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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47화 (47/236)

<제47화>

나와 같이 이범영의 의도를 뒤늦게나마 눈치챘던 두현이 멤버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범영이 우리 인터뷰를 짜깁기해서 악의적으로 편집하려고 했다는 걸.

나는 그걸 막으려고 시계를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고, 컨셉이라는 것도 전부 즉흥적으로 현장에서 만든 거라고.

전부 다 당황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일부러 그랬던 거라고?”

“나는 갑자기 건하가 왜 그러나 싶었어. 인터뷰 중간에 말을 끊다니, 말도 안 되잖아.”

“두현이 형, 진짜예요?”

“컨셉이 아니었구나. 나는 그거 건하 형이 프로듀서님이랑 짠 건 줄 알고 진짜 존경했는데. 와, 이 형은 우리를 위해서 수치심까지 견딜 수 있는 형이구나 했는데.”

뒤늦게 알아차린 멤버들이 한마디씩 덧붙였다.

“두현이 형, 진짜 그 기자님이 악의적으로 편집하려고 했던 걸까요?”

“맞을 거야. 프로듀서님이 경고하셨거든. 이범영 기자가 쓸데없는 질문 하는 거 같으면 인터뷰 당장 중단시키라고.”

“와…. 건하도 프로듀서님의 경고 들었어?”

정민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들었을 리가.

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바이브지.

딱 보면 어떤 놈인지 견적이 나온다.

“진짜 큰일 날 뻔했네. 몬스터즈 선배님들이랑 비교라니…. 우리는 한참 부족한 신인 아이돌인데 말이야.”

“그럼.”

알아주니 다행이다.

그리고 사무실로 도착하자, 두현이 전부 보고한 듯 황이서가 힘차게 웃었다.

“다 들었다. 두현이한테.”

내 등을 팡팡 때리는데 그게 얼마나 아프던지.

“두현이한테 경고하긴 했는데, 건하 네가 해결해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러다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나를 보았다.

“그런데 한번 보여주면 안 되겠냐?”

“뭐를요?”

“뭐긴. 네가 시계 들고 했다는 거 말이야.”

“두현이 형, 그거까지 말했어?”

“전부 보고하는 게 원칙이거든.”

와.

그 수치스러운 장면을….

“어차피 다음 주에 방송 나오면 너나 할 거 없이 다 볼 텐데 무슨 걱정이냐?”

“그래도….”

하아.

저 사람들은 모른다.

내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시계를 들고 외쳤는지.

그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서 혼신의 힘을 다한 거라고.

“야, 너를 위한 벽걸이 시계도 사뒀다. 크기도 딱 적당해. 어떠냐?”

“설마 이거 계속 하려고요?”

“대표님이 나쁘지 않다고 하시더라.”

대표라면.

최강훈 대표 말인가?

“일단 아재틱하고 유치하긴 한데, 계속 밀어붙여도 되겠다는 게 대표님의 생각이다.”

대표님의 취향이라니.

잠깐만, 설마 그럼 내 취향이 최강훈 대표랑 비슷하다는 건가?

그건 위험한데.

“프로듀서님은요?”

“음…. 두현이가 찍은 영상 보긴 했는데, 실물로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한 번만입니다.”

“그래. 그림 별로면 다신 해달라고 안 한다. 하고 싶다고 해도 안 시킬 거야.”

“그림이 좋으면요?”

대답이 없다.

이거, 반응 괜찮으면 진심으로 시킬 생각인 거지?

“자, 어서.”

“…….”

나는 한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시계를 잡아 들었다.

“시간을, 지배하는… 자!”

“크하하하핫!!! 그 부끄러워하는 표정이 일품이구만! 이거 된다. 괜찮네. 크크큭!”

반면 동료들은 보지 못할 걸 본 것처럼 눈을 돌렸다.

멤버들의 반응과 최강훈이 좋다는 그 한마디가 나를 망설이게 했다.

이건 안 하는 게 낫겠어.

솔직히 했을 때는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반응을 보니, 이건 아니다.

“안 할 겁니다.”

“공중파로 퍼질 건데, 안 하게? 빨간 불 들어와 있었다면서. 이범영 그 인간이 안 쓸 인간이 아니에요.”

“…….”

“그러니까 쓸 수밖에 없어. 그렇다면 차라리 뻔뻔하게 나가. 그게 나을 거다.”

“그래도 납득할 수가 없는데요. 멤버들 반응도 그렇고 애매할 거 같습니다.”

“내가 왜 시키는 줄 알아? 이거 유치하고 올드하다는 거 다 알아. 그런데 말이야. 건하 너한테는 무기가 있잖아.”

“무기 말입니까?”

황이서가 씨익 웃으며 손가락을 들어 얼굴 앞에 흔들었다.

“외모가 있잖아. 우리 팀에서 잘생기기로 순위 정하면 1위를 다투는 외모. 너 잘생겼다. 내가 하면 웬 이상한 아저씨가 술자리에서 농담 따먹는 거지만, 잘생긴 네가 하면 그래도 그림 나와.”

내가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자, 황이서는 계속해서 말했다.

“물론 처음 몇 번은 이상하다고 생각할 거다. 반응도 나쁘겠지. 그런데 오히려 그게 매력인 거지. 보다 보면 끌리게 될 거다. 원래 개그는 반복이야. 이런 컨셉은 뇌절하다 보면 사람들도 적응돼서 잘 받아들여.”

“보다 보니 정드는 느낌을 살리시려는 거군요.”

“역시 척하면 척이네.”

황이서는 계속 노출되면 호감이 생긴다는 법칙을 노리는 거다.

얼핏 보면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도 여러 번 보면 호감이 생긴다는 법칙.

“여기저기 말도 많을 거야. 소속사 욕도 할 거다. 왜 저런 걸 시키느냐. 소속사 정신 나갔다. 그렇게 이야기가 돌겠지. 나쁘지 않아. 오히려 그렇게 커뮤니티에 네 영상이 돌아다니게 되면 그것도 하나의 마케팅이 되는 거니까.”

황이서는 이 방법이 성공할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한번 제대로 노려보자고. 어때?”

대충 의미는 알겠는데….

“너무 이상한데요. 부끄럽고.”

“그래도 할 만해. 욕먹을 걱정은 마라. 욕은 우리 소속사 측에서 먹게끔 조치할 테니까.”

뒤를 돌아보니, 전부 입술을 꼭 깨물고 있는 게 당장이라도 웃음보가 터질 거 같은 얼굴이었다.

다들 못 볼 걸 봤다는 듯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푸흡! 아, 미안해.”

우주가 끝내 웃음보를 터트렸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냐?”

황이서가 멤버들에게 물었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게 통할 거 같지는 않은데요.”

“같은 생각이에요.”

“저도….”

성훈과 정민 호진은 부정했다.

“그래도 재밌긴 했어요. 건하 형이 민망해하는 표정이 괜찮은 거 같긴 한데요?”

우주만이 황이서 편을 들었다.

모처럼 의견이 갈렸다.

“어차피 실패해도 본전이다. 물론 건하 네가 좀 민망하겠지만, 성공했을 때 돌아오는 이득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시도일 거야.”

황이서의 말 중에 틀린 건 하나 없었다.

실패해도 손해 볼 게 그리 많지 않은 시도였다.

안 해서 나쁠 거 없는.

“알겠습니다. 한번 해보죠.”

까짓거 못 먹어도 고다.

“좋아. 앞으로 부탁 좀 할게. 아무튼 건하 덕분에 잘 넘겼네. 솔직히 걱정 많이 했다. 내가 그 인간 성격을 알아서 같이 가려고도 했는데, 도무지 시간이 없더라. 아무튼, 리더답게 잘 처신했어.”

“네, 감사합니다.”

“두현이는 좀 남고.”

“예!”

*    *    *

“두현아.”

“예, 프로듀서님.”

“오늘 일은 실망이 크다. 내가 몇 번이나 경고했던 거 같은데. 만약에 이 기자가 쓸데없는 짓 하는 게 보이면 나 믿고 무조건 말리라고.”

“죄송합니다.”

이두현은 진지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황이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할 말이 없었다.

이번엔 유쾌하게 넘어갔지만, 만약 건하가 없었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악마의 편집으로 위조된 인터뷰를 해명하느라 홍보팀이 미친 듯이 뛰어다녔을 테고, 자신은 시말서를 썼어야 할 정도로 큰 건.

올리오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몬스터즈까지 엮일 뻔한 문제였다.

“이제 2주 된 너를 혼자 보낸 내 탓도 있긴 하니, 더 말 안 하겠다. 그래도 앞으로 아이돌이 본인의 이미지 다 내려놓고 나서게 만들지 마. 그거 네 역할이었어. 네가 감당했어야 할 일이었다고.”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이런 일 없을 겁니다.”

“그래. 이 바닥은 절대 방심하면 안 되는 곳이야. 애들한테 입 조심하라고 하고. 이 바닥 좁은 건 잘 알고 있지?”

“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덩치에 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해서 늘 소심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그였다.

눈물이 많고, 시를 좋아하며, 노래를 좋아했고, 밖에 나가는 것보다 집 안에서 노는 걸 좋아했다.

싸움에 함부로 나서지 못하고, 늘 피하고만 지냈던 그였다.

군대에서도 덩치 때문에 그를 두려워했던 선임들이 조금 친해지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깨닫고 나서는 무차별적으로 괴롭히기 일쑤였다.

그 부조리를 당하고도 아무런 말도 못 했던 게 자신.

덩칫값 못한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이번에는 달라지겠다고 결심했는데, 결과는 똑같았다.

제 할 일을 하지 못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말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범영 기자가 얘기하더라.”

이범영 기자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들었던 말 때문에.

‘아이돌이 잘하면 뭐해. 담당 매니저가 정신 못 차리면 같이 망하는 거예요.’

‘앞으로 이런 거 묻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시고 말합시다.’

혹시 내가 올리오스랑 같이 일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신 걸까.

“건하가 자기를 찾아와서 두현이 너랑 함께하면 음방 1등 찍을 거라고 말했대.”

“예?”

“올리오스가 음방 1위 찍으면 이 기자보고 너한테 사과하라고 했단다.”

“…….”

“말도 안 되지? 신인 아이돌이 기자한테 찾아가서 자기 1등 할 거니까 매니저한테 사과하라는 내기를 걸다니. 하긴, 그게 건하다운 거지. 윤건하는 못 참지.”

두현은 얼떨떨했다.

건하와 만난 건 고작 2주였다.

아직 일에 제대로 적응도 하지 못한 자신의 어디를 보고 그렇게 확신을 할 수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1등을 못 하면 ‘건방진 아이돌 윤건하, 제 주제 파악 못 하고 덤비다’라고 헤드라인 올릴 거라고 하더라.”

“…….”

“어떡해야겠냐?”

“올리오스 1위… 만들겠습니다.”

두현의 목소리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런 신입 매니저를 보며 황이서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신입 매니저의 풋풋함이 느껴졌다.

나도 저랬던가?

아무것도 모르던 신인일 때는 작은 것에도 감동하고 그랬던 거 같은데.

담당하는 연예인들의 말에 일희일비했던 기억이 생생했다.

이두현, 자신과 다르게 참 감정적인 놈이다.

그렇기에 올리오스와 잘 어울렸다.

그놈들이랑 함께라면 두현이도 충분히 적응할 수 있을 거다.

어쩌면 죽고 못 사는 사이가 될지도 모르지.

“그놈이 참 리더야. 멤버들 말고도 자기 매니저까지 챙기려고 들고, 안 그러냐?”

두현은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 대답하는 순간, 울음이 터질 것 같았기에.

입을 다문 채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새끼, 덩칫값도 못 하고 눈물은 많아서.”

애정이 느껴지는 한마디였다.

“나도 건하랑 같은 생각이다. 올리오스 1등 할 수 있어. 네가 잘 보조해 주고, 내가 잘 케어해 준다면. 걔들 음방 1등 충분히 할 수 있는 애들이야.”

“…알겠습니다.”

황이서는 흔들리는 두현의 어깨를 툭툭 치며 격려했다.

“실수할 수 있어. 그 실수를 반복하지만 않으면 돼. 오늘 고생했다.”

*    *    *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두현이 복도에서 선 채 기다리고 있었다.

눈이 퉁퉁 부은 것이 오늘 일로 한 소리를 들은 모양새였다.

“건하야.”

“아, 두현이… 형.”

아직도 이 형이라는 단어가 어색하다.

황이서 정도 얼굴이면 쉽게 나오는데, 내가 스무 살이라는 걸 가끔 까먹을 때가 있다.

“고맙다.”

내가 이 기자에게 한 말을 들었나.

하긴, 들었겠지.

그런 선전포고를 들었는데 이 기자가 황이서에게 말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황이서라면 알아서 잘 처리해줄 거라고 들이받은 거긴 한데 어찌어찌 잘 해결된 모양이었다.

“우리 매니저 형이 무시당하는 걸 보고 어떻게 가만히 있어. 우리는 한 가족이잖아. 안 그래?”

“나 진짜 서러웠다. 건하야.”

몇 주간 함께 지낸 이두현은 험상궂게 생긴 외모와 달리 꽤 감정적인 사람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시집을 챙겨 읽는 것도 보았다.

그 두꺼운 손으로 작은 시집을 촤락 펼치는 게 상당히 의외였지만 말이다.

“허어엉, 내가 진짜 그 사람한테 나 때문에 너희가 망할 거라는 얘기 듣고 슬프고 억울해서 오늘 잠 못 자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네가 찾아가서 1등 할 거라고 말했다는 말 듣고 진짜….”

우는 것도 곰처럼 우네.

그동안 꽤 서러운 게 쌓였나 보다.

GH 엔터에 입사하기 전에 외부적으로 쌓였던 게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직 그와 많이 친하진 않았지만, 이두현 매니저의 새로운 면모를 본 것 같았다.

“허어어엉. 건하야. 나 진짜 너 많이 아낀다. 열심히 할게. 네가 1등 한다고 말한 거 거짓말 되지 않게 내가 뒤에서 엄청 도와줄게.”

“지금도 잘하고 있어요. 두현이… 형.”

“허어엉! 고마워!”

두현이 나를 꽉 껴안았다.

이건 숨쉬기가 좀 힘든데.

“여, 열심히 해요. 커헉!”

두현은 내가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기 직전이 되어서야 놓아줬다.

얼마나 미안해하던지.

*    *    *

데뷔 19일 차 성적이 조금 더 올랐다.

‘New Taste’ 레몬 차트 32등. ‘Angel’ 레몬 차트 33등.

그리고 MAE 엔터의 골든트랙이 데뷔했다.

한 달 전부터 방송하던 팀 업 다큐멘터리 예능과 함께.

그러나 우리는 골든트랙의 데뷔를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았다.

그 댓글이 뜨기 전까지.

-올리오스의 윤건하가 MAE 연습생이었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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