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화>
아버지다.
윤건하의 아버지.
내가 빙의했을 때보다 1년 전쯤에 찍힌 마지막 부재중 전화를 끝으로 연락이 끊어졌다고 생각한 윤건하의 생부.
다시 용기를 내서 전화했을 때 받지 않아, 이제는 완전히 사이가 틀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쪽에서 먼저 전화를….’
그것도 이렇게 빨리.
아마 그쪽도 기다리고 있던 게 아닐까.
완전히 관계가 끊긴 건 아닌 듯했다.
그런데 어떡하지?
사실 얼마 전에 내가 건 전화를 보고 연락을 준 걸 거다.
문제는.
그때는 몇 번이고 각오를 한 상태였다는 것과.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점.
생각지도 못한 기습에 당황하는 상태였다.
우우웅!
나는 내 손에서 진동하는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건하야, 무슨 일이야?”
그 모습을 유심히 보던 정민이 물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아무것도 아닌 척 둘러댈까 하다가,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숨겨야 할 필요도 없거니와, 같은 멤버들에게 숨기고 싶지도 않았다.
“아빠한테 전화가 왔어.”
“뭐? 아버지한테?”
“정말?”
“왜 안 받고 있어?”
멤버들의 시선이 꽂혔다.
모두가 가족을 보기 위해 본가에 내려갔을 때 나 혼자 숙소에 남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살아 계시지만 찾을 정도로 친하지 않다.
그런 상태에서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으니, 모두의 시선이 집중될 수밖에.
“잠깐만, 어떻게 해야 하지?”
“건하 너 아버지랑 서먹한 거 아냐? 여기서 안 받으면 평생 전화 못 하는 거 아닌가?”
“그래도 일단 받는 게 낫지 않을까?”
“나도 받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들 당황한 듯 빠르게 한마디씩 건넸다.
나 역시 패닉이다.
가족.
이건 내게 너무 생소한 것이었으니까.
전생에도 지금도 가족이라는 건 내게 없던 존재였으니까.
‘받아도 되는 걸까?’
내가 아니라 윤건하의 아버지의 전화를?
과연 받았을 때 나는 윤건하 행세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받지 않는다면.
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겠지.
우우웅!
40초는 기다린 듯했다.
그러나 아직도 끊지 않았다는 건.
‘저쪽도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걸 테니까.’
그렇다면 거절할 이유는 없다.
뚝.
나는 다짜고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멤버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받았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모르겠다. 한번 부딪쳐 보지 뭐.
갑자기 너는 내 아들이 아닌데 누구냐?
라고 하면 맞는다고 우겨야지.
별수가 없었다.
침착하라는 멤버들의 수신호를 바라보며, 나는 수화기를 든 채로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한참이나 말이 없다.
수화기 너머에선 침묵이 들렸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여보세요?”
-아버지 번호도 잊어버린 게냐?
무뚝뚝한 중저음의 목소리.
윤건하와는 전혀 다른 톤의 목소리에 내심 놀랐다.
중후한 힘이 있는 것이 목소리만으로도 상당한 고집이 있을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과거에 나를 고생시킨 경쟁업체 회장이 딱 이런 목소리였는데.
거기엔 가족의 따뜻한 정 따위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잊지는 않았죠. 하지만 통화 받을 때 예의잖아요.”
-재밌는 소리를 하는구나. 언제부터 그런 걸 챙겼다고.
거 말씀이 너무 빡빡하시네.
“이제 어른이니까요.”
-이제야 철이 들은 거냐? 예전엔 전화도 받지 않더니.
“시간이 흘렀으니,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간이 흘렀다라.
부자의 대화라기엔 서먹서먹했다.
오랫동안 연이 끊어져 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얼마 전에 만났던 호진이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정이 많고 눈물이 많은 그분은 자기 아들이 아니었음에도 상냥하고 친절하게 나를 맞이했다.
본인들을 도와준 은인이라고 생각한 걸지도 모르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똑같이 나를 맞이했으리라 확신이 들었었다.
오히려 그녀와의 대화가 더 가족답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건 가족이 아니라 비즈니스 관계 사이.
아니, 비즈니스도 이렇게 딱딱하진 않았다.
-저번에는 왜 전화한 게냐. 연예인이 된다고 내 도움은 절대 받지 않겠다며 끊은 주제에 말이다.
“그런 건 아니고….”
뭐라고 해야 할까.
끊어진 부자 관계를 조금 메꿔보려고.
이전 아들이 못한 효자 노릇 좀 해보려고….
그런 말랑말랑한 이유가 아니었다.
“그냥 외로워서 연락했습니다.”
-별일이구나. 외롭다고 나를 찾다니.
정 하나 느껴지지 않는 대답이었다.
거 참 빡빡한 사람일세.
원래 가족이란 게 이런 건가?
TV나 영화에서 봤을 때는 이것보단 조금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관계였는데 말이다.
“아버지, 잘 지내고 계십니까?”
-…잘 지낸다. 너는 아직도 그 일을 하는 게냐?
윤건하의 그 일이라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아이돌.
“예, 하고 있습니다.”
-소속사를 옮겨서 데뷔할 정도로 절박했더냐?
“예, 뭐든 해야 했으니까요.”
목숨이 달린 일이다.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야지.
-후우, 알았다. 네 의지가 그렇다면….
수화기 너머 아버지가 한숨을 퍽 내쉰다.
-하지만 제대로 성적을 내지 못하면, 다시 집으로 돌아와라.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뭐?
“저는 무조건 성공할 거거든요.”
침묵이 이어진다.
깊은 한숨.
-그 고집은 변하지 않았구나.
거기엔 왠지 웃음기가 담긴 듯했다.
-그럼 끊겠다. 정말 네가 말한 것처럼 성공하길 바란다. 그래야 내가 면이 설 테니.
“들어가세요.”
-조만간 찾아가마.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끊어진 전화를 보았다.
-아버지.
어쩐지 연락처에서부터 벽이 느껴지더니.
이런 사람이었나.
강철같이 차갑고 단단한 사람.
다른 사람의 말은 쉽게 듣지 않는 고집스러운 스타일.
윤건하 너, 진짜 힘들게 살았겠구나.
이렇게 빡빡한 아버지라니.
원래 나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았을 거다.
그나저나.
내가 소속사를 옮겼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건하야, 어떻게 됐어?”
“아버지랑 얘기 잘했어?”
그러나 그 생각은 멤버들이 나를 보며 묻는 말에 지워졌다.
모두가 걱정 어린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묻고 싶은 것이 많은데 다들 꾹 참는 표정이었다.
“역시 잘 안 된 거 아닐까?”
“그래도 마지막에 인사를 공손하게 하는 거 보면 얘기가 잘된 거 같기도 하고.”
“건하 형이 원래 예의가 바르잖아.”
“그런가…?”
“그 말 듣고 보니 표정이 별로인 거 같기도 하고.”
멤버들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대책회의라도 하는 모습이다.
“아, 뭐…. 대충 이야기 잘했어. 나중에 한번 오신다네.”
“헐, 진짜? 그럼 잘된 거 아니야?”
“모르겠다.”
이 말만큼은 진심이었다.
가족과 대화를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나는 아는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내가 잘 말한 건지, 실수한 게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아무튼 찾아오신다는 건 그래도 관심이 있다는 거니까 나쁜 건 아닐 거다.”
성훈의 말이라면 맞겠지.
나는 윤건하 아버지와 대화를 다시금 떠올렸다.
가족치고는 서먹한 대화였다.
가족보다는 약간.
‘상사와 부하직원 같은 대화였지.’
그것도 까마득히 높은 상사 말이다.
오히려 대화하기는 편했다.
이런 대화는 수도 없이 해왔으니까.
만약 사적인 걸 물어봤다면 곤란했겠지만 그런 대화는 일절 없었다.
마음이 씁쓸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더 친근한 대화를 생각했다.
내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그런 대화를.
아쉽게도 그렇게 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하게 되겠지.’
언제까지 이런 사이로 있지는 않을 테니까.
“가자. 이제 쉬어야지.”
너무 오래 서 있었다.
내일을 위해서는 푹 쉬어야지.
* * *
오늘은 X-라이브의 첫 촬영이 있는 날.
“화장부터 고치자.”
스타일리스트 김예리 누나가 우리의 화장을 고쳤다.
김예리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여야 한다면서 어깨에 힘을 빡 줬다.
“중간에 수정 못 하니까 확실하게 하고 가자.”
“너무 힘주지 마세요. 자연스러운 게 매력이잖아요.”
“그 매력 살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니? 잠깐 눈 감아 봐.”
“네.”
눈을 감은 채로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데, 김예리가 물었다.
“저번 주에 아버지한테서 전화 왔다면서, 얘기는 잘했어?”
“예?”
“우주가 말하던데, 건하 네가 아버지랑 화해한 거 같다고.”
소문이 거기까지 났어?
순간 표정 관리를 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아직 아버지에 대한 얘기는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윤건하는 대체 얼마나 아버지한테 시달렸던 거야.
“그런가요?”
“우주가 정말 좋아하더라. 그런데 아버지랑 사이가 안 좋았었어?”
“아, 조금은요.”
“하긴, 연습생 생활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은 많이 없지. 가는 길이 쉽지 않으니까.”
김예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도 예전에 이쪽 일 시작할 때 부모님이랑 많이 싸웠거든. 얼마나 싸웠는지 옆집에서 찾아올 정도라니까?”
정착하지 못하고 소속사를 옮겨 다녔다는 내 사연 때문일까.
그녀는 분장실의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그저 수다를 좋아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우주가 저에 대해서 얘기한 게 더 있나요?”
“아, 장난식으로 그런 얘기는 한 적 있어.”
“뭐요?”
“건하 네가 재벌가 사장 아들 아니냐고. 지갑도 엄청 열었다며? 아직 정산도 못 받았을 텐데,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여유가 있는 사람이 조금 더 쓰는 게 맞죠. 그리고 재벌가 아들은 아닙니다.”
“호호호, 그렇지? 나도 그런 거 같긴 했어. 귀티가 나긴 하는데, 그렇다고 재벌가는 너무 심한 농담이지.”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메이크업이 끝나 있었다.
“오늘 생방인데 떨리지 않아? 팬들이랑 처음으로 소통하는 시간이잖아.”
“떨리긴 하는데요.”
뭐랄까.
“떨리는 것보단 기대감이 더 큰 거 같아요.”
소통 방송에서 사람들의 채팅에 어떻게 반응해 줘야 할까?
라이브 방송은 어떻게 진행하는 걸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같은 그런 기대.
“그리고 멤버들이랑 같이 하잖아요. 제가 혹시 실수해도 잘 커버해 줄 애들이라서요. 걱정보단 기대가 더 큰 거 같아요.”
“역시 리더네. 후후.”
마지막 터치를 마친 김예리가 흐뭇하게 웃었다.
“이 정도면 카메라도 잘 받겠다.”
“감사합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어느 때보다 잘생겼다.
* * *
“방송은 간단합니다. 시간은 한 시간 정도 진행될 거고, 보시다시피 회의실에서 자연스럽게 멤버들의 케미나 호흡 같은 거 보여주시면 돼요.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그냥 오랜 친구랑 같이 대화한다는 느낌으로 방송하시면 됩니다.”
X-라이브의 담당 PD가 우리를 모아놓고 말했다.
그는 자기가 찾아온 이유는 혹시 모를 기계적 결함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말이 좋아 PD지, 그냥 시스템 관리사 정도죠. 하핫!”
농담과 함께 그는 말을 이었다.
“밥을 먹는 모습 보여주셔도 되고, 아니면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셔도 되니까 너무 부담 갖지는 마세요.”
“계속 이렇게 단체 방송으로 가는 건가요?”
우주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제가 이렇게 직접 오는 건 첫 방 한정이고요. 앞으로는 자율적으로 올리오스 팀에서 방송 일정을 정하시면 됩니다. 멤버 중 한 명이 따로 개인 방송을 해도 되고, 아니면 몇 명이 같이 찍으셔도 됩니다. 형식에 얽매이지 마세요. 저희는 방송 중에 실시간 모니터링을 해서 혹시 있을 사고에 대비하고, 질 나쁜 채팅을 골라내드릴 겁니다.”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다른 프로에서 보여주신 것처럼만 해주시면 됩니다. 그렇게만 하면 문제없을 거예요. 그리고 오늘 필살기도 있잖습니까? 잘될 겁니다. 하하하!”
PD는 마지막까지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해 반복하며 강조했다.
대본도 없다.
짜인 프로그램도 없었다.
MC도 없이 정말 우리만으로 방송을 진행하는 거다.
자연스러운 토크와 소통 방송.
솔직히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촬영 전까지 인터넷 라이브 방송을 몇 개 챙겨보긴 했는데.
‘내가 저렇게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카메라 앞에 서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미리 우리끼리 정해둔 컨셉이 없었다면, 아마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으로 방송을 시작했을 게 분명했다.
그런 것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이거 괜찮지 않아? 우리도 괜찮은 느낌으로 하나씩 정하는 거야.’
‘그럼 나는….’
라며 기대감 섞인 목소리로 회의를 하던 멤버들 덕분에 그런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다.
“기대된다.”
우주가 설레는 목소리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지금 팬들도 방송 시작 기다리고 있나 봐. 우리 얘기도 종종 보여.”
“5분 뒤에 바로 스탠바이 합니다!”
PD가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쳤다.
GH의 회의실엔 묘한 긴장감이 자리했다.
“후우.”
<주중 아이돌> 때도, <연예가 좋다> 인터뷰 때도 이렇게 떨리지 않았던 거 같은데.
라디오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생방송이 주는 무게감이 상당했다.
“무슨 말로 시작하는 게 좋을까?”
마지막까지 방송을 생각하던 우주가 침을 꼴딱 삼켰다.
다른 멤버들도 긴장했는지, 생수를 꼴깍꼴깍 마셨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스탠바이 10초 전!”
숫자를 세는 PD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큐 들어갑니다!”
라이브가 시작되었다.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