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78화 (78/236)

<제78화>

복귀 앨범 의 사전 녹화 당일.

우리는 새벽 일찍 일어나 방송국으로 향했다.

신인인 우리는 누구보다 빠르게 방송국에 도착해야만 했다.

우리는 부지런함을 무기로 삼아야만 했다.

“레몬에서 우리 노래 오픈하는 시간이 몇 시지?”

“오전 10시. 그때 올라갈 거야.”

우주의 물음에 운전석에 앉은 두현이 형이 대답했다.

차에 함께 있는 매니저 이두현과 스타일리스트 김예리. 그리고 멤버 다섯.

총 일곱 명을 태운 차가 방송국을 향해 움직였다.

새벽에 일어났음에도 피곤한 기색은 하나도 없었다.

“떨린다.”

“진효원 선배님이랑 같이 갔을 때는 이렇게 안 떨렸는데.”

“후우…. 잘하자.”

다들 무대 위에 서는 것을 기대하며 초롱초롱하게 창밖을 바라봤다.

걱정과 기대를 품에 안은 채로.

* * *

현장은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부산스러웠다.

“야! 장비를 이렇게 두면 어떡해!”

“지나가겠습니다!”

“조명 세팅 다시 해.”

익숙한 광경이었다.

데뷔했을 때도 이런 장면을 봤는데.

방송 준비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인사하는 우리.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이제 그들의 모습이 익숙해졌다는 것과.

“아, 올리오스 왔어?”

음악 방송의 강윤석 PD가 우리를 알아보고 먼저 아는 체를 한다는 거다.

“안녕하십니까!”

“진짜 자주 보네. 너무 바쁜 거 아니야?”

“열심히 해야죠.”

“하하하! 물론이지. 그때가 가장 열정 넘칠 때니까.”

첫 무대 때부터 우리를 좋게 보기 시작했던 강 PD였다.

그는 우리를 보자마자 반색하며 웃었다.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어. 오늘 무대도 기대할게.”

호탕하게 웃은 강 PD는 가던 길을 갔다.

대기실도 조금 커진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다른 선배 아이돌과 함께 쓰는 곳이지만 말이다.

대기실을 찾은 우리는 선배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찾아가서 인사를 했다.

인사. 인사. 인사.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아, 너희가 걔들이구나? 진효원 선배랑 한 거 잘 봤어. 노래 잘 부르던데?”

이전과는 달리 허리가 아플 정도로 인사를 하다 보면, 우리를 아는 사람이 가끔 보였다는 거다.

먼저 인사하는 선배도 있었다.

“너희 올리오스지? 잘 보고 있어.”

“감사합니다! 선배님!”

이제는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스태프들도 우리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며 반갑게 인사했다.

“오늘도 무대 잘 볼게요.”

“올리오스 파이팅!”

그런 인사와 격려를 받을 때마다 고생한 보람이 있다는 걸 느꼈다.

“우리도 이제 좀 유명해진 걸까?”

정민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라면 우주가 했을 말이지만, 오늘 우주는 다소 진중하게 정신무장을 하고 있었다.

전날 밤에 아버지께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 때문일까.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다.

다만 이전과 달리, 걱정은 되지 않았다.

긴장한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만,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거든.

그렇게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끼이익.

대기실 문이 열렸다.

대기실을 함께 사용할 아이돌 선배들이었다.

6인조 남자 아이돌.

이름이 크리키 식스였던가.

탑급 아이돌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인지도를 갖고 있는 아이돌 그룹이었다.

데뷔 4년 차에 본인들의 자리를 잡은 채로, 나름대로 두터운 팬덤을 자랑하는 실력파 아이돌.

물론 대중적인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진효원과 몬스터즈와는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로.

회사 대표가 욕심이 있어서 멤버들을 온갖 방송에 내보냈는데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다고 했다.

우주의 정보이니 믿을 만했다.

크리키 식스 중에서 아는 얼굴도 몇 보였다.

등급은 높지만 애매한 성능 때문에 주목받지 못했던 캐릭터들이었다.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우리는 대기실로 들어온 크리키 식스 선배들에게 우렁차게 인사했지만.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들은 우리를 쳐다도 보지 않은 채 그대로 씹었다.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나 듣지 못한 걸까 싶어 다시 인사를 해도 반응은 같았다.

완벽한 무시였다.

여섯 명 모두가 입을 꾹 닫은 채 우리를 무시했다.

이것 봐라?

얘기는 들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후배의 인사를 씹는 연예인들이 있다고.

황이서도 그럴 때에는 절대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인사 씹는 거? 그거 질투야. 그게 아니라면 별거 없는 텃세고. 선후배라고 하지만, 같은 필드에서 뛰는 경쟁자니까 신경이 쓰이는 거지. 무시당한다고 신경 쓰지 마. 성적으로 보여주면 되니까.’

선후배라지만 황이서의 말대로 경쟁자였다.

신경 쓰는 게 당연하지.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같이 대기실을 쓰는 상대를 이렇게 무시한다고?

대기실에 무거운 공기가 내려앉았다.

크리키 식스는 말 그대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인상을 쓰고 있었고, 올리오스 멤버들은 그런 선배들의 눈치를 보았다.

왜 이러는지 알겠네.

부담을 주는 거다.

무대에서 혹여나 실수하기를 바라면서.

재밌네.

이렇게 유치한 방식으로 견제할 줄은 몰랐는데.

그쪽이 이렇게 유치하게 나온다면, 방법이 있지.

“호진아, 이따 무대 위에서 할 거 말인데.”

무거운 침묵이 주는 부담감을 해소하기 위해선 그 침묵을 깨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우리가 다섯 명이다 보니까 동선을 확실하게 잡아두는 게 좋을 거 같아서.”

“그게 좋긴 한데….”

동선은 리허설 때 잡을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당장 필요하지 않음에도 말을 꺼내자 호진이 당황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우리가 최근에 진효원 선배님이랑 같이 무대에 올랐었잖아. 그때랑 동선이 달라지니까 확실하게 해두는 게 좋을 거 같아서.”

호진이 눈을 끔뻑였다.

진효원의 이름이 지금 나올 줄은 몰랐던 거다.

나도 그 이름을 들먹일 생각은 없었다.

다만, 상대가 유치하게 나오니 조금은 유치해질 생각이다.

유치함에는 유치함으로 받아쳐야지.

“마지막까지 동선 체크를 확실히 해야 실수하지 않을 테니까.”

나는 호진에게만 보이게끔 눈을 찡긋거렸다.

그제야 내 의도를 알아챈 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선 체크 중요하지. 무대 사정을 고려했을 때, 나랑 우주가 이렇게 교차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성공한 선배 가수의 이름을 들먹이는 게 유치할 수 있다.

그런데 상대가 유치한 방법으로 우리를 압박하는 게 보이는데, 굳이 노림수에 당해줄 이유는 없었다.

덤으로 무대에 대한 고민으로 긴장감을 덜 수 있으면 일석이조고.

“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노골적으로 우릴 멸시하려는 게 느껴졌다.

“빽 있어서 좋겠네.”

크리키 식스 멤버 중 하나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기실이 좁아 소리가 울린 건지 명확하게 들렸다.

주어는 없었지만 명백히 우리를 노린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아까와는 다른 종류의 침묵이 이어졌다.

어색한 침묵이 아닌, 명백한 분노가 느껴지는 정적.

공기가 차가워졌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그 누구도 진효원 빨이라는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그 말이 사실이라 반박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저 상대가 선배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 거였다.

멤버들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차가운 분노였다.

자신을 무시하고, 멤버들을 무시했다는 것에서 오는 차가운 분노.

“크리키 식스! 먼저 입장하실게요!”

조연출이 크리키 식스를 불렀을 때가 되어서야 그 침묵이 깨졌다.

“쟤들보단 잘하자.”

선배 대우 따위 해줄 필요없었다.

상대가 먼저 우리를 무시했는데, 그대로 당하면 억울하지.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박살 내자.”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차례가 왔다.

* * *

크리키 식스의 무대를 봤다.

잘하긴 하더라.

하지만 우리는 같은 생각을 했다.

“이길 만한데?”

“우리가 더 잘해.”

우리는 자신감을 더한 채로 무대 위에 올랐다.

사전 녹화이기 때문에 현장에는 팬이 없었다.

아쉬웠다.

팬들 앞에서 무대에 오르는 것이 정말 좋았으니까.

하지만 괜찮았다.

이제 앨범의 시작이고, 이 곡을 갖고 무대 위에 오를 순간은 많았다.

그리고 황이서가 말하길, 여러 콘서트에도 올라갈 거라고도 했다.

‘시작을 잘 터트려야만 해.’

무대에 오르며 몇 번이고 생각했다.

시작을 잘 끊어야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메인 퀘스트: TOP10에 성공하세요.]

[실패 시: 캐릭터 삭제]

캐릭터를 삭제당하기 싫으면 무조건 해내야 했다.

“올리오스, 들어가실게요!”

스태프의 말과 함께 백스테이지에서 기다리던 우리는 천장에서 흩뿌려지는 조명이 빛나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바닥이 조명으로 빛났다.

우리를 향하는 스포트라이트가 뜨겁다.

‘All we once’의 분위기대로 꾸며진 무대는 마치 첫눈이 내리는 겨울밤의 골목길처럼 운치가 있었다.

조금 과장을 섞자면, 진짜 골목길에 선 기분이었다.

앞에 카메라만 없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핸드 짐벌이 장착된 카메라를 든 카메라맨이 렌즈를 통해 우리를 보고 있었다.

우리를 찍을 액션 카메라.

관객은 없지만, 그 대신 우리를 보는 스태프의 시선과 카메라가 있었다.

내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기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무대 위에 서는 순간, 크리키 식스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무대 위에서는 다른 그룹을 신경 쓰는 것보다 내 것을 잘하는 게 더 중요했다.

“잘하자. 파이팅!”

우리는 서로를 보며 격려하며 노래의 시작을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이어에서 노랫소리가 들렸다.

-♪♬♩♩

정민이 작곡한 ‘All we once’의 전주가 흘러나왔고, 그에 맞춰 안무를 추기 시작했다.

우주가 가장 먼저 앞으로 나가 노래의 시작을 끊었다.

-너를 기다리는 지금 이 시간이 설레서 두근거려.

그다음으로 정민.

-우리 함께 걷던 이 거리.

-혼자 나오니 낯설어.

‘All we once’는 우리를 한 번 더 봐 달라는 그룹명의 의미를 남녀 간의 관계로 재해석해 만든 노래였다.

-빨리 네가 와주길.

내 파트가 끝나자마자, 호진이 바로 치고 들어왔다.

그야말로 완벽한 호흡이었다.

신나는 박자에서 느껴지는 펑키한 리듬감.

듣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들썩이는 노래였기에, 분명 좋은 무대를 꾸밀 수 있을 거라는 자신이 있었다.

채남영 트레이너가 짠 안무를 추며 이리저리 움직이며 우리를 찍는 지미집을 보았다.

나는 카메라를 향해 윙크를 날렸다.

뭔가를 노리고 한 건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 춤을 추다 보니, 상기된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카메라를 보며 씨익 웃으며 다음 동작을 이어갔다.

이제는 카메라가 우리를 찍고 있다는 사실에 부담감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를 찍는 카메라는 긴장감의 대상이 아닌, 무대를 즐기기 위한 도구 중 하나가 되었다.

조명이 우리를 비춘다.

밝은 조명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무대를 이어갔다.

4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그 짧은 시간에 모든 걸 쏟아내야만 했다.

곡의 마지막에 다다를 즈음엔 숨이 헐떡였지만,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조명 때문일까.

내 몸이 빛나는 기분이었다.

무대 위에서 모든 걸 털어낸 나는 후련한 미소를 지었다.

올리오스는 이런 그룹이라는 걸 보여주는 무대였다.

나는 옆에 선 우주를 보았다.

그는 후련한 얼굴로 카메라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본인이 생각한 최고의 무대를 펼친 게 분명했다.

* * *

“크리키 식스의 노래가 43위였던가?”

“그 사람들은 꺾고 싶은데. 우리보다 2주나 먼저 활동을 시작했잖아. 컴백 첫 주인 우리가 못 꺾으면 뭔가 지는 기분일 거 같아.”

“이제 슬슬 순위가 나오지 않았을까?”

TOP10.

내게는 크리키 식스보다 우리의 순위가 더 중요했다.

[실패까지: 6일 7시간 22분]

6일 안에 TOP10 안에 들지 못하면 캐릭터가 삭제당할 운명이었기 때문이었다.

무대를 끝낸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핸드폰을 열어 순위를 확인했다.

“어?”

가장 먼저 핸드폰을 확인한 우주가 놀란 얼굴로 외쳤다.

“이게 진짜 우리 순위야?”

“몇 위길래 그래?”

내 질문에 우주가 핸드폰을 들어 우리에게 보여줬다.

핸드폰에는.

“40위?”

12시간도 되지 않아 40위를 찍은 ‘All we once’가 보였다.

“크리키 식스 넘겼네.”

하루 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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