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49화 (49/236)

<제49화>

오늘 <연예가 좋다>에서 우리의 방송이 나온다는 소식에 스케줄을 끝마친 우리는 옹기종기 TV 앞에 모였다.

“우리 괜찮게 찍혔으려나?”

“나는 걱정되는데. 별로 말을 못 했어.”

“호진이 형은 마스크가 돼서 아마 말 안 해도 리액션 컷으로 많이 잡혔을 거야.”

“잘 찍혔을 거다. 그분들은 우리보다 더 경력이 있으신 프로니까.”

멤버들은 긴장한 얼굴로 <연예가 좋다>를 시청했다.

유명 배우의 열애설, 새로 방영하는 영화배우들의 인터뷰, 게릴라 데이트 등 유명 코너들이 지나가고.

-이번 소식은 이범영 기자가 가지고 오셨죠?

-네, 기대되는 유망 스타를 만나다. 오늘은 데뷔하자마자 승승장구를 이어가는 신인 보이그룹 올리오스를 만나봤습니다. 화면으로 만나보시죠.

스튜디오에서 화면이 전환되며 우리의 모습이 잡혔다.

아직 촬영 전, 이범영 기자보다 먼저 도착한 우리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스튜디오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하핫,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 멋있게 찍어주세요.

카메라 감독님들과 스태프들을 향해 어색하게 인사하는 우리.

그중에서 우주는 활발하게 카메라에 자신을 어필했다.

그리고 이범영 기자가 도착하고, 우리는 그에게 힘차게 인사를 건넸다.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중간에 프로듀서가 오냐 마냐 이야기가 오갔던 부분이 빠졌음에도 영상은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이게 공중파의 편집기술.

-역시 신인 아이돌답게 열정이 넘치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네요. 아직 카메라 안 돌았으니까. 방송 시작하고 제 멘트 끝나면 바로 부탁드려요.

그리고 곧 인터뷰가 이어졌다.

인터뷰 시작엔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역시 건드릴 수 없었던 거겠지.

몬스터즈와 살짝 엮으려던 질문은 오히려.

-물론 영광이죠. 저희 소속사에서 배출한 최고의 선배님들이신데요. 항상 선배님들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게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일이 없는 것보단 넘치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을 해서요.

선배를 존경하는 성실한 후배들의 모습으로 포장되었다.

그리고 그때.

-저기, 인터뷰 중에 죄송합니다.

-건하 씨, 무슨 일 있어?”

-매니저 형, 혹시 시계 좀 가져다줄 수 있어요? 제가 대기실에 시계를 두고 와서요. 챙겨다 주세요.”

어?

이거까지 전부 다 담았다고?

“여기부터 빌드업 시작했나 보네.”

우주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가득한 눈으로 TV를 보았다.

불안했다.

처음 반응이 좋지 않을 거라는 건 황이서도 나도 같은 생각이었으니까.

차라리 다른 컨셉을 들고 갔으면 조금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시청했다.

-이게 뭐죠?

화면 속 이두현 매니저가 벽걸이 시계를 가지고 왔다.

화면 속 이범영은 당황한 얼굴로 시계를 바라보았다.

반면 나는 뻔뻔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전부 계획되어 있었다는 듯이.

내가 저런 표정을 지었구나.

얼굴에는 이게 재밌을 거라는 확신마저 들고 있었다.

-사실 캐릭터 때문에 가지고 왔습니다!”

-캐릭터요?

-예, 저희 이번 앨범이 천사와 악마 컨셉이잖습니까? 제가 시간을 관장하는 천사라는 컨셉이거든요. 이 알람 시계가 없으면 잠을 못 자요.

안 돼.

그러지 마.

보여주지 마.

“T, TV 끄자!”

“여기가 하이라이트인데.”

필사적으로 우주에게 리모컨을 뺏으려던 내 귓가에.

-시, 시간을 지배하는… 자!

절대로 듣고 싶지 않은 내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쥐구멍 없냐.

*    *    *

방송국에서 건하와 눈을 마주친 이후로 윤건하를 최애로 삼은 김다빈은 오늘 올리오스 오빠들이 나온다는 <연예가 좋다>를 본방 사수하기 위해서 TV 앞에 앉았다.

바쁜 활동 때문인지, 아니면 데뷔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아직 인터넷 방송으로 팬들과 소통하지 않는 올리오스를 보기 위해선 공식으로 나오는 일정을 찾아보는 것이 유일했다.

올리오스의 굿즈도 샀다.

멤버들의 활동사진이 담긴 포토카드와 싱글 앨범을 내면서 찍은 듯한 앨범 자켓용 사진들이 담긴 책갈피도 샀다.

왜 GH 엔터는 오빠들의 굿즈를 더 내지 않는 건지.

답답하기만 했다.

‘내가 하나 만들어 버릴까?’

오빠들 사진 박은 컵 같은 거 만들어도 좋을 거 같은데.

여전히 그녀는 자신을 굉장히 평범하고 라이트한 덕후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누구나 하는 거잖아.

좋아하는 스타의 굿즈를 모으고 방송을 최대한 라이브로 챙겨보는 것.

아이돌의 힘이 되어 주는 건 기본이잖아?

아무튼 그녀는 오늘 퇴근을 하고 <연예가 좋다>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우리 오빠들이 TV 예능에 나오다니.

무려 공중파!

<주중 아이돌>에도 출연한 그들이었지만, 그때는 그녀가 올리오스를 덕질하지 않았을 때라 생방으로 챙겨보지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아쉬운지.

<연예가 좋다>에 오빠들이 나오는 걸 기대하며 보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빠들이 나오는 코너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아으~, 얘들 또 이런다.”

아이돌 팬들로 시청률 올리려는 꼼수.

팬들은 어떻게든 기다릴 거라는 걸 아니까 이러는 거다.

“방송국 애들 비겁한 건 아는데, 당할 수밖에 없어.”

괜히 채널 고정 안 했다가 나오면 어떡해.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올리오스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인터뷰어는 종종 일부러 이슈를 만들기 위해 악마의 편집을 서슴없이 사용하는 이범영 기자.

꽤 오랫동안 아이돌 덕질을 해온 김다빈은 알고 있다.

저 기자가 한 번 돌면 어디까지 악질로 바뀌는지.

‘무슨 일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그녀는 서둘러 아이돌 팬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그녀와 같은 불안을 가진 올리오스 팬들이 상당히 보였다.

벌써 게시글을 쓰며 불안하다며 설레발을 치고 있었다.

-설마 논란 터지는 거 아니겠죠?

-데뷔하자마자 논란 생기면 그것도 기록일 듯.

자칭 팬이라고 부르는 안티도 간간이 보였다.

다빈은 불안감 속에서 인터뷰를 시청했다.

인터뷰는 무리 없이 지나갔다.

같은 소속사 선배인 몬스터즈를 엮으려는 이범영 기자의 눈에 보이는 수작질이 느껴졌다.

“아니, 올리오스 인터뷰에서 몬스터즈 질문을 저렇게 노골적으로 하면 어쩌자는 거야. 팬덤끼리 싸움 붙이겠다는 거잖아.”

올리오스 멤버들은 그의 질문에 끌려다니지 않고 대처했다. 그중 백미는 역시.

-예, 저희 이번 앨범이 천사와 악마 컨셉이잖습니까? 제가 시간을 관장하는 천사라는 컨셉이거든요. 이 알람 시계가 없으면 잠을 못 자요.

건하의 대처였다.

어쩌려고 저걸 가지고 온 거지?

굳어지는 이범영의 표정을 보면 통쾌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 인터뷰를 중간에 끊어버린 태도가 논란이 되지 않을지 걱정됐다.

김다빈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TV를 보았다.

-시, 시간을 지배하는… 자!

시계를 들으며 부끄러움을 감수하는 건하.

“푸흡!”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건하의 행동에 그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개그가 재미있지는 않고, 솔직히 오그라들었지만 그래서인지 갑작스럽게 터지는 묘한 포인트가 있었다.

“그런데 소속사 마친 거 아니야? 너무 올드하잖아.”

그녀도 모르게 웃고 말았지만, 컨셉이 너무 올드했다.

피식 웃게 만드는 게 전부였다.

그녀야 이런 개그가 취향이고 이미 콩깍지가 제대로 씌어서 상관은 없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한텐 최악의 컨셉이다.

생방 반응도 싸늘했다.

멤버들의 당혹스러워하는 얼굴과 이범영 기자의 당황한 얼굴이 화면에 잡혔다.

커뮤니티 반응도 난리였다.

-진짜 항의라도 해야 하나? GH 완전 감 잃었네.

-이건 아니지. 아무리 신인이라 어그로가 필요하다고 해도 ㅠㅠㅠㅠㅠ

-덕들은 이게 웃긴 거야?

-어이가 없어서 입 다무는 중.

-너무 올드한 컨셉 잡은 거 아님? 소속사가 시킨 거면 진짜 소속사 감 없는 건데.

-솔직히 유치하긴 해.

-완전 아재 티 난다. 건하 사실 30대고 막 그런 거 아니야?

-무대에서 노래 부르기<<<<<<<인터뷰하면서 시간을 지배하는 자 외치기.

그리고 커뮤니티에 짤이 올라왔다.

-감 다 잃은 GH.gif

몬스터즈 안티들이 유독 난리였다.

몬스터즈는 건드려도 타격 없으니까 신인인 올리오스한테 시비를 거는 거다.

아직 팬덤도 약하니까.

“이 새끼들이.”

김다빈은 저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과거 숨겨두었던 키보드 워리어의 기운이 뿜뿜 솟아나려고 했다.

-근데 보다 보니 정이 드는 거 같기도…?

누군가가 단 댓글.

보다 보니 정든다는 말에, 김다빈은 이를 악물고 한 번 더 봤다.

-시간을 지배하는 자!

모르겠다.

여전히 유치한데.

이를 너무 세게 물어서 잇몸이 아플 정도다.

확실히 익숙한 장면이라 그런가, 처음 볼 때보다 나은 거 같기도 했다.

특히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른다는 듯 시계로 자기의 얼굴을 가린 모습이 더 귀여워 보였다.

내가 미친 걸까?

뭔가 자꾸 보게 되네…?

그럴 리가.

그냥 기분 탓인 거야.

김다빈은 이어지는 인터뷰를 계속 봤다.

그런데 눈에 띄는 장면이 하나 있었다.

건하가 계속 시계를 들고 있다는 것.

예전에 유명 인터넷에 돌던 악마의 편집을 피하는 방법이라며 올라왔던 유머 글이 있었다.

이거 설마 그건가?

편집점 못 맞추게 하려고?

“아까 기자가 몬스터즈 질문도 하고 그랬잖아.”

건하는 그 시계를 따로 내려놓지 않고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내려놓지 않았다.

‘진짜네.’

악마의 편집 따위 절대 당하지 않겠다는 듯 벽걸이 시계를 손에 들고 인터뷰를 이어갔다.

시계가 있으니, 인터뷰의 앞뒤가 바뀔 리 없었다.

질문과 대답의 시간이 다르면 티가 날 테니.

-저걸 진짜 쓰는 사람이 있었네.

-예전에 악마의 편집 피하는 방법이라며 한때 인터넷에서 떴잖아.

-그래도 나쁘지 않은데? 발성 좋고.

처음에 부정적이었던 컨셉에 대한 댓글의 분위기 또한 묘하게 부드러워졌다.

아이돌 커뮤니티에서 이범영 기자는 이쪽 방면으로 나름 유명했기에, 팬들은 대다수 건하의 센스를 좋게 봐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밖에 방법이 없었나? 소속사 차원에서 항의하는 게 훨씬 나았을 거 같은데.

-너무 유치하고 무례함…. 이건 좀 아닌 듯.

-솔직히 나는 별로.

여전히 부정적인 의견이 대다수였지만, 이제 김다빈의 눈에선 좋게 보였다.

사연을 알고 나니 더 괜찮게 보였던 거다.

팬이 좋으면 되는 거지.

하지만.

계속 이어지는 악성 댓글은 참을 수 없었다.

접속일 보면 대놓고 분탕치는 뉴비 같은데, 일부러 논란거리 만들려고 떡밥 뿌리는 거 아닌가?

아, 키보드는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소매를 걷어붙인 김다빈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타닥 타닥!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가지고 있던 자료들을 꺼내며 그녀만의 싸움을 시작했다.

*    *    *

“팬들 반응이 벌써 올라왔어.”

우주가 자신이 자주 방문하는 커뮤니티의 글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와, 이분 엄청나네.”

“뭐가?”

“형 저번에 시간을 지배하는 자에 대해서 안 좋은 댓글 달리자마자, 엄청나게 장문으로 반박하고 있어.”

-zl존따빈: 그럼 그냥 악질적인 편집을 그냥 당해야 하나요? 멤버들도 당황한 상황에서 리더인 건하가 오히려 잘 헤쳐나간 게 아닌가요? 이범영 기자가 자기 꼭지 하나 만들려고 억지로 편집하는 거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 거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당해야만 하는 건가요?

말고도 몇백 자짜리 댓글이 더 이어졌다.

“너무 고맙다.”

-그래도 올드한 건 올드한 거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컨셉을 갖고 온 건 미친 짓이지.

-그런데 묘하게 적응되니까 볼만한 거 같기도 한데.

-미쳤네. 단단히 빠졌네.

-여기 미친 언니 한 명 더 있네.

여전히 내 컨셉에 대해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그런데 형 아재 아니냐는 이야기 많이 나오는데?”

“노땅 형님 한 명이 애들 네 명 노는 곳에 끼는 거 같데.”

솔직히 여기서 흠칫 놀랐다.

원래 영혼은 30대 아저씨였으니.

눈썰미가 좋네.

그러나 다들 농담으로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생긴 30대가 있을 리가 없지.

나는 뽀송뽀송한 얼굴을 가진 거울 속 윤건하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잘생긴 내가 하면 통할 거라는 황이서의 말이 떠올랐다.

‘확실히 보는 눈이 있네.’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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