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75화 (75/236)

<제75화>

우주의 수능이 끝나고 앨범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끌어냈다.

댄스 연습, 보컬 녹음, 동선 체크와 피부 관리, 식단 관리에 운동까지.

최상의 상태로 복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진효원의 앨범을 함께 준비하는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역시 우리 앨범을 준비하는 거라 그럴까.

숙소부터 소속사 사무실, 연습실까지 분주했다.

타이틀곡이 된 정민의 ‘All we once’는 약간의 다듬는 작업을 마치고 완전한 곡이 되었다.

가사까지 붙이고 녹음도 마쳤다.

뮤직비디오 촬영도 끝냈다.

데뷔곡과는 달리 캐주얼한 의상과 일상에서 볼법한 배경 속에서 촬영이 이어졌다.

촬영장의 컨셉은 자연스러움이라고 했다.

우리, 올리오스를 보여주는 느낌으로 가겠다고.

“좋아요. 한 번만 더 춰보겠습니다.”

그동안 연습한 안무를 선보였다.

타이틀곡이 바뀌어서 안무의 완성도가 부족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기우였다.

우리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안무를 마쳤다.

NG 없이 한 번에 촬영을 끝냈다.

“이번엔 멤버 개인샷 찍겠습니다. 표정 연기가 중요하니까 집중해 주세요.”

뮤직비디오 감독의 디렉팅에 따라 우리는 카페같이 조성된 스튜디오와 평범한 집처럼 연출된 스튜디오에서 뮤직비디오 촬영을 마쳤다.

의상 역시 캐주얼한 느낌이었다.

일상에서 한 번은 봤을 법한 배경과 의상, 전부 남친짤로 유명해질 법한 스타일이었다.

그런 의상과 세트장과는 별개로 무반주 상태에서 춤을 추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몇 번이고 다시 췄는데, 그럴 때마다 얼굴이 붉어지는 걸 참느라 고역이었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확실히 카메라 앞에서 무반주로 춤을 추는 건 어렵네.”

호진이마저 진땀을 흘렸을 정도로 힘든 과정이었다.

무반주로 추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부끄러운 건 변하지 않았다.

“이제 무대에 오르기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게 느껴진다.”

“후우, 떨린다.”

“그런데 11월 말이라 그런가, 이제 진짜 춥네.”

뮤직비디오를 찍고 나니 실감이 났다.

올리오스의 정규 1집을 세상에 보이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목이 저절로 움츠러드는 날씨였다.

우리가 컴백할 날이면, 지금보다 조금 더 추워질 것이다.

“다들 고생했어요.”

마지막 촬영을 마친 뮤직비디오 감독이 우리에게 말했다.

옆에 따라오는 황이서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그만큼 만족스러운 것이리라.

“영상이 많아서 편집 작업이 재밌겠어요.”

“잘 부탁해. 일전에 보여줬던 콘티처럼. 알지?”

“프로듀서님이랑 하루 이틀 일하는 것도 아닌데, 당연히 잘 알지요.”

“다음 촬영도 잘 부탁해.”

뮤직비디오 촬영장 분위기는 끝날 때까지 좋았다.

누구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감독과 스태프도 순조롭게 촬영을 이어갔다.

앨범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되었다.

이보다 더할 나위는 없을 정도로.

그러나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실패까지: 28일 15시간 12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으니까.

* * *

“화보를 찍는다고요?”

“그래. 이번에 앨범 컨셉에 맞춰서 화보도 찍고 앨범 자켓에 올릴 사진, 브로마이드 그리고 너희 굿즈로 판매할 사진을 찍을 거야.”

황이서 프로듀서가 우리를 불렀다.

“포텐이라고 알아?”

“포텐이요?”

“거기 잡지사랑 같이 작업하는 스튜디오에서 연락이 왔다.”

“스튜디오 이름이 뭔가요?”

“오리진 픽쳐스, 이번에 거기랑 같이 작업할 예정이야. 상당히 유명한 스튜디오야. 다들 같이하고 싶어서 난리인 곳이라고.”

“유명한 곳인가 보네요.”

“아마 연예인 화보 찍는 곳 중에서는 1티어일 거다.”

황이서가 엄지를 올렸다.

최고, 1등.

그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확실했다.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믿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 곳이랑 화보 작업이라는 건가요? 애 많이 쓰셨겠는데요.”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 진효원이랑 너희가 같이 선 무대를 보고서 찍어보고 싶다고 하더라. 화보 작업 아직 안 했으면 자기들이랑 할 수 있겠냐고.”

황이서의 얼굴에 웃음이 실실 흘러나왔다.

뭐가 그렇게 기쁜 걸까.

“여기가 예전에 몬스터즈 애들이랑도 같이 작업했던 곳이거든.”

“몬스터즈 선배님 말씀입니까?”

“진짜요?”

몬스터즈와 함께 했다는 말에 반응이 격렬했다.

“몬스터즈 애들 초반에 데뷔하기 전에 이 스튜디오랑 같이 작업했었어. 데뷔 앨범 화보부터 전용 브로마이드까지 전부다. 그리고 성공했지.”

“그런 스튜디오가 같이 작업한다는 거네요.”

“그래. 내게 있어선 성공의 상징이거든.”

유독 좋아하는 이유가 있었다.

“마침 너희 뮤직비디오 마무리 촬영하려고 생각해 둔 곳이 있으니까, 거기서 작업하면 될 거 같다.”

“알겠습니다!”

우리의 당찬 대답에 황이서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너희도 슬슬 주목을 받기 시작하고 있네. 아마 이번 앨범 성공하면 더 많은 사람이 너희를 볼 거다. GH 엔터의 아이돌, 성공한 아이돌, 제2의 몬스터즈 등등.”

말하는 황이서의 얼굴이 진중했다.

“다른 사람들이 너희를 치켜세운다고 자만하지 마라. 아이돌은 언제나 겸손이야. 그룹의 이미지를 해칠 일은 절대 하지 마. 알았어?”

“넵!”

방심과 자만이 사람을 망친다.

그건 아이돌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통용되는 말이었다.

조금 성공했다고 목이 뻣뻣해지고 굳어지면, 그대로 사장된다.

압도적인 재능이 있지 않은 이상.

특히 이미지가 중요한 연예계에서 더더욱 경계해야 하는 게 저 두 가지다.

스포트라이트를 오래 받으면 사람의 어깨가 필요 이상으로 올라가니 말이다.

“잘 아는 거 같으니까 여기까지만 말할게.”

말을 마친 황이서가 파일 하나를 꺼냈다.

두꺼운 파일에는 상당한 양의 사진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너희가 찍을 사진이다. 메인 컨셉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친구들끼리 모여서 여행을 가는 컨셉이고, 다른 하나는 남친 느낌의 컨셉이야. 둘 다 찍을 거다.”

사람이 없는 간이역에서 옹기종기 모인 남자들의 사진.

간이역 옆, 낙엽 지는 나무 아래 서 있는 개개인의 사진.

컨셉은 아마 단체샷과 개인샷의 차이일 거다.

하나하나가 눈을 끄는 사진이었다.

단순히 모델이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모델을 살리는 사진의 구도와 배경 선택까지.

사진마다 작가들이 달랐지만, 전부 상당한 실력자라는 게 사진에서 드러났다.

“바로 내일 지방으로 출장을 갈 거다. 강원도에 미리 알아둔 괜찮은 간이역이 하나 있어서 거기로 갈 거니까 준비해둬.”

“네.”

모두의 얼굴에 의욕이 가득 찼다.

그런 와중에 나는 황이서를 보았다.

GH 엔터의 기둥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최강훈 대표와 황이서 프로듀서라고 감히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언제까지 황이서에게 의지할 수는 없어.’

우리를 위해 일거리를 찾아서 가지고 왔다는 걸 안다.

그러나 언제까지 황이서에게 의지할 수는 없었다.

사업가의 본능이라고 해야 할까.

언젠가 내가 직접 일거리를 얻어다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물론 황이서가 들었다면 연예인은 멋지게 찍힐 생각만 하라고 했겠지만 말이다.

* * *

우리는 늘 타고 다니던 회사 차에 몸을 실었다.

“졸리다.”

“잠깐이라도 자야겠어.”

앨범 준비로 잠도 많이 못 자던 멤버들이 차 안에서 곯아떨어졌다.

차 안은 조용했다.

원래였다면 시끄럽게 떠들었을 우주도 눈을 감고 새근새근 잠들었다.

그만큼 이번 스케줄이 빡빡했다는 뜻이리라.

모두가 잠든 걸 확인한 황이서가 조수석에서 고개를 돌렸다.

앨범과 브로마이드, 앞으로 만들 굿즈에 올릴 사진을 찍는 작업이었다.

어느 때보다도 프로듀서가 필요한 스케줄이라 그도 함께였다.

“건하야.”

“예, 프로듀서님.”

“예전에 나랑 처음 만났을 때, 면접에서 한 말 기억하냐?”

처음 만났을 때라.

MAE에서 쫓겨나고 GH의 대표인 최강훈과 프로듀서인 황이서가 찾아왔을 때를 말하는 거다.

“그때, 얼굴 말고 장점이 없다고 했지.”

“예, 그랬죠.”

실제로 그랬다.

당시 황이서를 만났을 때의 나는 모든 포인트를 외모에 몰빵한, 그야말로 뒤틀린 연습생이었으니까.

“스스로 춤도 노래도 강점이 없다던 네가 나한테 그랬지. GH에 들어갈 만한 이유는 자신감과 5년짜리 실패에서 얻은 교훈이라고 했어.”

“맞습니다.”

그렇게도 말했다.

자신이 있었다.

두 손에 든 게 아무것도 없던 상태에서 사업을 성공시켜 중견기업 이상의 성과를 냈던 나였다.

한 번 성공한 사람이 갖는 자신감은 미증유의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으니.

황이서에겐 5년짜리 실패에서 나온 경험이라고 했지만, 사실 35년짜리 성공에서 나온 경험이었다.

룸미러를 통해 나를 바라보던 황이서가 입을 열었다.

“올리오스를 만들면서 내가 내린 결정 중에 너를 영입한 걸 가장 최고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가진 윤건하. 네가 가진 경험. 그게 여기까지 오게 만든 거 같다.”

황이서는 윤건하가 말한 말을 떠올렸다.

‘5년짜리 인생의 교훈 지닌 놈이 어디 흔한가요? 저 같은 멘탈 가지고 있는 놈이 한 명 있으면 뭔 일이 터져도 팀이 분열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의 말처럼 팀이 분열되지 않았다.

가족의 빚 문제로 허덕이던 호진과 작곡에 대한 부담감으로 지쳐가던 정민, 그리고 본인의 역할 때문에 헤매고 있던 우주까지.

전부 건하가 리더가 되어 케어해 줬다.

만약 건하가 없었다면.

‘12월 복귀는 생각조차 못 했겠지.’

아니, 그 전에 이 정도로 성공할 수는 있었을까?

아니라고 자신할 수 있었다.

그만큼 올리오스에서 윤건하의 존재는 독보적이었다.

또래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가끔 볼 때마다 자신의 또래가 아닌가 느껴질 정도였다.

황이서는 룸미러 너머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건하를 보았다.

한번은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늦지 않게.

리더라는 이유로 혼자서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는 건하가 부담을 느끼기 전에, 자신 역시 알고 있다고 말해야만 했다.

“애들 돌봐주느라, 리더 역할을 수행하느라 고생 많았다.”

황이서는 담담하게 건하의 고생에 감사를 표했다.

“리더인 네 고민은 내가 해결해 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알려줘.”

말을 마친 황이서는 다시 정면을 주시했다.

나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이런 표현이 어색한 걸까.

헛기침을 하는 황이서의 귀가 빨개지는 게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어색한 침묵 속에서 촬영지에 도착했다.

* * *

“지나가겠습니다!”

“조명 어디에 있어! 빨리빨리 준비 안 해?”

“죄송합니다!”

“의상팀, 아직 의상 준비가 안 됐어요?”

“리스트 분류 중입니다!”

소란스럽다.

아직 준비를 완전히 마치지 못한 듯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준비에 한창이었다.

“아니, 다들 지금 정신을 어디 두고 다니는 거야! 빨리 준비 안 해? 이러다 딜레이 되면 책임질 겁니까?”

나이가 조금 찬 중년의 디자이너, 이곳을 지휘하는 책임자로 보이는 여자가 우리를 보자마자 표정을 풀었다.

“아,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오랜만이네요.”

“몬스터즈 촬영 이후로 처음이네요.”

황이서와 인사를 마친 디자이너가 우리를 맞이했다.

“올리오스? 반가워요. 박한솔 디자이너라고 해요.”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호호호, 그 구호는 들을 때마다 힘이 나네요.”

박한솔 디자이너가 우리를 위아래로 살폈다.

“확실히 마스크가 사네요. 다섯 명이 같이 서 있을 때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요. 오늘 촬영 컨셉이랑 어울리겠어요.”

한참 우리를 살피던 박한솔 디자이너가 분장실을 가리켰다.

“그럼 메이크업부터 해요. 현장은 준비가 필요할 거 같거든요.”

“네, 알겠습니다.”

우리는 직원을 따라 가설된 분장실에 들어갔다.

스타일리스트들이 한 명씩 메이크업을 해줬다.

“어머, 진짜 잘생겼다.”

“팀 이름이 올리오스죠? TV에서 나오는 거 봤어요.”

“화장빨이 잘 먹히네요.”

연예인들을 매일같이 보는 스타일리스트들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졌다.

“감사합니다.”

솔직히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메이크업을 마친 우리 멤버들의 얼굴들을 잠시 봤는데.

‘잘생겼네.’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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