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48화 (48/236)

<제48화>

혹시 골든트랙의 예능에서 내 얘기가 나온 건가 싶었다.

그래서 골든트랙의 다큐 예능을 보았다.

골든트랙이 MAE 엔터에서 연습생 시절부터 키워지는 모습을 일일이 다 담은 프로그램이었다.

이미 회차가 꽤 진행됐는지, 데뷔 직전의 모습을 찍고 있었다.

-늘 열심히 해야죠. 다들 노력하는데.

-라이언 선배님들 컴백하신다는 소식 들었어요. 정말 기대돼요. 동경하는 선배님들과 경쟁할 수 있다는 게 좋습니다.

-이길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야죠.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우리 얘기는 하나도 없는데.”

TV에서 나오는 골든트랙의 예능을 가만히 보던 정민이 말했다.

나름 내부 평가 때 한 번 경쟁까지 했던 상대였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하는 아이돌인데 언급이라도 좀 해주지. 하는 아쉬움이 담긴 투정이었다.

“MAE 엔터 쪽에선 우리랑 경쟁 구도 잡히는 거 별로 안 좋아할걸?”

묵묵히 TV를 보던 성훈이 대답했다.

그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MAE가 절대 우리랑 엮지 않을 거라는 걸.

“그래도 골든트랙이랑 우리가 겹치는 게 좀 많잖아. 데뷔 시기도 그렇고, 같은 무대에서 경연도 하고. 또 건하도 있잖아.”

말을 마친 정민이 순간 입을 틀어막으며 내 눈치를 봤다.

“미, 미안…. 무심결에….”

내가 MAE에서 쫓겨났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정민의 사과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신경 안 써도 돼. 어차피 MAE에서 나와서 더 잘 됐는데. 데뷔도 우리가 빨랐고, 내가 거기에 있었으면 너희가 내 선배가 되는 건데…. 그건 안 되지.”

일부러 보란 듯이 오버 액션으로 분위기를 풀었다.

“그러고 보니 건하 얘기가 없네. 그래도 꽤 오래 같이 연습하지 않았나?”

“MAE에서 우리랑 라이벌리 생기는 걸 별로 안 좋아할 거다. GH 엔터가 MAE랑 비교하면 한참 작은 회사잖아. 인지도도 그렇고. 그런데 굳이 건하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없지.”

성훈의 말이 맞았다.

MAE에서 우리랑 골든트랙을 엮을 이유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댓글이 왜 올라온 거지?”

“영상에는 언급이 하나도 없는데.”

커뮤니티를 뒤지던 우주는 내 이야기가 처음 나왔다는 게시글을 찾았다.

“여기 있다.”

-예전에 MAE 엔터에서 올린 영상 본 적 있음. 연습생끼리 춤을 추는 영상인데, 거기에 저기 멤버들이랑 윤건하랑 같이 춤추는 영상이 있더라.

-아직 있음?

-확인 안 해봄.

⌎아직 있네. 이거 소속사에서 지우기 전에 보셈. 나름 풋풋한 모습이 귀여움.

-그런데 영상에선 엄청 못 추던데?

-뭔가 열심히 추기는 하는데 어설퍼.

-지금이랑은 완전 다르더라.

내 옛날 영상이 있다는 얘기에 나도 놀랐다.

정확히는 내가 빙의하기 전의 윤건하 영상일 터였다.

어떻게 찍혔을지는 대충 알 거 같았다.

아직도 내 핸드폰 갤러리엔 매일 같이 찍은 윤건하의 댄스 동영상이 남아 있었으니까.

비슷했겠지.

“형, 찾아봐도 돼?”

“그러자. 나도 궁금하긴 하네.”

“건하 너는 영상 안 찾아봤었어?”

“그때는 연습에만 집중했을 때라, 이런 거 올라온 지도 몰랐어.”

거짓말로 둘러댔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기존 MAE의 연습생 애들과 친했던 것도 아니었고, 사교성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멤버들은 내 연습생 시절이 궁금하다며 댓글에 적힌 MAE 엔터의 너튜브 채널을 뒤졌다.

“영상 찾았다!”

가장 먼저 찾아낸 우주가 곧바로 영상을 틀었다.

-♩♬♩♪~.

삑! 삐빅!

왁스칠 한 연습실 바닥과 신발의 마찰음이 노래 반주와 섞여 들렸다.

열 명의 연습생이 하나같이 간결한 동작을 섞어가며 군무를 추고 있었다.

“여기 골든트랙 애들도 다 있네.”

“어! 건하 형이다!”

앳된 윤건하가 가장 구석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본인 딴에는 굉장히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여기저기서 어설픈 느낌이 눈에 띄었다.

잘한다는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같이 춤을 추고 있는 연습생보다 떨어지는 게 보였다.

가만히 감상하던 멤버들이 거의 동시에 나를 보았다.

“건하, 진짜 열심히 연습했구나.”

영상 속의 나를 보던 호진이 감격한 얼굴로 나를 마주봤다.

“형도 노력파였네. 나는 형이 재능파인 줄 알았어.”

“고생 많이 했구나. 오늘은 건하를 위해서 특별히 닭가슴살에 핑크솔트를 살짝 쳐볼게.”

다들 의외의 모습을 봤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까지 고생했다.”

성훈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예능을 보고 찾아왔는지 최근에 달린 댓글이 여럿 보였다.

-이미지 완전 다르다.

-앳되서 귀엽긴 한데, 왜 떨어졌는지 알 거 같아.

-솔직히 진짜 못 추긴 한다…. 진짜 열심히 한 듯.

-우리 건하 파이팅!

-ㅋㅋㅋㅋㅋ 진짜 귀엽다. 영상 내릴 것 같으니 따놨다

댓글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이거 오히려 골든트랙 예능 덕분에 뭔가 묘하게 이득을 보는 느낌이네.”

내 말에 모두가 동의했다.

뜻하지 않은 주목이었다.

이게 골든트랙과 라이벌리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그룹끼리 묶여서 이슈가 되는 건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MAE에서는 조금 더 높은 그룹과 엮고 싶어 하는 거 같긴 한데.’

지금도 예능에서 같은 소속사 선배들을 엮어서 둘이 묘한 경쟁 구도를 일으키는 등, 나름대로 그림을 짜는 거 같은데.

-여기 건하 연습생 시절 또 찾았다

아무래도 팬들은 생각이 다른 거 같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MAE 엔터에 올라가 있던 내 영상이 모두 내려갔다.

*    *    *

골든트랙과의 조우는 생각보다 빨리 이뤄졌다.

“오랜만이다?”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에 왔는데 녀석이 있었다.

MAE의 연습생이었던, 지금은 골든트랙의 리더로 데뷔한 이진우였다.

참으로 어색한 만남이었다.

아직도 MAE 연습생을 그만두던 날 내게 쏘아붙이던 이진우의 말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빨리 꺼져라. 그 역겨운 얼굴 더는 보기 싫으니까 앞으로 이 바닥에는 절대 얼굴 들이밀지 말고.’

처음으로 같은 무대에 섰던 테스트 공연 때는 서로 거의 못 본 척하며 넘어갔다.

나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았겠지.

그저 흔하게 보이는 실패한 아이돌 연습생 중 하나로 보였을 테니까.

애초에 흔한 일이다.

아이돌 연습생이 데뷔하지 못하고 쫓겨나는 거.

수천 명의 연습생 중에서 열 명도 안 되는 이들만 아이돌로 데뷔할 수 있었다.

이 바닥에서 길을 포기하고 떨어져 나가는 게 얼마나 쉬운 일인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데뷔한 뒤에 모두가 승승장구하는 것도 아니었다.

데뷔만 하고 사라지는 아이돌이 얼마나 많은가.

이진우가 테스트 공연 때 나를 거의 신경도 쓰지 않았던 건 그 때문이었다.

다른 엔터에서 비벼봐야 곧 사그라질 사람 중 하나로 봤을 테니까.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축하한다. 너도 데뷔했네?”

그보다 조금 더 일찍 데뷔한 데다가, 첫 싱글 앨범으로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니 달리 보일 것이다.

“…그래.”

그러나 티를 내진 않았다.

그럴 정도로 여유롭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 막 데뷔한 아이돌이 얼마나 바쁘게 다니는지 알고 있었다.

인사하느라 허리도 아플 거다.

나도 그런데 뭘.

“더 할 말 있어?”

“우리가 너 넘는다.”

“뭐?”

“조금 잘된 거로 잘난 척하지 말라고.”

잘난 척을 한 적이 없는데 뭔 소리야.

질투심에 삐뚤어진 걸까.

세상이 비틀려 보이는 걸지도 모르겠다.

더 큰 소속사에서 데뷔했으면, 그에 맞는 품위를 보여줘야지.

“야, 이진우.”

“왜?”

“너는 목표를 나로 잡은 거냐?”

“그래. 너희 가볍게 넘고 비웃어 주려고 그런다.”

“그럼 평생 못 이기겠네.”

“뭐?”

나는 손에 묻은 물기를 닦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저 위를 보고 있거든.”

목표를 크게 가지라는 말이 있다.

크게 잡은 목표를 설사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에 준하는 성취를 이룰 수 있다며 말이다.

나는 진엔딩을 보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세계 최고의 대중 음악 상인 그래미.

당장은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간 가고 말 거라는 각오로 움직이고 있었다.

고작 내 등을 보며 쫓는 놈에게 뒤질 정도로 내 각오는 만만한 게 아니거든.

골든트랙한테 뒷덜미 잡힐 정도면, 그래미는커녕 한국 1등도 못하지.

“너는 평생 내 등만 보고 쫓아라. 나는 먼저 앞에 가 있을 테니까.”

나는 말을 마치고 화장실을 나왔다.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거기서 더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었다.

실력으로 보여주고 증명하면 된다.

*    *    *

골든트랙이 무대에 올랐다.

약간은 긴장한 빛이 역력한 그들은 반주가 나오자, 천천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잘 춘다.”

“역시 춤은 진짜 잘 추는 거 같은데.”

“가창력도 나쁘지 않아.”

뭔가 애매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지점이었다.

분명 잘한다.

잘하는데.

‘눈이 가지 않아.’

밋밋했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굉장히 아름다운 색이고, 좋은 재질로 만든 비단이었다. 그러나 그 비단을 한데 묶으니, 색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요소 하나하나는 괜찮은데, 그걸 하나로 묶으니 영.

마치 싸구려 색종이로 만든 옷 같은 어설픔이 느껴졌다.

‘왜 저렇게 된 거지?’

MAE의 내부 사정까지 알 리 없으니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왜 이진우를 비롯한 골든트랙 멤버들을 게임에서 볼 수 없었는지는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겐 매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여타 아이돌에게서 느껴지는 매력이 보이지 않았다.

억지 웃음.

마치 기계처럼 만들어진 춤.

복사 붙여넣기를 한 듯 비슷한 음색과 가창법.

마치 정해진 틀에 아이들을 끼워 개성을 없애버린 느낌이었다.

과거 내부 평가에선 볼 수 없는 모습들이었다.

기존의 히트곡의 그늘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골든트랙의 단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지금 올리오스 멤버들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들의 얼굴에서 이전 내부 평가 때 느꼈던 경쟁심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안타까움.

멤버들이 느끼는 감정이었다.

“괜찮을까? 뭔가 아쉬운데.”

“시작부터 삐걱거리는 느낌이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진우가 싸가지를 밥 말아 먹은 놈이긴 했다. 원래 윤건하가 갖고 있는 증오심이 커다랗긴 했다. 그렇다고 무대에 올라간 그의 불행을 기도하지는 않았다.

원래 윤건하 입장에서는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서른이 넘은 내 입장에선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같잖은 애들 장난이었다.

그리고 놈이 무너진다고 내가 잘하는 것도 아니다.

풀컨디션인 이진우를 이겨야 보람이 있는 거 아니겠어?

‘애당초 내 목표도 아니고.’

그는 지나가는 길에 보이는 돌부리였다.

무시하고 피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는.

돌부리가 얼마나 크든 지나가는 행인이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특색 없는 골든트랙의 무대가 끝이 났다.

“올리오스 팀, 준비하실게요!”

조연출의 외침에 우리는 서둘러 준비하고 나갔다.

“애들아, 열심히 해!”

“알겠어요! 형!”

“올리오스 화이팅!”

두현의 말에 우리는 의지를 다잡았다.

무대 뒤편으로 가는 길.

어두워진 표정으로 대기실로 돌아가는 골든트랙을 마주쳤다.

나와 눈을 마주친 이진우가 혀를 차며 시선을 피했다.

골든트랙의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초상집 분위기네.’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저들이 스스로 극복해야 할 일이지.

나는 내 일을 열심히 하면 그만이었다.

우리는 곧 무대 위로 올라갔다.

*    *    *

이진우는 이어지는 올리오스의 무대를 보았다.

최근 주목받는 신인.

여러 예능에 나오며, 그들만의 팬덤을 만들기 시작하는 올리오스.

‘Angel’의 반주가 시작되고, 그들의 무대가 펼쳐졌다.

꿀꺽.

무대 위에서 빛나는 올리오스들을 보는 순간, 자신들과 다른 무언가가 보였다.

“아 씨….”

올리오스는 빛나고 있었다.

단순히 조명 아래에서 빛난다는 뜻이 아니었다.

음악에 따라 몸을 움직일 뿐인 자신들, 골든트랙과는 달리 저 친구들은 음악을 진심으로 즐기고 표출하고 있었다.

이진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왜?’

분명 연습생 때는 내가 더 잘했고, 더 주목받았는데.

왜 데뷔한 이후엔 저 모질이 윤건하가 더 주목을 받느냔 말이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과가 보여주고 있었다.

방송국 관계자들은 올리오스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PD 또한 올리오스를 더욱 마음에 들어 했다.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분명 우리가 더….”

이를 아득바득 가는 이진우의 입에는 그저 열등감 가득한 외침만 덧없이 퍼질 뿐이었다.

골든트랙 멤버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들 모두가 한때는 건하보다 더 앞선 연습생이었으니까.

그런데 대체 왜?

모두의 머릿속에 같은 물음표가 띄워졌다.

무대를 마친 건하가 올리오스 멤버들과 함께 내려왔다.

“아직도 있었네.”

“너 뭐냐?”

“뭐가?”

이진우는 숨을 고르며 건하를 노려봤다.

여유로운 저 태도.

윤건하의 저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과거 매일 같이 주눅 든 얼굴로 그의 눈치를 보았던 윤건하는 없었다.

“어떻게 한 거냐?”

“우리 무대?”

“그래.”

건하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진우를 노려봤다.

마치 사람의 생각을 읽는 듯한 눈빛에 이진우는 저도 모르게 흠칫거렸다.

“너, 울타리에서 쫓겨난 사람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변하는지 아냐?”

“뭐?”

“좋은 소속사, 보장된 성공, 잘 될 거라는 낙관적인 기대. 그거 때문에 네가 정체되어 있던 거야.”

“…….”

“이 작은 성공이 부럽냐? 그럼 더 열심히 해. 필사적으로 연습하고, 덤벼. 안주하지 말고.”

이진우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치 맹수처럼 자신을 노려보는 건하의 말에는 감히 반박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그저 주먹을 꽉 쥘 뿐이었다.

“…내가 반드시 너 이길 거다. 그러니까…. 두고 봐.”

“마음대로 해. 난 그동안 더 앞으로 나갈 테니까.”

마치 자신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건하의 말에 이진우는 화가 치밀었지만, 그뿐이었다.

성과를 내지 못한 아이돌에겐 아무런 힘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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