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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50화 (50/236)

<제50화>

우리는 마지막 일정인 유명 라디오 프로그램의 보이는 라디오 녹음을 마쳤다.

“오늘도 시계를 들고 오셨네요.”

“하하, 네. 여러 의미로 반응이 폭발적이어서요.”

내가 시계를 들고 외치는 짤이 다른 곳에 여기저기 수출되었다.

심지어 남초 커뮤니티까지 내 인터뷰 영상이 돌아다니더라.

물론 남초 쪽에 퍼진 짤은.

“인터뷰 내내 시계를 들고 있던 장면이 상당히 인상적이더라고요.”

벽걸이 시계를 든 내 영상이었다.

온갖 밈 소스에 나와 벽걸이 시계가 편집돼서 올라갔다.

특히 시간이 중요한 스포츠 경기 대기심을 나로 편집하는 영상까지 올라가더라.

-엌ㅋㅋㅋㅋ 편집 개잘했누.

-이건 미쳤네.

-지금 이 와중에도 시간은 흘러갑니다.

-시계 들고 인터뷰하는 거 은근 호감이네.

-저걸 진짜 하는 놈이 있네ㅅㅂㅋㅋㅋ

그 이후로 내가 시계를 들고 있는 모습이 계속해서 노출되었다. 물론 시간을 지배하는 자는 여전히 부정적인 반응이 더 많았다.

“저번에 인터뷰에서 보여줬던 거, 반응이 좋던데 한번 보여주세요.”

그게 반응이 좋다니.

MC님, 저랑 다른 세계에 사는 거 아니죠?

라디오 MC의 요청에 결국 나는 또 시계를 높이 들며 외쳤다.

“시간을 지배하는… 자.”

돌이켜보면 괜히 했나 싶었다.

너무 부끄럽다.

*    *    *

라디오 댓글이 몇 개 올라왔다.

이 시간에 우리 방송을 들어주는 분들은 팬들이 많아서일까?

-자꾸 보니 정드네요.

-이제는 익숙해진 듯.

-오글거린다. 진짜.

-유치한데….

반응이 반반으로 갈렸다.

확실히 초반보다는 좋아졌다.

그때는 절대 못 보겠다는 의견이 대다수였으니까.

그래도 이대로 가야지.

뇌절해서 익숙하게 만들 계획이었으니까.

황이서의 눈썰미는 믿을 만하다.

원래 뇌절도 뻔뻔하게 밀고 가면 그게 새로운 컨셉이 되는 거다.

그리고 여기까지 온 이상, 돌아갈 수도 없다.

*    *    *

‘Angel’ 3주 차 최종 순위 24위.

‘New Taste’ 3주 차 최종 순위 27위.

대단하진 않지만, 아무것도 없던 신인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성적이었다.

나름 유망주였던 골든트랙도 1주 차에 차트인을 하지 못한 걸 생각하면, 훌륭한 성과였다.

덕분에 숙소 분위기는 날아갈 것처럼 좋았다.

“고생하셨습니다아!”

마지막 라디오 녹음까지 마친 우리는 숙소에서 법카를 이용해 지금까지 먹고 싶었던 배달 음식을 모조리 시켰다.

피자부터 치킨, 족발에 보쌈, 거기에 맥주까지.

그야말로 살찌는 야식 종합세트였다.

라디오 녹음이 너무 늦게 끝나기도 했고, 그렇다고 내일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멤버들의 성화에 황이서의 허락이 떨어졌다.

“맛있게 먹고, 내일 블랑에서 보자.”

“내일이 진효원 선배님과 녹음이었던가요?”

“그래. 다들 준비 잘했지?”

모두가 정민을 보았다.

진효원과 작업은 대부분 정민이 맡았으니까.

“열심히 했어. 아마 다들 만족할걸?”

정민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우주가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정민이 형이야. 믿고 있었다고. 참, 나도 가사 써 봤어. 내일 기대해도 좋아.”

“내일, 잘 해보자. 선배님께 누를 끼치면 안 되니까.”

모두가 의욕을 다졌다.

그러는 동안 우주를 제외한 우리의 잔에 맥주가 채워졌다.

아직 미성년자인 우주는 술 대신 콜라를 채웠다.

“자, 다들 데뷔 싱글 앨범, 무사히 활동 마치느라 고생했다! 올리오스도 GH도, 우리 두현이도 모두 성공할 수 있도록 건배하고 먹자!”

황이서의 건배사에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자리했다.

이날만큼은 나도 무장을 해제하고 마음껏 즐겼다.

후련했다.

제대로 하나를 끝마쳤다는 느낌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제 제대로 하나를 끝냈구나.’

그리고 나도 이제 아이돌이 다 됐구나.

감상을 하며 잔에 따른 맥주를 마셨다.

오랜만에 마신 맥주는 달고 독했다.

크으, 진짜 맛나네!

*    *    *

“달고 맛놘돠아….”

하늘이 빙글빙글 돈다.

어? 천장이다.

헤헤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맥주 두 잔밖에 안 마신 거 같은데, 벌써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이렇게 기분이 좋은 날은 많지 않을 거다.

첫 앨범도 나름대로 괜찮은 성적을 냈고, 앨범 성적 말고도 올리오스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킨 첫 앨범이었다.

데뷔 앨범의 성적이 얼마나 좋아야 대단한 성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없던 상황에서 여기까지.

나는 썩 나쁘지 않은 성과라고 생각했다.

더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 자신감이 넘쳤지만, 아무런 기반도 없이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첫 앨범부터 만족스러운 결과라니.

“그래서 기부니가 좋은 건가? 헤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즐겁네.

하하.

자꾸 헤실헤실 웃음이 나온다.

이런 술버릇은 없었던 거 같은데.

윤건하가 가지고 있던 술버릇인가.

이 정도면 양반이지.

내가 얼마나 많은 술주정뱅이를 봤는데.

적어도 이렇게 얌전하게 누워서 웃는 주정은 주정의 축에도 끼지 못한다.

아, 돈다.

천장에 형광등이 왜 이렇게 많아?

“건하야 괜찮아?”

“형, 괜찮아?”

“한 잔밖에 안 마신 거 같은데 벌써 취한 건가?”

왜 다들 나보고 괜찮냐고 물어보지?

나 진짜 멀쩡한데.

“나 괜찮아. 쥔짜 멀쩡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벌써 취하다니, 말도 안 되는 말이지.

“취했다.”

“취했어.”

“취한 거 같은데….”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취했다니, 다들 나를 너무 약하게 본다.

이래 봬도 사업한다고 수많은 경쟁자를 술만으로 물리친 영업왕 윤건하를 뭘로 보….

“우웁!”

“어서 재우자.”

“두현이 형, 건하 빨리 들여보내죠.”

“건하가 주량이 엄청 약하네. 초반에 달리길래 잘 마시는 줄 알았더니.”

“아까 소맥 마는 거 봤어? 나는 순간 건하 형이 예전에도 좀 논 게 아닌가 의심했다니까? 프로듀서님도 봤죠?”

“깜짝 놀랐다. 나도 저렇게는 못 말아.”

“그런데 이렇게 금방 취하는 거 보면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그냥 어디에서 보고 따라한 건가?”

웅성거리는 멤버들의 목소리가 멀리서 웅웅거린다.

아, 어지러워.

눈이 스르륵 감긴다.

그때 부유감이 느껴졌다.

몸이 부웅 올라갔다.

뭔가 했더니, 두현이가 나를 업은 거였다.

“어? 두현이 형, 몸 진짜 크네. 어디서 운동했어?”

“자, 들어가서 자자. 건하야.”

“나 안 졸린데. 두현이 형, 나 더 마실 수 있어.”

“자자, 들어가자. 내일 스케줄도 있으니까.”

그것도 맞네.

너무 많이 마시고 가면 진효원한테 나쁘게 보일 테니까.

“구래…. 근데 두현이 형이 왜 두 명이야? 분신술이라도 쓰는 건가?”

졸리긴 하다.

스케줄이 너무 빡빡한 탓일까.

지금 자면 꿀잠을 잘 수 있을 거 같았다.

“건하 형이 술 마시니까 애교가 좀 많아지네.”

건하가 두현의 등에 업힌 채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우주가 의외라는 듯 말했다.

“건하가 저렇게 무방비하게 웃기도 하는구나. 그동안 너무 완벽한 모습이긴 했어. 처음에는 무슨 부족한 게 없는 회사 대표처럼 느껴졌다니까?”

“이걸 갭…모에? 라고 하던데.”

정민과 호진이 우주의 말에 동의했다.

멤버들은 처음으로 건하의 흐트러진 모습을 봤다.

성훈만큼이나 매사에 완벽하려고 노력했던 게 건하였다.

늘 실패라는 걸 모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진심인 아이돌이었다.

아이돌답지 않은 호쾌한 모습을 가만히 보다 보면, 황이서 프로듀서와 비슷한 느낌을 줄 때도 있었다.

상대하는 사람에게 묘한 확신을 주는 말투와 표정.

뭔가 무너지지 않는 벽을 마주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래서 믿음이 갔고, 리더로 뽑았다.

“주량이 몇 잔인 걸까?”

“보니까 소주 한 잔도 못 버틸 거 같은데.”

“이제 건하 형을 이길 수 있는 거 하나 생겼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성훈이 덤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 건하는 술을 먹이지 않는 걸로 하자.”

“동의! 우리끼리 있는 거면 몰라도 카메라 앞에서 저렇게 취하면 진짜 큰일 나겠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건하 금주령은 멤버들의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당사자의 의견은 배제한 채로.

*    *    *

“으으으….”

머리가 무겁다.

데뷔 앨범 마지막 활동을 기념하며 먹었던 맥주 때문에 아직도 속이 아프고 머리가 욱신거렸다.

“내가 얼마나 마셨지?”

이 정도면 거의 양주 한 병을 혼자 다 까고 거기에 맥주에 소주까지 곁들인 수준인데.

알코올을 해독하지 못한 탓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분명 첫 잔으로 황이서랑 이두현, 그리고 애들이랑 같이 맥주로 건배하고….’

먼저 다 비운 애들한테는 소맥을 하나 말아줬다.

소주와 맥주를 적당하게 섞은 황금비율로 말아주고 애들 먹는 거 보며 나도 반 잔 비웠는데 다음 기억이 없었다.

정확히는 중간의 기억이 없었다.

두 잔을 마신 후에 기분이 알딸딸하니 좋아져서 늘어져 있다가 두현에게 업혀서 침대에 누운 것.

두현에게 실려서 눕기 전의 기억이 없었다.

설마 두 잔에 취한 건가?

내가 맥주 글라스 한 잔에 소맥 반 잔으로 갔다고?

“설마….”

필름이 끊긴 게 아닐까?

아니, 그게 더 위험하다.

아무리 오랜만에 마셨다지만, 내가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셨다니.

몸이 스무 살이 되었다고 정신까지 스무 살이 된 게 아닌 이상에야.

‘나름 조절을 했을 텐데.’

정말 맥주에 취했다고?

내가?

영업왕이라고 불린 윤건하가?

“설마….”

혼자선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

거실로 나가자.

달그락 달그락.

송송송송.

부엌에서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 깼어?”

앞치마를 두른 정민이 도마 위에 햄과 야채를 송송송 썰고 있었다.

보글보글.

콩나물국이 끓는 소리가 주방에 퍼지고 있었다.

“어제 다들 오랜만에 술을 마셔서, 해장도 할 겸 감자 햄 볶음이랑 콩나물국 끓이고 있어. 저기 계란후라이 하는 것 좀 도와줄래?”

“아, 응.”

어떻게 물어보지?

어제 내가 얼마나 마셨냐고?

실수한 거 없었냐고?

음.

“정민아.”

나는 계란을 깨며 정민에게 물었다.

“나 혹시 몇 잔 마시고 취했어?”

“어? 기억 안 나?”

정민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그런 건 아니고, 두 번째 잔을 반 정도 마시고 취한 기억이 있는데, 그다음에 두현이 형한테 업혀서 침대까지 간 기억밖에 없거든. 혹시 내가 뭐 실수라도 한 게 아닌가 싶어서.”

“아하, 그거 때문이구나. 나는 또 진짜 기억 안 나는 줄 알았네.”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정민이 다 썬 감자를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올렸다.

치이익!

“어제 너 두 잔도 못 마시고 취했어.”

“정…말?”

“그래서 앞으로 프로듀서님도 우리도 건하 너한테 술 안 먹이기로 했어. 너 금주령이야.”

“에?”

내가 진짜 술찐이 됐다고?

신중하게 굽던 계란 노른자가 터졌다.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욱신거리는 머리와 메스꺼운 속은 정민의 말에 한 치의 거짓이 없다는 걸 증명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음식은 하나하나 완성되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지금까지 정민이 닭가슴살로 건강 식단만 조리했던 터라 잊고 있었는데, 정민의 요리 솜씨는 소속사 내에서도 유명할 정도로 뛰어나다고 했다.

작곡도 그렇고 요리도 그렇고, 손재주가 뛰어났다.

“건하가 도와주니까 금방 끝나네.”

“한 거라고는 계란 굽는 거랑 콩나물국 불 조절밖에 없는데 뭘.”

“후라이가 별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요리라서.”

같이 작곡할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정민은 사람 기분 좋게 칭찬하는 걸 참 잘했다.

“이렇게 같이 요리하니까 꼭 같이 곡 작업하는 거 같다.”

정민이 가볍게 웃었다.

“이번 진효원 선배님이랑 같이 작업할 때는 왜 나보고 혼자 하라고 한 거야?”

“작곡은 정민이 네 전문이잖아. ‘New Taste’도 네가 다 한 거고.”

“그래도 네 도움이 없었으면 못 만들었을 거야. 내게 영감을 준 건 건하 너고, 괜찮다고 말해준 것도 너야. 그러니 나 혼자 다 했다고 말하지 마.”

“그러냐.”

“물론이지.”

참 착한 아이다.

보통은 자기가 혼자 다 했다고 말할 법도 하건만.

꼭 동료인 나와 함께 했다며 사방에 자랑했다. 마치 친형제가 성공한 걸 얘기하는 것처럼.

[정민의 호감도가 중에서 상으로 상승합니다.]

[정민의 스킬을 볼 수 있습니다.]

호감도가 상승해서 스킬을 볼 수 있다는 메시지.

가장 궁금했던 정민의 스킬이 오픈되었다.

대체 어떤 스킬을 가졌기에, 저렇게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른 걸까.

드디어 오늘 궁금증이 풀리는 거다.

[정민]

[나이: 20]

[노래: B+]

[춤: C+]

[외모: B+]

[예능: C+]

[스킬: 작곡(B), 미래의 마에스트로(S)]

어?

미래의 마에스트로?

이거 S급 스킬이잖아?

우리 멤버가 미래의 마에스트로라고?

작곡 계열에서 가장 좋은 스킬이 바로 SS급 스킬인 마에스트로였다. 이 게임에서 거장이라고 불리는 작곡가들은 대부분 이 스킬을 지니고 있었다.

절대음감을 가지는 건 기본이고,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영감을 떠올리는 신비한 기술을 지녔다.

이 스킬이 획득 조건이 굉장히 까다로운데, 첫 번째 조건이 마에스트로의 하위 스킬인 ‘미래의 마에스트로(S)’를 획득해야만 했다.

[미래의 마에스트로(S): 거장이 될 수 있는 재능, 음악적 흡수가 빠르며 성장 속도가 높습니다.]

이걸 지니고 특정 조건을 세 개만 완수하면 스킬이 진화하며 거장이 되는 조건을 달성하는 거다.

기껏해야 A급 스킬 몇 개 가진 게 아닌가 싶었는데, 이건 그 예상보다 훨씬 좋은 물건이었다.

‘이건 대박이네.’

이러니 받아들이는 속도가 빨랐지.

잭팟이다.

그것도 노다지 수준의 잭팟이었다.

“건하야? 왜 그래?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야. 그런 건 아니고…. 미래의 아이돌계 최고의 싱어송라이터가 될 정민의 칭찬에 감탄하는 중이었어.”

“뭐라고? 하하핫! 그렇게 너무 띄워주면 나 부담되는데.”

“이제 다 된 거 아니야? 애들 깨울까?”

“그러자. 이제 슬슬 일어날 시간이네.”

요리가 완성되고.

“애들아! 성훈 형! 나와서 밥 먹어!”

우리는 멤버들을 깨웠다.

정민의 콩나물국은 그야말로 만점짜리였다.

진짜 맛있었다.

밖에서 사 먹는 맛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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