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화>
일가족의 감사를 받으며 조금은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함께했다.
자기는 병원 밥이 더 맛있다며, 맛있게 먹고 오라는 현진의 말에 호진이 어머니와 함께 넷이서 근처 식당에서 밥을 얻어먹었다.
현진이가 무슨 병 때문에 병원 생활을 하는 건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같은 질문 따윈 하지 않았다.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었다.
대부분 호진이 춤을 잘 추고 무대 위에서 잘 날아다니는 우리 팀의 메인 댄서라는 칭찬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호진의 어머니는 입을 가리며 웃으셨다.
아들 칭찬을 싫어할 어머니는 세상에 없었다.
“나중에 현진이 수술 끝나고, 건하도 휴가 얻으면 우리 집에 한번 놀러와.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줄게.”
직접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몇 번이고 찾아오라고 강조하셨다.
내 손을 잡으며 고맙다고 말씀하시는 어머니께 알겠다며 약속했다.
여동생인 현진에겐 수술 잘 받으라며 격려의 인사를 전했다.
“병원에 오는데 아무것도 못 사왔네. 다음번에 퇴원 축하 파티할 때 선물 사 올게.”
어차피 금방 퇴원할 테니까.
나는 현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응원했다.
표정이 좋은 걸 보니, 결과도 좋을 거다.
호진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잠시 두고 병원 밖으로 나왔다.
“건하야.”
함께 나온 두현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뭐야? 그렇게 진지한 눈으로.”
“너 진짜 아니지?”
“뭐가 아닌데?”
“너 진짜 재벌집 아들이거나 그런 거 아니지?”
“아니라니까. 재벌집 아들이 무슨 일 없다고 아이돌을 해. 사업 물려받지.”
내가 재벌집 막내아들이었으면, 이거 안 하고 사업체 몇 개 물려받았을 거다.
그거 가지고 그룹의 메인 계열사 만들고, 회장 되는 데에 집중했겠지.
“신기하네.”
“아무튼, 형 고생 많았어.”
“아니야.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건하 네 말을 그대로 앵무새처럼 옮긴 게 전부인데.”
“그거 쉽지 않은 일이야. 나로는 못 하는 일이거든.”
얼굴이 팔려 있으니까.
“아무튼 앞으로 더 고생해야지. 성공해서 이런 일 절대 안 생기게 노력하자고.”
두현을 격려하고 있던 내 눈에 새로운 알림창이 떴다.
[멤버 히든 업적 ? 안호진의 속사정]
[보상: 20 오픈 마일리지]
[안호진의 호감도가 중상에서 최상이 됩니다.]
[안호진이 당신을 신뢰합니다.]
히든 업적?
이건 또 뭔데?
[멤버 히든 업적: 멤버들은 각자의 사정과 고민을 갖고 있습니다. 해당 고민을 해결해 주는 것으로 추가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호감도까지 최상으로 올라가는 걸 보면 이건 단순한 업적만은 아닌 거 같은데.
[업적 퀘스트: 멤버 히든 업적을 클리어하세요. 1/2]
[성공 시 : 케미 시스템 개방]
잠깐만.
‘이건 또 뭔데?’
게임에서는 전혀 보지 못했던 시스템이었다.
케미 시스템이라.
설마 멤버들끼리 케미에 관련된 건가?
당장은 알 수 없었다.
히든 업적을 하나 더 깨야 한다는 거겠지.
‘쉽지는 않네.’
시간을 두면 천천히 해결할 수 있을 일이었다.
그때였다.
뒤에서 누가 나를 안았다.
“깜짝이야.”
호진이었다.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나온 호진이 나를 대뜸 껴안은 거다.
야, 얌마. 아프다.
“고맙다. 건하야….”
귓가에 들리는 울음 가득한 목소리에 뒤에서 나를 껴안은 호진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게 울음 한 번으로 느껴졌다.
호진이는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
이 험한 세상 어떻게 견디려고.
“그만 울어라. 정들어.”
“미안, 조금만 더 울게.”
“그렇게 나랑 정들고 싶은 거야?”
“언제는 믿을 수 있는 멤버라면서….”
“너 이렇게 말 잘하는 놈이었어? 그동안엔 왜 그리 말을 못 한 거야.”
“부, 부끄러워서 그랬다.”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말하는 호진의 목소리에 조금씩 울음기가 사라졌다.
“고생 많았다. 앞으로 열심히 하자.”
“그러자. 그리고 빌려준 돈은 정산받으면 바로 갚을게.”
포옹을 푼 호진이 웃으면서 의지를 다졌다.
퉁퉁 부은 눈으로 웃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한마디 건넸다.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 나는 거 모르냐?”
“건하 너 진짜 그런 말 할 때 보면 아저씨 같아.”
“그게 매력이지.”
호진이 기운을 차린 듯했다.
앞으로 실수하는 일은 없을 거다.
그리고 예상대로 호진은 뒤처졌던 진도를 누구보다 빨리 따라왔다.
역시 우리 팀의 메인 댄서였다.
* * *
며칠 연습에 집중하지 못했던 호진은 문제를 해결하자마자 귀신같이 자신의 본래 폼을 되찾았다.
헤맸다는 기억을 완전히 잊어버린 듯 우리 중 누구보다 각이 살아 있었다.
이게 각이다.
라는 걸 마음껏 보여주는 중이었다.
원래대로 돌아온 호진을 본 성훈이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워준 건 비밀이다.
그 때문일까.
촬영장을 찾은 우리 팀의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좋았다.
오늘은 진효원의 뮤직비디오를 찍는 날이다.
“다들 연습은 잘 해왔니?”
뮤비 촬영을 위해 무대 의상을 맞춰 입은 진효원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아름다웠다.
내부 스태프들의 시선을 모두 잡아끌 정도로.
확실히 스타는 달랐다.
저 꺼지지 않는 자신감은 꼭 배우고 싶네.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선배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도 잘 부탁할게. 오늘 열심히 해보자.”
그렇게 촬영이 시작되었다.
“오늘 얼굴빛이 되게 좋다. 긴장도 안 하고.”
“선배님이랑 함께 하는 자리니까요. 하하하.”
내가 웃으며 너스레를 떨자, 진효원의 입가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렸다.
“얘는 립서비스가 왜 이렇게 능숙해?”
“에이, 한국 최고 보컬이신데요. 선배님이 너무 겸손하신 거예요.”
“맞습니다! 저는 선배님 노래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성훈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외쳤다.
의외로 우리 중에 가장 긴장한 멤버가 성훈이었다.
리허설을 준비하는 내내 몇 번이고 멘트를 반복하더라.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좋은 하루입니다. 아니야. 오늘 날씨가 우중충한데…. 선배님 비가 오지만, 오늘 열심히 하겠습…. 이것도 아니고….”
끝내 고르고 고른 멘트였다.
“고마워. 후배들이 좋게 말해주니 마음이 가벼워지네.”
찰칵! 찰칵!
우리의 모습을 찍는 기자들의 카메라 소리가 선명했다.
진효원의 오랜만에 복귀 앨범이라는 특종을 잡기 위해 찾아온 기자들이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나쁠 게 없었다.
앨범 활동이 끝난 직후에 아직 우리에 대한 화제성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을 때, 그 화제성을 연달아 이어갈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진효원과 함께 작업한다는 것만으로도 신문에 나올 기사는 충분히 확보된 셈이었다.
‘기자들의 촬영이 낯설긴 하지만….’
이제는 카메라에 익숙해진 멤버들은 자신을 찍는 기자들의 카메라에 V를 그려 보이기도 했다.
특히 우주가 제일 신난 모습이었다.
뮤직비디오를 찍는 감독이 신호를 보냈다.
“무대는 스탠바이 다 됐습니다. 바로 리허설부터 들어가죠.”
“아, 네. 알겠어요.”
카메라가 돌아가며, 뮤직비디오 리허설 무대를 찍었다.
이번 진효원의 타이틀곡은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 진효원과 올리오스의 감상을 담은 노래.
그녀가 지금까지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을 때 느꼈던 즐거움과 기쁨, 슬픔과 행복을 담으면서도 앞으로 자신이 계속 노래를 할 수 있을까.
더는 그녀의 노래에 매력이 느껴지지 않아, 관객들이 떠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담긴 노래였다.
우리는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의 입장으로, 진효원은 데뷔를 한지 오래된 베테랑의 입장으로.
서로의 같은 듯 다른 감상을 부르는 신이 많을 예정이었다.
그래서일까.
무대 위에서 촬영하는 신이 많다고 들었다.
무대 한 편에 놓인 피아노, 과거 진효원이 입었던 무대의상이 보인다.
그리고 반대편엔 우리 첫 싱글 앨범인 의 컨셉에 맞춰서 무대를 구성했다.
“춤추면서 부르는 게 생각보다 어렵더라. 그러니까 잘 부탁할게.”
가볍게 웃은 진효원과 리허설을 시작했다.
-♪♬♩♩♪♪.
진효원의 춤은 우리보다 약간은 어설펐지만, 그렇다고 못 하는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후우, 너희 진짜 춤 잘 추는구나?”
리허설을 마친 진효원이 우리를 보며 감탄했다.
진효원이 우리 춤에 감탄한 것처럼, 우리 역시 진효원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현장에서 부르는 진효원의 노래는 녹음실과는 또 다른 느낌을 내고 있었다.
화사하고 부드러운 느낌으로 무대를 장악하는데, 왜 그녀가 지금까지 최고의 자리에 있을 수 있는지 새삼 느껴지는 무대였다.
“자, 그럼 바로 시작하자.”
수많은 카메라의 시선을 받으며 우리는 진효원의 앨범 타이틀곡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 * *
첫 촬영은 진효원에게 포커스가 맞춰졌다면, 그다음은 우리였다.
노래가 아닌 춤 때문에.
“와, 방금 그거 되게 좋은데요?”
뮤직비디오 감독이 엄지를 추어올렸다.
“확실히 아이돌이라 그런가. 춤은 확실하네요.”
다섯 명이 거의 한 몸처럼 움직였다.
특히 호진의 리드에 맞추는 군무는 솔직히 말해서 훌륭했다.
내가 춰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고.
“하아, 하아.”
우리는 감독의 칭찬을 들으며 숨을 골랐다.
춤을 춘 이후에 느껴지는 이 숨이 차는 느낌이 좋았다.
무사히 끝까지 완곡한 이후에 숨이 헐떡일 때마다 충만한 만족감이 느껴졌다.
실수 없이 제대로 끝마쳤다는 생각에 성취감마저 느껴졌다.
“방금 군무 장면 한 번 더 가볼까요?”
춤을 춘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던 감독이 물었다.
“혹시 실수라도 한 건가요?”
표정이 좋지 않아 물어봤는데.
“그런 건 아니고, 장면이 좋아서 여러 테이크로 따놓으려고요. 하나만 가지고는 아쉬워서 안 되겠는데?”
그런 이유라면 못할 거야 없지.
다른 멤버들 역시 같은 생각인 듯 보였다.
“좋습니다.”
“오케이. 그럼 메이크업 고치고 갈게요! 그동안 카메라 위치 바꿉니다. 지미집도 쓸 거니까 스탠바이 해주고요!”
스타일리스트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땀을 닦고 화장을 고치고 있는데, 진효원이 다가왔다.
“확실히 후배들끼리만 하니까 태가 나네. 각이 살아 있다. 나랑 같이 찍었을 때는 내숭 떤 거였구나?”
약간 촐싹대며 우리 칭찬을 하는데, 얼마나 좋아하는 건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러다가 나 춤 못 추는 거 들통 나겠는데?”
“걱정 마세요. 효원 씨 부분은 우리가 잘 만져서….”
“감독님! 거기서는 잘한다고 얘기해 줘야죠.”
한숨을 퍽 내쉰 진효원에게 감독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아이돌 친구들이랑 비교해서 잘 춘다니 그건 아니죠. 저 친구들 춤 보니까 장난 아니던데.”
“감독님!”
“감사합니다!”
메이크업을 하는 와중에도 촬영장은 시끌벅적했다.
“우선 효원 씨 없는 신을 계속 찍어보죠. 이거 느낌 좋네. 평소 진효원 씨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랑 분위기가 다르네요.”
감독의 말에 우리는 다시 위치로 섰다.
“지미집부터 들어갑니다! 다른 카메라들은 시야에 안 잡히도록 세팅하고.”
“알겠습니다!”
생방 무대랑은 다른 긴장감이 느껴졌다.
실수를 한 번 해도 너그럽게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물론 같은 실수를 몇 번이고 반복하면 결코 부드러운 반응으로 끝나지 않겠지만.
같은 노래를 부르는 건데도 무대마다 느낌이 달랐다.
생방에서는 실수 하나도 방송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치열하게 동선을 짜고 한 번에 성공할 수 있도록 신경을 쓰는 반면.
녹화 방송이나 뮤직비디오 촬영은 최대한 좋은 신을 만들기 위해 몇 번이고 반복했다.
짧은 5분간 모든 신경을 쏟아야 하는 생방과, 몇 시간이 될지도 모르는 긴 영상을 찍어야 하는 뮤비 녹화.
솔직히 후자가 더 빡셌다.
성공하면 끝나는 생방송과 달리, 이건 성공해도 계속해야 하거든.
실패하면? 당연히 한 번 더 하는 거지.
여러 대의 카메라와 스태프들이 우리를 바라본다.
카메라에 최고의 모습이 담기기 위해 춤을 추고 노래하다보면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하아, 하아….”
그럼에도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나를 포함한 멤버 모두 녹초가 될 정도로 춤을 췄다.
“좋았어요! 올리오스, 진짜 대박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