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화>
황이서 프로듀서의 옆에는 최강훈 대표도 함께했다.
윤택수 회장이 사무실 앞에 왔다는 말에 방송사와 미팅하고 있던 그 역시 일을 마무리하고 황급히 찾아왔다.
물론 윤택수 회장은 이미 떠나 없었지만, 그는 그보다 진상을 더 듣고 싶어 했다.
그렇게 나온 자리가 지금 이 자리.
나를 맞은편에 두고 황이서 프로듀서와 최강훈 대표가 앉아 있는 이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따라오려고 했다. 하지만 민감한 내용이었기에 황이서 프로듀서와 최강훈 대표 두 사람만 듣기로 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모인다.
당황, 곤혹, 그리고 의아함.
그 시선들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윤택수 회장에 놀라서였고, 그가 왜 찾아왔는지 알고 나서 곤혹스러운 것이며, 내가 왜 숨겼는지에 대한 의아함이 전부 드러나 있었다.
늘 껄껄 웃던 쾌남 최강훈 대표도 지금은 굳은 얼굴로 보고 있었다.
드문 표정이었다.
잠시 고민했다.
무슨 말로 시작을 해야 할지.
그러나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무슨 사이야?”
황이서가 먼저 물었다.
“아버지입니다.”
같습니다. 라는 말이 나올 뻔했다.
내 아버지보단 아직 윤건하의 아버지라는 게 더 익숙했다.
원래 내겐 아버지라는 존재가 없었으니까.
아직 윤택수 회장은 회장님에 가까운 상대였다.
“진짜 아빠야? 혈연관계?”
믿지 못하겠는지 황이서가 재차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후우….”
최강훈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나를 바라봤다.
“MAE 엔터에서는 네가 윤택수 회장 아들이라는 거 알고 있어?”
MAE에선 알고 있으려나?
내가 윤건하가 되기 전에 지내온 곳이라 잘 모르겠다.
윤건하가 말했으려나?
글쎄. 그러진 않았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다.
최 실장이 내 보호자를 대신했다면, 윤건하의 부모가 윤택수 회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었을 테니까.
게다가 MAE 엔터에서 알았다면 그런 대접은 하지 않았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재계 서열 50위 안에 위치한 그룹이었다.
품기만 해도 금액적인 지원을 받을 수도 있는데, 억지로 쫓아내려고 했을 리가.
애초에 빙의하기 전 윤건하 본인도 윤택수 회장의 아들이라는 걸 밝히고 싶지 않아 했다.
악착같이 숨겼으니까.
그의 몸에 빙의한 나조차도 모를 정도로 철저하게.
심지어 사진 하나도 없었지.
‘아이돌을 하기 위해 어린 나이부터 집을 나가서 연습실에 무작정 찾아갔으니.’
윤택수 회장에게 그리 좋은 감정이 있을 리가 없겠지.
애당초 윤택수 회장의 아들이라는 건, 윤건하에게 그리 좋은 타이틀이 아니었으니까.
“적어도 제가 직접 말한 적은 없습니다. 티를 낸 적도 없고요. 애초에 아이돌을 시작하기 위해서 집을 나왔으니까요. 회장님에게 저는 내다 놓은 자식이니까요.”
내 말에 최강훈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흐으음. 예전에 윤택수 회장한테 외동아들이 있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 이상으로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없었거든. 왜 그랬는지 알겠군.”
빠르게 눈이 굴러갔다.
직원들을 책임지는 대표의 눈빛이었다.
익숙한 눈이다.
저 짧은 순간에 온갖 가능성이 지나갔을 것이다.
많은 생각이 오고 갔겠지.
“이걸 홍보팀에 알리는 게 좋을까요?”
그때, 황이서가 물었다.
“뭐가. 건하 아버지가 윤택수 회장이라는 거?”
“예.”
“안 그래도 요새 잘 나가서 주목받고 있을 텐데, 대기업 회장이 찾아간 걸 가만히 놔둘 리가 있나. 엠바고를 건다고 해도 한 달 안에 퍼질 거다. 윤건하 아버지가 윤택수 회장이라는 걸.”
“그렇겠네요. 이 바닥은 좁으니까요. 언제 어디서 소문이 퍼질지 모르죠.”
“우선 홍보팀장에겐 알려서 관련 유출 기사 뜰 때를 대비한 반박 기사 준비하라고 해. 건하는 MAE에서 떨어졌던 과거를 갖고 있고, 본인은 절대로 그걸 밝히지 않았다는 거. 무슨 뜻인지 알지?”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한숨이 깊다.
“제가 윤택수 회장의 아들이라는 게 문제가 되는 겁니까?”
“모르지.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하지만 이미지라는 건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서 달라지니까 말이야.”
“그리 좋은 의미는 아니라는 거군요.”
“그래. 그나마 다행인 건. 건하가 지금 대중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거지. 건방지지 않고, 자신감 넘치고, 멤버들 잘 챙겨주고 등등.”
최강훈의 말을 황이서가 이어받았다.
“동시에 언론에서 어떻게 말을 만드느냐에 따라서 방향성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거지.”
좋은 영향만 있지는 않다는 뜻이었다.
“그런 건 걱정하지 마라. 어지간한 건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할 수 있으니까.”
최강훈의 말이 든든하게 들렸다.
“이렇게 요란하게 찾아온 건 우리를 압박하려고 윤택수 회장이 의도한 걸까요?”
황이서의 질문에 최강훈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거야. 우리를 압박하려는 거였다면, 저렇게 직접 찾아오지 않았겠지. 황룡그룹에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최강훈의 눈이 내게 향했다.
“윤 회장님이랑 단둘이 차에서 얘기했다고 들었다. 둘이 무슨 얘기 했어?”
“다시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기업으로?”
“예.”
“그럼 갈 거냐?”
최강훈의 표정이 어둡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올리오스의 리더다.
갑자기 끼어든 굴러온 돌이었지만, 그 누구보다 팀에 잘 적응한 멤버였고, 지금은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멤버였다.
황룡그룹을 맡는다고 돌아간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던 모든 일들은 물론이고 미래까지 박살 나는 일이었다.
올리오스가 해체까지 가진 않겠지만, 분명 큰 타격이 있을 게 분명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절대 돌아가지 않았으면 하겠지.
내가 입을 열 때까지 최강훈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뇨.”
내 대답이 의외였던 걸까.
최강훈도 황이서도 모두 놀란 듯 나를 바라봤다.
“왜?”
“…진짜?”
두 사람은 모두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이었다.
“간단해요. 황룡그룹보다 올리오스가 더 크게 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진심이야?”
“네.”
황이서가 미소를 지었다.
최강훈 역시 마찬가지였다.
“재밌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미 GH 엔터는 몬스터즈도 키웠잖아요. 올리오스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잠재력을 갖고 있는 애들이라고도 생각하고요.”
“건하야, 황룡그룹이 얼마나 큰지 모르는 건 아니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GH 엔터가 그 이상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거냐?”
“예.”
“크하하하하!”
그 말에 최강훈이 입이 찢어질 정도로 크게 웃었다.
“내가 왜 네가 될 놈이라고 생각했는지 알겠다. 황룡그룹 대신 우리를 선택한 녀석이니까.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는 거야. 크크크.”
저렇게 웃는 건 처음 봤다.
매일 허허 아저씨처럼 낮게 웃던 남자가 저렇게 광소를 지를 수 있다니.
하긴 좋은 아저씨의 모습만으로는 이렇게 험난한 연예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겠지.
최강훈은 가면을 벗고 진짜 얼굴을 내게 드러냈다.
날카로운 분석안을 가진 엔터 회사의 사장.
“성공을 확신하는 거냐?”
“물론이죠. 첫 정규 앨범으로 1등도 했는데. 충분히 그만큼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해외를 보고 있겠네?”
“맞습니다. 세계 1등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 정도는 돼야 황룡그룹을 제칠 수 있으니까요.”
“크크크, 맞다. 맞아.”
최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아버지와 내기를 하나 했습니다.”
나는 두 사람에게 윤택수와 한 내기를 말했다.
다음 노래로 국내 1등을 하지 못하면 다시 불려갈 거라는 얘기만 건넸다.
투자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하지 않았다.
굳이 이런 요소를 알려줄 이유는 없었다.
투자금이 들어올 거라는 걸 알면, 한계도 없이 투자할 테니까.
반칙으로 이길 생각은 없었거든.
윤 회장이 그런 걸 인정할 사람도 아닐 것 같고.
“흠, 다음 앨범도 1등을 못 하면 데려가겠다고.”
한숨을 내쉬는 최강훈 대표가 황이서에게 물었다.
“가능하겠어?”
“…….”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던 황이서가 나를 보았다.
“건하 네 생각은 어때? 가능하겠어?”
그는 똑같은 질문을 내게 던졌다.
“예. 무조건 1등 가능합니다.”
“가능하답니다.”
“호흡 잘 맞는 거 같아서 보기는 좋네.”
생각을 정리한 최강훈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다음 앨범 준비는 최대한 빨리 신경 써서 시작하도록 하고…. 황 프로는 홍보팀장한테 알려주고, 그리고 건하야.”
“예, 대표님.”
“앞으로 행동거지 조심해라. 어디서 무슨 얘기가 나올지 모르니까.”
“알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1등 못하면 황룡그룹으로 간다는 말, 다른 멤버들에겐 하지 마라. 괜히 부담가지면 애들도 힘들어질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긴급 회의를 마쳤다.
* * *
이후로도 애들에게 윤 회장에 대해서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있는 기억 없는 기억을 모두 짜 맞춰서 이야기했다.
아이돌이 되기 위해서 집을 나왔고, 몇 년 동안 MAE 엔터의 연습생을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MAE에서 쫓겨나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GH 엔터의 데뷔조 연습생이 되었다는 이야기.
GH 엔터에 들어온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 알고 있으니, 더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왜 숨겼어.”
“조금은 섭섭해.”
“그럼 연예인 되려고 집을 나갔던 거야?”
“혼자서 MAE에 들어가서 연습생 시간을 보낸 거고?”
“건하 너도 거친 삶을 살았구나.”
그나마 다행인 건, 멤버들이 쉽게 내 말을 믿어줬다는 거다.
설명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애초에 믿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각자의 사연이 있는 거니까.
“건하가 많이 놀랐겠다. 오늘 맛있는 거라도 먹을래?”
“대표님 몰래 치킨 하나 시킬까? 조금이면 티 안 나지 않을까?”
참 착한 애들이다.
“됐어. 우리 내일 바로 스케줄 나가야 해. 먹었다가 티 나면 곤란해.”
멤버들을 달래는 내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우우웅!
핸드폰이 울렸다는 건.
‘퀘스트를 깼다는 의미겠지.’
윤건하의 속사정.
그건 다른 것도 아닌, 윤택수 회장과의 관계일 것이다.
퀘스트가 뜨고 윤택수 회장이 회사로 찾아온 데는 이유가 있을 테지.
아마 윤 회장의 인정이 아닐까?
1등을 한 내게 등장한 윤 회장.
세계를 노린다는 말이 트리거가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음 앨범으로 1등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회사로 돌아간다는 조건을 걸고 한 내기.
내 패기와 자신감을 알았을 테고, 그 덕에 나를 인정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었다.
[메인 퀘스트: 윤건하의 속사정]
[메인 퀘스트를 성공하셨습니다.]
[윤 회장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연계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연계 퀘스트: 윤 회장과의 내기가 시작됩니다.]
[다음 앨범으로 음원 차트 or 음악 방송 1위를 차지하세요.]
[성공 시: ???]
[실패 시: 황룡그룹 후계자 엔딩]
잠깐만.
황룡그룹 후계자 엔딩이라고?
* * *
윤 회장을 시발점으로 터진 난리를 마무리한 우리는 연말에 있는 가요 어워드를 준비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가요 어워드.
가수들과 아이돌을 상대로 시상식을 진행하는 가수들의 축제.
그리고 바로 내일이 그 가요 어워드가 있는 날.
밤늦게까지 연습을 마친 우리는 몸을 씻고 자리에 누웠다.
이번 활동의 마지막 일정.
가요 어워드.
상 하나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대를 받았으니까.
[남자 아이돌 신인상]
[베스트 댄스 퍼포먼스 남자 아이돌 부문]
무려 두 부문에서.
“긴장된다.”
“잠이 안 와.”
“음원 차트 1등에 음방 1등, 그리고 신인상에 댄스 부문까지…. 진짜 우리 일내는 거 아니야?”
설레는 멤버들은 잠들지 못했다.
나는 다른 이유로 잠을 잘 수 없었다.
[연계 퀘스트: 윤 회장과의 내기]
[다음 앨범으로 음원 차트 or 음악 방송 1위를 차지하세요.]
[성공 시: ???]
[실패 시: 황룡그룹 후계자 엔딩]
계속해서 핸드폰에 뜨는 실패 페널티를 바라보았다.
‘황룡그룹 후계자 엔딩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