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77화 (77/236)

<제77화>

“고생했어.”

간이역에서 세 시간 정도 이어진 앨범 자켓을 비롯한 브로마이드, 화보 촬영을 모두 끝낸 디자이너 박한솔이 모두를 보며 말했다.

그녀는 후련한 얼굴로 촬영을 마무리했다.

우리는 단체 사진부터 개인 사진까지 찍을 수 있는 건 다 찍었다.

촬영 후반부로 갈수록 눈이 거세져, 우리의 머리카락에도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는 것 말고는 특별한 문제 없이 끝났다.

표정만 봐도 알 거 같았다.

이번 우리 작품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는 걸.

“첫눈이 이렇게 많이 내리다니. 심지어 첫 앨범 표지를 작업하는 이 순간에 말이야. 첫 앨범, 첫 정규 앨범. 이번 작품 성공하겠는데?”

여전히 떨어지는 첫눈을 바라보던 박한솔이 내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데뷔 앨범은 아니라서요.”

첫눈이라고 해서 첫 앨범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런 미신에만 기대고 있을 수는 없지만,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이었고 이는 컨디션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솔직히 따지고 보면, 이 눈도 올해 첫눈이 아니잖아. 올해 떨어지는 눈은 이미 연초 겨울에 지겨울 만큼 봤는데 다들 첫눈이라면서 의미를 담고 있는걸? 의미부여는 하기 나름이야. 그러니까….”

박한솔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첫눈에 대한 그녀의 새로운 해석은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였다.

관점의 차이라.

끼워 맞추기지만, 듣는 입장에선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잘 될 거야. 느낌이 왔어.”

“느낌 말입니까?”

“올리오스를 보는데 자꾸만 몬스터즈랑 작업했을 때가 생각나. 정말 느낌이 좋아.”

“그만한 잠재력이 있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내 질문에 박한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만한 잠재력이 있어. 뭐, 알다시피 잠재력이 있다고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카메라를 잡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던 박한솔이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올리오스는 무조건 성공할 거 같네. 이런 말 많이 들어봤지?”

씨익 웃은 박한솔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거 받아요.”

박한솔이 내민 건 오리진 픽쳐스의 대표, 박한솔의 명함이었다.

“이번 활동 끝나고 멤버들 개인 화보, 작업해 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그녀는 황이서가 아닌, 우리를 보며 물었다.

“문제없습니다.”

나는 즉답했다.

황이서가 말하길, 오리진 픽쳐스는 업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업계 1등.

그것이 뜻하는 바는 컸다.

실패보다 성공한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뜻.

그런 업체와 협업할 수 있다면, 보다 확실한 성공을 해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저도 좋아요!”

“오리진 픽쳐스면 거절할 이유가 없죠!”

멤버들이 거의 동시에 외쳤다.

그들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어이, 프로듀서인 날 빼고 얘기하면 곤란하죠.”

“어차피 허락해주실 거잖아요.”

박한솔이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아무튼 이번 앨범 나도 꼭 들을게요.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명함을 건넨 박한솔은 웃으며 현장을 정리하러 떠났다.

나는 소복하게 쌓인 눈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건 처음 보았다.

박한솔이 말한 것처럼, 이번 앨범의 성공을 나타내는 하나의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신이라.’

가끔은 믿어서 나쁠 건 없겠지.

좋은 의미로 하는 말이니 말이다.

* * *

-따다단!!

올리오스의 정규 앨범, 의 티저 영상이 나왔다.

정민이 작곡한 타이틀곡 ‘All we once’의 인트로 음악과 함께 30초짜리 티저 영상이 너튜브를 통해 공개되었다.

영상이 올라오기가 무섭게 팬들이 실시간 댓글을 달았다.

-1빠!

-벌써 복귀 앨범임?

-진효원이랑 앨범 낸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복귀;; 애들 너무 굴리는데….

-떡밥이 마를 틈이 없네

-30초 순삭

-데뷔한 지 반 년도 안 됐는데 정규 앨범 나오는 건 처음 보네 -일주일을 어떻게 기다리라는 거임?

티저 영상에는 간이역에서 박한솔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했던 우리의 사진이 들어가 있었다.

첫눈이 내리는 간이역에서 긴 벤치에 앉은 다섯 명의 멤버.

사진 속에서 우리는 각자 매력을 보이는 환한 미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처럼 환한 미소를 지은 우주.

첫눈이 내리는 간이역에서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는 정민.

손등으로 입을 가린 채 의외로 수줍은 미소를 지은 성훈.

떨어지는 첫눈을 보며 묘한 미소를 짓는 호진.

그리고 멤버들과 함께 시원하게 웃는 나.

이렇게 다섯 남자가 한 앵글에 담긴 채로 앨범 밖에 있을 팬들을 보며 웃고 있었다.

세상에 걱정 하나 없다는 듯이.

“좋네.”

대단한 영상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화려한 효과가 번쩍번쩍 점멸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정민이 만든 인트로의 선율과 우리가 찍힌 사진들.

‘올리오스’가 드러나는 짧은 영상이었다.

정민의 노래 ‘All we once’처럼.

“이제 진짜 며칠 안 남았네.”

끝나는 티저 영상을 본 우주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정말 며칠 남지 않았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우리의 노래를 갖고 앨범 활동을 할 수 있다.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가 그때 느꼈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무대 위에서 느껴지는 사람들의 시선.

팬들의 시선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팬들을 실망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했다.

무대에서 실수하지 않을 수 있도록 완벽한 연습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내게 남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안다.

[메인 퀘스트: TOP10에 성공하세요.]

[실패 시: 캐릭터 삭제]

이제 퀘스트가.

[실패까지: 13일 17시간 11분]

2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무조건 성공해야만 했다.

실패는?

캐릭터 삭제, 죽음뿐이었다.

“자, 그럼 다시 연습을….”

“어? 너희도 왔구나?”

다시 연습을 하려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몬스터즈 선배들이었다.

한진성과 카이가 나와 정민을 보며 아는 척을 했다.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십니까. 올리오스입니다!”

“됐어. 소속사 선배한테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돼. 우리가 한두 번 본 사이도 아니고.”

한진성이 우리를 보며 웃었다.

“표정 좋네.”

카이는 정민을 보며 말했다.

“덕분에 의욕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뒤로 다른 몬스터즈 멤버들이 들어왔다.

“아, 얘들이구나. 반갑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

몬스터즈의 댄스 담당인 이진규가 호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를 따라 들어오는 건 보컬 담당인 최도현.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중에 연기돌이라는 칭호를 얻는 구희성도 함께였다.

‘역시 멤버들이 쟁쟁하네.’

이진규부터 최도현, 구희성까지 다들 내가 했던 게임에서도 S급 이상 되는 아이돌 연습생이었다.

한 명 한 명 다 완벽에 가까운 스펙을 갖고 있다.

심지어 내가 키운 기록이 남아 있다면.

‘단점도 전부 커버한 상태겠지.’

카이처럼 약점을 전부 보완한 연습생이라는 거다.

몬스터즈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사실상 랭킹 1등의 조합인데, 당연하지.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반갑다. 진성이랑 카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

인사를 나누고 몬스터즈는 연습실 구석으로 가서 신발을 갈아신었다.

미끄러운 바닥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한 연습용 신발이었다.

“다음 주에 컴백한다면서? 방금 티저 올라왔던데?”

“네, 맞아요!”

진성의 말에 우주가 외쳤다.

선배들과 연습실을 같이 쓴다는 생각에 들뜬 우주의 톤이 올라가 있었다.

“자켓 잘 찍혔더라. 분위기 좋던데?”

“편집 덕이죠.”

“크크, 우리는 내년 초에 복귀할 거다. 너희랑 겹치지는 않을 거야.”

“드디어 복귀하시는 건가요?”

“그렇지. 연말에는 콘서트 때문에 힘들고, 연말 콘서트 때 앨범 나온다고 홍보하면서 너희랑 스케줄 안 겹치게 잡아야지.”

한진성이 시원하게 웃었다.

“이번 12월에 쟁쟁한 선배들이 많이 앨범 내더라. 높은 자리 차지하기 꽤 힘들 거야.”

“차지할 겁니다.”

“진심이야?”

“예.”

한진성에게 대답하며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데뷔한 뒤에 얻었던 미션을 성공하기 위해선….

“무조건 이겨낼 겁니다.”

“의지가 확실하네.”

우리는 몬스터즈와 함께 연습실에서 안무 연습을 했다.

두 팀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기 때문에, 연습하는 데 지장은 없었다.

몬스터즈의 음악과 춤은 그야말로 센세이션했다.

‘그렇다고 밀리지는 않아.’

우리 역시 강점을 보일 만한 부분이 있었으니까.

자신감을 잃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몬스터즈와 같이 연습한 덕분에.

[수준 높은 댄스를 목격했습니다.]

[춤 스탯이 1 오릅니다.]

[춤: 60 → 61 (A)]

[수준 높은 무대 연습을 경험합니다.]

[노래 스탯이 1 오릅니다.]

[노래: 60 → 61 (A)]

능력치가 하나씩 올랐다.

이 포인트가 얼마야.

* * *

앨범 홍보 영상도 찍었다.

“저희 올리오스와 ‘All we once’ 많이 사랑해 주세요!”

방송에서 쓰일 영상을 미리 촬영한다며 찍었다.

편집된 뮤직비디오도 감상했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가슴이 뛰었다.

긴장감도 초조함도 아니었다.

설레고 있었다.

더 좋은 무대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게 되었다.

* * *

“내일이면 본격적으로 활동 시작이다. 이번에도 새벽에 방송국에 가서 음방 대기하고, 사전 녹화 딴 다음에 예능 촬영 돌아다닐 거야. 아마 새벽까지 바빠서 쉴 틈도 많이 없을 거다.”

황이서가 연설을 이어갔다.

이제 열 시간도 남지 않았다.

“앞으로 3주간 파이팅하자. 연말이라 콘서트에 들어갈 일도 있어. GH 엔터 연말 콘서트 라인업에 올라갔으니까 이번에 올리오스라는 이름 제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하고 활동하자.”

“네, 알겠습니다!”

“행사도 많이 잡혀 있고, 가요제에도 나가려면 죽어 나갈 거다. 이번 연말 스케줄 다 끝나면 쉬게 해줄 테니까, 그때까지만 버티자.”

황이서의 의지 가득한 목소리에 멤버들의 투지가 살아났다.

“올해 신인상은 우리 올리오스가 타서, 너희들의 해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자고!”

“넵! 알겠습니다!”

소속 아이돌부터 프로듀서 그리고 직원들까지.

모두 정신무장을 단단히 하면서 마지막 하루를 마무리했다.

첫날엔 일찍 자기 위해 이른 시간에 숙소로 돌아왔다.

깨끗하게 씻고 잠을 자려는데, 같은 방을 쓰는 우주가 입을 열었다.

“형, 이번에 나 진짜 열심히 할 거야.”

“언제는 열심히 안 한 것처럼 말한다?”

“그때도 열심히 했지만, 지금은 더 열심히 할 거야.”

“갑자기 왜?”

우주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차분했다.

“아버지한테 보여드릴 거야. 형들한테도. 내가 선택한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내가 본 우주의 과거가 떠올랐다.

가족들의 압박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우주.

지금껏 어린아이였던 우주는 지금 자신만의 길을 찾기 위해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각오를 다지는 우주의 목소리는 어른스러웠다.

“열심히 하자. 모두가 놀랄 무대를 보여주면 돼.”

“응.”

나도 우주와 함께 각오를 다졌다.

[메인 퀘스트: TOP10에 성공하세요.]

[실패 시: 캐릭터 삭제]

[실패까지: 7일 12시간 24분]

성공해야 할 이유가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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