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화>
이번 앨범을 위해 우주의 수능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늘 가던 샵에 스타일링을 맡겼다.
우주는 이미지와 맞게끔 연한 분홍색으로 염색을 했다.
이전에 염색했던 밝은 푸른색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분홍색 솜사탕을 안고 있는 작은 고양이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활발한 우주의 이미지와 확실히 맞았다.
“어때?”
우주가 빙그르르 스핀을 하며 물었다.
“너무 빨리 돌아서 모르겠다.”
“그래? 그럼 한 번 더.”
다시 한번 빙글 돌며 웃은 우주는 거울로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든 듯했다.
“그런데 정민이 형은 이미지 때문인가, 노란 계열이 잘 어울린다.”
자기 스타일을 감상하던 우주의 시선이 정민에게 향했다.
정민은 첫 싱글 앨범 때와 비슷한 컨셉이었다.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카락에 처음보다 살짝 풀린 곱슬머리가 따스한 느낌이었다.
옆에 있기만 해도 따뜻해지는, 핫팩 같은 스타일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보다 좋은 느낌이 안 떠오르더라고. 프로듀서님이 파란색 머리 스타일도 추천했는데, 뭔가 좀…. 하하하.”
성훈은 이전 앨범 때와는 달리, 아예 검은색으로 염색했다. 확실히 밝은 갈색보다는 검은색이 잘 어울렸다.
저기에 안경을 씌우면 진짜 능력 있는 엘리트 느낌이 날 것만 같았다.
“본부장님?”
나도 모르게 성훈을 보며 말했다.
“오늘 스케줄이 어떻게 되지?”
마치 안경을 쓴 것처럼 콧잔등에 손을 올린 성훈이 진지한 농담을 건넸다.
저렇게 하니까 진짜 본부장 같네.
알 없는 안경이라도 씌워주고 싶었다.
“안경 사러 갈래?”
“나중에.”
호진이는 남색과 보라색이 섞인 색으로 염색했다. 호진이 갖고 있는 특유의 퇴폐미가 더욱 살아났다.
귀에는 귀걸이를 여러 개 꼈는데, 귀를 뚫은 건 아니었다.
호진이 아픈 걸 싫어해서 뚫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귀걸이를 착용했다.
“애들아, 어때?”
우물쭈물하며 묻는 호진을 향해 우리는 모두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눈매 아래에 박힌 미인점이 호진의 분위기를 더욱 살렸다.
우리 중에 가장 매력적인 느낌으로 꾸며진 멤버가 아닐까.
외모빨일 수도 있긴 한데. 그래도 멋졌다.
나는 이전 앨범 때와 비슷한 백금발이었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조금 더 옆머리를 짧게 쳤다는 것 정도.
개인적으로 나 역시 검게 염색하고 싶었지만, 백금발이 더 어울린다는 황이서의 말에 어쩔 수 없이 금발을 유지했다.
“건하 형은 확실히 탈색한 금발이 어울린다. 아니면 성훈이 형처럼 아예 흑발로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맞아. 우주 너도 뭘 아는구나.”
우주와 정민이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냐?”
당사자인 나는 전혀 모르겠는데.
“이번 앨범 표지, 잘 나왔으면 좋겠네.”
나는 메이크업을 받는 멤버들을 보며 스킬을 새로 뽑았다.
목표는 A급 스킬.
사진과 관련된 스킬이었다.
스탯으로는 화보와 사진에 대한 능력치를 올릴 수 없었다.
능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은 사진에 관련된 스킬을 뽑는 것.
100만 포인트 정도를 사용해서 스킬 뽑기를 이어갔다.
[스킬 조각을 뽑았습니다.]
[스킬 조각을 뽑았습니다.]
[스킬 조각을….]
물론 마음에 드는 스킬은 하나도 나오지 않고 온통 조각이었지만.
‘이럴 줄 알았다.’
내 운이 그렇지 뭐.
뽑기 운이 더럽게 없어서 게임을 하는 내내 천장을 찍었던 내 운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운이 없어도 돈이 많으면 뽑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기에.
[스킬 조각을 뽑았습니다.]
[A급 스킬 조각 70개를 획득했습니다.]
스킬 하나를 만들 수 있는 조각 100개를 모을 때까지 뽑았다.
[윤건하 님의 계좌로 4천만 원이 입금되었습니다.]
덕분에 지갑이 다시 두둑해졌다.
그렇게 얻은 스킬 조각으로 만든 능력이 바로.
[네 사진 속에 저장(A)]
[효과 1: 사진을 찍을 때 외모와 몸매가 보정되어 찍힙니다.]
[효과 2: 낮은 확률로 인생샷을 찍힙니다.]
이게 내가 원했던, 사진빨을 높일 수 있는 스킬이었다.
* * *
“어때요? 우리 애들.”
분장실로 들어간 올리오스를 보며 황이서가 기대를 가득 품은 얼굴로 물었다.
참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다.
소속 연예인들에 대한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얼굴.
예전에 몬스터즈랑 같이 다닐 때도 딱 이런 표정이었다.
황이서의 질문에 박한솔 디자이너는 말을 골랐다.
“좋네요.”
간단한 한마디였지만, 그 말에 담긴 의미가 가볍지 않음을 황이서도 알 것이다.
올리오스와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연락을 먼저 보낸 건 박한솔 디자이너였으니까.
“저희가 내보인 아이돌이지만 애들이 참 듬직합니다. 알아서 잘하고,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팀이 잘 이뤄져 있다는 느낌이에요.”
한 명 한 명이 보여주는 매력은 다소 부족할 수 있다.
그러나 다섯 명이 하나가 되었을 때 느껴지는 특별함이 있었다.
뭐랄까, 절묘하게 완성된 그룹이라는 느낌?
TV에서 처음 올리오스를 봤을 때는 그리 유심히 보지 않았다.
나름대로 팬덤을 구축하고 인기몰이를 하는 와중에도 박한솔은 그리 주목하지 않았다.
이미 수많은 보이 그룹이 대중에게 모습을 보였고, 그중 대다수는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졌다.
올리오스도 그런 그룹 중 하나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꾸 눈에 들어왔다.
노래도 묘하게 중독이 되고, 마스크도 괜찮은 것이 한번 찍어보고 싶은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박한솔은 진효원과 함께 방송에 출연한 올리오스를 보았다.
진효원과 함께 올라온 무대를 보고 나서야, 그녀는 왜 자신이 올리오스에게 자꾸만 끌렸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빛나고 있어.’
진효원과 함께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올리오스가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에 확신했다.
‘얘들은 된다.’
역시 몬스터즈를 키운 GH 엔터.
그녀는 곧장 GH 엔터에 연락했다.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몬스터즈 때도 이렇게 먼저 연락을 주셨죠?”
“맞아요. 그때 처음으로 황 프로듀서님을 알았죠.”
“사실 깜짝 놀랐습니다. 연락이 올 줄 몰랐거든요.”
“몬스터즈 애들이랑 다르게 자신감이 없어진 건가요?”
“그런 건 아닙니다. 그때만큼 저 애들이 성공할 거란 자신이 있죠. 다만.”
“다만?”
“디자이너님도 저랑 같은 걸 볼 줄은 몰랐다는 겁니다.”
황이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프로듀서 하셔도 되겠어요.”
“됐어요. 스튜디오 운영하는 것도 벅찬데.”
그때 분장을 마친 올리오스 멤버들이 나왔다.
확실히 다들 마스크가 좋았다.
귀여운 느낌을 듬뿍 살린 메이크업을 받은 우주가 분홍 머리를 찰랑거리며 나왔다.
머리카락과는 반대되는 블랙 진을 입은 채였다.
뒤이어 정민이 나왔다.
머리카락 색보다 조금 연한 갈색 점퍼를 입은 정민은 따뜻한 이미지였다.
보라색 머리가 눈에 띄는 호진은 특유의 퇴폐미를 살린 스타일링을 받았는데, 그 모습이 우주와 정민과 대조되면서도 본인의 색을 제대로 살렸다.
뒤이어 나온 성훈은 니트로 된 목폴라를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차분한 성훈의 이미지와 꽤나 어울렸다.
“역시.”
박한솔은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분명 카메라에 잘 담길 것이다.
아마 팬들의 반응도 좋겠지.
이들이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분명 높은 위치까지 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마지막으로 나온 건하를 본 박한솔 디자이너가 엄지를 올렸다.
환하게 빛나는 백금발을 제외하면 평범한 스타일링이었지만, 건하의 모습이 다른 멤버들에게 밀리는 건 전혀 아니었다.
아이돌 스타일링과 디자인을 몇 번이고 했던 자신이었다.
배우부터 아이돌까지 얼마나 많은 연예인과 작업을 했던가.
늘 특별한 스타들을 담당했다. 국내 디자이너 중에 그보다 잘 나가는 사람은 몇 없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알고 있었다.
평범한 디자인을 특별하게 소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래서 건하가 더 대단한 거다.
평범한 디자인으로 빛난다는 게.
‘탐나네.’
물론 호진이 더 잘생긴 건 사실이다.
하지만 건하가 가진 자신감이 그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그가 가진 외모보다 더 멋지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저게 매력인데.’
호진의 숫기 없는 모습도 매력이지만, 사람들은 자신감 넘치는 사람을 더욱 선호하기 마련이다.
“더 작업하고 싶게 만드는 애네.”
건하의 패기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보았다.
묘하게 따로 노는 느낌의 올리오스가, 건하가 들어가면서 완전히 하나가 되는 모습을.
“진짜 탐난다. 정말로.”
* * *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시골 간이역에서, 올리오스 멤버들은 앨범 컨셉에 맞는 촬영을 이어갔다.
낙엽이 떨어지는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의 느낌.
카메라를 든 박한솔 디자이너는 올리오스를 보며 속으로 감탄을 삼켰다.
작업하는 도중에는 절대로 과한 칭찬을 삼가는 그녀였다.
그러나 건하를 찍던 와중에는 몇 번이고 감탄을 내뱉을 뻔했다.
작업을 중단하고 피사체인 건하를 위해 박수라도 치고 싶었다.
그 정도로 마음에 들었다.
앞, 뒤, 좌, 우. 어딜 찍어도 박한솔 디자이너의 마음에 쏙 들게 나왔다.
‘어디서 저런 애가 나왔지?’
그녀의 숙련된 기술 때문에 좋게 나왔냐고?
아니.
다른 작가들도 번갈아 가면서 각기 다른 멤버를 찍었다.
그러나 누가 찍어도 건하는 자꾸만 사람의 시선을 끌었다.
“물건이네.”
아무도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본인만 잘 나오는 게 아니다.
만약 그런 거라면 그저 외모가 사진을 살렸다고 말했을 텐데, 단체샷 그리고 두 명 혹은 세 명이 모여 찍은 사진도 건하가 끼면 맛이 달랐다.
아우라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얘는 모델을 해도 되겠는데?’
“조금 더 강렬한 느낌으로.”
“좋아요. 이번엔 부드러운, 약간 남사친 느낌이요.”
“자연스럽게. 좋네. 그대로.”
그녀가 디렉팅을 할 때마다 찰떡같이 반응했다.
연기에 소질이 있는 건지, 사진빨을 잘 받는 건지.
건하의 모습이 박한솔 디자이너의 눈길을 계속해서 사로잡았다.
너무 잘 맞춰주니, 박한솔 디자이너의 요구도 점점 전문적인 모델을 상대하는 것처럼 높아져만 갔다.
“그 자세 그대로 표정만 살짝 바꿔볼까요?”
“건하 씨, 한 번만 더 찍어보죠.”
“이번에는 건하 씨를 중심으로 해서….”
“좋아요. 멤버들 다 같이 시크하게.”
“편안하게 웃어 보실까요?”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오랜만에 느끼는 즐거운 촬영이었다.
박한솔 디자이너가 카메라를 놓은 채 건하를 보았다.
그는 여유롭게 웃으며 그녀를 봤다.
저 여유를 봐라.
베테랑 모델만큼이나 자연스러움에 박한솔은 한 번 더 감탄했다.
‘계속 작업하고 싶게 만드네.’
욕심나게.
박한솔만큼 건하 역시 놀란 마음을 속으로 숨겼다.
박한솔 디자이너가 보여준 사진을 하나하나 볼 때마다 탄성을 내질렀다.
‘끝내주네.’
포커스를 맞춰서 인물이 돋보여야 할 때는 과감하게 사이드의 초점을 풀어버렸고, 역 자체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색감을 아예 푸는 일도 있었다.
현장 반응이 나쁘지 않다.
특히 박한솔 디자이너가 나를 보는 눈이 반짝거렸다.
저런 눈빛을 잘 안다.
방송국 PD도 황이서 프로듀서도 간혹 저런 강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마음에 든 사람들이 짓는 전력의 눈빛.
작업자들의 열정을 이끌었을 때 짓던 표정이다.
저런 표정으로 함께 작업했을 때, 보통 좋은 결과물을 뽑아내기 마련이었다.
‘스킬을 뽑길 잘했다.’
이 맛에 스킬 뽑지.
한 시간 정도 촬영을 이어갔을 때.
“어?”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이네요.”
“눈이다.”
“이건 예상 못 했는데.”
하늘에서 겨울을 알리는 눈이 내렸다.
첫눈이었다.
“올해 첫눈이죠?”
“뉴스엔 얘기 없었는데.”
“올해는 첫눈이 빨리 내리는데요?”
황이서 프로듀서와 박한솔 디자이너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을 보며 말했다.
그들은 다소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눈이 오는 건 예정에 없었을 터였다.
“운이 좋네요. 첫눈을 맞으면서 찍는 앨범 화보라니. 올해 첫눈과 저희 첫 정규 앨범. 뭔가 딱 들어맞는 거 같지 않나요?”
내 말에 박한솔 디자이너와 황이서 프로듀서가 나를 보았다.
“첫눈, 첫 앨범….”
“뭔가 느낌이 좋죠?”
“건하 씨, 감각이 있네.”
나를 보며 말하던 박한솔 디자이너가 카메라를 들었다.
“앨범 자켓 컨셉, 가을 남자 말고 첫눈으로 가죠. 어때요?”
“괜찮겠어요? 눈이 내리기는 하는데, 양이 애매할 거 같은데.”
“눈이 부족하면 바닥에 깔리는 눈은 후처리로 만지면 돼요. 베스트는 쌓일 만큼 많이 내리는 거겠지만요.”
박한솔의 말에 황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우선 찍어봅시다.”
“오케이. 그럼 떨어지는 눈송이 아래에서 한번 찍겠습니다!”
박한솔이 간이역에 놓인 벤치를 가리켰다.
“여기에 다들 앉아 보시겠어요?”
그녀가 가리킨 벤치는 남자 다섯이 앉기엔 다소 좁은 의자였다.
“앞에 세 명이 앉고 뒤에 두 명이 서 있는 식으로 가죠. 뒤에 서는 건, 우주 씨랑 호진 씨로 합시다.”
“알겠습니다!”
뒤에 간이역이 보이는 긴 벤치.
그녀의 디렉팅에 따라 우리는 벤치에 앉았다.
내 기준으로 오른쪽부터 차례대로 정민, 나, 성훈이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그 뒤에는 우주와 호진이 차례대로 섰다.
다섯 명이 앵글 안에 쏙 들어가는 상태.
우리는 그대로 렌즈를 봤다.
“다들 자연스럽게 웃는 모습으로 찍을 거예요. 캐릭터에 맞게끔 연출할 테니 집중해 주세요.”
시원하게 웃는 우주를 시작으로 성훈도 정민이도 미소를 지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카메라를 보며 시원하게 웃었다.
박한솔 디자이너가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우리의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첫눈 아래에서 우리는 첫 정규 앨범의 표지 사진을 찍었다.
현장에 있는 이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담겼다.
사진 작업은 성공적이었다.
[실패까지: 23일 7시간 1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