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82화 (82/236)

<제82화>

“1등을 못 하네.”

황이서 프로듀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기사도 돌리고, 유명한 보컬 너튜버들과 관련 BJ들에게 홍보도 맡겨봤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전히 음원 차트는 2등.

자료에 따르면 1등과 격차가 꽤 좁혀지긴 했지만, 최수혁의 벽은 상당히 높았다.

애초에 발라드가 강세인 시기였다.

늦가을에서 연말 캐럴이 울려 퍼지기 직전까지의 그 시기.

발라드의 황태자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는 최수혁이니 어쩔 수 없다고 위로할 수 있지만.

“후우.”

지금이 1등을 할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1등은 노래가 좋아야 가능한 자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분명 좋은데.’

미치도록 좋았다.

이런 성적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되는 노래였다.

그럼에도 끝까지 벽에 가로막히는 게 답답했다.

“우리 연말 콘서트가 내일이었던가.”

아이돌 2팀과 최강훈 대표님이 그거 때문에 난리던데.

“잘됐으면 좋겠네.”

그러면 올리오스 애들도 덕 좀 보지 않겠어?

황이서는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운 눈 주위를 꾸욱 눌렀다.

* * *

오늘 우리는 GH 엔터 콘서트에 합류하기 위해 조금 일찍 콘서트가 있는 서울에 있는 올림픽 체조 경기장을 찾았다.

무려 1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공연장.

아직 관객들이 찾지 않은 체조 경기장이었지만, 스태프들은 여기저기에서 혹시 모를 안전사고를 대비하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흔히 VIP석이라고 불리는 스탠드석부터 2층의 일반석까지.

모든 좌석이 매진이라고 들었다.

GH 콘서트가 매진이면, 다른 지역은 굳이 듣지 않아도 결과를 알 거 같았다.

몬스터즈의 연말 콘서트가 열리는 무대는 전부 매진이겠구나.

“이 넓은 객석이 전부 팔렸대.”

“그럼 여기가 사람들로 다 차는 거야?”

“그렇겠지?”

“와. 몬스터즈 선배님들 덕분에 매진인 거지?”

“그렇지. 그래서 GH 엔터 연말 콘서트는 항상 매진이었대.”

“장난 아니구나.”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건 애들 장난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규모였다.

이게 최고의 위치에 선 아이돌 그룹의 인기인가.

몬스터즈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었다.

“보니까 한참 전부터 줄 서고 대기하고 있더라.”

“문밖에 있던 사람들 말이지?”

“그 사람들이 다 들어오는 거잖아.”

“와….”

매니저 두현이 말하길 새벽부터 기다린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고 했다.

그들이 가진 몬스터즈에 대한 열정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언젠가 우리도 할 수 있지 않겠어?”

이건 그때를 대비한 연습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우선 정민과 우주가 메이크업을 위해 분장실로 향했다.

“형이랑 호진이는 대기실에 안 가?”

“나는 호진이랑 같이 무대 조금 더 보고 있을게.”

“알았어.”

“건하 너는 안 봐도 괜찮아?”

“조금 쉴래. 방금 전까지 스케줄 마치고 왔으니까.”

나는 터덜터덜 대기실로 향했다.

활동을 시작한 일주일 동안 하루에 세 시간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스케줄을 위해 이동할 때 차에서 잔 쪽잠을 자긴 했으나, 그 정도로 해결될 피로는 아니었다.

이럴 때 쉬어야지.

언제 쉬겠어.

대기실에서 잠시 눈을 감고 쉬고 있을 즈음.

“흐으응~~.”

대기실에 들어온 한진성이 콧노래를 부르며 내 옆에 앉았다.

“건하 너밖에 없어?”

“저희 노래 부르고 계시네요?”

“하하, 의도한 건 아닌데 입에 착착 달라붙네.”

한진성이 웃으며 내 어깨에 손을 둘렀다.

“노래가 좋아. 고생한 보람이 있겠어.”

“카이 선배님이 도와주신 덕이죠.”

“걔가 뭘 도와줬다고.”

피식 웃은 한진성이 다시 우리 노래의 한 구절을 흥얼거렸다.

“그런데 왜 이렇게 빨리 온 거야. 리허설까지 한참 남았는데.”

“프로듀서님이 오늘 GH 엔터 콘서트에 집중하라고 오후 스케줄은 다 빼뒀다고 했어요.”

“오전엔 어디 다녀왔는데?”

“새벽에 우리 회사 너튜브 용으로 쓸 영상 녹화했고, 10시엔 X-라이브 방송했고, 그리고 여기 오기 전까지 연습실에서 연습하다가 방금 도착했죠.”

“바쁘네.”

“이렇게 바빠질 줄 몰랐어요.”

“나 때도 그랬어. 활동할 때는 그 시간이 제일 힘든데, 막상 생각해보면 그때만큼 열정을 불태웠던 적도 없었던 거 같아.”

한진성이 한숨을 퍽 내쉬었다.

“지금은 열정이 다 식으셨습니까?”

“아니? 누구 덕분에 다시 끓어올랐지.”

한진성의 눈이 불타올랐다.

“이번에 복귀하면 무조건 1위부터 8위까지 전부 우리 앨범으로 채우는 게 목표야.”

“할 수 있을 겁니다.”

몬스터즈가 못하면 한국에 앨범 줄세우기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다.

“조금은 아쉽긴 해.”

“뭐가요?”

“너랑 진검승부를 해보고 싶은데, 소속사가 같으니까 그게 안 되잖아?”

지금 몬스터즈랑 진검승부라니.

올리오스 뼈 부러지는 소리가 벌써 들린다.

“농담이라도 무섭네요.”

“크크, 진심인데?”

입으로는 장난스럽게 웃고 있었지만, 한진성의 눈은 나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말했잖아. 누구 덕분에 열정이 다시 끓어올랐다고.”

“…….”

“그러니까 꼭 1위 해라. 음원 차트든 음악 방송이든.”

“1위를 하고 못 하고 차이가 있나요?”

“물론이지. 나를 이기겠다고 덤빈 후배가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 밀려서 1위를 놓치는 꼴, 보기 싫거든.”

그러고는 내 볼을 잡아당겼다.

“아아아. 아파요, 선배.”

“아프라고 한 거야.”

나는 한진성을 보았다.

후련한 듯 시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주 보았던 미소였다.

게임에서도 현실에서도.

그러나 지금까지 봤던 미소와 차이점이 있다면 딱 하나.

‘짐을 내려놓은 거 같은데.’

무슨 짐을 지고 있었는지는 나로선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무조건 1등 해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멤버들은 아직도 메이크업 중이야?”

“그럴걸요?”

우주랑 정민은 메이크업을 하러 나갔고, 호진이와 성훈은 무대를 좀 더 살피고 싶다며 나갔다.

“건하야, 그런데 피부 관리는 어떻게 한 거야? 되게 매끈하다.”

“타고난 거죠.”

“이 자식이!”

다시 한번 한진성이 내 볼을 잡고 늘어졌을 때, 멤버들이 들어왔고.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그제야 한진성은 내 볼에서 손을 뗐다.

* * *

꺄아아아아악!!!!

대기실에서 대기하는데 땅이 울릴 정도로 커다란 환호성이 들렸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왔구나.”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느낄 수 있었다.

“보러 가도 되나요?”

“조금 이따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안전 문제 때문에요.”

“알겠습니다.”

현장을 컨트롤하는 스태프들의 말을 들어야겠지.

우리는 대기실에서 초조해하며 차례를 기다렸다.

음악 방송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떨림이었다.

다들 각자의 방법으로 긴장을 풀었다.

“그런데 사람들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서 현장감이 엄청 느껴진다. 그렇지?”

우주는 쉴새 없이 떠들며 긴장을 풀었고.

“쓰읍, 후우. 쓰읍, 후우.”

정민과 호진은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풀었다.

성훈은 이 상황에서도 책을 보고 있었다.

가끔 긴장할 때마다 책을 읽던데, 이번에는 세계 명작 전집을 들고 읽고 있었다.

나?

우주의 말에 대꾸해 주면서도 바깥의 소리에 집중했다.

긴장보다는 기대가 되었다.

처음, 작은 무대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때가 생각이 났다.

그때 느꼈던 떨림과 즐거움을 떠올렸다.

지금 저 밖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를 응원하러 온 팬들이 아니었다.

대부분은 몬스터즈를 응원하는 팬들.

아마 우리를 응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소수일 게 분명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몬스터즈가 벌이는 잔치에 찾아온 손님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랬기에 도전 의식이 생겼다.

우리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이 올리오스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하고 싶다고.

올리오스를 알고, 훗날 우리의 팬이 될 수 있도록.

팬이 되지 않더라도 우리에 대한 기억이 좋을 수 있도록.

저기 모인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었다.

“올리오스, 이제 준비하실게요!”

우리는 스태프를 따라 이동했다.

“백스테이지에서 10분 정도 대기할 거고요. 신호 보내면 스테이지랑 연결된 길로 나가면 됩니다. 조명 꺼진 상태에서 리허설 때 확인한 위치에 서면 돼요. 가능하시겠어요?”

FD의 말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좋습니다. 그럼 여기서 대기하세요.”

백스테이지에서 본무대가 보였다.

-♩♬♩♪♪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몬스터즈.

객석에서 응원봉을 들고 흔드는 팬들.

환호성. 노래. 울렁임.

거대한 무대가 만드는 떨림이, 심장을 울렸다.

“이게 무대구나.”

나도 모르게 터진 혼잣말이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던 걸까.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우리가 만들 무대라고 생각해. 충분히 할 수 있어.”

몬스터즈의 무대 뒤편에서 우리는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하며 손을 모았다.

“내가 올리오스 하면, 파이팅 하는 거야.”

다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긴장하지 말고! 연습한 대로만 하자! 절대 몬스터즈 선배들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 우리 이름을 알리는 진짜 쇼케이스라고 생각하자고! 절대 부담 갖지 마.”

나는 크게 소리쳤다.

“올리오스!”

“파이팅!”

그리고 우리 차례가 되었다.

“올리오스 올라갑니다.”

조명이 꺼지고 우리는 신호를 받으며 무대 위로 올랐다.

핸드폰을 가지고 올 수 없는 환경이어서였을까.

내 눈앞에 예전에 보였던 시스템 창이 보였다.

[돌발 퀘스트: 무대 등급 SS급 달성]

[미리 준비된 두 곡의 무대로 까다로운 몬스터즈의 팬들을 만족시키세요.]

걱정 마.

만족시켜 줄 테니까.

* * *

우리는 재빠르게 올라갔다.

나는 한진성 옆으로, 정민은 카이 옆으로, 호진이는 이진규 옆으로, 우주는 구희성의 옆에, 성훈은 최도현의 옆에 섰다.

몬스터즈 사이에 올리오스의 멤버들이 한 명씩 함께하는 그림이었다.

두두두둥!

몬스터즈의 ‘Alive’의 반주가 들린다.

조명이 켜졌고.

우리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 * *

몬스터즈의 골수팬인 백인영은 그 어렵다던 GH 엔터의 연말 콘서트의 티케팅에 성공해, 오랜만에 콘서트장을 찾았다.

본래는 몬스터즈의 단독 콘서트에 가고 싶었지만, GH 엔터에서 몬스터즈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한 탓에 큰맘 먹고 GH 엔터 콘서트를 찾았다.

-몬스터즈×올리오스

후배와 함께하는 무대.

이제 선배라는 느낌이 제대로 나려나?

1층의 VIP석에 자리를 잡은 그녀는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다른 손엔 응원봉을 주니 채로 손을 흔들었다.

“오빠아아악!!!”

몬스터즈의 공연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최고였다.

한진성은 평소보다 몇 배는 완벽했고, 카이와 구희성의 외모는 여전히 빼어났다. 최도현의 머리를 울리는 음색에 홀리다 보면, 이진규의 딱딱 끊기는 압도적인 춤선에 눈호강을 했다.

퍼포먼스도 좋았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오는 순간부터, 조명을 받아 반짝반짝하는 모습, 관객들과 호흡하고, 중간중간 치는 멘트와 유머를 듣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 있었다.

팬들은 몬스터즈의 공연의 만족도가 국내 아이돌 중에서는 탑급이라고 자부했다.

백인영은 오늘도 그 이유를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진짜 좋다.”

그녀는 1만 명이 넘는 같은 팬들과 함께 무대를 온몸으로 즐기는 중이었다.

이 시간이 끝나질 않길 바랐다.

그때 노래가 끝이 나고 조명이 꺼졌다.

“뭐야?”

이번 GH 엔터에선 후배 보이 그룹이 함께 참여한다고 들었다.

올리오스라고 했었나?

같은 소속사 후배라고 들었다.

최근에 공격적으로 전개해서 여기저기서 많이 보이는 그룹이던데.

‘몬스터즈 오빠들을 더 보고 싶은데.’

물론 GH 엔터의 콘서트였으니, 몬스터즈만 나올 수 없다는 건 이해하지만, 팬 입장으로는 아쉬웠다.

싫다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다시 조명이 켜지고, 몬스터즈 멤버들 옆에 낯선 얼굴이 함께 섰다.

쟤들이 올리오스구나.

‘Alive’는 몬스터즈의 대표곡 중 하나.

스페셜 게스트인 올리오스가 대선배인 몬스터즈와 함께 그들의 히트곡을 불렀다.

그녀의 오빠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모습에 그녀들은 환호했다.

그녀들에겐 올리오스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그녀들은 몬스터즈의 팬이지, 올리오스의 팬이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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