기서 나와?
힙합 아이돌 그룹, 라이언의 멤버 네 명이 뚜벅뚜벅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왜 황이서도 얼굴이 폈나 했더만.
‘이런 걸 꾸미고 있었어?’
우리와 눈을 마주친 라이언 멤버들이 환하게 웃었다.
랩과 작곡을 담당하는 브리온.
메인 댄서이자, 서브 보컬인 로건.
리더이자, 메인 보컬인 크리스.
서브 래퍼이자 최근 배우를 시작한 지석까지.
“올리오스다!”
“반갑다. 애들아! 하하하!”
“이야, 진짜 다들 잘생겼구나.”
우리 멤버들이 어벙한 상태로 대선배들과 만남을 기념했다.
호진이와 정민이는 허리를 90도로 숙이기까지 했다.
“반갑습니다! 서, 선배님들을 보면서 연예인 꿈을 키웠어요!”
아무리 몬스터즈를 자주 보면서 대스타들에 대한 면역력을 갖췄다고는 하지만, 새로운 스타를 만나는 건 늘 새로운 일이었다.
몬스터즈처럼 라이언 역시 아이돌 사이에선 스타들의 스타였다.
“이왕이면 선배가 후배를 위로해주는 게 그림이 좋지 않겠어요?”
이범영이 씨익 웃었다.
이걸 노린 건가.
어쩐지 이범영 기자치고는 질문의 어그로가 낮더라니.
우리 둘의 만남으로 화제성을 가져갈 생각이었다.
‘고단수네.’
솔직히 감탄했다.
사람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능력은 뛰어났다.
계산적인 사람이다. 동시에 머리가 비상했다.
우리와 라이언으로 인터넷이 시끄러우니, 그 두 그룹을 붙이면서 어그로를 챙김과 동시에 올리오스에게 직접적인 이득을 줬다.
올리오스는 라이언에게 인정을.
라이언은 후배를 위하는 너그러운 선배의 이미지를.
이범영은 화제성 높은 기사로 높은 조회 수를.
모두가 좋은 윈-윈-윈이었다.
물론 본인이 사과하는 처지에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는 모습이 그리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우리한테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얼굴 붉힐 이유는 없었다.
“사실 올리오스 관련 기사에 대한 질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라이언 쪽에서 먼저 연락을 줬어요. 올리오스랑 같이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고.”
이범영의 말에 라이언의 리더, 승현이 말을 이었다.
“뭔가 우리 때문에 욕을 먹는 거 같아서, 풀어준다면 우리가 직접 풀어야 할 거 같았거든. 그래서 친분이 있던 이 기자님께 부탁해서 자리를 만들었어.”
나는 황이서 프로듀서를 보았다.
그 역시 미리 연락을 받았는지 태연한 얼굴이었다.
“미리 말해주려고 했는데, 라이언 애들이 서프라이즈를 원한다고 해서 말이야.”
“그래도 조금이라도 귀띔을 해주셨으면 덜 놀랐을 텐데요.”
성훈이 아쉽다는 듯 말했다.
같은 생각이었다.
“놀래라고 기획한 건데 안 놀라면 어쩌냐.”
라이언의 등장으로 인터뷰의 분위기가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
이제야 왜 그리 많은 스태프가 왔는지 알 것 같았다.
<연예가 좋다> 촬영까지 단번에 처리할 생각이었네.
“올리오스 후배들 복귀 영상을 우리도 봤거든요. 다섯 명이 오차 없이 딱딱 맞추는데….”
“솔직히 보고 놀랐다니까?”
“나도 집에서 ‘All we once’ 춤 연습했거든.”
논란의 당사자들이 직접 우리를 칭찬해 주기 시작하니.
“저희도 라이언 선배님들 노래 엄청 연습했어요!”
“예전에 연습곡 중 하나였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제일 좋아했던 선배님 중 한 분이세요!”
“라이언 선배님들의 ‘Tell us’도 맞춰 봤습니다.”
“정말? 우리 춤도 췄다고?”
“그럼요! 선배님들 춤은 연습생들한테는 힙합 댄스의 교보재예요!”
“오호?”
인터뷰가 술술 흘러갔다.
“언제나 선배님들 춤 보면서 많이 배워요. 그도 그럴 것이, 예전부터 춤을 맛깔나게 추셨잖아요.”
“이번 라이언 선배님의 앨범에도 매력적인 춤이 엄청 많았으니까요.”
“연습생 때 선배님들 안무를 엄청 따라 췄는데, 그럴 때마다 언제나 새로운 느낌이 들어서 매력적이라고 느껴졌어요.”
말을 마친 호진이 라이언의 ‘Tell us’의 안무 일부를 딱딱 췄다.
“우와, 잘 추네. 진짜 우리 거 보고 연습 많이 했구나?”
“그럼요!”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대선배인 라이언을 리스펙트하는 올리오스, 그런 올리오스를 귀엽게 보는 라이언.
점점 무르익는 인터뷰 분위기에 문득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그럼 서로 상대 노래의 핵심 안무를 알려주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때요?”
내 말에 이범영 기자가 손뼉을 치며 소리쳤다.
“나쁘지 않은데요? 라이언은 어때요?”
“오오, 저희는 좋죠. 이야, 건하가 아이디어 좋다.”
춤을 가르쳐주는 건 우리 쪽에선 호진이, 라이언에선 로건이 담당했다.
사실 라이언의 안무는 난이도가 높은 춤은 아니라 금방 익힐 수 있었다.
“건하랑 호진이가 확실히 금방 배우네.”
“선배님들 진짜 연습하고 오신 겁니까?”
“당연하지.”
라이언 역시 짬에서 나오는 그루브가 있는지, 몇 번 보지 않고도 단번에 따라 했다.
인터뷰의 마지막엔 우리가 라이언의 노래를, 라이언이 우리의 노래를 추면서 끝이 났다.
“고생하셨습니다. 영상 잘 나왔네요. 이대로 가면 되겠습니다. 하하하. <연예가 좋다>는 멀리 갈 거 없이, 이번 주에 바로 편집 마쳐서 올리죠. 기사는 지금 바로 올리면 되겠네요.”
“감사합니다.”
나는 이범영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표현했다.
과거 일은 과거일 뿐.
지금의 그는 어려운 상황에 도움을 준 조력자였으니까.
“하하,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말했잖아요. 정당한 대가라고.”
“제가 기자님을 오해했나 보네요.”
“오해한 거 아니에요. 나 화제성이랑 어그로에 환장한 기자 맞아요. 이번에도 당신들 이용해서 내 이름값 올리려는 거지.”
이런 쪽에는 지나치게 솔직하네.
“알고 있습니다. 그 덕을 저희도 보니까 말씀드리는 겁니다.”
“크크크, 보기 드문 청년이네요. 마음에 드네. 나중에 도움 필요하면 연락해요. 내 번호 저장되어 있죠?”
“예.”
“고생했어요. 그리고 1등 축하합니다.”
말을 마친 이범영은 스태프를 데리고 사무실을 떠났다.
“아, 우리 같이 사진 하나 찍을래요? 나 별스타에 올릴 건데, 후배들도 맞팔 해줘요.”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SNS 교환이 이어졌다.
계정이 따로 없는 나를 빼고선 모두 말이다.
‘이제 슬슬 계정을 만들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이 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