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71화 (71/236)

<제71화>

사실 잘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지.

호진이의 문제는 돈이면 해결이 가능한, 내게 아주 익숙한 문제였다.

우주의 문제도 어려웠지만 우주야 이미 잘하고 있었고, 본인의 자신감 문제였기 때문에 그가 잘하고 있음을 알려주면 그만이었다.

심지어 쉽게 깨라는 듯, 우주가 가진 고민의 본질을 보여줬다.

가족과의 문제.

우주의 가족이 그에게 보낸 여러 시선이 우주에게 큰 고민이 되어 무거운 짐이 되었던 거다.

그 짐을 모른 척 짊어지던 우주가 멘탈적으로 데미지를 받아 생긴 문제였다.

잘하고 있는 멤버의 자신감 회복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우주 문제로 같이 영상을 봤을 때만 해도 괜찮았던 거 같은데.’

본인이 일에 치이며 부담에 어깨가 무거워진 모양이었다.

“하아.”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주고 싶어도, 도움을 주고 싶어도 작곡이라는 시스템을 모르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러다 보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본인이 이전에 만든 작품에 짓눌려 다음 곡을 쓰지 못한다라.

단순히 그런 문제는 아닐 거다.

그랬다면 이전에 황이서에게 먼저 보내준 두 곡이 나왔을 리 없어.

진효원과 함께 작업하면서 얻었던 영감을 이용해 만든 두 곡.

황이서가 바로 컨펌할 정도로 퀄리티가 좋았다고 들었다.

그렇게 잘 만든 노래를 얼마 전에 만들고 나서, 이제는 안 된다?

‘다른 문제가 있어.’

그게 뭔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나 혼자서 그게 가능할까?

글쎄, 이게 단순한 회사 일이었다면 모를까.

지금은 불가능했다.

이런 상황에서 도움을 청할 사람이 몇 명 있었다.

한진성, 진효원 같은 선배 연예인이나 황이서 프로듀서.

개중에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곧바로 전화를 돌렸다.

발신음이 몇 번 들리기도 전에 상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건하야. 무슨 일이야?

‘한진성.’

올리오스의 선배 아이돌.

그리고 지금 최정상에 위치한 아이돌.

몬스터즈의 한진성이라면 도움을 줄 방법이 있을 거다.

“선배님, 잠깐 전화 괜찮아요?”

-물론이지. 누구 전화인데. 앞으로 나를 제치고 한국 최고의 아이돌이 될 후배 아니야.

“조만간 복귀해서 몬스터즈 넘으려고 준비 중입니다.”

-하하하! 그런 면이 마음에 든다니까. 심각한 일이야? 목소리가 조금 무겁네.

“선배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내 도움?

수화기 너머에서 흥미로워하는 한진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뭔데? 뭘 도와주면 될까?

“저희 팀에 정민이라고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알지. 키 크고 곱슬머리 친구, 웃는 모습이 강아지 같아서 기억하고 있지. 그 친구 문제였구나.

“들으셨습니까?”

-내가 들은 건 아니고, 이서 형이 얼마 전에 우리를 찾아왔었거든. 후배 중 한 명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황이서도 나름대로 정민의 케어를 위해 신경을 쓰는 모양이었다.

그게 잘 통하지 않은 거 같고.

-우리 앨범 준비부터 마무리하고 찾아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심각한가 보네.

“네. 많이 심각합니다. 본인 문제 때문에 결과물도 망가지고 있어요.”

-지금 어떻길래.

나는 정민의 문제에 대해 간단하게 풀어 설명했다.

현재 작곡가 문제가 생겨 정규 앨범 중 세 곡을 맡기로 했고, 세 번째 곡을 작곡하는 도중 부담을 느꼈는지 작업물이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얘기.

정확히 무슨 문제인지 알고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배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부탁까지.

이를 들은 한진성의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흐음…. 쉽지 않은 문제긴 하네. 부담이 작용한 거 같은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니.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

-내일 시간 만들어볼게. 그때까지 그 친구 컨디션 관리 좀 시켜줘.

“알겠습니다. 혼자 오시나요?”

-아니. 이쪽 방면에 나름 전문가인 친구 한 명을 데리고 갈 거야.

“몬스터즈 선배님이신가요?”

-그렇지.

“알겠습니다. 약속 장소는 선배님들이 편한 곳으로 잡아주세요. 저희가 가겠습니다.”

-알았어.

고마운 선배였다.

갑작스러운 전화에도 바로 나오겠다고 스스럼없이 말해주는 선배.

“잘 해결되면 이번엔 제가 고기 사겠습니다.”

-고, 고기를 사겠다고?

“네. 좋아하시잖아요.”

-하, 하하하, 좋아하지. 물론 좋아하지. 일단 데리고 갈 테니까

한진성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렇게 좋은가.

제대로 된 맛집을 찾아서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전화를 끊었다.

* * *

푹 쉬라는 말에도 정민은 작업실에 출근했다.

멤버들의 솔직한 평가에 자극이 된 모양이었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작업실에서 곡을 작업하는 정민의 모습에는 독기가 엿보였다.

“건하야.”

작업실 안을 잠시 들여다보고 있자, 앞을 서성이던 황이서가 나를 불렀다.

“잠깐 얘기 좀 하자.”

“네, 프로듀서님.”

휴게실로 들어와 담배 대신 껌을 씹던 황이서가 내게 물었다.

“숙소에서 무슨 일 있었어?”

“네. 있었습니다.”

숨겨서 뭐할까.

“혹시 음악을 들려줬니?”

“네.”

“하아….”

“짚이는 거라도 있으신가요?”

“그런 건 아니고. 내가 너무 많은 일을 줬나 싶어서. 본인이 할 수 있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일이었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말렸어야 했나 싶다.”

반사적으로 담배를 꺼내려던 황이서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래도 주어진 일거리에 부담을 느끼는 거 같다. 너희한테 노래를 들려준 것도 확신을 갖지 못해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고.”

“같은 생각입니다.”

“후우, 몬스터즈 애들한테 부탁했는데 개인 활동에 팀 활동까지 이미 시간이 없는 애들이라…. 도움받는 것도 힘들 거 같더라….”

황이서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내 말은 안 통하는 거 같다. 소속 아이돌한테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정민이를 부탁한다.”

정민을 걱정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소속 아이돌한테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걸 테지.

나는 황이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볼게요.”

“고맙다.”

황이서 역시 정민이 이상으로 바빠 보였다.

“그럼 정민이한테 할 얘기가 있어서.”

“내가 방해했구나. 수고해. 혹시 문제 생기면 미리 말해줘. 너희들이 말해주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참, 프로듀서님.”

“왜?”

“오늘 정민이랑 외출 좀 해도 될까요? 하루 정도 쉬는 시간을 주려고 하는데.”

나와 눈을 마주친 황이서가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갔다 와. 트레이너들한테는 내가 말해둘게.”

“감사합니다.”

씨익 웃어 보이며 정민이 한창 작업하고 있는 녹음실에 들어갔다.

“정민아, 뭐 해?”

“어? 건하야. 일찍 왔네.”

“작업 중?”

“아, 응. 너희가 말해줬던 부분이 자꾸 걸려서 손 볼 곳이 없나 싶어서.”

“작업은 좀 이따 하고, 나가서 얘기 좀 할까?”

“응?”

“산책 좀 하자고.”

우물거리는 정민의 팔을 잡아끌었다.

“뭘 만들려면 일단 머리도 식혀야 나오는 법이야. 너무 무리하면 과열된다.”

* * *

정민에겐 충격이었다.

노래가 좋지 않다는 말은.

앞서 최종 컨펌을 받았던 두 곡보다 이번 곡이 훨씬 더 괜찮다고 생각을 했으니까.

나름대로 자신도 있었다.

첫 곡이었던 ‘New Taste’보다 더 좋은 노래가 될 거라 자신했었다.

하지만 멤버들의 평가는 냉정했다.

좋지 않다는 말들.

너무 부담을 갖는 것 같다는 말들.

‘New Taste’는 정민의 노래였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건하의 도움을 받았다.

앞서 완성된 앨범의 자작곡 두 곡은 진효원과 함께 작업하며 얻었던 소스와 감각을 최대한 활용해서 만든 노래였다.

실제로 그녀에게 도움을 받았다.

‘여기서 데포르메를 주는 게 좋을 거 같아. 어때?’

디테일하게 조목조목 잡아주면서 노래의 좋은 맛을 살려줬다.

그러니 정민의 노래였지만, 이 역시 온전한 ‘그’의 노래는 아니었다.

그래서 자신만의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작곡가가 펑크가 났다는 황이서의 말에 무리하게 참가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두 곡은 완성되어 있으니 한 곡만 쓰면 된다고.

괜찮냐는 그의 질문에 정민은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번 고비만 잘 넘긴다면 스텝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New Taste’의 성공은 순전히 운이라고 생각했다.

준비하지 못한 채로 맞이하는 운은 생각보다 큰 부담이었다.

다음 노래도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정민을 옥죄었다.

그래서 더 고되었다.

떠오른 악상도 없이, 디테일한 작업 방향도 없이 시작한 곡 작업은 계속해서 지지부진.

결국 자신의 실력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정말 운으로 얻은 게 아닐까?’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스스로 하겠다고 선택한 일이었다.

여기서 물러서고 무너지는 건,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했다.

그래서 스스로 더 채찍질을 했다.

앞만 보고 달렸다.

그렇게 달린 결과가 이 모양이라니.

참을 수 없어서 쉬지도 않고 다시 작업실에 출근했는데, 그때 건하가 불렀다.

나가자고.

“요 앞에 산책이나 하면서 걷자. 선글라스 끼고 공원 다니면 알아보는 사람도 많지는 않을 거야.”

“그래도 사람들 몰려올 거 같은데.”

“그때는 인사해 주면서 자연스럽게 도망치면 되지.”

선글라스를 건넨 건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 새겨진 자신감.

저 자신감이 부러웠다.

“가자. 오늘 날씨가 꽤 포근해서 나가서 놀기 좋아.”

“하지만 우리 활동이 얼마 안 남았는데.”

“프로듀서님한테 미리 말씀드렸어. 합법 땡땡이라고.”

“…알았어.”

우주의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함께 영상을 봤던 시간을 떠올렸다.

그때도 혼자서 영상을 만들어서 모두 앞에서 틀었었지.

그때의 건하였다.

나도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우주의 문제를 해결했던 것처럼 내 문제도 해결해 주려는 걸지도 모르겠다.

정민은 건하가 내민 선글라스를 받아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나는 정민과 함께 사무실 근처에 있는 공원을 걸었다.

대단한 뭔가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그와 함께 공원을 걷다가 길거리에 있는 떡볶이 가게에서 떡볶이에 어묵 하나를 먹고, 길을 걷는 중에 보이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었다.

“이런 거 먹어도 돼? 우리 이제 활동 얼마 안 남았는데, 이거 먹었다는 거 들키면….”

“원래 땡땡이를 칠 때는 그런 거 생각하지 않는 거야. 그리고 열심히 먹은 만큼 더 운동하면 돼.”

정민이 아이스크림을 받았다.

“진짜 오랜만에 먹는다. 이 아이스크림.”

멜론 맛 아이스크림을 먹던 정민의 얼굴이 풀어졌다.

먹는 것만큼 스트레스를 풀기 좋은 게 없다.

우선은 굳어 있는 정민의 머리를 풀어주는 게 중요했다.

지금 정민을 데리고 나가는 건, 몬스터즈를 만나기 전에 긴장을 풀게 하는 목적이었다.

겸사겸사 뭐가 문제인지 들었으면 좋겠지만.

‘당장 묻기엔 타이밍이 안 맞네.’

그래서 그냥 자연스럽게 정민과 함께 거리를 걸었다.

목적 없는 산책처럼.

터덜터덜 걷다 보니,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

정민이 우수에 젖은 얼굴로 낙엽을 바라봤다.

“오랜만인 거 같아. 이렇게 단풍을 본 게.”

“그래?”

“매일 연습한다고 연습실에 틀어박혀 있었잖아. 그래서 그런가….”

우우웅.

감상에 젖은 정민의 말을 듣던 중에 전화가 왔다.

-한진성.

이번 문제를 해결할 조력자의 연락이었다.

“네, 선배님.”

-어디니?

“지금 공원 산책 중이에요.”

-그럼 연락처 찍어줄 테니까 여기로 와줄래? 우리 사무실에 있거든.

“알겠습니다. 선배님.”

전화를 끊자, 정민이 물었다.

“누구야?”

“아, 오늘 내가 너를 준비한 깜짝 게스트.”

“응?”

피곤에 찌든 큰 눈을 끔뻑거리며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

만약 정민에게 꼬리가 있다면 축 처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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