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1화>
채팅이 빠르게 올라갔다.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백 명이 넘는 사람이 들어왔다.
엄청난 속도였다.
채팅 속도도 마찬가지였다.
뭐 하나 읽으려고 하면 바로 그다음 채팅이 올라왔다.
-1빠.
-ㅎㅇㅎㅇ.
-올하.
-진짜 라이브다.
-바로 정시에 시작하네.
-첫 방송이라고 완전 풀세팅ㅋㅋㅋ
-엌ㅋㅋㅋㅋㅋㅋㅋ 다들 엄청 얼어 있네.
-All we once!
눈이 어지러웠다.
라디오와는 또 다르네.
하긴, 그때는 실시간 채팅보단 문자를 통한 응원 댓글이 많이 들어왔었다.
쇼를 진행하는 MC도 없이, 오로지 우리와 카메라 밖에 있는 PD의 힘만으로 이 쇼를 진행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느껴졌다.
“엄청 금방 오시네요. 저희 방송하는 거 알았어요?”
우주가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다 알고 왔죠.
-엄청 홍보하던데요?
-기대하고 왔어요!
환호하는 팬들의 반응.
그런데 우리는 아직 첫 라방이 어색한 상태였다.
그나마도 이건 처음이라 준비를 하고 했지만, 나중엔 정말 개인이 일상적인 라이브를 진행할 테니까.
“어, 이제 그럼 저희 뭐부터 하면 될까요?”
우주가 어색하게 방송의 시작을 열었다.
조금은 미숙한 티가 나는 말이었지만, 오히려 팬들은 그런 우주의 모습에 좋게 반응했다.
-ㅋㅋㅋㅋㅋㅋ 눈동자 흔들리는 거 봐.
-일단 노래 한 곡ㄱㄱ
-신곡 나오나요? 진효원 님이랑 새로 한다고 하던데.
“우주 씨, 날씨가 참 좋죠?”
카메라 앞이라 그런 걸까.
의도하지 않았는데 자꾸만 존댓말이 나왔다.
내 어색한 존댓말에 우주가 피식피식 웃음기를 참으며 말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어색한 존댓말을 써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왜 이렇게 어색햌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좀 쌀쌀하긴 했는데, 그래도 버틸 만하더라고요. 지금 시청자분들은 다 집에서 보고 계신가요?”
우주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넘기며, 자연스럽게 소통의 장을 열었다.
-지금 집이에요!
-저는 회사에서 몰래….
-이제 퇴근하려고 버스 타는 중.
-집입니당.
자연스러운 화제 전환이었다.
우주가 아니었다면 지금도 꽤 헤매고 있을 터였다.
“확실히 집에서 보는 분들이 많네.”
“지금 집에서 푹 쉬고 계시는 분들 부럽네요. 할 일을 마치고 침대에 누워서 콜라 한 캔 마시면 바로 잠이 오죠.”
우주의 말에 채팅이 하나 달렸다.
-왜 맥주가 아니죠?
“제가 아직 미성년자라….”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이건 의도된 거다.
우주는 분명 생각하고 멘트를 던진 걸 거다.
“근데 얼마 안 남았어요. 저도 궁금하긴 하거든요. 퇴근하고 마시는 맥주가 그렇게 맛있다고 형들이 매번 그러더라고요.”
“맛있지.”
“다들 아시지 않나요?”
-크으, 치맥 하나면 끝이지.
-ㅇㅈ.
-그게 어른의 맛이지.
멤버들도 한마디씩 던지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무르익었다.
“그 맛 나도 잘 알지.”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거래를 성사시킨 뒤에 마시는 맥주만큼 시원한 게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나를 보는 애들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왜. 다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건데.
“제가 건하의 비밀 하나만 공유할게요.”
호진이 나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뭘 공유하려고.
얘가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건하 술 진짜 못해요. 완전 술찐.”
“야, 내가 무슨 술찐이야.”
얘가 또 이상한 소리를 하네.
“저희 앨범 마지막 활동 끝나고 숙소에서 치킨이랑 캔맥 해서 같이 먹었는데, 건하가 한 잔 마시고 쓰러졌지?”
“그때는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랬지.”
“아니죠? 맥주 한 잔 마시고 바로 녹다운됐죠?”
억울하다.
내가 바뀐 몸에 적응하지 못하고, 피곤한 탓에 빨리 취한 걸 술찐으로 몰다니.
이러면 곤란해.
그래도 주당이라고 불렸던 나인데.
“나중에 한 판 떠. 내가 진짜 그때는 피곤해서 빨리 취했다는 거 알려줄게.”
나도 모르게 발끈하며 반응하자, 내 눈에 작은 상태창이 보였다.
[호진과의 케미 효과가 적용됩니다.]
[호진이 건하의 농담을 보다 쉽게 받아줍니다.]
[건하와 있을 때 호진의 진심이 전해집니다.]
이거 설마?
저번에 호진의 일을 해결해주고 생긴 케미 시스템?
“에이, 이거 완전히 내가 이길 거 같은데….”
시원하게 미소 짓는 호진이 카메라에 잡혔다.
그룹 내에서 외모 순위 1, 2등을 다투는 호진이라서 그런 걸까.
사람을 홀리는 치명적인 매력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웃는 모습 뭐야?
-호진이 저렇게 웃는 거 처음 봄.
-진심으로 웃을 때 저렇게 시원하게 웃는구나.
시청자들의 반응이 바로 나왔다.
“너 이 드러내면서 웃으니까 사람이 달라 보인다.”
주량으로 다퉜던 것마저 잊어버릴 정도였다.
“크흠흠. 그러고 보니 여러분들, 저희 사진 보셨나요? 며칠 전에 기사로 올라왔던 사진이 있는데.”
“아, 그거 얘기하는 거지?”
분위기가 과열되기 직전, 우주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확실히 이런 세심한 분위기 파악은 우주가 잘한다.
대견해. 이 자식.
우주가 말하는 건 우리의 인생샷이 찍힌 포토 기사를 얘기하는 걸 거다.
-아 봤음.
-ㅋㅋㅋㅋㅋㅋ 지금 그 사진 내 벽에 걸어둠.
-아니 그거 어디에요? 스튜디오?
-뭘 열심히 준비하길래 그런 사진이 찍혀요.
-사진 속 눈빛 보고 입덕함.
-계속 보게 됨. ㄹㅇ
그 사진이 상당히 꽤나 핫했다고 들었다.
다른 사진보다 유독 조회 수도 높아서 우리도 놀랐다.
“사실 저희도 그 사진이 마음에 들어서 다들 저장하고 있거든요.”
나는 휴대폰에 저장한 사진을 가볍게 보여줬다.
“이때 몇 번이고 다시 하겠다고 감독님한테 말씀드리면서 춤추느라 마지막에는 다리가 후들거렸다니까?”
정민의 말에 성훈이 끄덕였다.
“솔직히 이거면 됐겠다 싶었는데도 뭔가 한 번 더 찍어보고 싶더라고.”
우주가 상쾌하게 웃었다.
“그런데 성훈이 형이 거기서 제일 힘들어했어요.”
“그치. 보컬이라 파트가 많았거든. 아마 우리한테 그만 좀 하자고 말하고 싶었을걸? 맞지? 내 말 맞지?”
“그런 생각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
성훈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진심이었네.
“성훈 형이 원래 조금 그런 게 있어요. 도도하고 차가운 이미지인데, 묘하게 반전 매력이 있어요.”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저렇게 딱딱한 말투에 어디 사장님 비서 할 거 같은 외모를 가졌는데, 막상 노래 부르면 완전 달콤해. 카페 알바생 느낌이잖아.”
칭찬 한마디에 성훈이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죠. 제가 좀 목소리가 좋습니다.”
“아무튼 성훈이 형이 그런 반전 매력이 있어요.”
“약간 비하인드 썰을 하나 풀자면요.”
정민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우주가 싱글벙글 웃으며 토크를 이어갔다.
자연스럽다.
딱딱하게 굳어져 있던 분위기가 풀어졌다.
자연스럽게 토크가 이어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오오 비하인드.
-뭐 있었나요?
“아니다. 이거 말하면 성훈이 형 진짜 화내겠다.”
우주는 능숙하게 밀당을 하며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말해줘요.
-나 진짜 현기증 나려고 그래.
-사람을 화나게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말을 하다 마는 것이고.
-뭔데? 뭔데? 뭔데?
“성훈이 형이 노래 말고도 반전 매력이 엄청 많아요. 저 형이 꽤 옛날부터 진효원 선배님 팬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것도 열성팬.”
“내가 무슨 열성팬이야. 나 정도면 평범한 축이지.”
“에이, 아니지. 저번에 엄청 설렜다면서. 같이 무대에 설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막 이러면서 효원 선배님한테 사인도 받아갔잖아. 그때 형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해.”
우주가 성훈의 성대모사를 하며 낄낄거렸다.
“내가 언제 그랬다고.”
“왜, 저번에도 그랬잖아. 선배들 만나도 너무 들뜨지 마라. 이런 식으로 말해놓고 본인이 진효원 선배 앞에서 덜덜덜 떨지 않았어?”
“야, 그건….”
성훈이 얼굴이 붉어진 채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튼 성훈이 형이 그런 반전 매력이 있어요.”
온 세상에 자신이 진효원 덕후라는 게 밝혀진 딱 한 사람을 제외하면 다들 표정이 밝아졌다.
“괜찮아. 그런 열정이 있었으니까 최고의 보컬이 될 수 있었던 거야.”
우리는 성훈을 토닥였다. 부끄러워할 일도 아닌데.
그러면서 무대에서 있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나, 취미 같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방송을 이어갔다.
입소문을 탄 걸까?
30분 정도 지났을 즈음, 시청자 수가 2천 명을 넘겼다.
그리고 우리는 방송에 재미가 들린 나머지 약속된 한 시간을 훌쩍 넘기고도 끝내지 못했다.
그리고 라이브 방송의 끝이 보일 무렵.
“참, 저희가 하나 공지해 드릴 게 있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준비한 필살기를 입에 올렸다.
“누가 얘기할래? 호진이 네가 말할래?”
“아, 응. 좋아.”
오늘 방송 중에 제일 말수가 적었던 호진에게 발표를 맡겼다.
-중대발표?
-뭐지?
-ㄷㄱㄷㄱ.
“저희가 다음 주에 깜짝 라이브를 할 예정이에요.”
앨범 활동이 끝나고 진효원의 앨범에 공동 작업자로 같이 활동하기 일주일 전.
바빠지기 전에, 지금이 아니라면 할 수 없을 거 같아서 황이서에게 말해서 부탁했다.
깜짝 라이브 공연을 하자고.
작은 무대, 길거리 공연도 좋으니까 팬들과 소통하는 게 어떻겠냐고.
멤버들의 동의를 얻어서 제안한 일이었다.
반응이 좋을 거 같아, 라이브 방송이 끝날 즈음에 공지할 계획이었다.
이 정도면 화제를 모을 만한 필살기가 아닐까.
“정확한 장소와 시간은 X-라이브가 끝나고 GH 엔터의 SNS에 올라갈 거예요.”
호진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공연 끝나고 짧지만 사인회도 진행할 예정이라 많이들 오셨으면 좋겠어요.”
말을 마친 호진이 손을 흔들었다.
“그때 봐요.”
“공연 때 봬요!”
예정되었던 시간에서 30분이나 더 방송을 이어간 뒤에야, 라이브 방송을 끝낼 수 있었다.
* * *
“그런데 건하 형이랑 호진이 형이 많이 친해졌네.”
“어?”
“무슨 일 있었어?”
방송이 끝나고 우주가 물었다.
차분하게 물어보는 것이 어쩐지 평소의 우주와는 느낌이 전혀 달랐다.
“무슨 일?”
“저번에 건하 형이 호진이 형 도와주면서 친해진 건가?”
“아, 뭐. 그렇지.”
호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건하 덕분에 무사히 일도 넘겼으니까. 지금도 고마워하고 있어.”
호진이 시원하게 웃었다.
“그…래? 그렇구나.”
우주의 반응이 뭔가 시원찮다.
평소의 우주라면 여기서 둘이 친해져서 다행이다, 잘 됐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을 텐데.
어쩐지 시무룩한 기색이었다.
호진은 그런 기색을 전혀 느끼지 못했는지, 평소처럼 눈을 껌뻑였다.
“맞다. 우주야, 너 오늘 정말 잘하더라. 저번에도 그랬지만, 예능에 소질이 있나 봐.”
호진의 칭찬에도 우주는 어색하게 웃을 뿐이다.
“하하, 그러게. 형들도 각자 잘하는 분야가 있으니까.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확실하게 노력하는 거지.”
“우주야, 너 괜찮아?”
“응, 괜찮아. 건하 형, 너무 걱정하지 마. 나 지금 엄청 쌩쌩하다고.”
두 팔을 걷어붙이며 팔근육을 보여주는 우주가 미소를 지었다.
평소의 우주였다.
그런데 어째서.
우주가 가면을 쓴 것처럼 보이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