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제대로 넘겼다.
발매한 지 몇 시간 만에 선배 아이돌인 크리키 식스보다 높은 위치에 랭크되었다.
아직 목표 순위는 한참 남았지만, 우리를 씹었던 그들을 이겼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그들이 우리보다 2주 정도 먼저 컴백을 하기는 했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우리를 무시한 상대를 하루 만에 제쳤다.
그 사실이 중요했다.
‘앞에 없는 게 아쉽네.’
얼굴이 구겨지는 걸 봤으면 좋겠는데.
남의 불행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대놓고 깔보는 상대에게 한 방 먹였을 때의 기분은 즐기는 편이다.
물론 TOP10은 멀었지만, 시작부터 40위라면 가능성이 있었다.
노래가 정말 좋거든.
우리가 특별한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거다.
좋은 성적을 확인한 우리는 그제야 새로 공개된 의 타이틀곡 ‘All we once’의 뮤직비디오를 감상했다.
원래 공개할 때 바로 보고 싶었지만, 스케줄 상 이제야 볼 수 있었다.
아직 대기실에서 핸드폰을 볼 정도의 짬은 아니었거든.
거기다가 크리키 식스가 눈에 불을 켜고 우리를 노려봤지 않은가.
아마 핸드폰을 들었다면 그 모습을 찍어서 기자에게 보낼 놈들이었다.
‘올리오스 태도 불량, 뭐 이런 걸로 트집이 잡혔겠지.’
그게 기삿거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기삿거리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따라란.
부드러운 전주가 흐르며 화면에 멤버들의 모습이 보였다.
앨범 컨셉에 맞게 늦가을, 초겨울 특유의 패션을 입은 다섯 멤버들은 화면 속에서 각자의 매력을 표출하고 있었다.
큰 키에 어울리는 베이지색 롱코트를 입은 채로 해맑게 웃는 정민.
발랄한 분홍 머리카락처럼 캐주얼한 야구점퍼를 입은 우주.
보라색 머리카락에 힙한 패션으로 눈을 사로잡는 호진.
목폴라를 입어, 마치 능력 있는 회사 대표처럼 보이는 성훈과.
마지막으로 그들 사이에 있는 나, 윤건하.
색 보정을 초겨울에 맞춘 듯, 살짝 하얗고 푸른 계열 느낌이 조금 더 도드라져 보였다.
영상 속의 우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부드러운 음색이 마치 겨울 길거리에서 산 붕어빵처럼 따뜻하게 만들어줬다.
‘영상이랑 노래의 분위기가 잘 맞네.’
첫눈이 내리는 길거리에서 사는 붕어빵이라.
누가 봐도 겨울 거리의 느낌이잖아.
영상의 분위기와 찰떡인 노래에 나도 모르게 감탄을 뱉었다.
-내게 짓궂게 장난치던 너를 떠올려.
-All we once. 우리가 함께했던 그 시간.
정민이 만든 멜로디에 성훈의 음색이 더해지니, 그야말로 흠이 없었다.
다른 게 천국인가.
이런 게 천국이지.
“좋다.”
노래를 듣던 우주가 감탄하며 말했다.
녹음했을 때 들었던 것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벌써 세 번째지만, 매번 이렇게 녹음 때 들었던 최종 버전과 완성본이 달라질 때마다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믹싱과 마스터링에 공을 들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확실히 GH 엔터랑 진효원 선배님의 블랑 뮤직이랑 믹싱 방식이 다른 거 같은데.’
진효원의 앨범보다 조금 더 남성미가 돋보였다.
그만큼 엔지니어의 작업 방식에 차이가 있다는 뜻이었다.
엔지니어의 실력에 감탄하며, 감상 모드로 들어갔다.
눈을 감고 노래를 들었다.
‘All we once’의 노래가 감미롭게 차 안에 울려 퍼졌다.
“흐흐흠~.”
어깨가 들썩거리면서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묘하게 빠른 템포 속에서 느껴지는 감미로운 음색과 화음은 왜인지 한 번 더 듣고 싶은 생각이 들게 했다.
곡이 끝났지만 묘하게 부족한 것이, 자꾸만 듣고 싶은 곡이었다.
“정말 좋은데.”
작곡자인 정민도 놀란 기색이었다.
이런 결과물이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와….”
끝까지 들은 우리는 서로를 보며 감탄했다.
첫 곡이었던 ‘Angel’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한 번 더 들을까?”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All we once’를 틀었고, 또 감상 모드에 들어갔다.
[실패까지: 6일 6시간 58분]
이제 남은 시간은 약 6일.
그 안에 TOP10을 찍기를 바랄 뿐이다.
가능할 거라고 확신했다.
* * *
내가 목표로 했던 TOP10은 처음 차트인을 했던 순간부터 이틀 만에 찍을 수 있었다.
[실패까지: 4일 1시간 17분]
“하아.”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하루하루 순위가 변하는 걸 지켜보는 것도 고역이더라.
괜히 순위가 하나 떨어지면 기분이 나빠졌고, 한 단계만 올라가도 환희했다.
우리 회사의 주식을 샀던 투자자의 마음을 간접적으로 이해했다.
내가 운영할 때는 성공할 거라고 늘 자신해서 몰랐는데, 차트를 지켜보는 거 꽤 괴롭구나.
[메인 퀘스트: 제한시간 내에 TOP10에 성공하세요.]
[메인 퀘스트를 성공하셨습니다]
[더 많은 여정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스템은 마치 내게 선심 쓰듯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축하해 줘서 참 고맙다.
나는 핸드폰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 조금 한숨 돌릴 수 있을까 싶었는데.
[연계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메인 퀘스트: 지상파 음악 방송 1위 후보에 들어가세요.]
[제한 시간: 14일]
[성공 시: ???]
[실패 시: 캐릭터 삭제]
이 새끼가?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2주 안에 메이저 음악 방송의 1위 후보에 들라고?
왜? 차라리 레몬 차트 1위를 찍으라고 하지.
레몬 차트 1위보다 어려운 게 메이저 음악 방송 1위였다.
지상파 음악 방송 1위를 하기 위해서는 음원 성적에 앨범 판매량, 그리고 TV에 자주 노출되기까지 해야만 했다.
단순히 음원 성적만 좋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제 막 퀘스트 데드라인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죽이려고 작정했냐? 이 시스템아?
‘대부분 음원 성적이 좋으면 자연스럽게 1등을 한다고는 해도….’
이제 10위 안에 들어간 우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을 빗대봤을 때, 시스템이 아예 불가능한 임무를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시스템은 최대한 한계에 부딪히게끔 임무를 내려 줬다.
시스템이 봤을 땐 할 만하다는 거지?
만약 다른 노래였다면 진짜 욕을 했을 거야.
웃기지 말라고 다른 퀘스트를 내놓으라고 멱살이라도 잡았을 텐데.
‘할 만해.’
우리와 우리가 만든 ‘All we once’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충분히 가능했다.
1위 후보에 들어가는 건.
‘방송 3사 중에서 하나만 들어가면 돼.’
차트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40위 차트인에서 이틀 만에 10위권 진입.
첫 주 활동이 끝날 즈음, 한 자릿수 안에 진입하지 않을까.
지금 추세라면 최종 후보에 드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을 거 같았다.
다만 조금 더 안전하게 달성하기 위해선.
‘다른 뭔가가 필요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특별한 무언가가.
“지금 1등이 누구지?”
나는 레몬 차트를 확인했다.
현재 1위는.
“발라드 황태자 최수혁의 Someday.”
-1위. 최수혁 - Someday
-2위. 최수혁 - 한 걸음만 더
심지어 1위와 2위 모두 최수혁의 노래였다.
앨범을 낼 때마다 1위를 놓치지 않는 발라드의 황태자.
발라드의 황태자.
이 거대한 벽에 도전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기는 게 아니니까.
최종 후보에 들어간다는 건, 근접하기만 하면 된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우릴 무시했던 크리키 식스는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내 눈에 보이는 건 우리가 최종 후보에 들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 * *
‘All we once’의 순항에 GH의 홍보팀은 한숨을 돌렸다.
“첫 주 반응이 좋네. 이대로면 차례로 이슈 만들어서 올리면 되겠어. 주현 씨는 지금 당장 회사 SNS 탐라에 이번 올리오스 앨범 관련 멘트 올리고, 뮤직비디오 비하인드 너튜브 영상 최대한 빨리 편집 마무리치고 넘기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지연 씨는 저번에 얘기했던 대로 연습실 영상 찍어놓은 것 중에서 쓸만한 거 추가로 편집해서 1분짜리 쇼츠랑 릴스 올려주고.”
“네!”
“지금 올리오스 건을 최우선으로 처리해! 당장 우리가 처리해야 할 이슈 없잖아.”
“알겠습니다!”
홍보팀 팀장 한석원 팀장은 직원들에게 각자 역할을 추가 지시했다.
지금이야말로 홍보팀이 가장 바쁘게 움직여야 할 시기였다.
앨범 발매 전, 발매 후 성적이 나왔을 때 그리고 휴식기.
따지고 보면 어느 시기든 바쁘지 않을 때가 없다고 말하는 게 맞았다.
만약 성적이 안 좋았다면, 다른 의미로 음원 성적을 끌어올리기 위한 플랜을 가동했을 거다.
“황 프로듀서님도 좋아하겠네요.”
홍보팀 직원 지연의 말에 혀를 내둘렀다.
“지금쯤 혼자 사무실에서 방방 뛰고 난리 났을걸? 3일 만에 탑텐이면 음방 1위도 노려볼 만해.”
황이서라면 분명 노릴 거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니까.
만약 그가 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홍보 자료를 요청한다면, 한창 바빠질 거다.
“너희 아마 다음 주까지 야근할지도 모른다.”
“또 야근인가요?”
“그래. 인마. 황 프로 분명 발동 걸렸을 거야.”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직원들의 한숨이 들렸다.
한 팀장도 안다.
집에 가고 싶은 거.
본인도 집에 가고 싶다. 아주 격렬하게.
그런데 프로듀서의 사무실에 소리 없는 환호성이 들리는 거 같아 생각을 접었다.
일에 미친 그 인간은 절대 그만두지 않을 테니까.
“대표님한테 성과급 많이 달라고 말할게.”
그와 동시에 프로듀서실의 문이 열렸다.
“홍보팀! 당장 회의 들어갑시다! 아이돌 1팀도 준비해요! 추가 회의할 테니까.”
왔다.
야근의 신이.
상기된 얼굴로 턱에 났던 수염까지 전부 깎은 일 괴물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칼퇴의 신이시여.
부디 저희를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가자.”
여보, 미안해.
오늘은 집에 못 들어갈 거 같아.
* * *
이번 앨범 활동은 그야말로 스케줄과 스케줄과 스케줄의 연속이었다.
음악 방송이 끝나면 새로운 스케줄이 있고, 그게 끝나면 다른 스케줄이 우리를 기다렸다.
라디오, 음악 방송, 그 사이사이에 앨범 홍보를 위한 추가 영상 녹화, 음악 채널에서 진행하는 예능 촬영까지.
그럼에도 연습을 쉴 수 없었다.
춤과 노래는 조금이라도 쉬면 티가 확 났기 때문에 활동 중에는 아무리 바쁘고 지쳐도 연습을 쉴 수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은 N 포털에서 진행하는 팟캐스트 예능 녹화가 있는 날이었다.
한 시간 정도 진행되는 팟캐스트 채널.
우리가 오늘 출연하는 채널은 깐족거리는 것으로 유명한 개그맨, 최우선이 게스트를 불러 진행하는 인터뷰 채널.
작은 스튜디오에서 컨셉을 잡고 진행하는 방송이라고 알고 있었다.
모두가 반말로 얘기하는 컨셉의 채널이라고 했던가.
편하게 방송을 하면 된다는 황이서의 조언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어떤 예능 촬영에서도 편함을 느껴보지 못한 나로서는 참 어려운 요구였다.
“우주야, 믿는다.”
“나만 믿어, 형들. 우리 오늘도 열심히 하자.”
음방 최종 후보에 오르기 위해서는 화제성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억지로 뭔가를 만들 수는 없었다.
그저 눈앞의 방송에 최선을 다할 뿐.
팟캐스트 녹화를 위해 찾은 스튜디오는, 지금껏 했던 예능의 스튜디오보다 다소 작았다.
“올리오스 오셨습니다!”
규모는 작았지만, 그 어떤 때보다 스태프들의 열정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저희 녹화 시간은 총 한 시간이고요. 라이브로는 진행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시간으로 반응을 확인할 수는 없을 거예요. 편집본이 방영되는 건 말씀드렸다시피 이틀 뒤입니다.”
“사전에 조율했던 질문을 순서대로 드릴 겁니다. 아무래도 최우선 씨 스타일이 있다 보니 다소 장난스러운 느낌으로 짓궂은 질문도 하겠지만, 웬만해선 선을 넘는 질문은 하지 않을 거예요.”
PD의 간단한 설명과 함께 우리는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스타로 만들어 드릴게요. 하하하!”
개그맨 최우선이 던진 가벼운 농담에 분위기가 풀어졌다.
TV에서는 반말과 깐족거리는 거로 유명한 개그맨 최우선이었지만, 확실히 카메라 밖에서는 이미지가 달랐다.
이래서 TV로 보이는 모습을 너무 믿으면 안 된다니까.
PD의 신호와 함께 녹화가 시작되었다.
“최우선의 <편한 사이>! 오늘은 화제의 스타 올리오스와 함께 시작합니다. 간단하게 소개 좀 해줘.”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에이, 우리 방송 컨셉 알면서.”
반말로 하라는 거다.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 오, 올리오스야.”
이야, 편한 반말 방송이라는 거 적응 안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