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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57화 (57/236)

<제57화>

“얼마라고 했지?”

“일, 일억 원입니다.”

“흐음….”

황이서는 현실적으로 상황을 지켜봤다.

그는 프로듀서.

단순히 감정과 동정만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지극히 사업적인 인간에 가까웠다.

물론 소속 아이돌을 아끼는 마음은 갖고 있지만, 그건 프로듀서로서 당연히 가져야 하는 마음일 뿐.

이라고 그는 늘 생각했다.

그렇기에 여기서 호진에게 1억 원을 선뜻 지원해 줄 수 없었다.

이미 그가 가불받은 돈이 상당했다.

애초에 빚을 갚겠다고 정산금을 미리 가불받은 호진이었다.

동생의 병원비 때문에 모든 게 꼬였다는 건 처음 들었지만.

이미 상당량의 돈을 빌려준 상황에서, 이제 막 데뷔한 아이돌에게 1억 원을 더 빌려주는 건 황이서도 불가능한 일.

“그걸 건하 네가 갚아주겠다고?”

“예. 그럴 예정입니다.”

“…….”

분명 좋은 일이다.

소속사에서 해결하지 못할 일을 대신 해결해 준다는 거니까.

하지만 경제 관념이 어린 친구들이 간혹 하는 실수가 아닐까 염려가 되었다.

“그런 큰돈은 가족한테도 쉽게 빌려주면 안 되는 돈이라는 거, 알고 있지?”

“예.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냥 빌려주는 게 아니라, 지금 호진이의 미래를 보고 이 돈을 투자하는 거예요.”

건하의 눈이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래. 이런 친구가 돈에 대해 무지할 리는 없지.

“알았다. 언제까지 해결할 수 있겠니?”

“하루면 됩니다. 채남영 트레이너님께는 이미 말씀을 드렸어요.”

“…하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돌부리에 걸린 기분이었다.

“우리 쪽에서 도와줄 건?”

“두현이 형을 좀 빌리려고 합니다.”

“그건 당연하지. 설마 너희끼리만 가려고 했어? 또 없어?”

“나중에 채권단 쪽에서 말이 나오면 확실하게 갚았다는 것만 강조해 주시면 됩니다. 돈 문제는 그 돈을 갚으면 말끔하게 끝나게 될 테니까요.”

“알았다. 그런데 말이다.”

황이서는 건하와 호진을 보았다.

특히 건하.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운 모습과 패기, 그리고 특출 난 판단능력 덕분에 그가 믿고 맡기는 올리오스의 리더.

그러나 아직 스무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

어린 혈기로 일을 키우지 않을까?

“일 커질 거 같으면 바로 연락해라. 지금 너희들이랑 두현이만 보내는 건 건하 너를 믿어서야. 혹시 문제 생길 거 같으면 바로 두현이 통해서 연락하든 직접 연락해. 너희 이제 막 데뷔해서 아직 실감을 잘 못하겠지만, 공인이야. 유명인이라고.”

황이서는 거듭 강조했다.

“이런 일에서는 너희가 압도적으로 을이 될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조심히 마무리 짓고 와라.”

“알겠습니다.”

* * *

“괜찮겠죠?”

“당연하지. 돈만 주면 확실히 끝낼 수 있는 일이야. 너무 걱정하지 마.”

호진은 그를 안심시키는 두현의 말에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후우.

하아.

눈을 감은 채로 숨을 깊게 들이쉬니, 조금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약속 장소에 나가기 전에 건하가 해준 말이었다.

‘너무 긴장되면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어 봐. 그럼 좀 나아질 거야.’

말대로 하니, 진짜로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신기했다.

건하의 말처럼 하나하나 이뤄지는 것이.

그러니 이번에도 잘 해결될 거야.

돈을 주고 이제 더 찾지 말라고 하면 되는 거니까.

별일 없을 거야.

“긴장 풀어. 돈 갚으면 서로 남남일 테니까.”

두현이 덩치에 맞지 않은 순둥순둥한 미소를 지어주며 그를 안심시켰다.

채권단의 대표가 운영하는 사무실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한 채권단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저기 왔네.”

빚쟁이 중에서 가장 성격이 드세 보이는 남자가 호진과 두현을 향해 다가왔다.

호진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얼굴이었다.

매번 그의 집에 찾아와 돈을 갚으라고 악을 썼던 남자.

자신의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붙잡았던 사람이었다.

“어떻게 돈은 구하셨나 보네?”

그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여기 약속했던 이자 포함해서 1억이에요. 그동안 어머니께서 갚은 금액까지 하면 딱 맞을 겁니다.”

호진의 말에 두현이 서류 가방을 꺼냈다.

1억이 담긴 가방이었다.

남자의 눈이 빛났다.

5만 원짜리 묶음으로 가지고 온 돈주머니를 확인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맞네. 1억.”

“이제 더 볼일 없는 거죠? 호진이 아버지 돈 이자까지 다 갚았고, 이제는 끝난 거예요.”

“잠깐만.”

그가 호진을 붙잡았다.

“아직 정산 안 끝났잖아.”

“그게 무슨 소리죠?”

“1억으로 퉁 치려고? 그건 곤란하지. 그때와 물가가 달라졌다고. 우리가 그동안 고생한 값에 이자까지 치면 아직 4천만은 더 갚아야….”

“거기까지 하지?”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두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평소에는 웃고 있느라 잘 모르지만, 두현은 190을 훌쩍 넘는 키에 떡 벌어진 어깨를 갖고 있었다.

웃고 있어 사람이 좋아 보이는 거지, 인상을 찌푸리면 그만한 야수가 없었다.

“지금 저희 회사의 아이돌에게 위해를 가하시려는 겁니까?”

두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장을 입은 탓일까?

거대한 그의 덩치가 유독 돋보였다.

“그럴 생각이신 거면, 저희도 웃으면서 대할 순 없을 거 같은데요.”

“허, 허 이건 우리랑 호진이 일이라고! 쓸데없는 참견 말고 돈이나 내놓으시지?”

“말도 안 되는 말씀을 계속하시니 말씀드리는 겁니다.”

두현은 당장이라도 테이블을 엎어버리고 싶었다.

교양 없는 사람들.

아무리 돈에 환장했다지만, 이런 식으로 협박으로 돈을 뜯어내려고 하다니.

그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상이었다.

어쩌면 다행이었다.

건하가 얘기한 대로의 사람들이라.

‘잘 외웠지? 형이라면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를 믿는다며 돈 가방을 내민 건하의 믿음을 위해서라도 무조건 해내야만 했다.

두현은 머릿속에 달달 외운 대사를 떠올리며,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돈을 빌렸을 때 작성한 계약서입니다. 연 이율 6%로 계약하셨더라고요. 당시 빌렸던 금액을 대조해 봐도 1억이면 충분한 금액이라 판단했습니다.”

“당신이 뭔데 참견이야?”

“전 호진 씨의 매니저입니다. GH 엔터에서 직접 파견을 나왔습니다.”

두현은 명함을 꺼내 내밀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방금 말씀하신 물가 상승에 따른 이율의 조정은 계약서엔 명시되어 있지 않네요?”

“그게 무슨….”

“명목 이자율을 따로 정할 만큼 당시 물가 상승이 심했던 것도 아니고, 실제로 계약서에는 명시되지 않았으니 물가 상승에 따른 차액을 지불할 의무는 없다는 겁니다.”

말을 마친 두현은 채권단을 노려봤다.

여기까지 실수는 없었다.

달달 외운 보람이 있었다.

“저희는 계약서에 적힌 대로 갚아야 할 금액, 1억을 제대로 갚았으며 지금 여러분이 정확하게 수령하셨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두현의 말에 채권단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저희 GH 엔터는 소속 연예인 안호진의 빚을 전부 탕감했다는 것으로 알고, 이 이후로 해당 대출 건에 대한 왜곡된 표현을 타 매체를 통해 이야기할 땐 회사 법무팀을 이용해 법적 조치를 취할 것임을 확실하게 말씀드립니다.”

“…….”

“아시겠습니까?”

대답이 없었다.

거대한 덩치가 정장을 입고 거기에 법적인 이야기까지 꺼내기 시작하니, 분위기에 압도된 사람들이 그대로 입을 다문 것이다.

그 누구도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기 싸움에 밀렸다는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서겠지.

“말씀하세요. 아시겠습니까?”

톡톡.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리고 나서야.

“알았네. 알았어.”

호진을 붙잡았던 채권단의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웃으면서 마무리 지을 수 있어 다행입니다. 그럼 돈을 수령했다는 확인서를 작성하죠?”

씨익 웃어 보인 두현의 주도하에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다.

* * *

“잘 끝났어?”

나는 후련한 얼굴로 돌아오는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두현과 호진이 거의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큰 문제 없이 예상대로 끝난 모양이었다.

“잘됐네.”

이제야 마음이 좀 놓인다.

처리 귀찮아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다행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안 거야?”

호진이 물었다.

눈이 똘망똘망한 것이 이제 긴장을 좀 놓은 모양이다.

“뭐가?”

“그 사람들 이자 문제랑 물가 얘기로 한 번 더 꼬투리 잡을 거라는 거, 어떻게 안 건지 궁금해서.”

“아.”

두현도 궁금한 듯 룸미러로 나를 보고 있었다.

“간단하지.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가질 욕심이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안 될 걸 알면서도 질척이거든.”

저들을 만나기 전, 호진에게서 채권단에 대한 사정을 들었다.

그들과 호진이 얽힌 이야기를 듣고 그에 맞는 전략을 짜기 위함이었다.

단순히 돈만 갚아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면 좋겠지만,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그리 만만치 않거든.

돈을 갚으라며 몇 번이고 호진의 집을 찾아와 그와 동생, 어머니를 괴롭혔다고 했다.

적극적으로 행동하며, 돈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

꼭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더 화를 내고 성질을 부리며, 이상한 고집을 부린다.

특히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상대가 그 고집에 쫄 거라는 이상한 망상을 가진 이도 있었다.

호진이 데뷔하고 성공하는 모습이 보이니 이를 이용해 보고 싶었겠지.

보통 자신이 약함을 감추기 위해 목소리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대는 상대하기가 쉽다.

진짜 힘을 보여주는 것.

당장 행사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면, 쉽사리 그 고집을 접는다.

그래서 내가 아니라 두현을 보낸 거다.

GH 엔터에서 일하고 있으며 쉽게 접근하지 못할 정도로 큰 덩치를 지닌.

관련 지식이 적은 거야 내가 미리 알려준다면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요소였다.

그래서 커닝 페이퍼를 만들어서 달달 외우게 만든 거고.

호진이가 돈을 빌린 입장이지만, 갚을 돈이 있다면 절대 꿀릴 게 없었다.

꿀릴 게 딱 하나 있다면 공인이라는 거겠지.

그러나 그것도 해결할 수 있는 범위 안이다.

모든 게 다 계산 안이었다.

내가 직접 가지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두현이도 잘 해냈으니 대만족이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거야?”

“그럴 일이 있었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다.

내가 사업가였다는 사실 말해도 믿지 않을 테니, 이럴 땐 대충 뭉뚱그려서 말하는 게 낫다.

“진짜 재벌집 아들이라던가 그런 거 아니지?”

“설마 그러겠어?”

“신기하네….”

감탄하며 나를 보는 호진과 비슷한 눈빛을 보내는 두현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아무튼 잘 해결됐으니 다행이네. 안 그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돈도 갚고 이제 앞으로 호진을 괴롭힐 사람은 없을 거다.

잘 마무리됐네.

좋은 일이야.

음음.

“오랜만에 머리를 썼더니 머리가 아프다.”

집에서 좀 쉬고 싶었는데, 호진이 말했다.

“형, 우산 병원으로 부탁드려요.”

“알았어.”

그렇게 도착한 곳은 호진의 동생이 입원해 있다는 병원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얘기 다 들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적은 돈이 아닌데… 어떻게 그 돈을 다….”

주름진 손으로 내 손을 맞잡는 호진의 어머니를 만났다.

그녀는 내 손을 잡은 채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눈동자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당장이라도 울 거 같은 호진의 어머니는 끝까지 울음을 참으며 내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어차피 호진이가 갚을 거예요. 너무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돼요. 안 그래?”

그녀의 울음을 멈추게 하고자 별거 아니라는 듯 호진에게 말했다.

호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의 눈물에 울컥한 걸까.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안 되겠구먼.

“충분히 갚을 능력 있는 친구예요. 춤을 엄청 잘 추고, 무엇보다 마스크가 되잖아요. 하하핫!”

“정말 고마워요. 평생을 잊지 않을게요. 정말로.”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호진이의 저 음색이 어디에서 기인한 건지 알 것만 같았다.

“정말 착한 분이네요.”

“에이, 어머니, 저 그렇게 착한 사람 아니에요. 다 제가 성공하고 싶어서 호진이 이용하는 겁니다. 이렇게 능력 좋은 친구가 많이 없어요? 그깟 돈 1억 때문에 인재를 잃을 수는 없는 노릇이죠. 하하핫!”

성공해야지.

우리 멤버들이 이런 고생 하지 않도록 성공해야지.

적어도 돈 때문에 이렇게 주눅 들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러니까 말씀 편하게 하세요. 아들 친구잖아요. 하하하.”

“이렇게 착할 수가 있나….”

목소리가 일렁거렸다.

울컥하신 듯 목소리에 울음이 가득했다.

“현진이 보러 갈래? 아까 건하 네 얘기 하니까 얼굴 보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도 돼? 수술까지 필요한 거면 심각한 거 아니야?”

“괜찮아. 수술비가 비싼 거지 지금은 괜찮으니까.”

“그래. 알았어.”

병실에 누운 호진을 닮은 여자아이가 나를 보자마자 몸을 일으켜 고개를 숙였다.

이 아이가 호진이 동생인 현진인 모양이다.

벌써 몇 번 울었나 보다.

눈가가 붉게 부어 있었다.

“정말 감사해요.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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