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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53화 (53/236)

<제53화>

“하아.”

이제는 올리오스의 열혈 팬이 되어버린 김다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며칠 전에 라디오 방송을 마지막으로 올리오스가 데뷔 싱글 앨범의 공식적인 활동을 모두 마쳤기 때문이었다.

“아쉽다.”

조금만 더 활동해 줬으면 했다.

이전에 파던 아이돌은 어느 순간 관성적으로 좋아하고 있던 거라, 이렇게 아이돌한테 푹 빠진 건 오랜만이어서.

올리오스 멤버들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인터뷰에서 보여줬던 그 컨셉을 다시 보여주는 것도 보기 좋았다.

너무 올드해서 오히려 신선하다고 해야 할까?

계속 보니 조금 나은 느낌도 들고.

“다시 보기로 볼 수밖에 없나?”

올리오스가 아직 공식적으로는 별스타 라이브도 X-라이브도 따로 하지 않는 게 너무 아쉬웠다.

만약 라이브라도 했다면 매일 출석했을 텐데.

“어떻게 기다리지?”

삶의 희망이 사라진 탓일까. 한숨이 늘어난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탄 그녀는 일상처럼 봤던 별스타를 열었다.

그리고 그녀의 최애인 올리오스 멤버들의 별스타에 들어가 새로운 게시글이 없나 살피는 게 이젠 일상이 되었다.

건하는 SNS를 따로 하지 않는지, 아쉽게도 별도의 SNS계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GH 엔터의 공식 홈페이지에도 없더라.

가끔씩 나오는 특유의 아재 멘트도 그렇고 아예 SNS에 관심이 없는 모습도 그렇고.

‘묘하게 30대 아저씨 같은 면모가 더 귀엽단 말이지.’

…라고 생각하며 멤버들의 별스타를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우와! 우와! 우와!”

그녀는 눈을 부릅뜨며 별스타의 게시글을 확인했다.

올리오스 멤버들을 따로 링크해서 올린 진효원의 별스타 사진.

-유망한 후배, 올리오스와 함께.

“진효원 앨범에 피처링으로 나오는 거야?”

순간 버스 안이라는 것도 잊고 소리치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당장이라도 내리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별스타와 함께 나온 기사를 살폈다.

대박. 진짜네.

올리오스가 진효원과 함께 작업했다는 기사가 줄줄이 올라왔다.

생각보다 최애를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거 같아, 얼굴에 미소가 차올랐다.

“노래가 어떻게 나올까?”

앞으로 나올 진효원과의 노래에 벌써 가슴이 두근거렸다.

* * *

“오늘부터 일주일간 휴가다. 너희 연습생 시절부터 숙소 생활한다고 고생했으니까.”

우리를 사무실로 부른 황이서가 말했다.

“휴가요?”

“나도 고민 많이 했다. 너무 빨리 주는 거 아닌가 싶긴 한데….”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책상을 두드리던 황이서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진효원이랑 공동 작업 활동에, 지금 준비하고 있는 정규 앨범 활동까지 생각하면 너희 내년 1월까지 쉴 시간이 없겠더라고.”

지금은 9월 말, 이제 가을로 들어가는 초입이었다.

내년 1월까지 거의 4개월간 쉴 틈 없이 활동을 몰아치겠다는 뜻.

그야말로 지옥의 강행군이었다.

“지금이라도 쉬어둬야 너희도 안 쓰러진다.”

“그럼 집에 갔다 와도 되는 건가요?”

“당연하지.”

멤버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니까 이른 휴가 다녀오면서 가족들 만나서 자랑도 좀 하고, 활동 걱정 없이 푹 쉬다가 와.”

가만히 우리를 바라보던 황이서가 목소리에 힘을 줬다.

“물론 술 마시게 되면 매니저나 나한테 연락 주고, 어디에 누구랑 갔는지 정도는 미리 보고해. 이성이 있는 자리는 되도록 피하고.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예!”

“명심해. 이제 너희는 단순한 연습생이 아니라는 거. 행동 하나하나 조심해야 하는 아이돌이고 연예인이야.”

휴가라고 해도 100%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말.

불필요한 소문에 휩싸이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황이서 프로도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휴가를 보내지 않으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사진 많이 찍히지 말고. 괜히 문제 되는 일 생기면 곤란하다. 먹는 것도 살 찌니까 너무 많이는 먹지 말고. 또 뭐가 있더라….”

마치 아기들을 물가에 내놓은 부모처럼, 황이서는 당부할 것들을 끊임없이 꺼내고 있었다.

걱정이 많이 될 거다.

아이돌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 알고 있었다. 한 명이라도 사고를 치면 그 한 명의 이미지뿐 아니라, 그룹 전체의 이미지가 망가지니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너희가 그럴 놈들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아무튼 조심해라.”

“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우리는 해산했다.

숙소로 돌아온 멤버들은 각자 가족들을 보기 위해 짐을 챙겨서 준비했다.

멤버들 얼굴에 핀 웃음꽃이 지워지지 않았다.

“흐흐흥~.”

오랜만에 집에 돌아갈 생각이 들뜬 정민은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다들 티는 안 냈지만, 상당히 지쳤을 거다.

연습생부터 시작해서 데뷔조까지 되는 과정이 하루 이틀로 만들어지는 건 아니니까.

다들 스무 살 안팎의 아이들이었다.

연습생 시절을 생각하면 성인이 되지 못한 중고등학생 때부터 집에서 떨어져 나와서 연습생 생활을 보냈다는 거다.

집에서 떨어져서 혼자 생활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같이 있으면 나아질 거다.

“건하야, 너는 짐을 따로 안 챙겨?”

“응? 아, 나는 휴가 동안 숙소에 있을 거야. 따로 갈만한 곳이 없어서.”

내 말에 정민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말에 담긴 뜻을 바로 캐치한 거다.

“아, 미안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저 난감한 표정.

미안함이 잔뜩 담긴 정민의 얼굴을 보며 나는 웃었다.

“신경 쓰지 마. 아버지는 살아계셔.”

연락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지.

없는 사람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무튼 잘 다녀올게.”

뒤늦게 내가 짐을 안 챙기고 있다는 걸 확인한 우주가.

“형은 안 가요?”

“야, 나와. 빨리.”

“민이 형, 왜 입을 막아? 아읏! 짜! 아니, 왜?”

정민과 호진에게 붙잡혀 끌려갔다.

저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조심히 갔다 와.”

“다녀올게.”

짐을 챙긴 멤버들이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숙소를 나갔다.

쿵.

문이 닫히고.

숙소가 고요해졌다.

“이렇게 조용한 곳이었나.”

항상 멤버들이 함께 있던 공간이라, 이렇게 조용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었냐면….

수다스러운 우주의 목소리.

송송송.

정민이 부엌에서 요리하는 소리.

따라란.

성훈이 거실에서 노래를 감상하는 소리.

스르륵.

그 노래를 들으며 이리저리 춤을 추는 호진의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까지.

매일같이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숙소였다.

“뭔가 텅 빈 느낌이네.”

빈 숙소가 공허했다.

오랜만이었다.

이런 느낌.

“예전에 우리 집이 딱 이랬는데.”

성공한 사업가 윤건하.

화장품 CEO.

젊은 사업가 등등.

기사에 실린 수많은 호칭과 별명이 내 성공을 대변했다. 내 주위엔 내게 잘 보이려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손을 비비며 어떻게든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을 물리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딱 이런 상태였다.

아무도 없는, 공허한 집.

강아지라도 한 마리 키울까 생각했었지만,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그 친구가 겪을 외로움이 얼마나 클지 알고 있었다.

그 외로움을 알기에 결국 키우지 못하고 혼자 살았다.

“외로움은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다시금 나 혼자 남은 숙소를 바라보자, 가슴 한구석이 시큰거렸다.

벌써 멤버들과 부대끼며 복작복작하게 지낸 생활에 적응해버린 걸까?

혼자 남았다는 사실에 불쑥 외로움이 솟구쳤다.

어색했다.

나 혼자 이 숙소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들어 연락처를 확인했다.

연락처엔 아버지와 MAE에서 나를 챙겨준 양 실장, 그리고 한진성의 전화번호를 시작으로 황이서와 멤버들을 포함한 GH의 식구들의 번호도 있었다.

꽤 많아졌네.

과거 아버지와 양 실장만 있던 연락처에 새로운 이름이 늘어났다.

“전화라도 할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아버지.

1년 전에 전화를 걸었던 아버지의 전화번호였다.

내가 아닌, 이 세계의 윤건하의 아버지.

번호를 보자마자 심장이 뛴다.

윤건하의 몸에 남은 공포감이었다.

원래 윤건하는 그만큼 아버지를 두려워한 모양이었다.

두려움.

좋지 않은 감정이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두려움은 필연적인 감정이었다.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 감정이었다.

실패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나를 따라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책임지지 못할까 봐 생기는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성공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사업가로서 성공했던 이유였다.

“네가 아버지를 두려워했다면….”

이 두려움은 내가 극복해야 하는 문턱이겠지.

하지만.

‘가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가능할까?’

잘 모르겠다.

전화를 건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그때 전화를 무시해서 죄송합니다?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다.

가족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투성이다.

가족과 전화했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았으니까.

내가 모르는 윤건하의 부분을 말한다면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을 묻는다면 대답도 못 하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을 거다.

-아버지.

그렇다고 언제나 도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업가로 성공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지금은 두려움을 극복해야 할 때다.

전화를 하지 말고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과거이기도 했기에.

“하아.”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불편한 사이라도, 만나고 얘기해서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혈연이라는 거 나는 잘 모르지만, 그게 쉽게 끊어질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건 충분히 알고 있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1분간 발신음이 이어졌으나.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부재중.

윤건하의 아버지는 받지 않았다.

“으음….”

저쪽도 부재중이 찍혔을 테니, 나중에 연락을 오길 기다려야겠지.

부재중이 걸린 지 1년 만에 다시 건 연락이었다.

돌아오는 건 꽤 걸릴 거다.

아니면 여기서 끝날지도 모르지.

‘조금은 아쉽겠지만….’

전화를 더 걸지는 않았다.

1년 만에 건 전화.

이거라면 충분히 신호가 됐으리라.

‘양 실장에게 전화를 해볼까?’

괜히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빈 숙소가 너무 공허해서.

-어, 건하야. 어쩐 일이니?

“예, 실장님 잘 지내시는지 해서요.”

-지금 골든트랙 애들 케어하느라 정신이 없다. 하하. 활동 끝났다면서? 잠시 쉬는 거야?

“일주일 휴가 받았습니다.”

-부럽다. 나는 연차도 못 쓰고 있는데. 아, 너희 성적 봤다. 축하한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나는 네가 해낼 줄…. 미안하다. 애들이 와서.

“괜찮습니다.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래.

또 허망하게 연락이 끊겼다.

다른 연락처는 전부 GH 엔터의 사람들.

멤버들은 고향 내려가고 있을 테고, 황이서는 방금도 만나고 왔으니….

남은 건 하나였다.

-한진성

뚜르르르.

발신음이 울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 건하야. 무슨 일이야?

“선배님, 전화 괜찮으십니까?”

-물론이지. 이제 활동 끝났니?

“예, 정식 활동은 끝났고 차기 앨범 때문에 준비 중입니다.”

-효원 선배랑 같이 연습하겠네. 그 선배 빡빡하긴 해도, 잘하면 아껴주는 분이니까 열심히 하면 될 거다.

“노력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연락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별거 아닌 격려에도 마음이 든든해졌다.

-다른 애들은?

“지금 숙소에 혼자 있어요.”

-혼자 있다고? 왜? 뭔 일 있어?

“이번에 휴가 받았어요. 앞으로 빡세게 굴릴 거라고 일주일 정도 쉬고 오라더라고요.”

-건하 너는 안 내려가고?

“딱히 갈 곳이 없어서요.”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수화기 너머의 한진성의 낮은 신음이 들린다.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눈에 보이듯 선했다.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을 거다.

-그래? 알았어. 혹시 밥은 먹었니?

“아직 3시라서요. 뭐 먹기엔 애매한 시간이라.”

-나도 그렇긴 한데…. 음, 그럼 내가 7시까지 갈 테니까 밥 먹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지금 작업 중이니까.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첫 휴가인데 혼자 있으면 곤란하지. 적어도 첫날은 같이 있게 해줘라. 매일은 못 있어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선배님.”

-그래. 일단 푹 쉬고 있어.

혼자 지내는 건 익숙하니까.

“그나저나 뭘 하지?”

산책이라도 나갈까?

집에만 있는 건 그러니 밖에서 공기라도 쐴까 생각했다.

바람을 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시원해지니까.

기분 전환 겸으로 돌아다니는 것도 좋겠지.

‘마스크는 써야겠지?’

그래도 TV에 나왔으니까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 * *

바람이 시원했다.

햇빛은 따스해서 기분이 좋았다.

숙소 근처에 있는 공원을 돌고 있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수군거리는 여성들.

자의식 과잉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알아보는 건가?’

그래도 꽤 많은 예능과 방송에 나갔으니, 알아보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이거 오래 못 다니겠는데.’

가볍게 밖에서 혼자 머리라도 식힐까 했는데, 사람들이 더 알아보면 곤란해질 거 같아서 그만뒀다.

‘편의점에 가야겠다.’

결국 편의점에서 이따 먹을 간식을 이것저것 사서 들어왔다.

편의점 직원도 나를 아는 듯 계산하는 동안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더라.

“돈이 많은데 쓸 곳이 없네.”

활동으로 번 돈은 아직 정산을 받지 못했지만, 내 능력으로 얻은 돈이 많이 남아 있었다.

혼자서는 돈을 제대로 쓰지도 못할 거 같다.

혼자서 집에서 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우우웅!

“한진성 선배님?”

-건하야, 지금 숙소로 가는 중이야. 5분 뒤면 도착할 거야.

벌써?

-우리 고기 먹으러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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