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70화 (70/236)

<제70화>

앨범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다.

진효원의 활동에 함께 나가면서, 우리 앨범도 준비하느라 바빴다.

“이번에 예능 나가야지.”

“예능 말입니까?”

“그래. 공동 작업해서 활동도 도와주고 있는데 같이 가자.”

그러는 동안 진효원과 함께 예능에도 출연했다.

메인 MC 세 명이 함께 진행하는 토크쇼.

최근 관찰 예능의 대세로 인해 공중파 예능 중에 남은 몇 안 되는 토크쇼 중 하나였다.

오랜만에 복귀한 진효원이 메인이었다.

새로운 컨셉으로 도전하는 그녀의 모습이 멋있다는 이야기들.

“올리오스 팀 모습이 되게 멋지게 나왔더라고요.”

“각자 개인기 있나요?”

“예전에 그 건하 씨 개인기가….”

우리들에게도 상당히 포커스가 맞춰졌다.

아마 진효원의 배려일 터였다.

그녀에게만 초점이 맞춰지지 않게끔 분량이 상당량 주어졌다.

그리고 예능이 그렇듯 짓궂은 농담도 이어졌다.

“우주 군, 올리오스 팀 내에서 이 사람은 좀 불편하다. 있나요?”

MC의 질문에 우주는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나를 가리켰다.

“건하 형이 조금 아재 같은 개그를 할 때 힘들죠.”

“아재 개그?”

우주는 그런 짓궂은 질문으로 분량을 뽑아냈다.

자연스럽게 내게 포커스가 돌아갔다.

“건하 형이 가끔 아재 같은 느낌 낼 때가 있어요. 옛날 유행어를 안다던가, 옛날 노래를 알 때가 있거든요.”

“아니, 얼마나 좋아하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내 아재 개그로 이야기가 전환되었다.

나는 <주중 아이돌>에서 그랬듯 아재틱한 개그를 선보였고, 이전과 비슷한 반응이 보였다.

민망한 분위기 속에서도 나는 웃을 수 있었다.

우주가 자기 컨디션을 되찾았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첫 공중파 토크쇼 녹화는 무난하게 끝이 났다.

나중에는 진효원의 도움 없이 우리의 힘만으로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그녀와 함께한 앨범의 마지막 활동이 끝이 났다.

* * *

진효원과 같이 하는 활동이 끝났지만, 우리의 앨범 준비 때문에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진효원 역시 우리가 빠졌을 뿐이지, 활동을 계속 이어갔다.

뒤풀이 파티를 할 틈도 없이 다음 일정을 시작했다.

12월에 정규 앨범을 선보이기 위해서는 바쁘게 움직여야 했으니까.

미술팀, 의상팀도 분주했다고 들었다.

예리 누나는 스케줄 때가 아니면 황이서에게 불려가 우리들의 의상 디자인 컨셉을 잡느라 바빴다.

황이서의 아이돌 팀은 우리 앨범을 위해 모든 역량을 쏟고 있었다.

그중 가장 바쁜 건 역시 정민이었다.

“템포가 너무 약해.”

“여기서 하이라이트인데 반주가 너무 세지 않나?”

“드럼이 너무 세게 들려.”

정민은 숙소에 와서도 자신이 작곡한 곡에 대한 피드백을 멈추질 않았다.

머릿속에 딱 오는 악상이 없는 걸까.

작업 기간 내내 노래가 몇 번이고 달라졌다.

갈아엎고 아예 새로 작업하는 모양이었다.

작곡 작업을 시작할 때 정민이 내게 먼저 말했다.

“이건 혼자서 해보고 싶어. 저번에 영상을 보면서 느꼈거든.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있다는 걸. 나도 그래 보려고. 정말 힘들면 먼저 말할게.”

나는 나를 잘 안다.

데뷔곡에서 정민을 도와줬던 건, 내가 알고 있던 노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다.

이미 완성된 정답을 본 상태로 조언을 주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그런 간단한 걸 한 것뿐이다.

내가 작곡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있을 리는 없었다.

그랬기에 정민의 말에 당연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정민의 피곤함이 더해갔다.

그의 눈 아래에 다크서클이 짙게 드리웠다.

“정민아, 가끔은 쉬는 것도 필요하다. 너무 부담 갖지 마.”

덤덤한 성훈마저 정민을 걱정할 정도였다.

힘들어하는 게 눈에 보였으니까.

미리 만들어뒀다던 두 곡은 황이서에게 컨펌을 받을 정도로 퀄리티가 좋았지만, 마지막 하나.

그 하나 때문에 자꾸만 벽에 막힌 듯 제자리 걸음을 반복했다.

“괜찮아. 다들 고생하는데, 나도 여기서 힘을 내야지.”

정민은 의지를 다지며 작업에 다시 몰두했다.

가장 먼저 작업실로 출근하고 가장 늦게까지 남아서 작곡을 했다.

그가 작곡에 매진하는 동안 부엌 담당은 번갈아 가면서 맡았다.

우주가 요리 실력이 형편없어서 그는 다른 잡일을 조금 더 시켰다는 일화를 남겼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곡은 계속 나왔고, 우리는 채남영이 기획한 안무를 노래에 맞춰 췄다.

완벽한 군무를 만들기 위해 연습실에 틀어박혔다.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계속 연습에만 매진했다.

그리고 연습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온 저녁.

모두가 씻고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되어서야 돌아온 정민이 터덜터덜 걸어와 거실에 풀썩 앉았다.

“완성됐어.”

“진짜?”

“고생 많았다.”

“끝났구나.”

그 한마디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 정민의 복슬복슬한 머리카락은 며칠은 씻지 못한 듯 떡 진 상태였다.

그나마 피부 관리를 위해 얼굴은 깨끗했지만, 지친 기색을 전부 지우진 못했다.

얼마나 정민이 이번 작업에 진심인지 모두 알고 있었다.

“내일 프로듀서님한테 들려주기 전에 너희한테 먼저 들려주고 싶어서. 물론 여러 가지 수정을 거치겠지만…. 그래도 그 전에 꼭 먼저 들려주고 싶었어.”

말을 마친 정민이 우리 앞에서 완성된 곡을 틀었다.

-♩♪♪♬♪♬♬

가만히 노래를 듣던 우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는 노래에 대해서 잘 모른다.

여러 활동을 하고 노래를 부르지만, 여전히 어떤 노래가 좋은지 나쁜지 정도만 알 뿐, 어떻게 작곡해야 하는지나 음악의 심미성은 어떤 건지 몰랐다.

그저 좋은 노래를 잘 부르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게 지금의 나였다.

그런 나조차도 지금 들려주는 정민의 노래가 나쁘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나빴다.

객관적인 기준에도 한참이나 미치지 못했다.

‘분명 정민이 스킬은 좋은 걸로 알고 있는데.’

나는 더듬더듬 정민이 가진 스킬을 떠올렸다.

[정민]

[나이: 20]

[노래: B+]

[춤: C+]

[외모: B+]

[예능: C+]

[스킬: 작곡(B), 미래의 마에스트로(S)]

그래. 비록 능력치는 낮을 수 있지만, 정민이는 B급 작곡 스킬에 S급 스킬인 미래의 마에스트로도 갖고 있다.

[미래의 마에스트로(S): 거장이 될 수 있는 재능, 음악적 흡수가 빠르며 성장 속도가 높습니다.]

특정 조건 세 개만 맞추면 훗날 SS급인 ‘마에스트로’로 스킬이 진화하는, 작곡 계열 스킬 중에선 가장 좋은 스킬.

1. 자신이 작곡한 노래가 다섯 곡 이상일 경우.

2. 작곡한 노래가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인정을 받을 경우.

3. 스승에게 튜터링을 받았을 경우.

사실 1번과 2번 조건은 해결법이 간단했다.

계속 성장하고 성공해 나간다면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조건.

마지막 3번 조건이 까다로웠다.

스승도 아무나 해줄 순 없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조건이 어려운 만큼 완료했을 때 SS급 스킬인 마에스트로 진화했을 때 상승 효과가 상당했다.

이렇게 좋은 스킬을 가진 애가 왜 이런 노래를?

내 기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게임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다.

좋은 능력치를 갖고 있으면 좋은 성과를 내고, 늘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는 모습만 보였다.

능력치는 성공의 척도였으며 육성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여기는 현실이지.’

스킬이 좋다고, 스탯이 좋다고 만능이 아니었다.

현실에는 개인의 정신력과 컨디션 그리고 스탯을 살리지 못하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다.

인간이 로봇처럼 가지고 있는 성능대로 딱딱 움직일 수 있다면 그건 인간이 아닐 테니까.

분명 정민에게 고민이 있는 거다.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정도로.

[멤버 히든 업적 - 정민의 속사정을 해결하세요.]

역시.

이게 뜰 줄 알았다.

그리고 핸드폰에서 시스템 메시지가 하나 더 떴다.

[실패 시: 정민의 보유 스킬 - 미래의 마에스트로(S) 상실]

이런 썅.

스킬을 거는 업적이라고?

성공 보상은?

[성공 시: 미래의 마에스트로(S) 진화 조건 - 스승에게 받는 튜터링 달성]

[성공 시: 기타 보상 오픈 마일리지 지급]

[성공 시: 정민의 호감도 상승]

그래.

정민을 어떻게든 성장시키라는 거네.

실패하면 작곡가를 잃을 각오를 하라는 걸 테고.

‘어려운 업적이네.’

히든 업적은 왜 난이도가 이런 거냐.

핸드폰을 집어넣은 나는 멤버들의 반응을 살폈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솔직하게 말해줘.”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말하는 정민의 몰골을 보라.

그가 얼마나 고생했고, 이번 작곡에 얼마나 많은 힘을 들였는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말하기 어려운 거겠지.

‘저번처럼.’

연습생 시절에 정민의 곡을 봤을 때를 떠올렸다.

내가 아는 노래였기에 정민에게 다소 쓴소리를 건넸고,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며 방향을 제시했었다.

그때도 올리오스 멤버들은 나쁜 말을 하지 못했다.

애들이 너무 착해도 탈이라니까.

이번에도 역시 악역은 내가 맡아야….

“솔직히 말하지. 별로야.”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성훈이 선수를 쳤다.

“별로…야?”

“응. 고생한 건 이해하지만, 예전에 들었던 다른 노래처럼 딱 오는 게 없어.”

“그런가….”

정민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나는 좋게 들렸는데.

정민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본 내가 끼어들까 했지만, 성훈이 여전히 정민을 본 채 말을 이었기에 순서를 기다렸다.

“뭐가 그렇게 부담되는 건데?”

“부담이라니? 무슨 말이야. 전혀 안 돼.”

“노래에 힘이 너무 들어갔잖아. 어떤 노래를 만들 건지 목적도 불분명하고, 신나지도 않아. 그렇다고 진효원 선배님의 노래처럼 우리의 특색을 살릴 수 있는 멜로디도 아니야.”

내가 생각했던 약점을 성훈이 하나하나 지적했다.

그의 지적이 이어질 때마다 정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런가….”

“이전에 반응이 좋아서 그런 거야? 벌써 네 성공에 취해서 맘대로 노래를 만들고 싶은 거야?”

“그런 건 아니야.”

“그러면? 이번 노래들이 ‘New Taste’만큼 성적을 못 낼 거 같아서 두려워?”

이번엔 정곡을 찔린 듯 대답이 없다.

“부담 갖지 마. 마음을 비우고 해. 우리 아직 신인이잖아. 실패해도 상관없으니까 천천히 작곡해 봐.”

“…알았어. 고마워. 호진이랑 우주랑 건하는 할 말 없어?”

정민의 시선이 우리를 향한다.

“나도 성훈이 형이랑 같은 생각이야. 조금 아쉬운 느낌?”

“민이 형은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그리고 정민이 나를 보았다.

“일단 지금은 쉬어. 피드백은 그다음에 하자. 너무 무리한 탓에 머리가 굳은 거 같으니까.”

“…알았어.”

내 말에 저의를 파악한 정민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쏴아아.

물소리가 들렸고, 우리는 조용해졌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는 성훈에게 말했다.

“의외네. 성훈이 형이 이렇게까지 말할 줄은 몰랐는데.”

“너 보고 배운 거다.”

“나?”

“그래. 좋은 얘기만으로는 애들을 성장시킬 수 없다고 했잖아. 처음 들어와서 정민이 노래 지적했을 때 말이야.”

그랬던 적이 있지.

“그때 깨달았다. 애들한테 좋은 말을 하는 것보다, 알아서 잘할 거라고 생각해서 침묵하는 것보다, 필요할 때는 쓴소리를 해주는 게 도움이 되겠다고.”

성훈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것도 타이밍이 있겠지만, 내가 잘했는지 모르겠네.”

“형은 최선을 다했어. 정말 좋은 타이밍이었어.”

“고맙다. 그런데 말이야.”

나를 보는 시선이 부담스럽다.

“네가 정민이 좀 도와줘라. 우리 중에 정민이랑 작곡 얘기를 한 건 네가 유일하니까.”

“그런가?”

그러기 위해선 우선 정민이를 푹 쉬게 할 필요가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