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89화 (89/236)

<제89화>

내로라하는 유명 아이돌과 가수들이 무대를 장식했다.

화려했다.

몬스터즈의 무대에서 느껴졌던 압박감과 웅장함은 없었지만, 각기 다른 아이돌들이, 가수들이 만드는 무대는 각기 다른 색이 있었다.

재미있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선배들의 무대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역시 그런 무대를 꾸미는 이들 중 한 명이었다.

“다들 긴장하지 말고. 끝까지 집중하자. 알겠지?”

스탠바이 직전, 백스테이지에 선 나는 멤버들을 향해 외쳤다.

베테랑 걸그룹의 공연이 끝이 나고, MC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들의 퇴장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다.

“다음은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남자 아이돌 그룹이죠?”

“이번 어워드에서 신인상과 댄스 퍼포먼스 상의 후보에 오른 그룹인데요.”

꺄아아악!

MC의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의 팬이 있는 객석 쪽에서 환호가 들렸다.

팬들은 알고 있는 거다.

저 말이 누구를 설명하고 있는 건지를.

“이어질 공연은 올리오스의 ‘All we once’입니다!”

환호성이 들린다.

“올리오스 올라가실게요!”

무대 위로 올라가라는 스태프 외침.

백스테이지에서 무대 위로 올라가는 순간, 변하는 빛에 눈이 부셨다.

무대 위에 서자, 2만 명이 넘는 팬들을 가득 채운 실외 무대.

본래는 스포츠 경기장으로 사용되는 거대한 무대에 오늘은 아이돌 팬들이 자리를 잡았다.

어두운 밤을 비추는 조명과 응원봉, 그리고 불빛들.

그 모습은 마치 은하수의 별을 보는 듯했다.

두근두근.

심장이 요동친다.

이렇게 큰 무대가 처음이 아님에도 말이다.

설렘과 기대.

팬들로 가득한 무대를 오르는 건 늘 새롭다.

GH 엔터의 연말 콘서트보다 훨씬 큰 규모의 무대였다.

올리오스! 올리오스!

여기에 모인 모두가 우리 팬은 아니었다.

오히려 팬보다는 팬이 아닌 사람들이 월등히 많았다.

그러나 축제의 현장이어서일까.

와아아아!

우리를 향해 쏟아지는 환호성이 사방에서 들렸다.

모두가 즐기고 있는 거다.

자신들이 응원하는 스타가 나타나면 환호를 지르고 아니어도 함께 즐기며 다음 노래를 기다렸다.

왜 가요 어워드가 가수들의 축제라고 불리는 건지, 알 것만 같았다.

‘내가 뭐라고.’

저렇게 나를 보며 환호하고 기뻐해 주는 걸까.

기분이 좋았다.

동기부여가 되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황룡그룹의 후계자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머릿속이 희열로 가득 찼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All we once’를 불렀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무대를 밟는 스텝에서 흥겨움이 느껴졌다.

‘All we once’의 마지막 안무를 췄다.

노래를 부르는 4분은 무대를 온전하게 즐기기엔, 이 무대를 환호해 주는 팬들에게 보답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나는 양옆에 선 멤버들을 보았다.

모두가 웃고 있었다.

후련한 미소.

나도 저들과 같은 표정일 거라 확신했다.

와아아아!

환호성이 들렸고, 가요 어워드에서 올리오스의 무대는 끝이 났다.

“…….”

무대로 내려가는 동안 모두 말이 없었다.

아직 여운을 즐기고 있는 듯, 백스테이지 뒤로 온 멤버들이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나중에 말이야.”

한참 말이 없던 우리 사이에 누구보다 춤에 열정적이고 무대에 진심인 호진이 입을 열었다.

“우리 팬이 아니었던 사람들도 우리를 좋아하게 만들 수 있겠지?”

구석에 아주 적게 존재했던 올리오스의 팬클럽.

조금은 신경 쓰고 있던 모양이었다.

“호진이 형이 전력으로 춤추면 가능할걸?”

“못할 건 없지.”

“그렇겠지?”

호진의 얼굴에 다시금 웃음이 맺혔다.

“충분히 가능할걸?”

나는 호진의 어깨에 손을 두르며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백스테이지에서 나와 공연에 오르기 전에 앉아 있던 우리의 지정석으로 돌아갔다.

수많은 카메라가 우리를 찍고 있었다.

응원해 준 팬들에게 인사를 하며, 다음 무대를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자, 드디어 남자 아이돌 부문 신인상의 발표를 앞두고 있는데요.”

무대 위에 올라간 MC가 우리가 받을 신인상 발표를 위해 멘트를 시작했다.

“정말 가슴이 떨리는데요. 그 누구보다 떨릴 분들은 역시 후보에 올라간 아이돌들이겠죠?”

“후보부터 만나보시죠.”

총 네 팀의 후보.

거대 엔터 회사인 MAE 엔터의 다양한 활동을 했던 골든트랙.

타이푼 엔터에서 이를 갈고 선보인 7인조 아이돌 탑세븐.

올해 상반기에 인상 깊은 활약을 보여줬던 6인조 남자 그룹 헥사곤.

그리고 우리, 올리오스.

“골든트랙도 후보에 있네.”

“걔들도 첫 앨범치고는 성적이 좋았잖아. MAE 엔터에서 밀어준 것도 있고. 하필이면 복귀 상대에 최고 힙합 아이돌 그룹, 라이언 선배들이 있었다는 게 불운이지.”

네 팀 모두 쟁쟁했다.

데뷔 이후에 나름대로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둔 팀이었다.

최근 남돌이 팬덤 위주로 돌아간다고는 했지만, 네 팀은 적어도 나름의 대중성을 가져왔다.

각기 다른 이유로 신인상을 받을 충분한 자격을 갖고 있는 팀이었다.

“기대된다.”

다들 손을 모으며 발표를 기다렸다.

그러는 동안 큐시트를 확인한 시상자가 놀란 얼굴로 잠시 뜸을 들였다.

역시 카메라를 오랫동안 받은 연예인인 덕일까.

완전 진행의 프로였다.

“축하합니다. 남자 아이돌 부문 신인상, 수상자는 올리오스!”

우리의 이름이 불렀다.

“됐다!”

우주가 두 팔을 펼치며 펄쩍 뛰었다.

호진의 얼굴이 밝아지고, 정민이 입을 가렸다.

성훈이 보기 드문 환한 미소를 지음과 동시에 카메라가 우리를 잡았다.

무대 뒤에 걸린 거대한 스크린에 우리의 얼굴이 떴다.

화면 속 나는 눈물을 참느라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웃고 있었다.

“건하 형 운다.”

우주가 나를 가리켰다.

자기도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올라가자.”

상을 받기 위해 무대 위로 다급하게 올라갔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행사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지체해서는 안 됐다.

“축하해요.”

대선배인 아이돌 출신 보컬리스트, 선하가 트로피를 시상하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방방 뛰는 우주를 비롯한 멤버들이 신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건하 형이 대표로 감사 인사해 줘.”

“내가?”

“당연하지. 건하가 우리의 리더인데. 리더가 대표로 나가야지.”

떠밀리듯 나는 앞으로 나갔다.

눈가는 새빨개진 채로 손에는 트로피를 들고 다소 당황한 얼굴로 마이크 앞에 섰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대 밑에서도 고민했었다.

만약 우리가 상을 타게 된다면 어떤 소감을 말하는 게 좋을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투자자들 앞에서도, 이사들 앞에서도 청산유수처럼 잘 나오던 말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가슴이 설렜다.

상을 받을 정도로 우리를 맹목적으로 좋아해 주는 팬들이 있다는 사실에 자꾸만 가슴이 두근거렸다.

맹목적인 사랑을 받는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

가슴이 간질거렸다.

이런 감각이 너무 낯설었다.

“어…. 음. 정말 감사합니다. 팬 여러분들의 사랑 덕분에 신인상이라는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만약 여러분들이 없었으면 이런 상을 받을 수 없었을 거예요. 황이서 프로듀서님, 최강훈 대표님, 김예리 스타일리스트님, 채남영 트레이너님 그리고 우리 매니저 두현이 형, 다들 고맙고….”

상투적이라면 상투적일 수 있는 감사 인사를 하는 동안 뭔가 가슴 속에서 울컥한 마음이 솟아올랐다.

시야가 뿌옜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를 찍는 카메라와 우리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의 빛이 뿌얘질 정도였다.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를 마치고 나니.

“형….”

“우는 것도 그렇게 멋지게 울면 어떡해.”

“어?”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그제야 내가 우는 모습이 무대 위 스크린과 카메라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

부끄러운데.

신인상을 받고 우리는 아래로 내려갔다.

이게 우리의 가요 어워드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베스트 댄스 퍼포먼스 남자 아이돌 부문에 후보로 되어 있긴 했지만, 우리가 수상할 거라고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후보에 차트 줄세우기를 했던 테오 엔터테이먼트의 라이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이언은 이미 올해의 가수상을 차지해, 시상식의 주인공이 되어 있기도 했다.

그들 말고도 늘 상위권 차트에 모습을 드러내는 로디안이나 4인조 보이 그룹 웨스트도 댄스 퍼포먼스의 후보에 올라가 있었다.

신인상과는 무게가 다른 후보들이었다.

“이제 편하게 보자.”

마음을 놓고 30분 뒤.

“댄스 퍼포먼스의 수상자는…. 축하합니다. ‘All we once’의 올리오스입니다!”

엥? 우리가?

* * *

“예쓰!”

무대 아래, 스태프 자리에서 가요 어워드를 지켜보고 있던 황이서 프로듀서는 올리오스가 신인상을 탔을 때, 주먹을 말아쥐었다.

됐다.

이제 애들의 이름을 제대로 각인시켰다.

그동안의 고생을 한순간에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이야, 멋지게 우네.”

황이서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울먹거릴 뿐, 목소리 하나 변하지 않는 건하를 보며 감탄을 했다.

잘생겨서 그런가.

소감을 말하면서 우는 모습마저도 멋졌다.

마치 배우 같다고 해야 할까.

“배우 시켜도 잘할 거 같은 관상이란 말이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잘생겨지는 것 같았다.

우우웅.

그때, 홍보팀 한석원 팀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바로 홍보 기사 때릴게요.

“좋아요. 부탁드릴게요.”

-넵!

수화기 너머로 사무실이 바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올해 농사는 풍년이네.”

신인상은 예상했다.

애들에게 티를 내진 않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올리오스 말고는 받을 애들이 없었거든.

음악 방송 1등 찍고 음원 차트 1위 먹은 애들을 어떻게 이길 건데.

“크크크, 진짜 이번에 활동 끝내면 소고기 잔뜩 먹여야겠네.”

그런 황이서도.

-댄스 퍼포먼스의 수상자는…. 축하합니다. ‘All we once’의 올리오스입니다!

이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뭐야?”

우리 애들이 라이언을 꺾었다고?

“그냥 풍년이 아니네….”

영상으로 얼떨떨한 얼굴로 소감을 말하는 올리오스 멤버들을 보던 황이서는 턱을 쓸며 말을 이었다.

“대풍년이네. 트로피 풍년이야.”

-부모님, 저 이렇게 성공했어요!

화면 속 우주가 카메라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마치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이.

“소고기보다 좋은 게 뭐가 있을까….”

참치라도 먹여야 하나.

황이서는 진지하게 회식 메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그야말로 반전의 가요 어워드였다.

그중 가장 소란인 건 역시.

댄스 퍼포먼스 부문이었다.

올해의 가수상을 받은 라이언을 꺾고 댄스 퍼포먼스 상을 받은 올리오스.

팬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오갔다.

-아무리 그래도 라이언이 댄스상을 못 받는 게 말이 되냐? 춤선만 봐도 보이는데.

-이거 너무 라이언 억까인 것 같은데ㅠ

-이름에는 M이 있지만 실제로는 M이 없는 M-tv

-근데 솔직히 이번에는 라이언 노래가 좋았던 거지, 댄스가 그렇게 좋았던 것 같지는 않은데….

-이번 앨범 솔직히 춤이라고 할 법한 것도 없자늠.

-가창력 오지고 작곡 미치게 잘하는 거 아는데, 춤까지 먹으려는 건 조금….

┖그래서 주는 게 올리오스? 얘들 올해 데뷔한 신인 아님? 걔들한테 밀렸다고?

┖올리오스 댄스 영상은 보긴 함? 적어도 얘들이 올해 라이언이랑 비교해서 꿀리진 않음.

┖몬스터즈면 이해하는데 얘들은 아니지.

진짜 난리 났네.

댄스 퍼포먼스를 우리가 받았다는 사실에 놀란 건 우리만이 아니었다.

인터넷이 시끄러웠다.

라이언 팬들의 마음도 이해는 간다.

우리도 우리가 받을 줄 몰랐다고.

‘아마 우주랑 호진의 춤 스탯을 조금씩 더 올린 덕도 있을 거야.’

메인 댄서인 호진의 기량 상승이 아마 가장 큰 이유였을 거다.

춤 관련 스킬과 스탯의 조화가 잘 빠졌으니까.

내 스탯뿐 아니라 트레이닝으로 멤버의 능력치를 올리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한동안 인터넷에 우리 이름 검색하지 마라. 지금 많이 시끄러우니까.”

황이서가 몇 번이고 경고했다.

“우리가 상을 받은 건 좋은 일이지만, 라이언 팬들 입장에선 용납 못 할 일이긴 할 테니까.”

“정말 주최 측에서 라이언 배제하려고 저희 준 겁니까?”

내 질문에 황이서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혀 아니야. 그러니까 그런 헛소문에 휘둘리지 마. 우리 너희한테 상 주려고 로비 같은 건 절대로 한 적 없으니까.”

“네.”

“그러니까 너희 일에 집중해.”

나는 바쁘게 움직이는 홍보팀 사무실을 봤다.

한 팀장의 눈 밑에 다크서클이 엄청 진하던데.

괜찮은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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