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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51화 (51/236)

<제51화>

“고생했어. 어제가 마지막 스케줄이었다면서?”

진효원과 작업을 위해 블랑 엔터를 찾았다.

“들으셨습니까?”

“황 프로듀서님이 알려주셨어. 스케줄 맞추려면 어느 정도 일정 공유는 필요하잖아.”

진효원은 우리가 나온 인터뷰를 재밌게 봤다며 웃었다.

“특히 건하가 시계 들고 인터뷰장에서 외쳤을 때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 시간을 지배하는 자였던가? 사람들은 되게 별로라고 하던데, 나랑 내 친구들은 되게 괜찮았거든.”

진효원이 키득키득 웃었다.

동년배한테 괜찮다는 얘기를 들으니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

“하지 마세요. 부끄럽습니다.”

“부끄러움도 많은데 어떻게 아이돌을 한 거야?”

“그거랑 다른 얘기잖아요.”

진효원은 곧 다른 멤버들의 컨셉도 하나하나 읊었다.

선풍기, 성냥, 돗자리에 분무기까지.

라디오 녹음까지 들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아이템들 안 가지고 왔어?”

“지금은 오프 시간이잖아요.”

“아쉽네. 현장에서 직관하고 싶었는데.”

“나중에 본격적으로 활동하면 지겨울 정도로 보여 드릴게요.”

“꼭 해주는 거다? 그때 가서 말 바꾸면 곤란해?”

“물론이죠.”

시작 전에 수다를 떨며, 자연스럽게 작업 분위기로 전환되었다.

“자, 그럼 아이스 브레이킹도 됐으니 간단하게 시작해볼까?”

진효원은 그녀가 마무리 작업을 마친 곡을 꺼냈다.

정확히는 그녀와 정민이 함께 작업한 노래였다.

매일 스케줄이 끝나면 정민은 쉬는 대신 작업실에 들어가 진효원이 보내준 노래를 작업했다.

이동하는 차에서도, 메이크업을 할 때도 흥얼거리며 어떻게 리듬을 구성할지를 고민하고 고민했다.

힘들지 않냐고 물었을 땐.

‘이번이 아니면 언제 효원 선배님이랑 같이 작업할 수 있겠어.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잖아. 열심히 해야지.’

…라며 해맑게 웃었다.

그 탓에 다소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표정만큼은 편하고 가벼웠다.

정민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알기에 기대가 되었다.

“자, 그럼 재생할게.”

리듬감이 인상적인 노래였다.

저번에 함께 회의하며 만들었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좋았다.

반주만 듣는데도 어깨가 씰룩쌜룩 움직였다.

리드미컬한 반주와 그 아래에 들리는 드럼의 비트.

밴드풍의 반주가 작업실을 가득 메웠다.

우리는 모두 입을 다물고 진효원의 노래를 감상했다.

정민만이 유일하게 고개를 까딱거리며 흥얼거렸다.

“흐으음~. 음음~.”

그러면서 미리 구상했던 가사를 따라 불렀다.

그 모습이 굉장히 익숙했다.

진효원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작업을 함께 했으니 익숙할 거다.

흥얼거리는 정민의 얼굴이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다.

노래가 끝이 나고.

“애들아, 어때? 어때? 이상한 부분 있어?”

기대 반 긴장 반.

우리를 보는 정민의 얼굴이 잔뜩 얼어 있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최고인데?”

나는 엄지를 올렸다.

우주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외쳤다.

“대박이야! 대박!”

호진이 대답 대신 박수를 쳤고, 성훈은 그런 정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생 많았다. 이거 준비한다고 많이 피곤했을 텐데.”

“피곤하진 않았어. 아직은 견딜 만해. 하하하.”

정민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다. 다들 좋다고 말해줘서.”

그 모습을 보던 진효원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우주가 만든 랩은 여기에 들어가면 될 거야.”

브릿지에서 벌스로 넘어가는 부분을 재생했다.

랩이 끝나고 다시 벌스가 들어갈 예정으로 보였다.

“가사는 다 숙지했을 거라 생각하고, 각자 파트를 나눠줄게.”

진효원과 정민의 주도로 우리는 어떻게 들어가고 빠져야 할지에 대해 하나씩 알아갔다.

호흡을 어떻게 맞춰야 하고, 어디서 듀엣으로 들어가는지, 노래를 부를 때 춤은 어떻게 출지 등등.

본격적인 녹음이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을 디테일하게 잡아줬다.

“이 정도면 다 알겠지?”

“예, 선배님!”

이 정도면 바로 녹음을 들어가도 아무런 영향이 없을 듯 했다.

“아, 그리고 말이야. 스케줄 괜찮니?”

“공식 스케줄은 다 끝나서 시간은 많이 남았습니다!”

“괜찮아요. 선배님!”

성훈과 정민이 거의 동시에 외쳤다.

그런데 무슨 일이지?

진효원은 따로 다른 연예인들과 사적인 만남은 잘 가지지 않는 걸로 유명한 가수였다.

그런 진효원이 별도의 시간을 갖자고 말하다니.

“원래는 공동 작업으로 한 곡만 하기로 했잖니?”

“예, 그랬어요.”

“사실 나도 어제 바로 생각난 건데….”

잠시 뜸을 들인 진효원이 말을 이었다.

“너희를 위한 노래가 한 곡 더 있어.”

“한 곡이 더 있다고요?”

이건 정민이도 모르는 노랜가 본데?

“어제 너희 라디오 들으면서 바로 생각난 곡이거든. 그 물을 지배하는 자! 이거 들었을 때 딱 떠오른 영감이야. 30분 만에 만든 곡이라 부족할 수는 있는데, 같이 작업해보지 않을래?”

우리는 눈을 끔뻑거리며 진효원을 보았다.

30분 만에 노래를 만들었다니.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수입 관련한 건 걱정하지 마. 순전히 내가 같이하고 싶어서 만든 거니까, 우리가 같이하기로 했던 조건대로 갈 거야. 황 프로한테는 내가 곧 얘기할게.”

놀라서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진효원은 다른 식으로 이해를 했는지, 곧장 핸드폰을 들었다.

“아직 너희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잠시만….”

황이서와 통화를 하는 듯, 전화기로 몇 마디 나누더니 곧 밝은 얼굴로 외쳤다.

“오케이! 통과됐어! 황 프로가 찾아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노래부터 들어봐도 될까요?”

황이서야 진효원이 한 곡 더 같이하자고 하니 바로 받아들인 거 같지만, 어떤 노래인지 들어보지도 않는 건 작곡가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했다.

“아, 그래. 잠시만.”

노트북을 만지작거리던 진효원이 새로운 노래를 틀었다.

“가사도 다 생각해 뒀어. 어제 빡! 하고 떠오른 노래거든. 지금 머릿속에 다 완성되어서 벌써 몇십 번이고 재생한 노래야.”

부드러운 발라드였다.

일반적인 발라드보단 템포가 빠르지만, 여전히 리듬감이 굉장히 좋은, 힙합과 발라드를 섞은 느낌의 R&B 스타일 노래였다.

베이스가 밑바탕을 채우며, 어쿠스틱 기타가 그 위를 꾸몄다.

굵은 나무에 나뭇잎과 꽃이 하나씩 피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반짝반짝 햇빛이 그런 나뭇잎을 부드럽게 핥았다.

“너희들의 컨셉에 따라 가사를 맞춰봤어. 시간이 핵심 컨셉인 건하의 가사엔….”

시간을 달려서 너에게 가고 싶어.

너 없는 시간은 한없이 길어.

너와 있는 이 시간, 끝나지 않길 빌어.

진효원의 맑은 목소리가 멜로디 위에서 춤을 추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감상했다.

공허했던 내 심장에 네가 불을 붙였어.

거울 속 네 모습 오늘은 또 다르게 느껴져.

내 마음이 달라진 걸까.

이건 불을 지배하는 컨셉인 우주의 가사였다.

선선한 바람을 느껴.

너와 있을 때 설렘으로 차오르는 마음처럼.

열린 창문에서 바람 소리가 들려.

천천히 바람을 주제로 한 호진의 가사, 물과 바다로 가사를 표현한 성훈의 가사, 함께 있는 공간 속에 느끼는 감성으로 표현하는 정민의 가사까지.

하나의 해프닝으로 인해 우리가 즉흥적으로 정했던 컨셉을 진효원은 진심으로 영감을 받아 곡으로 승화시켰다.

“와….”

반쯤은 장난으로 만든 컨셉이 하나의 곡이 되는 걸 확인한 우리는 감탄밖에 할 수 없었다.

“어때? 괜찮니?”

처음 정민이 우리에게 노래를 보여주고 했던 질문.

똑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최고인데요?”

미리 작업한 곡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진 노래였다.

어떤 노래가 더 낫냐는 질문엔 대답할 수 없을 거 같다. 하지만 두 노래 모두 내가 들었던 노래 중에서 제일이라고 손에 꼽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모두가 같은 목소리를 냈다.

“선배님, 이걸 저희가 부르는 겁니까? 이런 노래를 받아도 되는 건가요?”

“물론이지, 성훈아. 너희를 보면서 느꼈던 영감을 풀어낸 건데. 사실 그냥 줄까도 생각했는데, 그러긴 좀 아까워서. 그래서 올리는 김에 같이 올리려고.”

그렇게 녹음을 할 노래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    *    *

녹음은 순조로웠다.

“호진아, 좋아. 거기서 조금만 더 밸런스를 살려보자.”

“정민아, 한 번만 다시 갈까? 너무 목소리 톤이 가벼워.”

“우주야. 잘했어. 거기서 한 음정만 더 높여보자. 방금 그 느낌 되게 좋았어.”

“우주야, 랩 할 때 박자가 조금 밀린다. 살짝 빨리 들어가 볼까?”

진효원이 프로듀서가 되어서, 멤버들의 아쉬운 점을 하나하나 짚어주며 녹음을 진행했다.

멤버들도 다들 대선배와 함께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녹음에 임했다.

작업할 때 누구보다 깐깐해진다는 진효원이었다.

내가 들었을 땐 괜찮게 들리는 부분도 재녹음을 몇 번이고 반복하며, 녹음에 임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파트에서 대충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한 번만 다시 갈게. 음정이 살짝 나갔다.”

“거기 잘라서 다시 가볼래? 지금 조금 늘어지는 거 같다.”

그녀 역시 몇 번이고 녹음에 임하며, 작품에 최선을 다했다.

“후우, 이러다가 예상보다 더 빨리 끝나겠는데?”

자기 파트 녹음을 마친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굉장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뭔가 후련한 느낌이랄까.

“성훈이랑 건하는 같이 들어가자. 둘은 호흡을 맞추는 파트가 많으니까.”

“알겠습니다.”

“네!”

성훈과 나는 녹음실에 들어가며 목을 가다듬었다.

“긴장되네.”

성훈이 유독 긴장한 모습이라, 그의 등을 두드렸다.

“형, 노래 잘하잖아. 너무 긴장하지 마. 하던 대로 하면 선배님도 좋게 봐주실 거야.”

“그…렇겠지?”

“당연하지.”

진효원 앞에서만 서면 소심해지는 성훈이었다.

청심환이라도 먹여야 하나.

저러다가 삑사리 나면 큰일인데.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성훈이 숨을 고르며 눈을 감고 주문 비슷한 걸 외우는 동안.

-그럼 바로 성훈이부터 시작할게.

진효원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성훈이 불안했다.

그러나 곧 나는 그 걱정이 기우라는 걸 깨달았다.

너를 생각하는 걸.

성훈은 언제 긴장했냐는 듯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 줬으니까.

걱정한 내가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로 훌륭한 보컬이었다.

-좋네. 이번 건 손 볼 게 없어 보인다. 바로 다음으로 가자.

“네, 알겠습니다.”

한 소절, 한 소절.

성훈의 속 시원한 보컬이 들릴 때마다 목캔디를 먹은 듯 가슴이 후련해졌다.

좋다.

이게 노래지.

-이번엔 건하 파트 바로 들어갈 거야. 건하도 준비됐지?

“예, 준비됐어요.”

-좋아. 바로 들어갈게.

바로 반주가 나왔다.

내 바로 전 파트인 우주의 노랫소리가 울린다.

어느새 기계로 보정된 우주의 목소리는 간드러지게 울리며 멜로디와 함께 어우러졌다.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내 파트.

이어지는 느낌, 함께하는 기분.

첫 소절을 부르는 순간, 스스로가 만족스럽다고 느낄 정도로 훌륭하게 들어갔다.

이건 됐다.

노래를 부르는 내 입꼬리가 살살 올라갔다.

한 소절을 부르고, 두 소절을 불러도.

진효원은 노래를 끊지 않았다.

그래서 내 파트가 끝날 때까지 불렀다.

-좋았어. 확실히 건하가 음색이 좋네. 건하 파트는 소절 별로 끊지 않고 끝까지 부른 다음에 따로 만지는 걸로 가자.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녹음해 보자.

몇 번이고 불렀다.

한 소절씩 잘라 부르던 성훈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가수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프로듀싱을 하는 방식이 꽤 놀라웠다.

-좋아. 이제 둘이 들어가는 하이라이트 듀엣 파트를 불러보자.

진효원의 신호와 함께 듀엣 파트의 반주가 시작됐다.

*    *    *

‘확실히 잘 어울리네.’

건하와 성훈의 보컬이 서로 녹아드는 걸 보며 진효원은 미소를 지었다.

참 잘 어울리는 보컬이다.

속 시원하게 터지는 성훈과 그 보컬을 보조하며 간지럽게 울리는 건하.

마치 일을 끝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끈 상태로 집으로 돌아와 시원한 맥주와 버터구이 오징어를 함께 먹는 맛이었다.

‘저기에 같이 부르고 싶다.’

욕구가 생겼다.

프로듀싱을 한다고 부스 밖에 있는 게 너무 아쉬웠다.

저 안에 들어가서 두 사람과 같이 호흡을 맞추고 싶은 욕구가 넘실거렸다.

지금은 프로듀싱에 집중하자.

다음 차례에 저들과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있으니까.

‘성훈이 건하에게 묘하게 경쟁심을 느끼고 있는 거 같은데….’

노래를 들으면 부르는 사람의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이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노래를 부르는지.

어떻게 노래를 부르고, 왜 부르는지.

완벽하게 알 수 없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이 감각은 대부분 들어맞는 경우가 많았다.

경쟁심을 느끼는 성훈과는 다르게, 건하는 오히려 그런 성훈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데 더 집중했다.

‘분명 성훈이가 형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뭔가 묘하게 건하가 더 어른스러운 느낌도 들었다.

참 신기하단 말이지.

이제 스무 살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그런 여유가 건하에게 느껴졌다.

그리고 성훈이 시원한 고음을 내질렀다.

여기서 진효원이 성훈과 호흡을 맞춰 함께 고음을 내지를 부분이었다.

‘성훈이의 고음이 힘이 세니까, 나는 조금 힘을 빼서 들어가야겠다.’

그녀의 앨범이었지만, 공동 작업으로 들어오는 올리오스 멤버들이 조금 더 주목받기를 원했다.

열심히 하고 재능이 보이는 후배들이 더 잘되었으면 하는 선배의 작은 배려였다.

‘재밌겠어.’

올리오스와 함께 무대에 오를 때가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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