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80화 (80/236)

<제80화>

최우선의 <편한 사이>는 큰 걸림돌 없이 진행되었다.

사전에 준비되었던 질문을 하나하나 대답해 가며 방송을 이어갔다.

적당히 대답이 되었다 싶으면 최우선이 칼같이 마무리하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생방송은 아니지만, 한정된 녹화 시간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게 눈에 보였다.

“진효원과 같이 작업도 했는데, 어땠어?”

“최고의 보컬리스트 선배님이랑 같이 한다는 사실에 많이 들떴던 거 같아.”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건 없어?”

“예전에 우리 첫 음방 무대를 마치고 내려올 때, 선배님이 찾아오셨거든. 그때는 큰일이라는 생각을 못 했는데, 바로 사무실까지 오셨더라고. 우리의 강점과 개선점을 하나하나 짚어 주시면서 같이 작업해 보자고 말씀하셨어.”

진효원과 관계된 비하인드 스토리도 풀어놨고, 이번 앨범의 컨셉에 대해서도 대답했다.

“앨범 표지가 너무 좋아서 화제가 되고 있는데, 댓글 봤어?”

“댓글은 아직 못 봤는데, 반응이 좋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어.”

“그래서 내가 댓글을 들고 왔는데.”

최우선이 손에 들린 큐 카드를 흔들었다.

그걸 본 우리는 입을 꾹 닫았다.

“진짜 우리가 읽어야 하는 거야?”

“당연하지. 댓글 반응 읽어주는 건 우리 프로의 정식 코너인걸?”

최우선이 큐 카드를 내밀었다.

그는 마치 악마가 강림한 듯 사악하게 웃고 있었다.

“와 정말 존멋.천사 다섯이 내려… 이거 끝까지 읽어야 돼요?

우주를 시작으로 우리는 댓글을 하나씩 번갈아 가며 읽었다.

“와, 치인다.”

“주인장, 화보 사진 내놔.”

“와, 우주랑 호진이 중에 누구 고를지 고민된다… 정말로 좋은데 진짜 어휘력이 부족해서 여기까지 쓴다.”

“올리오스 영원하자.”

“꺄아아아아아악! 오빠아아아아아!”

댓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얼굴이 실시간으로 뜨거워졌다.

왜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인 거지.

멘트를 읽던 나는 웃음이 터졌다.

얼굴을 가리고 싶었다.

카메라가 우리를 찍는 게 느껴졌다.

부끄러워하는 연예인들의 얼굴을 찍는 게 목표임이 분명했다.

어디 쥐구멍 없나.

살려줘.

다들 얼굴이 빨개져서 아무런 말도 못 했다.

“이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댓글 하나씩 선정해서 읽어줘.”

멤버들은 각자 가장 마음에 든 댓글을 하나씩 꼽았다.

“호, 호진이 진짜 퇴폐미 쩐다….”

댓글을 읽은 호진이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스스로 말해놓고 부끄러웠던 거다.

우주와 정민은 이제는 적응이 됐는지, 마지막 댓글을 말할 때는 처음보다 다소 차분해졌다.

“나는 이거, 우주 너무 잘생겼다는 댓글이 너무 좋았어.”

“앨범 표지보다 노래가 더 좋다는 거.”

성훈이도 자기 칭찬이 적힌 댓글을 골랐다.

“성훈이 완전 대기업 젊은 간부처럼 나왔다.”

읽었을 때 부담이 덜할 정도의 수위를 가진 댓글들이었다.

나도 댓글을 하나 골랐다.

“GH 엔터는 빨리 뒤지기 싫으면 고화질로 뿌려라!”

말을 마친 뒤, 나는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이번 주 주말에 브로마이드랑 화보 나와요. 잘 부탁드릴게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민망한 댓글 읽기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노래 홍보 시간이 왔다.

“라이브로 부르는 거지?”

“당연하지.”

방송국에서 1절 부분을 스튜디오 위에서 춤을 출 수 있게끔 장소를 마련해줬다.

방금까지 화기애애하던 우리는 사뭇 진지해진 표정으로 각자의 동선을 짜며 준비를 마쳤다.

전주가 흐르고 우리는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인터뷰와 예능을 진행하던 스튜디오가 우리로 인해 작은 무대가 되었다.

‘All we once’의 반주와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우리를 찍는 카메라맨의 시선이 카메라와 우리를 오갔다.

그는 놀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익숙한 시선이었다.

화들짝 놀라는 반응.

싱글벙글 웃으며 예능을 진행했던 최우선도 놀란 얼굴로 우리를 보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익숙한 조명의 집중.

환하게 밝혀지는 시야.

춤을 출 때마다 느껴지는 심장의 고동과 기분 좋은 헐떡거림은 내가 지금 살아 있음을 느끼게 했다.

첫 무대에서 느꼈던 감동보다는 덜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그 순간의 감각은 지금도 충만한 만족감을 주었다.

내가 이렇게 춤에 진심이었을 줄 몰랐다.

연습 때는 그저 복귀를 위해서 열심히 하자는 생각만 했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던 걸까.

지금 와서 알 수 있었다.

이 순간을 위해서 나는 연습실에서 거울을 보며 미친 듯이 연습을 했던 거라는 걸.

숨이 턱에 차오를 때까지 췄던 그동안의 연습으로 만든 완성본을 한 번에 쏟아내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좋았다.

나는 옆에서 춤을 추는 우주를 보았다.

같은 생각이었던 걸까.

짧은 순간이었지만, 우리는 눈을 마주쳤다.

나도 모르게 씨익, 웃음이 나왔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광대가 솟아올랐다.

기분이 좋았다.

나를 보는 우주도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멤버들도 미소를 지었다.

자신감에 나오는, 확신에서 나오는 미소였다.

1절이 끝나면 반주를 끄겠다는 얘기를 분명 들었는데.

-♬♩♪♩~

간주가 이어지고 2절이 시작되었다.

PD가 계속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렇게 마음에 들었나.

그럴 수밖에.

우리도 이 노래가 정말 좋았거든.

분명 같은 걸 느끼고 있을 터였다.

조금 더 이어진 노래 때문일까.

우리는 노래가 끝날 때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시원했다.

* * *

“와, 영상미 죽이네.”

그저 카메라 한 대를 세우고 올리오스의 노래와 춤을 찍을 뿐이었다.

그러나 영상에서 느껴지는 맛은 단순하지 않았다.

멤버들의 다양한 음색과 절묘한 화음, 각이 딱딱 맞는 군무에 무엇보다 훌륭한 노래.

그리고 노래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모습도 시선을 끄는 요소 중 하나였다.

그중 백미는 자신감에 차서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을 때였다.

우주와 건하가 서로를 마주 보며 미소를 짓는 순간, 최우선의 <편한 사이>의 담당 PD는 오늘 최고의 장면을 정했다.

멤버 간의 우정과 신뢰가 확실하게 느껴지는 최고의 장면이었다.

그는 올리오스의 노래가 끝나자 담당 스태프한테 말했다.

“이거 3분짜리 영상이랑 1분짜리 영상으로 잘라서 만들어요. 릴스랑 톡틱에 올려야겠어.”

PD는 화면 속 올리오스 멤버처럼 시원하고 웃고 있었다.

* * *

이제는 올리오스의 열성팬이 되어버린 김다빈은 오늘 아이돌 덕질이라는 취미를 공유하는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

그녀 역시 파는 그룹은 달랐지만, 김다빈과 같이 아이돌을 덕질하는 친구였다.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계기는 생각보다 간단했는데, 다빈이 과거에 빠졌던 신인 아이돌을 함께 좋아했던 일종의 동료였다.

유독 말이 잘 통하고 서로 뜻이 잘 맞았다.

다만 함께 응원했던 아이돌이 오래가지 못하고 해체한 뒤로, 각자 다른 아이돌을 파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종종 만나면서 진지하게 아이돌 토론을 했던 그녀들이었다.

평소라면 오늘도 만나서 가벼운 아이돌 이야기로 대화의 포문을 열었겠지만.

“올리오스? 노래 잘 부르긴 하던데… 솔직히 운도 좀 따라준 거 아냐? 진효원이랑 같이 낸 것도 그렇고.”

김다빈의 친구, 유아라는 올리오스에게 좋은 감정이 없는 것 같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솔직히 그렇잖아. 몬스터즈 다음에 GH 엔터에서 나온 애들 맨날 망하다가… 이번에 올리오스는 괜찮긴 한데. 그래도 몬스터즈 느낌도 있구….”

유독 부정적이었다.

아무리 덕질하지 않는 아이돌이라도 이렇게까지 안 좋은 말을 하던 친구가 아니었다.

“설마 우리 애들이 크리키 식스보다 좋은 성적 거둬서 그래?”

“아니야.”

유아라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아니긴 무슨. 맞잖아.

하지만 친구와의 우정을 위해 김다빈은 말을 아끼기로 했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최근에 크리키 식스가 여러모로 안 좋은 소식만 들리니까.’

이번 앨범 성적이 그리 좋지 않은 건, 그럴 수 있다.

언제나 성공만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크리키 식스의 제일 큰 문제는 얼마 전부터 들려오던 멤버 간 불화였다.

멤버들끼리 주먹다짐을 하고 해체 직전까지 갔다는 소문이 들렸는데, 이게 단순 루머인지 진짜인지 크리키 식스의 소속사 해피데이는 관련 문제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불안해지는 거다.

마음 같아선 그녀에게도 올리오스 영업을 하고 싶었지만, 반발심만 키울 거라는 걸 잘 알기에 오늘은 편안하게 아이돌 얘기나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작부터 우리 오빠들을 까다니.

“이번에 올리오스 앨범 또 낸 거, 진효원과는 관련 없어. 한번 들어볼래? 노래 좋아. ”

“됐어. 안 들어도 알아.”

“이번에 N 포털에도 나온다고 했어. 거기 꾸밈없이 방송하는 거 알지? 그거 곧 예고편 나온다는데 한번 봐봐. 애들 입담이 괜찮아서 그냥 켜놓고 딴짓해도 볼 만해.”

“…….”

김다빈은 너튜브에 최우선의 <편한 사이>를 검색했다.

그리고 나온 1분짜리 예고편.

“이거 봐.”

“됐다니까.”

“그래도 오해는 풀어야지.”

올리오스가 진효원 빨이라니.

진효원 없어도 잘 되었을 아이돌이었다.

물론 덕을 본 건 맞지만 말이다.

“너 팟캐스트도 봐?”

“이번에 올리오스 출연한다고 해서 한 달 구독했어.”

“진심인가 보네.”

“너도 예전에 크리키 식스 최초공개 보겠다고 너튜브 프리미엄 구독했잖아.”

“옛날 일이야.”

진짜로 정이 떨어진 건가?

옛날에는 그래도 크리키 식스를 얘기할 때마다 정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일말의 애정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뭐랄까.

연애 권태기에 빠진 여자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여러모로 눈에 차지 않는 남친 때문에 늘 컨디션이 다운된 상태의 그런 모습?

‘조만간 탈덕할 거 같은데.’

이건 프로의 감이었다.

적극적으로 영업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면 이거 기회가 될지도?

김다빈은 곧바로 영상을 틀었다.

영업하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 아이돌의 오명은 씻어야지.

그게 팬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All we once’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인터뷰 내용이 아니네?

<편한 사이>는 반말 컨셉으로 진행하는 특이한 예능으로, 연예인들이 나와서 보여주는 편한 모습에 흥미를 느낀 시청자들이 많아 나름대로 애청자가 상당한 채널이었다.

보통은 예고편도 예능의 일부를 잘라서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늘은 달랐다.

‘노래 홍보 미션도 성공했구나.’

김다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영상을 보았다.

그런데 말이다.

“어라?”

이날 카메라 컨디션이 좋았던 걸까.

아니면 화장이 평소보다 좀 더 잘 먹었던 걸까?

스타일리스트 언니들의 컨디션이 좋았나?

특별한 편집 없이, 카메라 하나로 마치 직캠인 것처럼 틀어주는데 지루하지 않았다.

이미 올리오스의 노래를 몇십 번이고 들었고, 음악 방송도 몇 번이나 감상했던 김다빈이었다.

‘너무 좋은데?’

자연스러운 표정과 노래.

100% 라이브로 부르는 노래.

그런 상황에서도 숨 하나 차지 않은 듯 밝게 웃는 멤버들.

마지막으로 우주와 건하가 서로를 보며 씨익 웃었을 때.

김다빈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뭐야 얘들?”

옆에서 같이 봤던 유아라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놀랐니?

나도 놀랐어.

“멋지지? 손짓 하나까지 귀여울 때도 있어. 특히 우주라는 애가 예능에서 진짜 진국이야. 호진이는 또 어떻고….”

한 번 터진 말이 속사포처럼 터져 나왔다.

유아라가 되돌리기 버튼을 눌렀다.

김다빈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다시 한번 춤을 감상했다.

“잘하네.”

“그치! 진짜 잘 부르지? 이때 컨디션이 좋았나 봐. 평소보다 더 잘해.”

아이돌 덕질 10년 경력인 김다빈은 느꼈다.

그녀의 오랜 동료가 올리오스에게 관심이 생겼다는 걸.

그렇다고 바로 크리키 식스를 버리지 않겠지만 말이다.

“이거 빨리 팬카페에 공유해야겠다.”

그녀는 인터넷 카페에 해당 영상의 링크를 올렸다.

순식간에 댓글이 주루룩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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