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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62화 (62/236)

<제62화>

“다들 고생했어.”

숙소로 돌아온 우주는 괜히 기분이 가라앉았다.

애써 웃어 보였지만, 그 웃음이 밝지만은 않았다.

라이브 방송에서 유독 건하와 케미가 잘 맞던 호진의 모습이 자꾸만 생각났다.

‘건하 술 못해요. 완전 술찐.’

방송에서 돋보일 정도로 두 사람의 케미가 좋았다. 농담을 주고받으며 호진이 형이 먼저 건하 형을 놀렸다.

서로서로 밑밥을 깔아주고 그로 인해 터진 하이라이트를 제대로 받아먹었다.

평소의 호진과 달리, 두 사람의 티키타카는 가히 환상적이었다.

평소에 보여주던 두 사람의 모습은 이렇지 않았다.

두 사람이 친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호진이 형의 저런 모습은 처음이야.’

호진이 타인에게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게 흔치 않은 일이었다.

자신과 이야기를 할 때도 호진이 받아주는 게 대부분이었다. 굳이 특별한 게 있다면, 가끔 엉뚱한 소리나 개그를 하는 정도?

그러나 건하랑 얘기를 나누는 건 아예 달랐다.

본인이 먼저 그런 식의 농담을 하는 건 처음 봤다.

우주에게 보여줬던 것과는 다른 호진의 모습에 옛날 생각이 났다.

‘우주 너는 몰라도 돼.’

‘우리끼리 가자.’

‘아, 우주는 안 좋아할 줄 알아서 안 불렀는데.’

자신만 두고 놀던 친형들.

그들만 가졌던 공감대.

가족 구성원 중에서 우주만 소외시키는 친형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다음에 같이 가면 되지.’

그러나 단 한 번도 우주를 데리고 함께 어딘가를 놀러 간 적이 없었다.

늘 그랬다.

우주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혼자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기들처럼 공부에 매진하지 않고, 아이돌이라는 꿈을 가졌다는 게 이유였다.

그래서 우주는 겉돌지 않기 위해 형들의 눈치를 봤다.

조금이라도 다른 기색이 느껴지면 그걸 캐치하고, 따라갔다.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다.

GH 엔터의 특급 인싸 우주는 그런 이유로 태어났다.

‘건하 형이나 호진이 형이 그럴 리 없어.’

우주만 따로 두고 자기끼리만 다닐 형들은 아니었다.

그런데 과거 형제들에게 느꼈던 트라우마가 우주를 자극했다.

‘진정하자. 그냥 형들끼리 친해진 거잖아.’

신경 쓰지 말자.

별일 아니야.

오늘 칭찬도 받았잖아.

성공적인 라이브 방송이었다.

X-라이브는 나름 성공한 아이돌은 꼭 만드는 채널이었다.

첫 방송의 성적에 따라 앞으로 팬들이 얼마나 오는지 가늠하게 되는데, 올리오스의 첫 방 성적은 상당히 좋았다.

담당 PD도 놀랄 정도로 좋은 성적이었다.

‘우주 군이 확실히 멘트가 좋네요. 라이브 방송 경력이 따로 있나요?’

자신을 콕 집어서 말하는 PD의 칭찬도 있었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나도 내 역할을 잘하고 있어.

“우주야, 무슨 일 있어?”

그때 정민이 다가와 물었다.

그 모습이 복슬복슬 큰 강아지가 눈을 빛내는 얼굴 같다고 생각하던 우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도 아니야.”

“진짜로?”

티가 나나?

나름대로 숨긴다고 숨겼는데.

우주는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긁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혹시 문제 있으면 나한테 몰래 와서 말해줘. 내가 입이 무겁잖아.”

정민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고마운 형이다.

늘 웃어주고, 팀에서 엄마처럼 고민을 불만 없이 들어주는 형.

그래도 이번 일은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응.”

마음이 무겁다.

‘우주 너는 아직도 그러는구나.’

‘네 형들 좀 닮아봐라.’

‘연예인? 갑자기 무슨 연예인?’

‘학교를 그만둔다고? 제정신이야?’

‘성공한다는 보장은 있어?’

아이돌을 해보겠다고 말했을 때, 수없이 들었던 가족들의 핀잔이 떠올랐다.

아이돌을 한다고 했을 때 쏟아지던 눈초리들.

GH 엔터에 들어와 연습생이 들어왔을 때에도 싸한 집안의 분위기.

그 순간마다 느꼈던 가슴의 따끔거림.

괜찮아.

잘하고 있어.

예능에서도 잘하고 있잖아. PD님도 칭찬해 주셨어.

나는 짐 덩어리가 아니야.

‘이 팀에서 내 역할은 아직 있어.’

우주는 두 사람의 케미로 인해 자신이 묻히는 미래를 상상했다.

막으려고 했지만, 한 번 떠오른 상상은 망상이 되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나는 짐 덩어리가 아니야.

꿔다놓은 멤버 중 한 명이 되지도 않을 거야.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절대 안 될 거야….”

그러나 우주의 목소리엔 자신이 없었다.

어쩐지 초라해지는 우주였다.

형들끼리는 친해졌는데 혼자만 울적해진 자신이 미웠다.

믿지 못하고 혼자 불안에 떠는 자신이 너무나도 약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건하 형, 다 씻었어?”

지금 이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숨기는 건 익숙하니까.

* * *

-저희가 다음 주에 깜짝 라이브를 할 예정이에요.

“라이브라고?”

X-라이브를 보던 김다빈은 주먹을 쥐며 일어났다.

-정확한 장소와 시간은 라이브 X-라이브가 끝나고 GH 엔터의 SNS에 올라갈 거예요.

-공연 끝나고 짧지만 사인회도 진행할 예정이라 많이들 오셨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서둘러 호진이 말한 GH 엔터의 SNS에 들어갔다.

다음 주 목요일.

장소는 홍대.

사람들이 그리 많이 다니지 않는 시간이었다.

아마도 사람이 많이 몰리는 시간대를 일부러 피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참가하는 사람도 적을 테니.

“무조건 가야 해.”

주먹을 불끈 쥔 김다빈의 얼굴에 굳은 의지가 깃들었다.

* * *

“다들 어때? 이제 좀 익숙하지?”

오랜만에 우리를 따라온 황이서가 조수석에서 물었다.

“홍대에서 공연할 줄은 몰랐지만, 실수 없이 잘할 수 있어요.”

“잔뜩 기대하고 있습니다!”

요 며칠 기운이 없어 보이던 우주도 힘차게 대답했다.

무대를 앞두고 떨리는 마른 입술을 핥았다.

“크크크, 자신 있어 보이는 모습이라 보기 좋다.”

황이서가 큭큭 웃으며 전방을 주시했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몰릴 때를 대비해서 오늘은 황이서까지 함께였다.

팬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기회였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일어날 수 있었다.

혹시나 흥분한 팬이, 아니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거수자가 갑자기 우리에게 달려든다면 준비한 무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할 수도 있었다. 심각하면 안전까지 위협할 수 있기에 황이서가 경호원도 불렀다고 들었다.

유난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안전은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며 황이서가 밀어붙였다.

“내가 노파심에 하는 거니까 너무 걱정 마라. 별일 없을 거다.”

“걱정 안 합니다. 프로듀서님!”

“오, 호진이 웬일이야? 오늘 되게 기운 넘쳐 보이네.”

“힘내야죠! 여기서 잘해야 저희 다음 활동에도 도움이 되는 거 아니겠어요?”

“크크, 호진이가 잘 알고 있네. 맞아. 이번에 팬 서비스를 확실하게 해서 팬이 너희를 응원하고 싶게 만들어야지.”

“열심히 할게요!”

“호진이가 의욕이 넘치는 모습이 왠지 낯서네.”

차가 주차장에 도착하고, 우리는 우르르 동시다발적으로 내렸다.

“어? 저기 뭐야?”

“이야, 잘생겼다.”

“아이돌 같은데? 복장도 그렇고.”

홍대 거리엔 사람들이 적잖이 있었다.

거리에서 인디 밴드들이 공연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감미로운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우리는 따라오는 시선을 느끼며 공연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공연장.

2백 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작은 공연장으로 들어갈 때까지 사람들의 시선을 받아냈다.

흥미를 끈 걸까.

우리가 들어간 소공연장에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이곳에서 매일같이 크고 작은 가수들이 공연을 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지금은 스태프들이 준비를 한다고 바빴다.

공연장에서 짧은 공연이 끝나고 팬미팅까지 진행되니, 그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아, 오셨어요?”

공연장 내부로 들어가자 젊은 현장 스태프가 우리를 반겼다.

“저번에 연락드린 GH의 황이서 프로듀서입니다. 이번 무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이죠. TV에서 봤습니다. 요새 그렇게 핫하다면서요? 하하하.”

우리는 스태프에게 여유롭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이야, 목소리가 우렁차네요. 느낌 있습니다. 우선 세팅 다 끝나려면 20분은 더 기다려야 합니다.”

“그럼 간단하게 리허설만 할게요. 우리 동선을 좀 짜야 할 거 같아서요.”

“편하게 하세요.”

우리는 무대 위에서 간단하게 합을 맞췄다.

춤을 출 때 어디를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간단하게 라이브를 하며 마이크 볼륨도 잡았다.

“관객들 입장할 때까지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대기실에서 쉬고 계세요.”

리허설이 끝나자마자, 스태프가 우리를 데리고 대기실로 안내했다.

무대 뒤편은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여유로웠다.

방송국은 그야말로 1분 1초가 피를 말리는 전장이었다면, 여기는 논밭에 온 느낌이랄까?

묘한 여유가 느껴졌다.

“뭔가 낯서네.”

“그러게.”

분위기를 살피던 정민이 중얼거리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여유로운 무대 대기실이라니.

우리한테는 너무 낯설었다.

“참, 건하야.”

내게 바짝 붙은 정민이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왜?”

“너 혹시 우주랑 뭔 일 있었어?”

“엉? 뭔 말이야? 그게.”

“요즘 우주가 기운이 없어 보여서.”

“아니? 전혀 없는데.”

“그래? 이상하네…. 그럼 왜 그러지?”

“우주가 기운이 없어 보인다고?”

“응, 가끔 넋이 나간 느낌도 든다니까.”

“그래?”

“못 느꼈어?”

평소보다 조금 주눅 든 느낌이긴 했다.

뭐랄까, 나사가 하나 빠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고 걱정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닐 거야. 우주 쟤, 진짜 살인적인 연습 일정 때도 매일 웃고 다녔던 애야.”

“그래?”

무슨 일이 있었나?

“건하 네가 리더니까 혹시 물어봐 줄 수 있어? 저번에 내가 물어봤을 때는 괜찮다고 하긴 했는데, 아무리 봐도 괜찮아 보이지 않아서.”

“알았어. 공연 끝나면 한번 물어볼게. 혹시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지.”

내 말에 정민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실에서 잠시 쉬고 있으니, 관객들이 들어왔는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밖이 소란스럽다.

이제 곧 시작이 다가왔음을 느꼈다.

“이제 스탠바이 해주세요!”

스태프의 요청에 우리는 복장을 챙겨입고, 무대 뒤편에 서서 무대에 오를 준비를 마쳤다.

“현장에서 동선 조절하시면 되고, 무대 위에서 시작하기 전에 마이크 테스트 잠깐 할 거예요.”

“그동안 저희가 멘트를 하면 되는 거죠?”

“예 맞습니다. 잘 알고 계시네요.”

“몇 번 경험이 있어서요.”

마이크를 착용하며 스태프와 무대 위에서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우주를 살폈다.

눈을 감으며 멘트를 되새기는 모습이 영락없는 평소의 우주였다.

괜찮아 보이는데.

“어? 올라온다!”

“왔다, 왔다!”

“꺄아아악! 오빠아!”

“건하야 사랑해애액!!!”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팬들이 우리를 보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무대 위에 올라간 우리는 볼에 착용한 마이크에 대고 인사했다.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꺄아아악!”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린다.

이렇게 많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았다.

2백 석을 전부 채운 관객석을 바라보며 우리는 예상보다 많이 찾아온 팬들의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팅할 때는 한산했던 공연장이 북적거렸다.

여기에 있는 이들이 전부 우리를 응원해 주는 팬이었다.

환호하는 목소리에 절로 미소가 나왔다.

“오랜만에 뵈어요. 이게 참, 무대 위에 몇 주 안 섰다고 벌써 떨리네요.”

내가 멘트를 먼저 쳤다.

이러면서 마이크가 제대로 나오는지 체크했다.

“이렇게 많이 와주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정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곡이 두 개밖에 없는 신인 아이돌.

바로 공연을 했다가는 너무 빨리 끝날 게 분명했다.

그래서 최대한 무대에 온 팬들과 호흡을 맞출 생각이었다.

말을 잇는 건 어렵진 않았다.

그래도 몇 번 무대 위에 올랐다고 긴장보단 여유가 생긴 멤버들이 각자 한마디씩 더하면서 시간을 충분히 보냈으니까.

팬들에게 간단한 농담을 던지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알 수 있었다.

왜 정민이가 우주를 그렇게 걱정했는지.

무대에 서기 전까지는 괜찮았던 우주가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주가 마이크를 잡고 입을 열었다.

“여러분, 반가워요. 그러니까 음….”

우주는 눈을 어디에다 둘지 모르는 아이처럼 불안에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

무려 5초.

공연장에 침묵이 가라앉은 시간이었다.

‘우주야, 너 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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