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화>
이제 휴가도 5일 차.
혼자서 기숙사에 있는 것도 익숙해졌다.
아침에 일어나 이불을 개고, IPTV를 틀어 아이돌 노래를 튼다.
오늘의 노래는 데뷔한 지 4년이 지났고, 이제는 중견 아이돌이 된 걸즈레빗의 폴인럽.
신나는 비트와 통통 튀는 멜로디, 그리고 중독성 높은 훅이 인상적인 노래였다.
원래는 호진이나 성훈이 매일 틀어놨던 건데, 이제는 틀지 않으면 뭔가 허전했다.
“폴~인럽! 나에게 빠져!”
이 세계의 노래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도 숙소 생활을 몇 달 하다보니, 이제는 이 세계의 아이돌 노래도 입에 착착 달라붙었다.
간단하게 계란 후라이와 어제저녁에 마트에서 산 베이컨, 그리고 가볍게 구운 식빵 위에 양배추를 썰어서 얹은 뒤에 살짝 소금 간을 해준 것으로 아침을 먹었다.
과거 사업가였던 시절에 종종 챙겨 먹었던 아침밥이었다.
왠지 이걸 먹으면 하루가 산뜻해졌다.
자세히 보면 다 토스트 재료다.
약간 건강식 토스트랄까?
“흐응, 흐으응~.”
맛있는 아침을 먹으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밥을 다 먹고, 다시 들리는 폴인럽의 반주에 맞춰 어깨를 씰룩거렸다.
“내가 없으면 못 살걸? 더 가까워진 우리 사이~.”
달그락 달그락.
흥얼거리며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푸흡!”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
누구지?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
“뭐, 뭐야?”
너희가 왜 여기에 있어?
멤버들이었다.
각자 짐을 싸고 고향에 내려갔던 멤버들이 거실에서 각자 짐을 풀지도 않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우주는 얼굴이 터지기 직전이었고, 호진은 고개를 돌려 작게 웃었으며, 정민도 눈을 감았다.
성훈만이.
“아무리 혼자 있어도 아이돌이라는 자각은 해야지.”
라며 타박했다.
그런 성훈의 입꼬리도 살짝 올라가 있었다.
“왜, 왜 왔어?”
“왜 오긴, 푸흡! 우리 형이 혼자 있는 거 외로워할 거 같아서 조금 일찍 돌아왔지. 서프라이즈 해주려고 그런 건데…….”
우주가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저건 우는 거나 다름없는데.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방금 그건 그냥 안무 연습이야. 전혀 노래가 마음에 들었다는 게 아니고.”
“노래 좋아하는 게 뭐 어때? 이러면서 연습도 하고 그러는 거지. 안무를 잘 몰라서 관광버스 춤 같아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귀엽잖아?”
정민이 위로하겠다며 하는 한마디가 오히려 내 가슴을 후벼팠다.
“그만, 이러다 나 죽어.”
“그래. 다들 장난 그만하고, 이따 저녁에 뭘 먹을지 생각해 두자.”
성훈이 말리고 나서야, 다들 진정이 됐다.
“저녁?”
“첫 휴간데 멤버들끼리 우애도 다질 겸, 같이 뭐라도 먹어야지.”
그런 거라면 괜찮은 곳이 있다.
“그럼, 내가 살게. 제대로 된 식당 하나 알아뒀어.”
한진성과 갔던 선빈당이 떠올랐다.
자신감 넘치는 내 대답에.
“호진아, 건하 정말 재벌가 아들이 아닐까? 돈이 마르지가 않아.”
정민이 쑥덕거렸다.
다 들린다.
5일 만에 다시 간 선빈당은 역시나 맛있었다.
* * *
우리 다섯은 남은 이틀간 휴가를 최대한 즐겼다.
침대에 늘어져서 두 시간 동안 누워서 뒹굴기도 해봤고, 다섯이서 함께 할 만한 놀잇거리도 찾아봤다.
나는 그동안에도 추가로 깰 수 있는 업적을 깨기 위해 애썼다.
쉬는 날에도 할 수 있는 건 해야지.
[업적 ? 멤버들과 함께 외식하기 5/5]
[업적 ? 멤버 모두와 함께 영화 보기 1/1]
[업적 ? 같은 꿈을 바라보는 동료 만들기]
이런 식의 소소한 업적을 달성하며 마일리지를 차곡차곡 쌓았다.
멤버십도 팀의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긴 하지.
휴가를 즐기는 동안 유독 호진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표정 변화가 잘 없는 호진이라 눈에 잘 띄지 않아, 정말 유심히 살펴야 알아챌 정도였다.
뭔가 초조한 듯 자꾸만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싶어 물어보면.
“아무것도 아니야.”
라며 둘러댈 뿐이었다.
우리 역시 더 물어보지는 않았다.
남들에게 얘기하고 싶지 않은 비밀 같은 건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니까.
‘본가에 내려가서 뭔 일 있었나?’
호진이 최대한 스스로 마무리 지을 수 있길 바랐다.
길었던 일주일 휴가가 끝이 났다.
* * *
휴가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사흘 뒤에 있을 진효원과의 뮤직비디오를 찍기 위해 연습실에 출근했다.
“보내준 영상은 봤지?”
채남영 댄스 트레이너가 연습실에 모인 우리를 보며 물었다.
“예, 봤어요. 생각보다 간단하던데요?”
“아무래도 진효원 씨가 춤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최대한 간단한 안무로 짰어. 진효원 씨가 돋보이면서도 너희가 백댄서 느낌이 나지 않게끔 엄청 신경 많이 썼으니까, 열심히 해보자.”
“쌤 진짜 고생 많이 하셨네요.”
“거기 블랑 쪽 안무가랑 엄청 싸웠다.”
핫핫핫!
어깨를 펴며 크게 웃는 모습이 늘 열정을 외치는 채남영 트레이너다웠다.
“아무튼! 오늘부터 이틀간 빡세게 연습해서 안무 외울 거다. 앨범이 공개되는 건 뮤비 찍고 3주 정도 지나고 나서라고는 하는데, 너희 그동안 계속 놀 것도 아니잖아. 이제 정규 앨범 준비하고 노래 녹음하려면, 그사이에도 바쁠 테니까 미리 연습해야지. 안 그래?”
전부 맞는 말이었다.
부정할 수 없는 이야기라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바로 시작하자고.”
“알겠습니다!”
채남영의 지도와 함께 연습을 시작했다.
진효원의 역할을 채남영이 대신하면서 여섯 명의 호흡을 하나로 맞추기 위한 연습을 이어갔다.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여기서 턴.”
진효원과 정민이 작곡하고 멤버들의 목소리로 완성된 노래를 따라 우리는 몸을 움직였다.
처음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앗!”
“미, 미안….”
아까부터 호진이 자꾸 한 박자씩 늦었다.
바로 옆에 있는 나는 물론이고 우주와 정민과도 자꾸만 충돌하면서 호흡이 맞지 않았다.
박자를 놓치는 건 물론이고.
“죄,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안무를 제대로 외우지 못해서 흐름을 끊는 등, 호진이답지 않은 모습을 자꾸만 보여줬다.
“호진아, 너 왜 그래. 괜찮아?”
오죽하면 채남영이 연습을 잠깐 멈추고 호진을 따로 부를 정도였다.
“괘, 괜찮아요. 잠깐 피곤해서….”
호진이가 주눅 든 목소리로 고개를 숙였다.
“하아, 오랫동안 쉬었으니 감을 찾는 게 힘들긴 하겠지. 하지만 명심해. 컨디션 관리도 일이야. 무대 위에선 피곤하다는 변명은 절대 통하지 않아. 그러니까 잘 관리해. 알았지?”
“네.”
호진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호진의 실수는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우리 멤버 중에 가장 춤에 능숙한 호진이 자꾸만 실수를 하니, 채남영 트레이너의 표정도 점차 굳기 시작했다.
“호진아, 너 정말 괜찮은 거 맞아?”
“…죄송합니다.”
호진이 고개를 깊이 숙였다.
다른 변명은 없었다.
그저 거듭 미안하다고 말할 뿐.
안무를 맞춰주기 위해 같은 동작을 몇 번이나 반복했던 채남영이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일단 호진이 집중을 못 하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오늘 연습한 부분 계속 반복 연습해서 내일 다시 한번 체크하자. 너희 MV 때까지 맞추려면 시간 없다. 컨디션 관리 제대로 하고….”
채남영이 호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혹시 어디 아파서 그런 거라면 빨리 얘기해. 약 먹고 병원 가서 빨리 치료라도 하는 게 나을 테니까.”
“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우리는 말 없이 호진을 보았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평소에 호진이 연습을 게을리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누구보다 연습에 집중하고 열정이 넘치는 애가 아니던가.
언제나 가장 먼저 연습실에 오고 가장 늦게 연습실을 나갔다.
숫기가 없어 말을 못 하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춤에 더 집중했던 호진이었다.
‘무슨 일이지?’
휴가 때도 종종 표정이 어두웠던 게 생각났다.
“하아, 알았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지금 상황에서 진도 더 나가봤자 이도 저도 안 되겠다. 호진이는 차라리 쉬어서 컨디션 관리라도 해. 나머지 애들은 오늘 했던 부분 연습하고.”
말을 마친 채남영은 연습실을 나갔다.
갑작스러운 연습 종료에 멤버들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다들 땀을 뻘뻘 흘린 채로, 걱정스러운 얼굴로 호진을 보았다.
그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미안…. 다들 정말 미안해….”
평소에 입이 무겁던 호진이 억지로 말을 쥐어짜내며 연신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정말 무슨 일 있는 거야?”
나는 주눅이 든 채로 고개를 숙이는 호진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 아무 일도 없어.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 정말, 미안해.”
호진은 어물쩍 넘기려는 듯 입을 다물었다.
거짓말이었다.
피곤하다고, 아프다고 연습에 미진할 친구가 아니었다.
함께 연습한 시간이 얼만데.
몇 달 동안 같이 연습실을 써서 잘 알고 있었다.
이 거짓말을 못 하는 착한 친구는 자신이 피곤해서 잘못했다는 변명으로 무마하려고 하고 있었다.
문득, 휴가 때도 이랬던 게 생각이 났다.
“설마 본가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 아니야! 아무 일도 없었어.”
격렬하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하는 호진.
그 반응에 확신했다.
본가에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부모님이 아이돌을 하지 말라고 말리는 걸까?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그 호진이 집중을 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일인 것만은 확실했다.
“자,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너, 너무 피곤하다. 응…. 피곤해.”
그때, 호진의 전화기가 울렸다.
“자, 잠시 전화 좀 받고 올게.”
전화기를 챙긴 호진이 황급히 연습실을 나갔다.
“호진이한테 무슨 일 있는지 알아?”
멤버들을 향해 물었다.
“우리도 잘 몰라. 호진이 형이 애초에 자기 일을 잘 얘기하는 형이 아니라서….”
“저렇게까지 힘들어한 적이 없었어.”
우주와 정민이 한숨을 퍽 내쉬었다.
“성훈이 형은 혹시 알아?”
성훈 역시 고개를 저었다.
“나도 정확한 건 잘 몰라. 일단 기다려 보자.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성훈은 뭔가 알고 있다는 눈빛이었다.
하나 묻지는 않았다.
“일단 기다려 보자. 잘하겠지.”
지금까지 잘 해왔던 친구였다.
앞으로도 잘하리라.
나는 믿었다.
* * *
“건하야, 잠깐 시간 돼? 따로 얘기 좀 하자.”
연습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성훈이 나를 불렀다.
아직 씻지도 않았는데 부르는 이유가 있을 거다.
눈치만 봐도 알겠다.
이건 호진이 문제 때문에 나를 부르는 거다.
“알겠어. 잠깐만.”
“형들 둘이서 무슨 비밀 얘기를 하려는 거야?”
“우주야, 너한테는 나중에 알려줄게.”
성훈이 따라오려는 우주를 말리며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성훈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갔다.
밤공기가 쌀쌀했다.
이제 10월.
가을의 지독한 일교차 때문에 반팔을 입고 나오면 감기 걸리기 딱인 날씨였다.
“어으으, 춥네. 호진이 때문이지?”
“응.”
“형은 뭐 알고 있는 거 있어?”
성훈이 머리를 긁적였다.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해도 되는지 몇 번이고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걱정 마. 호진이한테는 절대 티 안 낼 테니까. 나 알잖아. 표정 관리 잘하는 거.”
성훈이 나를 잠시 보며 사탕을 입에 물었다.
하얀 포장지에 ‘dextrose’라는 영어가 적혀 있었다.
포도당 캔디네.
“너도 먹을래? 포도당 캔디인데, 생각 정리하거나 피곤할 때 먹으면 도움 돼.”
“괜찮아. 사탕보단 껌 파라서.”
“그래?”
성훈은 사탕 봉지를 하나 내밀었던 손을 다시 집어넣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늘 표정 관리를 하며 냉철하게 상황을 살피던 성훈의 표정이 이렇게 변하는 건, 진효원과 함께 작업할 때를 제외하곤 처음이었다.
그만큼 호진을 아낀다는 뜻이겠지.
이렇게 따로 나와서 나를 부른 것도 호진의 문제를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싶어서일 거다.
“호진이 말이야. 아마 가족 문제 때문에 저러는 걸 거야.”
“가족 문제?”
성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입술을 달싹이던 성훈이 결국 다시 입을 열었다.
“호진이 어머니 혼자서 호진이랑 여동생을 같이 키우고 계시거든. 그래서 가족애가 굉장히 세. 호진이가 아이돌로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이 악물고 연습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