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화>
[멤버 히든 업적 - 정민의 속사정]
[미래의 마에스트로(S) 진화 조건 중, 스승에게 받는 튜터링을 달성했습니다.]
[보상: 20 오픈 마일리지]
[정민의 호감도가 상승합니다.]
[정민이 당신을 신뢰합니다.]
핸드폰에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떴다.
우리는 정민을 따라 작업실로 들어갔다.
카이가 작업실 안에서 우리를 보자마자 엄지를 올렸다.
“이번에 나온 노래 장난 아니야.”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갑작스러운 대선배의 등장에 우주를 비롯한 멤버들이 고개를 푹 숙이며 인사했다.
“야, 카이. 너 내가 부를 때는 들은 척도 안 하더만!”
황이서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카이가 두 귀에 손을 빠르게 가져다 댔다.
“귀 아파요. 작곡가한테 귀가 얼마나 소중한데.”
“이 자식이.”
“그리고 정민이 일이라는 걸 말해줬으면 바로 왔을걸요?”
“말했다. 이놈아.”
“그랬나요? 하하하. 왜 못 들었지? 이제 담당 프로듀서님이 아니라 그런가아?”
두 사람의 만담을 들으며 나는 정민에게 물었다.
“들어봐도 돼?”
“물론이지! 다들 들어줘. 이번엔 진짜 좋게 나왔을 거야. 확실해!”
정민의 얼굴은 마치 첫사랑에게 고백을 앞둔 풋풋한 고등학생의 그것과 비슷했다.
이렇게까지 자신감을 가졌던 적이 없던 거 같은데.
그만큼 정민에게도 이번 노래는 인상적이었다는 뜻이리라.
말을 마친 정민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따라란.
익숙한 멜로디다.
카이의 작업실에서 들었던 전주.
‘그걸로 하기로 했구나.’
하지만 도입부를 제외하고는 처음 들었던 때보다 훨씬 더 좋아졌다.
귀에 익숙한 머니 코드부터 시작된 멜로디를 듣는 순간, 어깨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좋다.
정말 좋아.
과거 숙소에서 들려줬던 노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
“오오.”
듣던 와중에 우주가 탄성을 질렀다.
호진은 어깨춤을 추기 시작했다.
성훈이는 놀란 듯 정민을 보았다.
“며칠 만에 확 바뀌었네.”
“카이 선배님이 많이 도와주셨어. 건하도 그렇고.”
“역시…. 믿고 있었다.”
성훈이 정민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했다. 이거 진짜 좋은데요. 프로듀서님, 안 그렇습니까?”
황이서는 성훈의 말에 대답도 하지 못할 정도로 열중하고 있었다.
처음 카이에게 한소리 하던 시시껄렁한 아저씨는 어디 가고 진중한 프로듀서의 얼굴로 정민의 노래를 감상했다.
그 모습을 본 성훈이 입을 다물었다.
저 모드로 들어간 황이서는 굳이 건들면 안 된다.
엄청 시니컬해지거든.
카이는 웃음을 참는 얼굴로 우리를 봤다.
뭐랄까.
아이에게 굉장한 선물을 전달하기 전에 보여주는 부모의 얼굴 같다랄까.
곡이 끝나고서도 몇 분 동안 황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턱을 쓸었다.
그가 고민할 때 내는 특유의 버릇이었다.
“이거 장난 아니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카이, 이거 네가 만든 거 아니지?”
“전혀 아니죠. 저는 옆에서 어떻게 만드는지 구경만 했어요. 가끔 조언 정도?”
“…정민이가 만든 노래라는 거네.”
“맞습니다.”
“쓰읍, 이러면 안 되는데.”
뭐가 안 된다는 건지.
입술을 깨물던 황이서가 말을 시작했다.
“정말 좋다. 노래가 너무 좋아. 노래 자체도 좋지만, 곡이 주는 느낌과 색깔이 너희랑 잘 맞는 게 더 마음에 들어. 욕심이 생길 정도로.”
“욕심, 말인가요?”
정민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 대답하자.
“그래, 욕심. 프로듀서로서 개인적인 욕심이 생겼어. 여러모로 힘들어지겠지만.”
그 욕심이라는 게 뭘까.
침음을 삼키며 한참을 고민하던 황이서가 입을 열었다.
“타이틀곡 바꾸자.”
“예?”
“이건 바꿔야겠다.”
타이틀곡을 바꾼다니.
이제 복귀까지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컨셉이 이미 정해진 타이틀곡을 중심으로 의상이나 무대들이 준비되고 있었다.
타이틀곡을 바꾼다는 건, 곡뿐 아니라 노래에 관련된 모든 걸 바꾸겠다는 건데.
“비용 손해도 있을 거고 앞으로 더 바빠지겠지만, 안 되겠다. 이건 그냥 수록곡 중 하나로 두기엔 너무 아까워.”
말을 마친 황이서가 정민에게 물었다.
“정민아,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이게 타이틀곡 감이라고 생각해? 만약 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만두마.”
평소의 정민이었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
겸손해하면서 기존 일정을 바꾸지 말자고 말했을 거다.
이해심이 깊은 아이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정민의 표정은 달랐다.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타이틀곡.”
얼굴에 자신감이 차올랐다.
뭐든 할 수 있다는 표정으로 황이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심이냐?”
“네.”
“…그러면 말이다.”
잠시 고민하던 황이서가 말을 이었다.
“앨범에 올릴 인트로랑 아웃트로도 준비해. 이 노래를 타이틀로 가져갈 테니까. 생각한 제목은 있니? 없으면 조금 더 생각해봐도 된다.”
“제목이요?”
황이서의 질문에 정민이 나와 멤버들을 보았다.
“하나 있긴 해요.”
말을 잇던 정민의 얼굴에 미소가 새어 나왔다.
“건하가 우리 그룹 이름의 뜻이라고 했던 ‘All we once’를 제목을 쓰려고요.”
“나쁘지 않네. 너희 소개 멘트와도 맞고. 그럼 그에 맞는 가사를 넣으면 되겠어. 작사가를 붙여줄게.”
“알겠습니다.”
“그럼 ‘All we once’로 타이틀곡을 잡고 들어갈게. 일이 많아질 테니 나는 바로 사무실로 간다. 너희도 단단히 준비해. 싹 다 바꿀 수도 있으니까.”
“네!”
황이서는 그대로 작업실을 나갔다.
“아, 그리고 음악 파일 바로 나한테 쏴줘. 트레이너들이랑 디자이너들한테 들려줄 거니까.”
“알겠습니다!”
그가 나가고 작업실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들이었다.
“이야, 진짜 바꾸셨네. 하긴 예전에 우리 앨범 때도 그랬어. 최강훈 대표님이랑 황이서 형이 우리 노래 듣고 타이틀곡을 바꾼 적이 있거든. 그게 ‘커피 한 잔’이었지.”
“그것도 타이틀곡이 바뀐 거였어요?”
카이의 말에 우주가 소리쳤다.
“그래. 그때 표정이랑 방금 정민이의 ‘All we once’를 들었을 때 표정이 똑같았어.”
그래서 웃음을 참는 얼굴이 되었던 거다.
대충 알고 있었구나.
황이서가 어떤 말을 할지.
“저 형의 보는 눈은 확실하니 잘될 거다. 그러니 힘내길 바랄게.”
“선배님, 감사합니다.”
정민이 고개를 푹 숙였다.
격려를 마친 카이도 돌아갔다.
“근데 정민이 형, 진짜 달라졌다.”
“어떻게 그렇게 확 바뀌는 거야?”
“고생 많았다.”
다들 정민에게 달라붙어 한마디씩 건넸다.
“다들 고마워. 너희 덕분이야. 너희 아니었으면 지금도 계속 헤매고 있었을지도 몰라.”
멤버들의 칭찬에 쑥스러워하던 정민이 내게 말했다.
“고마워, 리더.”
“부끄럽게 왜 그래.”
“리더라고 불릴 자격이 있지. 덕분에 슬럼프도 이겨낼 수 있었으니까.”
“카이 선배가 한 거지.”
“네가 만들어준 자리잖아. 요리도 작곡도 건하 네가 아니었다면 못했을 거야. 그리고….”
잠시 말을 머뭇거리던 정민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때 먹은 떡볶이랑 아이스크림, 맛있었거든.”
아무래도 먹는 게 정민의 스트레스를 제대로 풀어준 모양이었다.
“잠깐만, 둘이 몰래 먹은 거야? 왜 우리는 빼놓고 먹었어?”
우리만 맛있는 걸 먹었다는 사실에 우주가 입술을 비죽 내민 모습도 꽤 귀여웠다.
* * *
“흐으응~.”
새벽 일찍 일어나 양치질을 하던 호진이 콧노래를 불렀다.
정민이 작곡했던 ‘All we once’였다.
노래를 들은 순간부터 18번 곡이 됐는지, 호진이는 흥이 날 때면 항상 콧노래를 부르며 어깨춤을 췄다.
그건 호진이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거 계속 머리에 남는다.”
“그러게.”
우주도 성훈이도 방식만 다를 뿐 정민이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노래의 작곡가인 정민마저도.
“흐으으응~.”
‘All we once’를 흥얼거리며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정민이는 카이에게 스트레스 해소법에 대한 강연을 들은 뒤부터 다시 요리를 시작했다.
아무리 스케줄 때문에 바빠도 아침이나 저녁만큼은 직접 요리를 했다.
시간이 많이 들고 손이 많이 감에도, 꼭 자기가 해야겠다며 나섰다.
이제 본인의 루틴이 된 거겠지.
카이와 한진성에게 제육덮밥을 해준 뒤에 좋은 결과물이 나온 경험이, 정민의 작업 방식에 큰 영향을 준 거다.
“우주야, 맛있게 먹어.”
아쉽게도 데뷔가 얼마 남지 않아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한정적이었지만, 그 퍽퍽한 닭가슴살 도시락을 싸주는 것마저도 정민의 루틴의 하나가 되었다.
요리보다는 본인이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차린다는 행위 자체에 즐거움을 갖는 모습이었으니까.
어느새 11월 중순.
입동이 지나고, 날도 많이 추워졌다.
이제 보일러를 켜지 않으면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웠다.
오늘은 모두가 평소보다 훨씬 더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후우, 떨린다.”
오늘은 우주가 수능을 보는 날이었다.
이제 아이돌로 데뷔했는데 수능이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그래도 모든 고등학생이 치르는 시험.
우주에게도 학창시절의 추억 하나쯤은 있어야지 않겠는가.
닭가슴살 도시락을 챙겨준 정민이 우주의 손에 엿가락까지 쥐여줬다.
“인생에 시험 성적이 중요하지는 않다지만, 그래도 이왕 보는 거 최선을 다하길 바랄게.”
우주의 머리를 쓰다듬은 정민의 격려에 우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하고 올게.”
“너무 찍지만 말고.”
“그리고 점심시간 때 다른 사람들 도시락 보지 마. 그러다 식욕 돋는다.”
농담을 섞어가며 우주의 부담감을 덜어냈다.
시험 결과와는 상관없는 일이라지만, 수능이 주는 긴장감은 여전할 거다.
실제로 누구보다 새벽 일찍 눈을 뜬 우주였으니까.
우리는 우주의 시험장 근처까지 함께 가기로 했다.
괜히 소란을 일으켜 민폐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혼자 쓸쓸하게 가는 것도 안 좋을 거 같았다.
‘우리가 가주자.’
배웅해 주자는 건 내 의견이었다.
우주가 우리를 가족처럼 생각한다는 걸, 과거의 편린을 본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매니저가 모는 차를 타고 시험장 근처에 내린 우리는 우주를 배웅하고 멀리서 지켜봤다.
어떻게 알았는지 팬들이 학교 앞에 포진해 있었다.
‘원스’라고 했던가.
우리 올리오스 팬클럽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녀들은 학교 앞에서 따뜻한 커피를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건네거나, 엿과 사탕이 담긴 봉지를 건네주며 응원을 하고 있었다.
우주가 고등학생이라는 건 다 알고 있는 데다가.
-올해 수능을 치는 연예인.
이런 기사도 나갔다고 들었다.
그중에 우주가 한 자리를 차지했고.
비니를 쓰고 목도리를 두른 우주가 가방을 멘 채로 차에서 내렸다.
“시험 잘 쳐 우주야!”
“와서 커피랑 초콜릿 받아가세요!”
팬들이 우주의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흔들며 수험생들에게 커피와 초콜릿을 나눠주고 있었다.
현장엔 팬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수험을 치르는 학생과 그들의 가족, 여러 학교에서 각자 학생들을 응원하기 위해 온 학교 후배들로 북적거렸다.
그리고 팬들 중 대표로 보이는 한 명이 우주에게 달려왔다.
“저희가 준비한 수능 기원 선물이에요. 힘내요!”
“감사합니다.”
우주는 팬이 주는 엿과 사탕을 받으며 고개를 숙였다.
응원을 받아 힘이 난 걸까.
우주의 얼굴이 다소 폈다.
멀리 보이는 우주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나 진짜 아이돌 하길 잘한 거 같아.
우주한테서 문자가 왔다.
이모티콘이 가득한 문자에는 한결 가벼운 우주의 마음이 드러나 있었다.
우리는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우주의 뒷모습을 보며 속으로 응원했다.
* * *
나중에 가채점을 하고 보니 국어와 영어는 1등급을 맞았다. 아쉽게도 수학에는 약했는지 3등급을 맞았고, 사탐 과목도 2~3등급 사이로 들쭉날쭉했다.
내가 봤던 과거에선 우주가 공부를 못 했다는 것처럼 말했는데, 국어랑 영어를 1등급이나 맞을 정도라니.
확실히 교수 아들이라 그런가.
머리가 비상하네.
“역시 난 공부 체질이 아닌가 봐.”
좋은 성적을 맞고도 씁쓸하게 웃는 우주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우주 아빠는 전과목 1등급이라도 맞길 바랐던 건가?’
우주의 가족이 갖는 기대치는 평범함을 아득히 벗어났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