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화>
황룡그룹 후계자 엔딩?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실패 방식이었다.
언제나 메인 퀘스트의 실패의 대가는 캐릭터 삭제였다.
다른 단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마이 아이돌>에서 비롯된 세계에 들어온 거니까.’
<마이 아이돌>은 아이돌을 최고의 아이돌로 만드는 게임.
다른 목적이 들어갈 틈바구니는 없었다.
그랬기에 아이돌로서 실패는 게임 목적의 실패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실패 시: 황룡그룹 후계자 엔딩]
다른 옵션이 생겼다.
‘대체 뭐지?’
마침 황룡그룹의 회장이자, 윤건하의 아버지인 윤택수 회장을 만난 이후였다.
굳이 그와 내기를 한 이후에 이런 식의 실패 페널티를 주는 이유가 뭐지?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건가.’
저 길이 본래 목적을 잊을 만큼 매력적인 길이라고?
그게 아니면 아버지와의 감격스러운 재회로 윤건하의 묵은 체증이 씻겨져 나갈 거라고?
마치 유혹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 길이 더 좋다고.
더 편한 길이 있다고.
그래.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그렇게 생각하겠지.
“웃기지 마.”
그런 방식으로 성공하고 싶었다면 진작 했다고.
‘대체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사업가 윤건하.
악착같이 모은 자본금 5천만 원으로 시작한 사업으로 삼십 대에 수천억대의 자산을 갖고 기업의 규모도 준대기업 수준으로 키웠던 나였다.
사업가 윤건하로 성공하는 거?
황룡그룹 후계자 따위가 아니어도 가능했다.
그런데 말이야.
한 번 간 길을 똑같이 다시 가는 건 재미가 없잖아.
거기다가.
침대에 누운 나는 어둠 속에서 핸드폰 바탕화면에 비치는 우리 멤버들의 사진을 보았다.
음악 방송 1위를 찍은 우리가 눈물을 삼키며 소감을 말하는 사진.
그 사진 속 우리는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기나긴 연습생 시간.
기대하지 못했던 성공.
그걸 한 번에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엉엉 우는 우주와 그 눈물을 닦아주는 정민,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호진, 아닌 척 눈시울을 붉히는 성훈까지.
‘이 멤버들을 버리고 가라고?’
용납할 수 없었다.
나와 함께 여기까지 온 멤버들이었다.
이제는 몇 년이나 함께 보낸 친구 같은 기분마저 드는 멤버들.
절대로 얘들을 버릴 수는 없었다.
게다가 올리오스를 기다리는 팬들도 있었다.
그 사람들의 기대를 버리고 도망치는 짓 따위는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윤건하의 꿈은 아이돌이었어.’
아이돌을 하겠다고 집을 나왔다.
어떤 지원도 받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
그 결과가 늘 좋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내가 빙의하기 전의 윤건하는 간절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실패로 보상을 얻는 건 질색이다.
윤건하의 사전엔 실패란 적혀 있지 않으니까.
실패해서 다른 사람 밑으로 가라고?
천하의 윤건하가?
웃기지 말라고 그래.
“성공할 거야. 무조건.”
아이돌로 말이다.
‘성공해서 황룡그룹 후계자 정도는 그냥 차버릴 거야.’
[남자 아이돌 신인상]
[베스트 댄스 퍼포먼스 남자 아이돌 부문]
이미 연말 가요 어워드에서 두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그러니까.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
보란 듯이 내기에서 이겨서 인정을 받고 말리라.
나는 의지를 다잡았다.
* * *
윤 회장으로 인해 소란스러웠던 것을 마무리한 우리는 가요 어워드를 준비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가요 어워드는 오랜만에 진행되는 국내에서의 진행에 신인 아이돌에게도 무대가 많이 열렸다고 했다.
그랬기에, 우리 역시 가요 어워드의 한 곡을 담당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가요 어워드를 가기 위해, 그동안 모은 포인트를 확인하고 점검했다.
[가용 포인트: 392만 포인트]
[가용 마일리지: 33 마일리지]
최우주와 안호진의 스킬을 구매해주고, 사진 관련 스킬을 구매하는 데 사용하고 남은 392만 포인트.
음원 1등하고, 음악 방송 1등을 하면서 얻은 업적 퀘스트로 새로 얻은 10 마일리지와 기존에 있던 23 마일리지.
1 마일리지당 25만 포인트.
마일리지를 전부 포인트로 환산했다.
[시후은행 예금주 윤건하: 8억 3천만 원]
비상금을 담았던 시후은행의 통장의 돈을 마일리지로 끌어다 썼다.
33 마일리지로 구매한 8억 3천짜리 통장.
원래 세계의 돈이 한순간에 증발했다.
[가용 포인트: 1,217만 포인트]
약 1,200만 포인트.
1포인트는 원래 세계의 100원으로 환산되는 시스템.
원래 세계의 돈으로 따지면 10억을 가볍게 넘기는 포인트였다.
그래.
내가 처음으로 이 세계에 빙의하게 된 계기.
10억을 현질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원래 세계의 돈을 쓰는 것에 저항감이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 세계에 그만큼 동화되었다는 거겠지.’
오히려 원래의 윤건하가 점점 더 멀게만 느껴졌다.
스스로를 아이돌 윤건하라고 느낄 정도였으니까.
‘이 정도면 외모 등급을 올릴 수 있겠어.’
지금도 이렇게 어떻게 하면 나를 더 키울 수 있을까로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생각해보니 엄청 많이 모았네.
데뷔하고 순항을 타서였을까.
포인트가 모이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그만큼 사용처도 많아졌지만 말이다.
[외모: 62 (A)]
S급의 최저 조건인 70으로 올리기 위해 필요한 포인트는 800만 포인트.
그래도 400만 포인트가 남았다.
‘전부 다 사용하자.’
[외모 스탯을 구매하겠습니까?]
“그래. 구매한다.”
[외모: 62 (A) → 70 (S)]
[외모 등급이 A에서 S로 격상합니다.]
[800만 포인트를 사용합니다.]
[외모: 70 (S) → 72 (S)]
[스탯 구매 비용 400만 포인트가 필요합니다. (평범 페널티 적용가)]
외모 스탯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결국 가장 우선으로 올려야 하는 건 외모다.
노래를 잘하는 성훈, 예능에 특화된 우주, 춤에는 호진, 프로듀싱과 서브 보컬 및 랩에는 정민.
다들 자신을 돋보일 수 있는 포지션이 있었다.
내가 선보일 수 있는 건, 비주얼.
동시에 트레이닝 시스템을 통해 다른 멤버들의 능력치도 끌어 올려준다면, 분명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거다.
스탯을 올린 뒤에 거울을 보았다.
확실히 이전보다 더 괜찮은 거 같은데.
내가 봐도 변한 게 느껴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관리를 멈춘다면 올린 만큼 효과를 보지 못하겠지.
“정신 차리자. 올라가는 스탯에 도취하지 말고.”
건방 떨었다가 떨어지는 놈들이 수북한 곳이 바로 연예계였다.
나는 거울에 비치는 잘생겨진 나를 마주 보며 의지를 다잡았다.
“애들아, 이제 출발해야 해!”
이두현의 목소리에 나는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나갔다.
* * *
“사람들 엄청 많이 오겠다. 예전에 우리 연말 콘서트 했을 때보다 더 큰 거 아니야?”
우주가 실외 경기장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이번에 방송사가 이 악물고 준비했다던데, 수용 인원이 2만 명이 넘는대.”
“여기서 공연하는 거야?”
“한 곡이지만.”
음악 방송사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는 공연이었다.
올해의 가수들에게 선사하는 시상식과 더불어, 수많은 공연으로 볼거리가 가득 차 있는 축제였다.
그리고 그런 축제인 만큼 아이돌과 가수 선배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와, 렉시 선배님이야!”
“크흠흠, 좀 잘 보이는 게 좋겠지?”
“애들아, 나 혹시 옷 삐뚤어지지 않았어?”
남돌, 남자 가수만큼 여돌과 여자 가수도 많았다.
얘들도 남자라고 걸그룹을 보니 목소리도 가다듬는다.
“아,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노래 진짜 잘 들었어요.”
그렇게 가다듬고 한다는 소리가 이런 안부 인사라니.
활동하면서 몇 번이고 봤으면서도 숫기가 없다.
“반, 반가워요.”
애들이 평생 연습만 해서 그런가.
서로 어색한 인사로 마무리했다.
“너희 뭐하냐?”
나도 모르게 애들한테 말했다.
“좀 친해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잘 안 되네.”
“으으으, 카메라 앞이면 차라리 잘 될 거 같은데. 호진이 형, 카메라 좀 가져다줄 수 있어?”
그렇게 하나둘 선후배 아이돌과 친목을 다졌다.
가요 어워드는 가요인들의 축제라고 하던데.
무슨 뜻인지 알 것만 같았다.
‘처음 보는 선배도 보이네.’
활동 기간이 겹치지 않은 사람들도 만났다.
“올리오스! 노래 잘 들었어요! 이번 공연 잘 볼게요!”
“화이팅!”
“신인상 후보 축하해요!”
상을 받는 자리라지만, 어차피 사실상 다 결정이 되어 있어서 그런지 대부분은 경쟁보단 축제를 준비하는 느낌이었다.
선배들에게 인사하고 다니던 도중 한 여자가 내게 다가왔다.
“저기요. 이름이 어떻게 돼요?”
“안녕하세요! 선배님! 올리오스라고 합니다!”
“아뇨. 그룹명 말고, 그쪽 이름이요.”
“저 말입니까?”
“네.”
묘하게 나를 보며 치켜뜬 눈매, 살짝 올라간 입꼬리, 거기에 사근사근한 목소리까지.
남자라면 절대 눈치를 챌 수밖에 없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윤건하라고 합니다.”
“반가워요, 데이지에요. 본명은 최이삭이고요.”
데이지, 가창력과 미모를 겸비한 실력파 가수인 걸로 알고 있었다.
알고 지낸다면 나름대로 도움은 분명 될 가수였다.
하지만 위험 센서가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아이돌에게 가장 위험한 게 뭔가.
바로 열애설과 스캔들이었다.
심지어 그 아이돌이 신인이라면?
치명적이다 못해, 심하면 그룹이 와해되는 경우도 생겼다.
“잘생기셨네요.”
“감사합니다.”
외모 스탯을 S급까지 올린 효과일 것이다.
이건 생각 못 했는데.
단순히 잘생겨져서 팬들에게 잘 보일 거라는 것만 생각했지, 같은 무대에 서는 연예인들에게까지 잘 보일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이걸 어떻게 거절하지?’
도끼병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세로로 봐도 가로로 봐도, 지금 데이지라는 가수는 내게 관심이 있는 게 분명했다.
지금도 이렇게 스킨십을 하려고….
“죄송합니다, 선배님, 지금 저희가 다른 선배께도 인사를 드려야 할 거 같아서요.”
“그래요? 아쉽네요. 그럼 이따가….”
“죄송합니다. 일정이 바빠서요.”
명백한 철벽에 그녀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확실하게 철벽을 치지 않으면 끈덕지게 달라붙을 거다.
미안하지만, 선배님.
당신 제 타입 아닙니다.
제 타입이라고 해도 그럴 생각은 전혀 없고요.
인사를 마친 나는 다른 선배들에게도 인사를 하고 다녔다.
앞으로 외모 스탯을 올릴 때는 이런 것도 생각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말이다.
가요 어워드가 올해 활동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이것만 끝내면 올해 일정 다 끝나는 거잖아.”
정민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고생 많이 했어. 진짜 언제 데뷔할지 고민했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이렇게….”
“다들 고생 많았다.”
감격에 젖은 정민에게 성훈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웃음이 나왔다.
“이제 마지막 공연 마치고 다음 주에 있는 음방 마무리하면 이번 앨범 활동도 끝나는 거네?”
“그렇지.”
“다들 긴장이 많이 풀렸나 보네?”
우리끼리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있으니, 황이서 프로듀서가 찾아왔다.
“프로듀서님!”
“오늘 중요한 공연이 있으니까 나도 왔다. 두 부문에서 수상 가능성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설레진 말자. 괜히 그러다 하나도 못 받으면 기분 울적해지니까. 상을 받든 못 받든 너희는 올해 최고였다는 것만 명심해.”
“네!”
* * *
리허설이 끝나고, 팬들이 들어왔다.
올리오스의 팬이 한 구역을 차지한 게 보였다.
“저기 저분들이 전부 우리 팬인 거야?”
“많이 오셨구나….”
“우리도 성공한 거 맞지?”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그들의 근처에 위치한 스테이지에 자리를 지정받았다.
그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한 우리는 신인상 발표를 기다렸다.
“우리 상 받을 수 있을까? 부모님께 말씀드렸거든. 이번에 신인상 후보에 올랐다고.”
우주의 질문에 나는 그를 보았다.
단단하게 빛나는 우주의 눈동자엔 결의마저 느껴졌다.
우주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받을 거야.”
그 말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받을 수 있다.
“고마워. 그거면 됐어.”
우주의 입꼬리에 미소가 머금어졌다.
“가요 어워드를 시작하겠습니다!”
가요 어워드는 유명한 아이돌 출신 MC의 진행과 함께 화려한 폭죽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
와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