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화>
가족이라.
호진 개인의 문제는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었다.
가족과 관련된 문제라면 해결하기 쉬운 일은 아니다.
어쩌면 본인이 해결하도록 기다릴 수밖에 없는 문제일지도 몰랐다.
“돈 문제로 얽혀 있는 게 많다고 들었다. 이번에 정산금 일부를 가불받아서 병원비로 쓴다는 얘기까지는 들었는데…. 아마 거기서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그럼 본인이 아프다는 건 거짓말이야?”
“아마도 그럴 거다. 본인 일로 저렇게까지 헤맬 친구가 아니거든.”
“나한테 얘기해 주는 이유가 뭐야?”
성훈이 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모르겠다. 건하 네가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지만 그래도 의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네가 리더니까 어떻게든 해결해 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때문인 거 같기도 하고….”
“형도 나를 리더로 인정해 주는구나.”
“물론이지. 우리가 직접 고른 리더인데. 질투는 좀 나긴 하는데, 적어도 이런 방면에서는 우리 중에 건하 네가 제일 잘하잖아.”
“가족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지는 정확히 모르는 거지?”
“거기까진 모르겠다. 그냥 돈 관련으로 얽힌 게 이번 휴가 때 터진 거 같아.”
흠, 쉽지 않네.
“어떡하냐….”
“단순한 돈 문제면 어떻게든 해결 가능해.”
“그래?”
“하지만 그 이상으로 복잡한 문제라면….”
해결하는 게 쉽지 않을 거다.
* * *
“죄송합니다.”
“호진아, 너 진짜 어쩌려고 그래?”
호진이 다음날에도 헤매는 건 여전했다.
춤 자체를 못 추는 건 아니었다. 실력이 있는 친구여서 춤은 곧잘 췄다.
더 큰 문제는 호진이 연습에 집중 자체를 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원래 움직여야 하는 방향의 반대로 움직인다거나, 전혀 다른 동작으로 NG를 낸다거나 하는 실수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몸이 아직 안 나은 거야?”
“죄송합니다….”
“무슨 일인데?”
채남영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호진이 자꾸만 붕 뜬 모습에 연습에 집중하지 못하자, 결국 채남영이 한숨을 퍽 내쉬었다.
그때였다.
우우웅!
“저기 트레이너님, 전화 좀 받고 와도 될까요?”
“중요한 전화야?”
“예. 죄송합니다.”
“받고 와.”
채남영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일정에, 팀 내 에이스가 이틀 내내 집중하지 못하면 당연히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호진은 휴대폰을 손에 꽉 쥔 채로 다급하게 문을 나섰다.
“일단 우리끼리 연습하자. 호진이는 내가 따로 연습시킬 테니까.”
한숨을 퍽 내쉰 채남영은 다음 진도를 나갔다.
그렇게 삼십분 정도 연습을 했을까.
“얘는 왜 아직도 안 와?”
전화를 받겠다며 연습실을 나간 호진이 돌아오지 않자, 슬슬 채남영의 미간에 주름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형이 애들 좀 다독여 줘.”
이러다가 연습 분위기가 박살 날 거 같아 성훈에게 한마디를 건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트레이너님, 제가 호진이 좀 찾아올게요.”
“그래…. 알겠다.”
연습실을 나가며 호진이 있을 법한 곳을 떠올렸다.
‘가족 문제일 거야.’
성훈의 말이 메아리처럼 떠올랐다.
급한 전화인 거 같았다.
마치 지금 받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연습까지 그만두고 급히 달려갔다.
호진이가 연습을 하지 않고 받을 정도로 중요한 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듯, 연습실의 문을 닫고 나서도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으면 했던 거다.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전화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갈만한 곳은 역시.
‘옥상.’
사무실 직원들이 담배를 피우러 올라가는 것 말고는 아무도 찾지 않는 옥상.
나는 반사적으로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6층 건물의 옥상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기도 전에 문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정산을 받지 못해서요.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그 돈만큼은 안 됩니다. 그 돈마저 가져가시면, 제 동생 정말 죽어요…. 제발….”
호진이의 목소리였다.
저렇게 말이 빨랐던 적이 있던가.
동생이라면 어제 성훈이가 말한 그 여동생일 텐데.
동생이 죽는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TV 보셨잖아요. 저 금방 갚을 수 있어요.”
절박한 호진의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렸다.
역시 돈 문제였나.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문제의 핵심은 아마 돈 때문일 거다.
호진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서 가족을 끔찍하게 생각한다는 성훈의 말이 떠올랐다.
‘이번 휴가 때 뭔가 일이 있었던 모양이긴 한데.’
“하아.”
이런 건 게임에서 없는 내용이었다.
돈이 부족해 고생하는 멤버에 관련된 스토리가 있을 리가.
그렇다는 건 게임의 힘에 의지하지 못한다는 얘기인데.
‘한번 해봐야지.’
나는 호진이 전화를 끊을 때까지 기다렸다.
3분 정도 지났을까.
“젠장….”
문 너머에서 호진의 욕설이 들리고 나서야 문을 열었다.
“호진아, 여기 있었어?”
“어? 건하야.”
“너 한참 안 오길래 찾으러 왔다.”
“아, 미, 미안….”
호진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얼굴을 들지 못하는 호진을 보며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영원히 해결하지 못한다.
과감한 직진이 필요할 때였다.
“무슨 일이야?”
“응?”
“듣고 싶어서 들은 건 아닌데, 방금 문 열면서 들었어. 돈이 필요한 거야?”
“…….”
호진이는 말이 없었다.
“솔직하게 말해줘. 문제가 있다면 같이 해결해야지.”
“나, 남들한테 말할 정도로 좋은 이야기가 아니라….”
“동생이 어떻게 된다는 건 무슨 말인데.”
호진이 입술을 오물거리며 대답을 망설였다.
“돈 문제면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어.”
돈으로 생긴 문제의 해결법은 간단하다.
더 많은 돈을 내면 그만.
돈 문제의 백에 아흔아홉은 돈이 부족해서 생긴 문제.
그렇다면 부족한 돈이 생기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호진이 어떤 문제 때문에 이렇게 고민하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돈이 많아서 생긴 문제는 아니었을 거다.
그리고 내겐 그 충분한 돈이 있다.
과금.
스킬 뽑기로 얻은 1억이 조금 넘는 돈.
쓰고 싶어도 쓸 짬이 나지 않아 여전히 내 통장 안에 잠든 돈.
1억이 부족하다고?
그럼 스킬 뽑기를 더 하면 된다.
그러니 말해.
도와줄 수 있으니까.
나는 호진을 지그시 바라봤다.
눈동자를 마주친 채 피하지 않고, 부드럽게.
“정확히 어떤 문제인지 말해줘.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야.”
일을 해결하려면 무슨 일인지 알아야만 했다.
어떤 문제가 그를 괴롭히고, 왜 문제가 터졌는지.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는지.
그건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야만 해결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기다렸다.
호진이 내게 말해 주기까지.
“…아버지가 남기신 빚이 있어. 이제 내가 그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야.”
“아까 전화는 채권자들한테 온 전화고?”
“응.”
빚이 아마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일 것이다.
“원래는 언제까지 갚으라는 상환 날짜가 있었는데 내가 TV에 나오고 유명해지고 나니까 빨리 갚으라고 재촉하는 전화가 계속 오더라고. 만약 갚지 않으면 언론에 제보하겠다고….”
“아직 갚지 못한 거야?”
“응. 대표님께 사정을 말씀드려서 내가 받아야 할 정산금을 가불받긴 했는데….”
했는데?
“여동생이 아프다는 걸 이번 휴가 때 내려가서 듣게 됐어.”
“그래서 가불받은 돈을 병원비에 쓰려고 했던 거구나?”
“응. 그런데 그 사람들한테 계속 전화가 오고, 이제는 못 참겠다고…. 빚투로 그룹 전체가 망하는 꼴 보기 싫으면 빨리 돈을 갚으라고 하더라고.”
“그 얘기를 대표님이나 프로듀서님한테 얘기는 했어?”
호진이 고개를 저었다.
“처, 처음 데뷔한다고 연습생 계약을 했을 때 한 번 크게 신세를 졌어. 여기서 더 부담을 드릴 수는 없어…. 게다가 우리한테 정산될 금액이 많지 않은 것도 알아.”
“…….”
얘기하기 어려웠겠지.
얼마 전에 이미 가불을 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병원비까지 생겨서 돈이 더 필요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을 거다.
그래서 문제가 커진 걸 테고.
황이서가 이런 일로 인색하게 굴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호진에겐 부담일 거다.
그렇지 않아도 데뷔하기 전까지 회사의 지원을 받고 다녔을 테니까.
신세를 졌다는 걸 보면 비슷한 일이 한 번 더 있었던 거 같고.
“나는 못난 오빠야. 그동안 동생이 아프다는 것도 모르고 팔자 좋게 아이돌 준비나 하고 있고….”
호진의 목소리가 울먹거렸다.
“데뷔 준비 때문에 동생이랑 어머니한테 자주 전화를 못 했으니까. 다 괜찮다고만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울먹이는 목소리가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기세였다.
“분명 다, 다 나았다고 그랬었어. 저번에 치료했을 때 완치돼서 괜찮을 거라고 그랬는데….”
무슨 병인지는 묻지 않았다.
“결국 병원비랑 빚을 갚을 돈이 필요한 거네?”
“응….”
“얼마가 필요한 건데?”
“병원비는 내 선에서 어떻게든 해결했고, 빚이 1억 원 정도…….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내가 해결할 수 있어.”
“괜히 무리하지 마. 예전에 내가 말했지?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하라고, 언제든 도와주겠다고.”
“응….”
“내가 해결해 줄게.”
1억 원.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하지만 내겐 그리 많은 돈 또한 아니었다.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범위였다.
호진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분명 부담을 가지겠지.
하지만 이상한 곳에서 돈을 빌릴 바엔 차라리 나한테서 빌리는 게 훨씬 낫다.
나는 무이자로 대출이 가능하거든.
적어도 우리 멤버들한테는 말이다.
그리고.
‘우리 멤버들을 데리고 협박을 하는 그 인간들도 해결해야겠지.’
가만히 둬서는 문제가 될 테니까.
공인이라는 신분을 가진 이들에게 협박하는 사람들에겐 확실하게 대처를 해야 한다.
기업을 운영했을 때 기억이 생생하다.
‘대표님, 여기서 굳이 문제 일으키지 맙시다. 확실히 해결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고 늘어졌던 기사.
이제 막 태동하려는 기업이었던 내 회사에 대한 조작된 기사로 나를 물려고 했던 그놈.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 무시했다가 꽤 골머리를 썩였다.
특히 돈과 관련된 이들은 확실하게 마무리를 짓는 게 중요했다.
그러니.
“그게 무슨 말이야?”
“돈 필요한 거잖아. 그 돈, 내가 빌려줄게.”
돈으로 생긴 문제는 돈으로 확실하게 끝맺어야지.
호진이 눈을 끔뻑였다.
“부담 갖지 마. 그냥 빌려주는 거야. 호진이 네가 돈이 엄청 급한 상황이니까 ”
“…….”
차마 괜찮다는 말이 떨어지지 않은 듯했다.
“성공하면 갚아.”
“하, 하지만 성공할지도 모르는데….”
“성공할 거야. 우리.”
나는 여전히 확신하고 있다.
올리오스는 성공할 거라고.
믿을 수 있는 멤버들과.
성실한 매니저와 능력 있는 프로듀서.
거기에 우리를 좋게 봐주는 관계자들까지.
사방에 우리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가득했다.
“1억 원은 그냥 벌 수 있을 정도로 성공할 거야.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이렇게 빌려주는 1억 원, 미래의 호진은 손쉽게 벌 수 있는 돈이 될 거다.
그것이 지금은 아니기에.
나는 호진을 위해 기꺼이 내 지갑을 열 용의가 있었다.
“뒤끝 없이 해결하자. 괜히 빚투로 일 커지면 우리 모두 곤란해져. 그러니까 받아.”
“…그래도 돼?”
“응. 무이자 할부로 빌려주는 거야.”
해결 방법은 머리에 생각해 뒀다.
“금액은 네가 전달하는 게 아니라, 두현이 형을 통해서 건네줄 거야.”
“그러려는 이유가 있어?”
“회사에서 정식으로 보내는 돈이라는 걸 알려줘야지. 우리는 확실히 갚았으니, 이를 가지고 문제를 키우면 소속사 차원에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의지도 내비쳐야 하고.”
확실하게 마무리해야 한다.
미적지근하게 뒀다가 일을 키운 경험이 있으니까.
‘그 이후로 돈 관련 문제는 확실하게 처리하는 게 몸에 배었지.’
돈 문제는 깔끔해야만 한다.
“프로듀서님한테 말하고 행동하자.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셔야 하니까.”
“…건하야 정말 고마워.”
“고맙다는 인사는 일 다 끝내고 말해도 늦지 않아.”
나는 호진이와 함께 황이서에게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건하야, 네 돈으로 갚겠다고?”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