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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52화 (52/236)

<제52화>

“자, 이제 듀엣 부분이랑 화음 넣어줄 파트를 다 같이 들어갈 거야.”

진효원을 포함한 여섯 명 모두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프로듀서 자리엔 진효원을 대신해, 블랑 엔터의 수석 프로듀서가 자리했다.

“최 프로, 이상한 부분 있으면 바로 말해줘.”

-알겠습니다.

진효원은 이 시간을 가장 기다렸다.

잠재력이 훌륭한 후배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건, 그녀의 가수 인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즐거운 일이었다.

특히 건하와 성훈.

이 두 친구와 제대로 화음을 맞춰서 듀엣을 하는 즐거움을 어서 느끼고 싶었다.

‘그렇다고 다른 멤버들이 못 부르는 건 전혀 아니지만.’

다른 두 멤버의 실력이 상당히 월등했다.

누가 이 친구들을 데뷔한 지 몇 달도 되지 않은 신인이라 생각할까.

“녹음하기 전에 우선 화음부터 맞춰보자.”

“넵.”

“우선 4화음으로 들어갈 건데, 호진이랑 우주가 가장 낮은 음을 잡아주고, 그 위를 건하랑 정민이 잡아줄 거야. 성훈이 고음을 잡고, 그 위를 내가 덧씌우는 방식이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스 안에 들어오기 전에 몇 번이고 얘기했으니.

“성훈이랑 내가 음을 변주를 줄 테니까, 나머지 친구들은 그 음을 계속 유지해 줘.”

“알겠습니다!”

“그럼 시작할게.”

하나, 둘, 셋.

진효원이 기본 베이스음을 불렀다.

반주 없이 화음을 맞추는 건 상당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사전에 맞추지 않으면, 베테랑도 가끔 실수하는 파트.

이 친구들은 어떻게 불러줄까?

노래를 부르던 진효원이 신호를 보냈다.

날 기다려 줘~.

너를 위해 빛나는 나를.

다섯 명이 마치 한 몸처럼 화음을 맞췄다.

화음이 끝이 나고, 진효원과 성훈이 함께 듀엣으로 부르는 파트로 넘어갔다.

그 모습에 진효원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시작 전 간단한 테스트로 호흡을 맞춰봤을 뿐인데, 연습량을 짐작할 수 있었다.

노래를 부를 때 다섯 명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호흡이 놀라웠다.

별다른 연습도 없었음에도 하나처럼 엮인 올리오스의 모습에 그녀는 대견함을 느꼈다.

그리고 더 탐이 났다.

이 친구들을 빨리 찾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좋아. 본 녹음 때 이 정도만 해보자.”

그렇게 말하는 진효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느 때보다 즐거운 작업이었다.

이 친구들이 나중에 얼마나 더 발전해 있을까?

이걸 보는 재미도 있을 거 같았다.

반주가 흐르고, 사전에 녹음된 진효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화음을 맞춘 올리오스와 진효원의 노래가 그 위를 덧씌웠다.

조각조각 나뉘어 있던 노래의 파편들이 하나로 모이기 시작했다.

다 같이 녹음을 하면서 진효원은 문득 한진성이 한 말이 떠올랐다.

‘건하 걔 재밌는 친구예요. 유심히 보세요. 아마 그 속에 야수 한 마리가 숨어 있을 겁니다.’

한진성에게 그래미를 갈 거라고 선언했다는 건하.

그리고 그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한진성.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아주 조금은 알 거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건하랑 성훈이랑 같이 붙이면 케미 좋을 거 같은데.’

받쳐주는 서브 보컬 건하, 메인 보컬 성훈.

둘이 따로 유닛으로 나올 때가 기대되었다.

아마 실력파 보컬 유닛이라며 사랑받을 것이 분명했다.

‘둘 중 하나는 나갈걸요?’

한진성의 목소리가 자꾸만 껌딱지처럼 귓가에 내려앉았다.

그러는 동안, 녹음이 끝이 났다.

어제 바로 작곡한 어쿠스틱한 노래까지 전부.

“고생했어.”

유닛을 만드는 게 급한 일은 아니니까.

올리오스는 이제 데뷔했다.

조급하게 굴지 않아도 된다.

별도 활동을 위한 유닛은 만들어도 한참 뒤에 만들 수 있을 거다.

그때 다시 생각하면 되겠지.

“선배님,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녹음을 마친 멤버들이 그녀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선배님, 사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성훈이 가장 먼저 달려왔다.

콘서트장에 온 어린아이 같았다.

“이제 받는 거야? 저번에는 안 받더니.”

“같은 가수 후배로서 받고 싶었습니다. 그냥 팬으로 받는 건 납득되지 않아서요. 가수로서 받고 싶었습니다.”

성훈의 말에 진효원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지금은 가수 후배로서 받을 만하고?”

“예. 같은 가수로 녹음까지 했으니, 최소한의 자격은 달성하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욕심이었습니다.”

“그래.”

같은 가수 후배로서 받고 싶다니.

확실히 본인만의 기준이 확고한 성훈이었다.

사인을 해주고 함께 셀카를 찍은 진효원은, 설레는 얼굴로 사인에 새겨진 자신들의 이름과 그녀와 함께 찍힌 셀카를 보는 올리오스 멤버들을 불러 세웠다.

“아, 얘들아.”

“예?”

“너희도 사인이랑 셀카 찍어줘야지. 팬서비스 안 해줄 거야?”

팬서비스라는 말에 잠시 눈동자를 굴리던 올리오스의 눈동자가 커졌다.

입이 벌어지고, 우주는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

성훈이는 들고 있던 펜과 종이를 놓쳤다. 저 손에 핸드폰을 안 들고 있어서 다행이네.

다들 마찬가지였다.

진효원은 저 표정을 본 적이 있다.

데뷔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까마득한 대선배가 영광이라며 사인을 부탁했을 때.

그녀도 저 표정이었다.

이번 경험이 앞으로 이 친구들을 계속 앞으로 달리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했다.

설사 다음 앨범이 잘되지 않더라도.

그다음 도전을 할 수 있게끔.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무, 물론이죠! 선배님!”

*    *    *

“후하! 정말 피곤하다.”

차에 늘어진 채 쓰러진 우주가 말했다.

“녹음만 여섯 시간이나 할 줄은 몰랐어.”

파트별로 노래를 부르고 그 자리에서 가볍게 믹싱하며 맞추며, 완성된 노래를 다시 한번 듣고는 어색한 부분이 있으면 재녹음.

진효원의 깐깐한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 얼마나 노래를 불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힘들긴 했다.”

성훈마저도 지친 얼굴이었다.

정민은 이미 차에 머리를 기댄 채 자고 있었다.

어제도 거의 밤샘 작업을 한 것 같으니, 졸리지 않은 게 이상하지.

우리 중에 성훈과 정민이 가장 고생했다.

메인 보컬, 그리고 프로듀싱과 작곡.

녹음 작업에 있어 가장 많은 일을 소화한 멤버들이었다.

특히 성훈은 몇 번이고 고음을 내질렀다.

그럼에도 목이 멀쩡한 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숙소 돌아가면 푹 쉬자.”

“그러자.”

데뷔 앨범 활동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며칠은 푹 쉬어야지.

진효원과의 녹음 때문에 잊고 있었지만, 우리 활동 끝난 지 만 하루밖에 되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늘어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도 선배님이 사인도 해주시고.”

“우리 사인도 받아가셨지.”

애들이 사인과 셀카를 요청하던 진효원의 모습을 떠올렸다.

“선배님이 팬서비스라고 했잖아.”

피곤함에 눈을 게슴츠레 뜬 우주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선배님도 우리를 좋게 보신 거겠지?”

“당연하지.”

우리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였을 거다.

그러나 좋게 보지 않았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팬도 되어 주시겠다고 하셨잖아. 진짜 가문의 영광으로 삼아야겠다. 친구들한테 자랑할까?”

우주가 싱글벙글 웃었다.

호진도 말없이 웃었다.

성훈은 진효원의 사인을 소중히 쥐고 있었다.

“나 힘낼 거야. 진효원 선배님께서 응원하는 아이돌이 해체하는 건 보여드릴 수 없지.”

주먹을 쥔 우주가 의지를 다졌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    *    *

“진짜 마음에 드셨나 보네.”

작업실에서 곡 작업을 마치고 나온 한진성이 팔로우되어 있던 진효원의 별스타 게시글을 보았다.

-유망한 후배, 올리오스와 함께.

#차기작_#녹음_#공동작업_#귀여운후배들_#정민_#올리오스_#화이팅_#메인보컬_유성훈_#래퍼_#최우주_#메인댄서_#안호진_#비주얼_#윤건하_#사인도받았어요_#작업중셀카_#신곡기대해.

그 별스타에 태그 안 붙이기로 유명한 진효원이 올리오스 멤버들과 작업실에서 함께 찍은 사진에 온갖 해시태그를 덕지덕지 붙였다.

본래 진효원의 게시글은 대부분 자신의 근황을 간단하게 보여주는 사진이 전부였다.

-오늘 먹은 푸딩.

#달다.

-1박 2일로 속초 다녀왔습니다.

#여름휴가.

-콘서트 즐거웠어요.

#팬여러분_#사랑해요.

아주 간단한 태그와 이제는 약간 나이가 든 티가 나는 구도의 사진들.

그런데 지금 진효원이 올린 글은 그동안의 글과는 완전히 방식이 달랐다.

계정만 지운다면 이제 덕질을 시작한 팬이 올린 것 같은 게시글이었다.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저런 반응을 안 하는 선배인데 말이지.

이렇게까지 태그를 올린 건 그만큼 올리오스가 마음에 들었다는 뜻, 동시에.

‘애들한테 더 집중시키기 위해서겠지.’

심지어 올리오스 멤버들의 개인 SNS까지 전부 링크를 걸었다.

“역시 건하는 없네.”

아예 SNS가 없는 건하는 사진에 이름으로 대체되었다.

“특이한 애라니까.”

아이돌이 개인 SNS를 하지 않는다니.

물론 안 할 수는 있다. 계정만 만들고 활동을 하지 않는 연예인도 많으니까.

그런데 개인 SNS 계정조차 만들지 않았다는 게 신기했다.

“나도 힘 좀 보태야겠다.”

진성은 그녀의 게시글에 댓글을 달았다.

-올리오스(따봉)

*    *    *

집에 돌아오자마자 정신없이 잠들었다.

진효원이라는 거물과 함께 작업한다는 부담감에 쌓인 피로로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물론 돌아가자마자, 진효원 별스타에 우리의 사진이 올라갔다는 성훈과 우주의 난리에 중간에 잠에서 깼지만 말이다.

사실 어떻게 올라갔는지 궁금하긴 했는데, 그보다 잠이 우선이었다.

너무 졸렸다.

녹화 전날에 있던 숙취와 빠듯한 녹음 일정 때문에 엄청 힘들었다고.

그리고 다음 날.

“으아악! 건하 형, 어서 일어나! 지금 대박이야아아!”

아침이 되자마자 잠긴 목소리로 절규하듯 외치는 우주의 외침에 무슨 일인가 싶어 일어났다.

“왜? 무슨 일인데?”

이제 막 일어나 눈을 비비며 부스스 잠에서 깼다.

완전히 잠긴 목소리로 힘겹게 대답하자, 우주가 여전히 졸음을 떨쳐내지 못한 얼굴로 웃으며 외쳤다.

“우리 S연예뉴스에 떴어!”

“어? 그게 뭔 소리야?”

우리가 뉴스에 떴다고?

무슨 일이지?

일이라도 터진 건가?

누구 숨겨진 과거라도 밝혀진 거야?

아직 깨지 못한 머리가 별 이상한 생각을 해댔다.

“뭔 일 터졌어? 갑자기 왜 뉴스에….”

그러자 우주가 핸드폰 화면을 내밀었다.

-진효원, 올리오스와 함께 작업해 즐거워.

진효원과 우리가 작업실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 포털에 박혀 있었다.

-진효원은 어제 차기작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SNS에 올렸다. 차기작은 얼마 전 데뷔한 올리오스와 함께 작업한 것으로 알려지며, 아직 노래 컨셉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

주르륵 길게 이어진 기사의 주요 내용은 진효원의 차기작 내용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우리의 그룹명이 낀 형태.

“대단하네.”

“반응이 너무 미적지근한 거 아니야? 엄청 대단한 거라고! 여기 S연예뉴스가 엄청 메이저 뉴스라니까?”

우주 말처럼, 대단한 일인 건 맞다.

메이저 신문 기사에 이름이 실린 것만큼 대단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 쉽지 않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사실상 우리가 올라간 게 아니라, ‘진효원’이 올라간 거다.

진효원의 컴백.

지금 기사는 그걸 메인으로 삼고 있었다.

우리는 들러리일 뿐이고.

“침착하게 보자. 우리가 메인이 아니잖아.”

“그래도….”

그때 문밖에서 다다다다, 발소리가 들렸다.

“건하야! 이거 봤냐?”

성훈이었다.

우주와 마찬가지로 진효원과 함께 오른 우리의 뉴스를 튼 채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대박이야! 진효원 선배님이랑 같은 기사에 오르다니! 끄아아악!”

성훈이 형, 형마저 그러면 어떡해.

우리 팀의 포커페이스 맨이 무너졌다.

역시 덕심은 숨길 수가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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