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화>
오늘은 황이서가 일전에 말했던 TV 인터뷰를 위해 방송국 스튜디오를 찾았다.
<연예가 좋다>는 TV 공중파의 유명한 연예계 뉴스 프로그램으로, 매주 저녁 금요일 6시에 방송되는 장수 프로그램이었다.
최근 인터넷 기사들이 늘어나는 바람에 시청률이 예전만 하지 못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TV 프로그램으로 나름대로 자리를 공고히 지키고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스튜디오에 미리 도착한 우리는 인터뷰를 이어갈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올리오스 팀 왔네요?”
어느새 찾아온 기자가 안경을 고쳐 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황 프로듀서님은 안 오셨나?”
“예, 오늘 일이 있으셔서 못 오셨슴다.”
오늘 인터뷰를 진행할 이범영 기자였다.
사전 회의 때는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던 남자였다.
‘하하하, 물론이죠. 올리오스 애들을 위한 기사 잘 쓰겠습니다.’
‘원하시는 헤드라인이 있습니까?’
황이서가 없다는 말에 표정이 바뀌었다.
찰나의 순간 바뀐 것이라, 나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듯싶었다.
그래. 이런 인터뷰에 대해 잔뼈가 굵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베테랑 기자들의 능구렁이 같은 표정 관리를 잡아내기 힘들다.
지금까지 데뷔 후 2주간 황이서 프로듀서와 함께 다녀서 미처 깨닫지 못했다.
방송계 사람들은 이런 애들이었지.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물어뜯으려는 야수.
이제야 깨달았다.
황 프로듀서의 존재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가 있어서 여러 방송 관계자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친절했는지.
다시금 웃는 얼굴로 우리를 맞이한 이 기자는 하이에나 같은 눈빛을 숨겼다.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역시 신인 아이돌답게 열정이 넘치는 모습이 아주 보기 좋네요. 아직 카메라 안 돌았으니까. 방송 시작하고 제 멘트 끝나면 바로 부탁드려요.”
“예! 알겠습니다!”
호탕하게 웃은 이 기자가 큐 카드를 살폈다.
이리저리 대본을 살피던 그가 신호를 줬고, 얼마 안 가 카메라에 붉은 불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연예가 좋다>의 인기 코너, ‘기대되는 유망 스타를 만나다’의 이범영입니다. 오늘은 최근 데뷔하고 화제를 부르는 제2의 몬스터즈, 올리오스를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일, 이, 삼, All we once! 안녕하세요. 올리오스입니다!”
“아, 좋아요. 우선 제2의 몬스터즈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기분이 어때요? 존경받는 선배들의 이름을 받는다는 거, 부담되지 않나요?”
순서가 다르다.
원래 계획된 첫 질문은 곡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계획과는 달리 별명부터 물어본다고?
느낌이 싸하다.
본능이 경고하고 있다.
이 기자가, 장난질을 치려고 한다는 걸.
“물론 영광이죠. 저희 소속사에서 배출한 최고의 선배님들이신데요. 항상 선배님들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게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긴장을 하지 않던 우주답게 순조롭게 대답했다.
“열정이 느껴지는 대답이네요. 최근에 올리오스가 바쁜 스케줄을 보내고 있는데, 지방 축제부터 방송국,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 인터뷰 등 없는 곳이 없는데, 쉴 수 없을 정도로 빡빡한 스케줄이 힘들지 않나요?”
사전에 전달받지 못한 질문을 듣자마자,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꽂혔다.
이건 함정 질문이라는 걸.
여기서 힘들다는 말 한마디만 한다면, 앞선 질문과 엮여 악마의 편집으로 편집되어 나갈 게 분명했다.
비약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아까 이범영이 보인 눈빛을 나는 안다.
‘이것 봐라?’
황이서가 없다고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려?
여전히 멤버들은 눈치채지 못한 듯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순진한 애들을 속여서 만든 거짓말로 자기들 특종을 만들려는 속셈이 뻔히 보였다.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일이 없는 것보단 넘치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을 해서요.”
내가 끼어들어 대답했다.
누가 대답할지 협의하지 않은 질문이니, 누가 대답해도 상관없는 거겠지.
“인터넷 댓글이나 반응 중에 이런 얘기가 있던데요. 몬스터즈는 꽁꽁 싸매고 젊은 신인 아이돌만 부려먹는다. 방송에 나오지 않는 곳이 없다. 이런 얘기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아뇨! 저희는 언제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몬스터즈를 엮으며 물어보는 이 기자의 질문에 확신을 가졌다.
우리를 통해 몬스터즈의 정보를 캐내고 싶은 거겠지.
그래.
아직 서툰 신인들 살살 건드려서 하나라도 뽑아내면 대박일 테니까.
국내 최정상인 몬스터즈.
심지어 최근 해외 활동 이후로 유독 인터뷰도 하지 않고, 공식 일정은커녕 인터뷰 하나도 하지 않는 그룹이었으니 말이다.
그들의 소식 하나라도 물어서 한 꼭지 딴다면, 꽤 재미를 볼 테니 악마의 편집으로라도 하나 물려고 하는 거다.
그런데 말이야.
상대를 잘못 골랐다.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는 이두현의 손목에 달린 손목시계.
저거다.
“저기, 인터뷰 중에 죄송합니다.”
“건하 씨, 무슨 일 있어?”
“매니저 형, 혹시 시계 좀 가져다줄 수 있어요? 제가 대기실에 시계를 두고 와서요. 챙겨다 주세요.”
약속과는 다른 질문을 연이어 뱉던 이 기자의 말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던 이두현이 내 말에 당황한 듯 버벅거렸다.
여기서 대충 눈치채고 갔다 와야지.
“시계요?”
“아, 네. 원래 시계를 갖고 다니는데, 대기실에서 따로 놓았다가 가지고 오는 걸 잊어버렸어요. 긴장해서 그런가, 없는 걸 아니까 불안하네요. 하하하.”
나는 손가락으로 왼 손목을 가리키며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해했기를 바란다.
이 세계에 빙의하기 이전에도 인터뷰라면 치를 떨 정도로 많이 해왔다. 기자들 중에는 연예부 기자라고 하지만 경제, 사회부 기자 또한 그들 못지않게 집요했다.
그들에게 악마의 편집을 당하지 않기 위해 종종 사용하는 방법이 있었다.
질문마다 손목시계의 위치를 바꿔서 편집점을 스스로 만드는 방법.
생각보다 유용했다.
이 방법 덕분에 의도적인 조작 인터뷰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질문했을 때와 대답했을 때의 손목에 찬 시계의 방향이 달랐으니까.
이두현이 잘 이해했으려나.
시계에 손목을 가리켰으니 잘 알아챘겠지.
“죄송합니다. 제가 늘 쓰던 시계가 없으면 불안해서요.”
이상하다는 듯 나를 보는 멤버들과 이 기자의 시선을 무시하며, 이두현을 기다렸다.
스튜디오 밖을 달려나갔던 이두현이 돌아오는 데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헉, 헉. 죄송합니다. 헉, 헉.”
다급하게 달려온 이두현의 손에는 대기실에 걸려 있던 얼굴만 한 벽걸이 시계였다.
“어….”
“거, 건하야. 평소에 이거 없으면 불안해했잖아. 하, 하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내게 벽걸이 시계를 건넨 이두현.
대충 내 의도를 이해한 건 분명한데.
이해하는 방식이 잘못됐다.
얌마.
손목시계를 달라고 했더니 벽걸이 시계라니.
이걸 주면 어떡해?
이러면 너무 부자연스러워서 누가 봐도 기자를 못 믿는다고 눈치 주는 거 같잖아.
지금도 봐라.
이 기자가 못마땅하다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표정만 보면 당장 인터뷰를 끊으려고 작정한 얼굴이었다.
둘러대야 해.
이 인간이 의심하지 못할 그런 완벽한 변명이….
아.
“사실 캐릭터 때문에 가지고 왔습니다!”
“캐릭터요?”
“예, 저희 이번 앨범이 천사와 악마 컨셉이지 않습니까? 제가 시간을 관장하는 천사라는 컨셉이거든요. 알람 시계가 없으면 잠을 못 자요.”
“…….”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보는 이범영 기자.
무언가 해야만 한다.
무엇이든 멘트를 쳐서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해야만 한다. - 추가
나는 그런 이 기자를 보며 시계를 높게 들었다.
“시, 시간을 지배하는… 자!”
수치심에 얼굴이 벌겋게 물들었다.
지금 뭐하냐는 듯 나를 보던 다른 멤버들이 얼굴을 돌리며 웃음을 참았다.
성훈은 이게 뭐냐는 식으로 나를 보았다.
카메라 앞이라 최대한으로 참는 모습이었다.
와, 쪽팔려.
진짜 쪽팔려.
쥐구멍 어디 없냐.
들어가서 숨고 싶다. 제발.
나는 카메라를 힐끗 보았다.
카메라에 불은 꺼지지 않은 채였다.
됐다.
어쨌든 이 모습이 담겼다.
“트, 특이한 컨셉이네요. 예…. 그런데 왜 사전 인터뷰 때는 얘기를 안 해주셨죠?”
“비밀 유지죠. 하하하. 첫 인터뷰에 서프라이즈로 공개하려고 했거든요.”
처음에는 어색했던 거짓말이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왔다.
이미 갈 데까지 갔다.
여기서 물러날 곳도 없어.
“멤버들은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인데.”
이 인간, 아직도 의심하네.
“저희 프로듀서님과 제가 몰래 짰던 컨셉입니다. 한 명쯤은 망가지는 모습도 좋을 거 같다고 하셔서요. 물어보셔도 좋습니다.”
그래서 황 프로의 이름을 댔다.
어쩔래? 이래도 덤빌 거냐?
“그…렇습니까?”
이범영은 그제야 포기했다.
남들 모르게 콧잔등을 찌푸린 그가 다음 인터뷰를 이어갔다.
째깍째깍 시간을 알리는 벽걸이 아날로그 시계 앞에서 억지로 악마의 편집을 할 재주 있는 기자는 없었다.
이후 질문은 원래 협의했던 내용대로 흘러갔고, 인터뷰 흐름도 아주 스무스했다.
뒤에서 느껴지는 동료들의 시선이 따갑다.
사전에 말하지 않은 걸 서운해하는 건가.
아니면 나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걸 질투하는 건가.
우주는 거듭 감탄하며 내 옆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미안하다. 애들아.
다 우리 살자고 내가 희생한 거야.
너희 나한테 고마워해야 해.
* * *
“수고하셨습니다!”
인터뷰가 끝이 나고, 우리는 이범영 기자를 비롯한 카메라 작가에게도 인사를 마쳤다.
“다들 고생했어요. 오늘 건하 씨 덕분에 인터뷰 재밌게 했네. 컨셉 되게 좋아요. 조금 많이 유치하긴 하지만.”
약간 뒤끝이 남은 듯한 말투였다.
한 꼭지 제대로 딸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성이 났겠지.
아무리 그래도 유치하다니. 나름 괜찮았던 거 같은데.
“감사합니다!”
나는 꾸벅, 이 기자에게 인사했다.
“저기 이범영 기자님, 인터뷰는 언제 나올까요?”
이두현의 질문에 이 기자의 얼굴이 구겨졌다.
“저번 사전 회의 때 이번 달 말에 나온다고 공지했던 거 같은데, 매니저는 졸았나 봐?”
“죄, 죄송합니다.”
“다음 주에 나올 거고, 우리 매니저 씨는 정신 좀 차리자. 아까부터 자꾸 실수한다? 응?”
속은 썩는데 황이서가 아끼는 아이돌인 우리는 차마 못 건드리겠고, 그래서 만만한 로드 매니저를 괴롭히는 거다.
“아이돌이 잘하면 뭐해. 담당 매니저가 정신 못 차리면 같이 망하는 거예요. 알겠어? 앞으로 이런 거 묻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시고 말합시다. 응?”
190이 넘는 이두현의 볼을 기분 나쁘게 두드렸다.
짝짝.
자기가 무슨 짓을 해도 때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아는 건가.
깡 한번 대단하다.
‘이 인간 봐라?’
이 기자는 사람의 자존감을 무너트리며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는 쓰레기 타입의 인간이었다.
사업가 시절 성미였다면 이놈은 벌써 기자 생활 그만두고 인생 나락 갔을 거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내 사람 건드리는 건 절대 못 참거든.
하지만 나는 공인이다.
아이돌.
그것도 아직은 힘도 없는 신인 아이돌.
이런 식으로 사람을 무시하는 인간에게 복수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보다 더 성공하는 거.
이런 놈들이 감히 나를 바라보지 못할 정도로 성공해서 저 뻗대는 목을 그대로 눌러버리는 거. 그게 최고의 복수다.
눈을 내리깔며 입술을 깨무는 두현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성공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나는 사무실로 돌아가려는 이범영 기자를 따라 복도로 나갔다.
“이범영 기자님.”
“뭐예요?”
나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는 이 기자.
“오늘 정말 즐거운 인터뷰였습니다. 신경 써주신 덕분에 정말 잘 마쳤습니다.”
“윤건하, 라고 했던가? 오늘 한 방 먹었어. 신인 중에서 이렇게 생각이 깊은 친구가 있는 줄은 몰랐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컨셉입니다. 시간을 지배하는 자!”
“흐흐, 뭐, 그렇다고 하자. 우리 건하 씨가 황 프로님이랑 같이 했다고 하니까. 그건 뭐, 둘만이 알겠지. 그런데 무슨 일이죠?”
입맛을 다신 이범영 기자는 빨리 용건을 말하라는 듯 표정으로 재촉했다.
“기자님, 우리 성공할 겁니다.”
“뭐요?”
“보란 듯이 다음 앨범에 음방 1등 찍고 성공할 겁니다.”
“…….”
나를 노려보는 이범영 기자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건하 씨, 지금 시비 거는 건가?”
“아뇨. 저희 매니저 형 보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매니저가 정신 못 차리면 담당 아이돌도 망한다고.”
이두현이 외모와 달리 조금 맹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배우려는 자세로 함께 했다.
2주. 사람을 알고 판단하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그는 아이돌인 우리보다 먼저 일어나 우리를 픽업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운전하고, 우리를 숙소에 데려다주고 나서야 퇴근을 하는 성실한 매니저였다.
2% 부족하긴 했지만, 내 말과 손짓만으로도 내 의도를 파악할 줄 아는 눈치도 있었다.
이런 사람이 부족하다고?
아니.
고작 다른 사람의 자존감을 눌러서 제까짓 만족감만 채우는 네가 더 부족해.
이범영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그래서 미리 말씀드리는 겁니다. 우리 두현이 형이랑 같이 1등 할 거라고요.”
“재밌네. 그게 그렇게 쉬워 보여요? 음방 1위가?”
“어렵겠죠. 근데 불가능해 보이진 않을 거 같습니다.”
“건방지네. 건방져. 그런데 패기는 마음에 드네.”
너 마음에 들 생각은 전혀 없다는 말은 속으로 꾹 담아두었다.
나는 뱉을 때와 아닐 때를 알고 있었다.
나를 비웃던 이범영 기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참, 이건 오프 더 레코드?”
“우리가 다음 앨범으로 1등 못 찍으면 그때 공개해 주십쇼. 건방진 아이돌 윤건하, 제 주제 파악 못 하고 덤비다.”
“자신감 넘치네요. 좋아요. 대신 1등 찍으면 <연예가 좋다>에 단독으로 한 꼭지 따줄게요. 5분짜리 특집으로. 내가 그 정도 힘이 있거든.”
“인터뷰는 괜찮습니다. 두현이 형한테 사과만 해주십쇼.”
“미안하다고?”
“예.”
“알았어요. 그게 뭐 어렵다고.”
한 차례 웃은 이 기자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굳이 그를 더 쫓지 않았다.
이범영 기자.
너는 내가 이름 기억해 뒀다.
* * *
“크하하하! 건하야 너 진짜 골 때린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황이서가 나를 보며 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