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미디어 Y의 연예부 막내 홍찬식 기자는 진효원의 복귀 앨범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해 직장 상사인 최 과장과 함께 현장을 찾았다.
최 과장은 사내에서도 알아주는 진효원의 팬으로, 꽤 예전부터 팬심으로 그녀의 기사를 적기로 유명한 기자였다.
과장급이 됐음에도 진효원의 일정에는 꼭 따라가는 건 회사 내에서도 유명했다.
“홍 프로, 확실히 진효원이 예쁘지 않아? 요즘 가수 중에서 제일 예쁘다니까. 내가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라, 진짜로. 노래를 잘 불러서 그런가? 확실히 기사 쓰는 맛이 있고 참 좋아.”
홍 기자는 최 과장의 말을 흘려들으며 셔터를 눌렀다.
사실 그는 진효원보다는 올리오스에게 더욱 관심이 갔다.
막내라는 이유로 미디어 Y에서 유일하게 YBC에 방문했던 그 날.
다른 이들보다 유독 빛나던 올리오스의 모습이 아직 그의 머리에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올리오스.
‘바로 진효원이랑 콜라보라니.’
진짜 될 놈들이었어.
홍 기자는 자신의 선구안과 정말 그의 감처럼 성공해버린 올리오스에 대한 감탄을 속으로 삼키며 셔터를 눌렀다.
“홍 프로, 잘 찍고 있지?”
“예, 과장님. 최대한 카메라에 담고 있습니다.”
“이번 앨범 유독 노래가 좋네. 원래 진효원 노래가 최고이기는 했는데, 예전 노래보다 더 좋아. 데뷔 연차가 저렇게 오래 됐는데도 발전하는 가수라니. 대단하네.”
최 과장의 감탄 어린 목소리에 홍 기자는 생각했다.
‘진효원이 발전한 것보다 올리오스랑 같이 해서 그런 거 아닌가?’
굳이 떠오르는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유명한 진효원 팬인 상사에게 굳이 이런 말을 했다가 어떤 참사가 벌어질지 뻔했으니까.
“그렇네요. 과장님. 역시 진효원 씨입니다.”
그리고 그런 과장의 태도는 올리오스가 단독으로 춤을 췄을 때 완전히 반전되었다.
“쟤들 봐라?”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진효원 파트가 아니라며 흥미가 떨어졌던 최 과장이었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시큰둥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진짜 잘 추는데?”
“괜찮죠?”
“몬스터즈 뽑아낸 기업이라 그런가, 남자 아이돌 춤 하나는 기깔나게 뽑네. 여자 그룹도 저렇게 냈으면 안 망했을 텐데.”
입맛을 다시던 최 과장이 홍 기자를 불렀다.
“쟤들 저것 좀 많이 찍어 둬.”
“알겠습니다.”
역시 보여줄 거라 생각했다.
홍 기자 자신도 스타 보는 눈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
셔터를 빠르게 눌렀다.
최대한 많이 담아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잘생겨서 그런지, 사진빨도 잘 받는다.
“조명 좋고, 무대 좋고, 의상 좋고, 얼굴 좋고….”
네 박자가 완벽히 들어맞았다.
홍 기자가 열심히 셔터를 누르고 있자.
“기자님들은 이제 퇴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언론 공개 시간 다 끝났습니다!”
조연출과 스태프들이 기자들을 내보냈다.
아쉬웠다.
조금 더 찍고 싶었는데.
조금만 더 찍으면 인생샷 하나 나올 거 같은데.
이제 떠나라는 스태프들의 압박을 이겨내며 홍 기자는 사진을 한 장 더 찍었다.
멤버들의 얼굴과 의상이 선명하게 잡히는 사진 한 장.
땀을 흘리고 헐떡이면서도 투지를 잃지 않고, 노래에 집중하려는 결연한 표정이 담긴 한 컷이었다.
단순히 아이돌의 멋있는 사진이 아니었다.
뚜렷한 목표를 갖고 함께 움직이는 남자들의 팀워크와 투지가 엿보였다.
‘이게 오늘 인생샷이다.’
건하의 턱에 땀방울이 맺혀 있는 것까지도 선명했다.
‘수컷미, 이게 수컷미지.’
이 사진은 다른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길 거다.
분명히.
* * *
“고생하셨습니다!”
여섯 시간이 넘는 장시간 촬영이 끝이 났다.
이렇게 오래 걸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의상을 갈아입고 소화하느라 딜레이 되는 시간이 상당했다.
거기다가 우리나 진효원이나 모두.
-한 번만 더 찍어보면 안 될까요? 더 잘 나올 거 같아서요.
의욕이 넘쳐서 같은 장면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특히 몇 번이고 춤을 반복해서 찍는 우리마저 한 번 더 찍고 싶다고 말하자, 끝에 가서는 감독이 우리를 걱정했다.
-괜찮겠어요? 무리하다 쓰러지면 안 됩니다.
하지만 휴가를 받고 쉬다 온 우리는 체력이 넘쳤다.
지금 이 넘치는 체력을 쓰지 않으면 곤란했다.
그렇게 열정 가득한 촬영을 끝냈다.
진효원과 카메라 감독이 그 열정에 모두 만족스러워하더라.
“아마 3주 정도 뒤에 바로 활동 시작할 거야. 너희도 함께 앨범 활동한다는 건 들었지?”
“네, 들었어요.”
이게 단순 피처링이 아닌, 공동 작업인 이유였다.
우리와 같이 활동을 하며 후배들을 푸시해 주겠다는 생각인 모양이었다.
같은 소속사도 아닌데 말이다.
진효원은 음방과 예능 출연 말고도 스케줄이 워낙 많으니 우리가 함께 다닐 일은 그리 많지 않겠지만, 그것만 해도 어딘가.
“다들 잘 준비해 둬.”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보자.”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호진이 나를 보며 말했다.
“건하야.”
“응?”
“정말 고마워.”
“아직도 그 얘기야? 됐어.”
“어머니가 말씀하시더라. 정말 고맙다고. 나중에 활동 끝나고 휴가받으면 같이 찾아달라고 하셨어. 원래는 당장 우리 숙소 오셔서 고맙다고 하시려던 거 간신히 막은 거야.”
“나중에 찾아 뵈어야지. 그때 제대로 인사드릴게.”
미소를 짓는 호진의 눈가에 눈물이 살짝 맺혔다.
또 울려고 그런다.
“야, 울 거면 카메라 앞에서 울어.”
“안 울어.”
“이미 눈물 맺혀 있구만, 뭘.”
호진이 정도로 잘생긴 남자가 우는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면 기사 하나라도 난단 말이지.
“아니면 지금 찍어줄까? 이거 찍어서 인스타 올리면 사람들 엄청 좋아할 거 같은데.”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우주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호진이 형이랑 건하 형이 엄청 친해졌네.”
“응?”
“둘이 묘하게 어색한 게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없는 거 같아서.”
“그, 그런가?”
우주의 질문에 호진이 볼을 긁었다.
“저번에 호진이 형이 막 전화하려고 갔었잖아. 그때 건하 형이 같이 간 거 같은데, 무슨 일 있었어?”
“아…. 건하 덕분에 힘든 문제를 해결했거든. 그리고 진짜 위로도 많이 받았고. 걱정시켜서 미안해.”
“다행이다.”
낯부끄러운 얘기 때문일까.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크흠흠. 분위기가 참, 어색하네. 하하하.”
“그러게….”
낯선 분위기에 다들 어색하게 웃었다.
이런 적은 거의 처음이었지.
항상 돌아가는 차 안에선 웃음이 가득했으니까 말이야.
“그나저나 우리 기사 뜬 거 있지 않을까?”
나는 어색한 분위기를 떨쳐내고자 화제를 돌렸다.
“맞아! 아까 기자들 엄청 오고 그랬잖아!”
“한번 보자. 뭐라고 적혔을지 궁금해.”
다들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정민과 우주가 호들갑을 떨며 핸드폰에서 기사를 찾았다.
-진효원×올리오스 베테랑과 신인의 화려한 콜라보.
-보컬에서 디바로, 진효원의 파격 변신.
-올리오스의 가창력, 진효원에 뒤지지 않아.
기사에는 진효원과 우리 사진이 빼곡하게 찍혀 있었다.
상당수가 진효원의 사진이었지만, 우리 사진도 적지 않았다.
‘홍찬식 기자….’
유독 우리 사진만 집중적으로 올린 기자의 이름이었다.
기억해두면 언젠가 써먹을 수 있겠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이 기자의 눈엔 우리의 모습이 꽤나 인상 깊게 남았다는 뜻일 테니까.
사진을 감상하던 중, 우리는 유독 조회 수가 높은 사진을 하나 보았다.
“이 사진만 조회 수가 장난 아닌데?”
처음은 사진을 흥미롭게 보던 우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
사진을 확인한 우주의 감탄 어린 탄성.
“형들 이거 봐.”
“뭔데?”
우주가 핸드폰에 펼쳐진 사진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어? 이게 뭐야?”
“진짜 우리라고?”
“개쩌는데?”
다섯 명이 다 같이 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 사진이었다.
똑같은 자세로 땀을 흘리며 카메라가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입은 표정 관리를 위해 웃고 있지만, 그 미소 속에 미처 가려지지 못한 열정이 드러나고 있었다.
어떻게든 최고의 장면을 찍겠다는 의지.
우리가 그 순간을 겪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었다.
촬영장에 없던 사람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그 욕망이 선명했다.
얼굴엔 피로가 가득했다. 하지만 프로페셔널하게 미소를 유지하는 모습이 고작 사진 한 장이지만 보였다.
“진짜 우리네.”
“우리 표정이 이랬었어?”
“완전 스파르타네.”
“건하 형 턱에 봐. 땀방울 맺혀 있어. 하하하.”
“우주 너도 마찬가진데?”
“우리 진짜 미친 듯이 췄구나.”
“촬영장에서는 왜 몰랐지?”
멤버들 모두가 촬영장 때의 기억을 되짚었다.
그러나 누구도 왜 저런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만큼 촬영에 진심이었다.
땀을 닦을 정신도 없었던 기억이 났다.
그러니 저렇게 땀방울이 맺혀 있는 것도 모르고 췄지.
“좋네. 뭔가 우리가 정말 힘냈다는 게 느껴져서.”
우주가 히죽 웃으며 사진을 저장했다.
“뭐 하려고?”
“핸드폰 배경화면 하려고. 되게 잘 찍혔잖아. 뭔가 남성미 뽝! 들어가고, 어른 같은 느낌도 나고. 괜찮지 않아?”
이런 사진 자르는 것에 익숙한지, 능숙하게 자기 부분을 확대해서 오려낸 우주가 핸드폰 배경화면을 바꿨다.
“키야. 멋지다.”
그건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하는 분위기라 나도 바꿨다.
전혀 내 모습이 멋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진짜 아니다.
촬영장에서 찍힌 사진들과 함께 올라간 기사들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사무실에 도착해 있었다.
* * *
“너희도 이제 라이브 방송으로 팬들이랑 소통해야지.”
안경을 쓴 채로 업무를 보던 황이서가 우리를 보자마자 말했다.
“라이브요?”
“제안 들어왔다. 너희들 라이브 방송 계약하고 싶다고.”
“정말입니까?”
“이런 걸로 농담 안 한다.”
황이서가 클클거리며 웃는 모습에 모두의 얼굴에 환희가 가득 찼다.
“와, 계약이라면, X-라이브 말하는 거죠?”
정민이 들뜬 얼굴로 외치자, 황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X-라이브.”
“우와!”
X-라이브 방송.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연예인들의 몇 안 되는 창구 중 하나였다.
너튜버, 스트리머들처럼 라이브 방송을 틀고 팬들의 실시간 댓글을 읽고 답할 수 있는 일종의 온라인 팬 미팅이었다.
대부분은 활동을 마친 뒤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주거나, 팬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일을 만드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라고만 알고 있었다.
“다음 주 목요일에 너희 다섯 명이 함께하는 라이브 방송을 시작으로 각자 채널을 하나씩 개설해 준다고 하더라. 거기서 짬날 때마다 방송하면서 팬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지면 될 거야.”
다음 주 목요일이면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생각보다 계약이 빨리 된 거 아닌가요?”
“진효원 힘이 컸지. 덕분에 자주 노출이 됐으니까. 나중에 대선배님한테 고맙다고 연락드려. 진짜 도움이 많이 됐으니까.”
“넵! 알겠습니다!”
“상승기류 타고 있으니까 앞으로 방심하지 말고 확실하게 가자! 알았지?”
“넵!”
“새로 방송 어떻게 짤 건지 한번 회의 진행하고 앞으로 방향을 잡아보자. 이번 앨범의 마무리와 다음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느낌의 일정이니까.”
라이브 방송이라.
사실 내겐 생소한 일이었다.
따로 시간을 내서 라이브 방송을 찾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어디 스튜디오에서 방송하는 건가요?”
내 질문에 황이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 사무실에 있는 회의실 있지?”
“네.”
“첫 방송은 거기서 할 거야.”
“…그게 되는 겁니까?”
“건하는 라이브 방송 잘 모르는구나?”
“예, 익숙하진 않네요. 다른 방송이랑은 확실히 다른 거죠?”
황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게 핵심이지. 무대 위의 모습이 아니라, 무대 뒤에서 보여주는 일상. 그게 X-라이브 방송의 강점이지.”
어떤 느낌인지 알 거 같다.
소소한 일상.
그 일상 속에서 보여주는 공통 주제, 공감 요소.
그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어쨌든 새로운 계약은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그만큼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앞으로 조금 더 바빠지겠지만, 그 정도야 뭐.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일이었다.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모두가 들뜬 얼굴로 앞으로 찍을 라이브 방송에서 보여줄 컨셉을 생각했다.
“뭐가 좋을까? 너무 평범한 느낌이면 안 좋을 거 같은데. 그래도 첫 방인데, 인상을 줄 뭔가가 필요할 거 같단 말이지.”
우주의 말을 시작으로 각자 아이디어를 하나씩 냈다.
“묘기라도 부려야 하나?”
“호진이는 춤을 추면 되겠다.”
“성훈 형이 그 옆에서 노래 부르면 딱인데?”
“그럼 일상보다는 뭔가 억지 감성 아닐까?”
그때였다.
우우웅!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이 울렸다.
누구지?
나한테 연락이 올 곳이 많이 없는데.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들어 확인했다.
-아버지.
끊겼다고 생각한 생부의 전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