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65화 (65/236)

<제65화>

“우주한테 무슨 일 있는 거지?”

호진이마저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무심한 호진이마저 알 정도면 우주의 상태가 안 좋다는 것을 모르는 멤버는 없을 것이다.

그래. 애초에 무대에서 우주답지 않은 실수를 했는데, 모를 리 없지.

호진이의 질문에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뭐라고 말해야 하나.

우주가 품고 있는 문제가 생각보다 깊다는 걸, 내가 직접 말할 수는 없었다.

시스템의 힘을 빌려 과거를 봤다는 것만으로 내가 우주의 문제를 단정 지을 수는 없을뿐더러.

이런 건 단순히 우리끼리 말한다고 해서 풀릴 문제도 아니었다.

“우주가 최근에 굉장히 힘이 없어 보였잖아. 뭐 때문인 거야? 역시 수능 때문인가? 얼마 뒤면 수능이잖아.”

맞다.

아직 우주가 고3이라는 걸.

나는 잊고 있었다.

고3이면 아직 어린 학생이다.

아직 몇 달은 지나야 성인이 되는 사춘기 청소년.

한 숙소에서 생활하며, 매일 함께 지내 간과하고 있었지만, 미래와 현재 사이에서 한창 갈등할 나이다.

어쩌면 우리는 언제나 밝고 활기찬 우주의 모습을 보고, 막상 우주에게 너무 무심했는지도 모른다.

“수능 때문은 아닐 거야. 아마 컨디션 난조인 것 같은데, 본인도 심란할 거야. 너무 티는 내지 마. 부담가질 수도 있을 것 같고.”

“괜찮은 거야?”

“조금 쉬면 괜찮아질 거야. 우선 우주가 기운 차리게 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으니까 도움 필요하면 바로 얘기할게.”

“알았어. 이런 건 나보다는 건하 네가 잘 알겠지. 필요하면 말해.”

정민이도 그렇고 호진이도 그렇고 나에 대한 신뢰가 너무 깊다.

“우선은 모른 척해줘.”

지금 우주에게는 서투른 위로가 통하지 않았다.

여기서 한마디 해봤자, 승리자가 내뱉는 가식적인 위로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우주의 상처만 들쑤시는 일이었다.

내가 엿봤던 과거에서, 우주의 형들이 했던 말들을 생각나게 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방법이 없을까?’

아직은 괜찮지만, 우주의 컨디션 난조는 우리에게 있어 꽤나 심각한 위기였다. 지금의 우주는 느끼지 못하는 것 같지만, 우주가 팀에서 해주는 일들은 결코 적지 않았으니까.

호진이나 성훈이는 대외적으로 말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둘 다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우주의 말을 받아치면서 차갑고 엉뚱한 이미지를 발산하는 게 매력이었다.

정민이? 그나마 개인적인 캐릭터가 확실하긴 하지만, 마찬가지로 활기를 심어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아니, 오히려 나는 예능에선 마이너스다.

내 실수를 우주가 몇 번이고 커버를 해줬는데.

하지만 지금 우주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그렇다면 우주가 못 보고 있는 것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가.

‘칭찬을 해주는 건 너무 단순하고….’

중학생이 되기도 전, 어렸을 때부터 천천히 계속 쌓인 앙금이었다.

그리고 나와의 관계가 아닌, 우주가 생각하는 모두와의 관계이기에 혼자서 해결할 수도 없었다.

데드라인은 내일 저녁까지.

다른 멤버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면, 그보다 더 일찍 해결책을 강구해야 했다.

우주를 위해 특별한 축하를 해준다는 식의 아이디어는 전부 보류했다.

효과가 있을 거 같지도 않고, 작위적인 칭찬은 오히려 우주에게 부담만 주는 독이 될 수 있었다.

핵심은 그거였다.

작위적이라는 느낌 없이, 우주 스스로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깨닫는 것.

우주 본인이 그걸 느끼도록 하는 게 베스트였다.

그런데 어떻게?

시간이 점점 흐르고 아침 해가 다가오고 있는데도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았다.

이대로면 회사 다닐 때의 최종병기였던, 삼겹살에 소주 한잔하면서 취중 진담을 하는 것만 남을 수도 있다.

근데 우주는 미성년자라 이것도 안 되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내일 저녁 말고 모레 저녁에 보자고 할걸.

‘시간이라도 멈췄으면….’

시간?

순간, 번뜩하고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우리가 하지 못하는 것과 우주가 할 수 있는 것, 우주는 잘하고 있으며 우리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무리할 필요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방법.

앞에 생각했던 것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방법이라 우주는 그 속뜻을 눈치채고 반감을 느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 방법을 위해선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모두의 도움이 있어야만 한다.

‘이 방법밖에 없다.’

한나절의 시간밖에 남지 않은 지금, 쓸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실패로 끝난다면?

그때는 뭐.

‘올리오스 끝나는 거지.’

* * *

다음 날, 나는 아침부터 모두에게 저녁에 모이자고 말해두었다. 다행히도 모두 저녁에 시간이 되었고, 연습이 끝난 뒤에 거실에서 모였다.

“근데, 건하가 왜 부른지 아는 사람?”

“일단 오라고 해서 온 건데.”

“나도.”

거실에 옹기종기 앉은 채로, 왜 불렀냐는 듯 나를 바라보는 올리오스 멤버들.

평소라면 가장 활기차게 이야기를 주도했겠지만, 우주는 오늘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낮의 연습하는 내내 실수가 끊이질 않았고, 태도 역시 그리 좋지 않았기에.

황이서는 직접 말하지만 않을 뿐 우주에게 뭔가 있다는 걸 직감하는 눈치였다.

그 우주가 무대에서 멘트를 저는 걸 봤는데,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멤버들과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다들 갑자기 불러서 미안. 같이 했으면 하는 게 있어서.”

“어차피 저녁도 먹어야 하니까. 그래서 왜?”

“우리, 데뷔하고 지금까지 활동했던 것들 모니터링 하자.”

“모니터링?”

“그래.”

내 말을 들은 다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우리 방송할 때마다 같이 봤잖아. 음악 방송도 보고, 예능 나갔던 것도 봤는데 또 보자고?”

호진이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방 때 보는 건 당연하지. 그런데 생방 때는 당장 TV 보랴, 반응 보랴 정신없잖아. 요새는 연습 시간이랑 겹쳐서 제대로 못 봤던 것도 있었고. 안 그래?”

“몇 개 못 챙겨본 것도 있긴 하지.”

내 말에 힘을 실어주는 성훈의 말에 다음 말을 이었다.

“이번 기회에 우리가 활동하면서 잘했던 거 못했던 거, 한 번 짚고 넘어가면 좋을 거 같아서. 먼저 뭘 잘 못하고, 뭘 잘 하는지를 알아야 하지 않겠어? 자유롭게 서로 의견 주고받으면서 보면 좋을 것 같아.”

운동선수들은 슬럼프를 맞았을 때,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플레이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며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몇 번이고 확인한다고 한다.

이번에 우주를 위해 준비한 자리도 그것을 위함이었다.

“그걸 다 보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텐데….”

호진이 약간 귀찮다는 듯 투덜거렸다.

“시간이야 걸리겠지만, 하나씩 볼 때랑 한 번에 볼 때랑 느낌이 다르지. 반복하는 실수가 보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잘하는 부분도 새로 보일 수 있으니까.”

“복습 같은 거네.”

“그렇지.”

정민이가 뭘 좀 아네.

앞의 약간 투덜거리는 듯한 호진의 말도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눈치 빠른 우주는 ‘혹시 이거 나 때문에 모인 건가?’라는 눈빛을 슬슬 비치고 있었으니까.

설마 진짜 그래서 모인 거라면, 대놓고 귀찮다고 투덜거리겠어?

“자, 그럼 틀겠습니다.”

나는 황이서에게 부탁해서 모은 영상을 틀었다.

가장 먼저 나오는 건 ‘Angel’의 데뷔 무대였다.

아쉽게도 첫 테스트 공연 영상은 녹화는 했으나 유출 위험이 있다고 주지를 않더라.

음악 방송.

아무것도 모르는, 진짜 첫 무대.

-기다리고 있어.

-세지 못할 만큼 그 많은 우연 중.

-하나를 만나 네가 내게 다가오기를.

무대에서는 호진이와 성훈이 유독 돋보였다.

“성훈이 형 고음 올라가는 거 봐.”

“호진아, 네가 확실히 무대 위에서 빛난다.”

호진이는 성훈의 음색을, 정민이는 호진이의 춤을 칭찬했다.

칭찬이 나올 수밖에 없는 실력이었다.

나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묵묵히 영상을 보았다.

‘Angel’의 무대 영상이 지나가고, ‘New Taste’의 영상이 나왔다.

“이게 정민이가 작곡한 노래잖아.”

성훈의 담담한 말에 담긴 정민에 대한 기특함이 느껴졌다.

서로 간에 칭찬이 오갔다.

우주 역시 웃으며 형들의 실력을 칭찬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저 미소를 짓는 우주의 마음속에 다른 것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계속해야만 했다.

그 다른 것들을 꺼내고, 우리의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서 필요한 단계였으니까.

* * *

‘뭐지?’

정민은 갑작스럽게 시작된 모니터링에 의문을 가졌다.

갑자기 이걸 왜 하는 거지?

건하는 활동이 더 바빠지기 전에 강점과 약점을 살피기 위함이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본격적인 활동도 아니었고 진효원 선배님의 활동에 숟가락을 얹는 정도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모니터링이라니.

물론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막상 모니터링을 시작하고 나니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었다.

고작 한 달 조금 넘는 정도지만, 한참은 지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화면 속에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어색했다.

‘참 어리숙하네.’

미숙한 자신의 모습이 웃기고 재밌었다.

부끄럽기만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건하의 말처럼 도움이 됐다.

잘하는 걸 볼 때는 뿌듯했고, 못하는 걸 봤을 때는 다음에는 조심하자고 다짐하는 자신이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 성훈이나 호진, 우주가 자신의 자작곡을 칭찬해줄 때는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

“별거 아니야. 하하핫.”

둥실둥실. 동료들에게 인정을 받는 것만큼 기분이 좋은 게 어디에 있을까.

그렇게 무대 영상이 끝이 났다.

음악 방송 영상이 끝나고 <주중 아이돌>이 나왔다.

“이야, 이것도 추억이다. 저기 나갔을 때 엄청 떨었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그때의 기억을 회상했다.

참 겁도 나고 재밌었는데.

그때, 화면 속 건하가 말도 안 되는 개인기를 선보였다.

-입을 이렇게 읍, 하고 닫고…. 살. 려. 주. 세. 요!

-…….

-…….

“아으, 오글거려.”

“아, 이거!”

“건하 넌 다 좋은데, 유머 센스는 좀 키워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

“안 그래도 그래서 요새 인터넷에서 유머를 조사하고 있어.”

“…그런 부분이 문제인 것 같아.”

“아니면 차라리 이런 컨셉으로 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리얼 노잼인 아재개그 컨셉.”

“근데 건하는 컨셉이 아니잖아….”

그렇다고 무조건 서로에게 덕담만 하는 분위기는 또 아니었다.

서로에게 느끼는 아쉬운 부분이 있으면 가감 없이 말했고, 함께 영상을 보는 당사자도 그것을 알기에 순순히 수긍했다.

그리고 그때, 건하가 준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우주의 목소리가 TV에서 흘러나왔다.

-예전에 유명했던 성대모사 개인기 해보겠습니다!

“오, 우주가 여기서 하드캐리했지 진짜.”

“맞아. 이때 우주 아니었으면 분위기 엄청 안 좋아질 뻔했잖아.”

정민과 호진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

-넵! <막장도시>에서 감초 역할로 유명했던 정이수 씨의 성대모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우주가 분위기를 살렸지.”

성훈도 한마디를 했다.

거의 이구동성으로 감탄이 나왔다.

우주가 다급하게 튀어나와 개인기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순간.

-같은 동포끼리 왜 이럼까. 합법된 지가 언젠데.

“맞아! 여기!”

“하하하하!”

“이게 분위기가 웃겨. 분위기가.”

“근데 우주 너 이거 원래 할 줄 알았어? 아니면 즉석에서 한 거야?”

“즉석에서 한 거긴 한데….”

이걸 즉석에서 했다고? 미친 거 아냐?

녹화 당시에는 그냥 재밌다, 살았다는 정도였고 본방 때도 자기 실수만 찾다 보니 못 느꼈는데.

영화와 오버랩하는 적절한 영상 편집과 자막이 붙자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나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 그때 우주 없었으면 아찔했을 뻔했다니까?”

“그, 그런가…?”

“나는 솔직히 건하 성대모사 듣고 오늘 녹화 망했다, 하고 있었어.”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슬쩍 중얼거리는 건하는 일단 두고.

늘 생각하고 있었기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이었다.

만약 우주가 없었다면 저 날의 녹화는 통편집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돌에게 필요한 능력은 춤과 노래뿐만이 아니었고, 그 부족한 것을 언제나 우주가 채워주고 있었기에 우리는 ‘올리오스’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우주가 기특했다.

-성훈이 형이 대기실에 있으면 하는 로봇 춤도 보여 드릴게요.

“…저것도 즉석에서 한 거냐?”

“아니, 저건 재밌어서 평소에 몇 번 따라 했어.”

실내 습도가 높아서 그런가, 성훈의 눈빛이 약간 촉촉하게 젖는 것 같았다.

정민이 우주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말했다.

“이렇게 보니까 진짜 우주가 예능은 거의 멱살 잡고 끌고 가네.”

“확실히 예능에서 빛난다.”

“미래 한국을 휩쓸 예능돌! 최우주!”

“예능의 신, 말 그대로 예신이라고 할 수 있지.”

호진과 성훈마저 키득키득 웃으며 우주에게 말했다.

“그, 그런가? 아직 부족한 게 많은데…. 그리고 댄스나 노래도 좀….”

“뭐, 그렇게 치면 만능인 것처럼 보이는 건하도 예능감이 떨어지니까.”

올리오스 다섯 명은 모두 잘하는 게 있고, 못하는 게 있다.

내가 못하는 게 있어도, 내가 잘하는 걸 잘하면 된다.

내가 잘하는 거에서 실수하면, 다른 사람이 잘하는 거에 조금은 기대도 된다.

아직 부족함이 많은 올리오스였기에, 영상을 볼수록 이미 그러고 있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다.

성훈의 가창력이 흔들릴 때는 정민이 뒤에서 받쳐주고.

호진의 댄스가 벅차 보일 때는 우주가 커버를 쳐주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들이 많았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한 팀으로서 잘 헤쳐나가고 있었다.

‘이것 때문이었나?’

정민은 건하를 슬쩍 바라봤다.

이런 때 가장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스타일인 건하였지만, 별다른 칭찬도 지적도 없이 묵묵히 TV만 보다가 가끔 핸드폰을 바라볼 뿐이었다.

자기 이야기가 나왔을 때 리액션을 치는 정도?

그 외에는 그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멤버들을 옆에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건하가 왜 이런 자리를 마련했는지 조금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성훈이 형, 노래 부르면서 춤추기 힘들겠지만 유독 팔이 흔들려. 의식하고 쭉쭉 피는 게 좋겠다.”

“우주야, 너 고음 좀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아. 너무 불안정하다, 지금.”

“호진이 형, 인사할 때나 진행할 때 목소리 좀 더 키울 수 있겠어?”

“힘내볼게.”

모니터링은 계속 이어졌다.

처음에는 성훈과 호진, 정민이 주로 입을 열어 칭찬이나 지적을 했지만, 어느새 우주도 자연스럽게 그사이에 끼어들었다.

처음에는 듣기만 하던 우주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걸 보자 정민은 조금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모니터링이 끝날 때까지, 건하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