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억 들고 데뷔합니다-42화 (42/236)

<제42화>

우리는 첫 주가 지난 후 올리오스의 성적을 확인했다.

‘Angel’은 65위.

‘New Taste’는 68위.

둘 다 70위를 넘기고 순항 중이었다.

“애매하네. 차트인해서 기분은 좋은데, 막상 따져보니 더 위에 올라갔으면 하는 그런 순위야. 너무 마음 놓지는 마라.”

황이서의 한 줄 평이었다.

그러나 아쉽다는 것치고는 표정이 정말 좋았다.

지금도 간혹 실실 웃으며 우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성적이 마음에 들지만, 경각심을 가지라는 의미로 말하는 걸 거다.

그리고 아마 내일 컴백하는 라이언 때문이겠지.

대한민국 3대 엔터테인먼트 회사 중 하나인 테오 엔터테인먼트의 라이언.

오랜 휴식기 끝에 복귀하는 국내 최정상의 힙합 아이돌 그룹.

짧은 너튜브 영상 말고는 그 어떤 정보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저 내일 오후 10시에 모든 앨범이 공개될 거라는 이야기뿐.

“아마 탑 20은 힘들 거다. 30위도 간당간당하겠지. 어지간히 역주행하지 않으면 보통 보이그룹의 성적은 첫째 주 아니면 2주 차의 성적이 최고로 높으니까.”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원래 사람의 욕심이라는 게 그런 거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곳을 원하는 것.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왕이면 한 번에 성공하고 싶었는데.’

음원 순위 Top 10을 찍으라는 퀘스트.

지금 수치로 이걸 성공하기는 쉬워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는 말고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유도해야지. 2주 차 안에 탑 30까지 찍는 걸 목표로 하자고.”

“네! 알겠습니다!”

30위.

첫 데뷔.

그것도 싱글 앨범으로 낼 수 있는 최선의 성적이었다.

더 높았으면 좋겠지만, 쟁쟁한 경쟁자들이 너무 많았다.

GH 엔터도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해줬지만, 우리의 팬덤은 아예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

팬덤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야지.

“야금야금 올라가자고.”

*    *    *

우리가 마음을 다잡은 다음 날.

오후 10시.

라이언의 컴백 앨범이 올라왔다.

공개된 노래는 총 세 곡.

세 곡 모두 출시 한 시간 만에 10위로 차트인.

두 시간도 되지 않아, 1등부터 3등까지 모두 라이언이 차지했다.

차트 줄 세우기를 처음 경험했다.

말로만 듣던 차트 줄 세우기를 두 시간 만에 세운 라이언의 성적을 보며 감탄했다.

우리의 순위는 ‘Angel’이 3단계 밀린 68위, ‘New Taste’가 2단계 밀린 70위를 차지했다.

“대단하다….”

정민은 벌써 라이언의 신곡을 몇 번이고 감상하고 있었다.

호진이 한진성을 롤모델로 삼고, 성훈이 진효원을 롤모델로 삼았듯, 정민은 아이돌계 최고의 싱어송라이터라고 불리는 라이언의 크리스를 롤모델로 삼고 있었다.

크리스의 노래를 듣는 정민의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대단하다…. 와….”

몇 번이고 감탄하며 노래를 반복 재생했다.

정민 또한 저 라이언의 줄세우기에 분명 혁혁한 공을 세웠음이 분명했다.

대단한 홍보도 없었다.

그저 테오 엔터테인먼트 채널에 올라간 노래 세 개가 전부.

세 곡 전부 뮤직비디오를 제작했지만, 그뿐이었다.

거기에 앨범 자켓엔 하얀 배경에 각 멤버들의 사인, 가운데에는 영문으로 라이언이라 적혀 있었다.

벌써 뮤직비디오를 분석하는 너튜브 영상이 올라왔다.

그게 또 일종의 홍보가 되고, 사람을 더 불렀다.

라이언이 가진 브랜드 가치가 홍보수단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렸다.

‘저기가 우리가 노려야 할 지점이지.’

정점.

아이돌들의 워너비.

스타들의 스타.

GH 엔터에선 그나마 몬스터즈가 저들과 비슷한 위상을 가졌을 거다.

“열심히 하자.”

나는 곡을 분석하는 정민을 보며 말했다.

노래를 듣던 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이 비장했다.

과장 조금 섞어서 전장에 나가는 장수와 비슷했다.

*    *    *

다시 돌아온 뮤직 에어 생방 무대.

첫날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차에서 우리가 내리자.

“어? 올리오스다!”

우리를 보며 환호하는 팬들이 생겼다.

언제 만들었는지 우리의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가 보였다.

물론 그 수가 많지 않았다.

하나 저번 주에는 한 명도 없었다는 걸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형들, 저기 봐! 우리 팻말이야!”

신난 우주가 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꺄아악!”

아예 반응이 없던 과거와는 달리, 우리가 손을 흔들면 팬들이 화답해 줬다.

기분이 묘했다.

내 손짓에 기뻐하는 팬들의 모습을 보자, 여태껏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느껴졌다.

성취감?

이건 아니다.

만족감?

이것도 애매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묘한 두근거림이 있었다.

맞다.

설렘.

마치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 느껴지는 감동을 팬들에게서 느꼈다.

이런 건 처음이었다.

“형도 두근거리지? 우리한테도 팬이 생겼어.”

우주가 귓가에 속삭이며 키득거렸다.

얼마나 즐거운지,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그러게. 즐겁네.”

특히 포토존에 올라가서 팬들을 향해 인사할 때 들리는 환호성은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충만한 만족감을 느끼게 해줬다.

서 있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재밌었다.

아, 이거구나.

이게 무대 위에 올라가 있다는 거구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리를 보며 사진을 찍는 팬들과 좋아해 주는 팬들이 있다는 게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거라는 걸 처음 알았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나보다.

“진짜 열심히 할 거야.”

의외로 가장 먼저 결심을 다진 건 호진이었다.

모두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올리오스가 무대 위로 올라갔다.

평범한 아이돌 팬이라 스스로 자부하는 김다빈은 올리오스 오빠들을 보기 위해 오늘도 새벽부터 방송국에 찾아왔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방송국에 찾아와서 사진을 찍는 정도면 이미 평범함과는 거리가 멂에도 그녀는 늘 자신이 평범한 라이트 팬이라고 자부했다.

원래 그녀는 다른 아이돌의 팬이었다.

주목받지 못하는 중소 규모의 소속사에서 데뷔한 작은 보이그룹.

늘 힘내라고 조공까지 보낼 정도로 열정적으로 응원했던 보이그룹이었다.

그러나 한 달 전에 터진 멤버들의 학폭 뉴스.

거기에 다른 멤버의 음주운전과 특정 팬과 사적인 만남을 가졌다는 소식에 그녀는 덕질을 접었다.

배신감에 사무쳤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들의 브로마이드와 굿즈를 전부 보내고, 장문의 하소연 게시글을 올리며 더는 그녀 인생에 덕질은 없을 거라 선언했다.

그랬었는데.

저번 주, 우연히 TV를 틀다가 본 뮤직 에어에서 본 올리오스의 무대를 보는 순간 마음이 바뀌었다.

무대 위에서 반짝이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비주얼이자, 메인 댄서인 호진과 보기 드문 더블 센터인 건하의 비주얼 조합은 언제 먹어도 물리지 않는 맛이었다.

강한 분장이 가리긴 했지만, 태초부터 귀여움과 포근함을 갖고 있는 우주와 정민은 두 비주얼 센터를 확실하게 보조했다.

모두 보컬 실력이 부족하지 않아, 라이브를 듣는 내내 불편한 느낌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

메인 보컬인 성훈의 깔끔하고 청아한 목소리는 그 조합에서 하이라이트를 찍었다.

빠지고 싶지 않아도 빠질 수밖에 없는 매력을 갖고 있었다.

실력이 좋은데 외모도 뛰어나!

그런데 심지어 예능력도 출중하네?

뭐 하나 부족하지 않은 매력을 가진 아이돌들이었다.

입덕하기 싫어도 할 수밖에 없는 아이돌이었다.

‘딱 한 번만 더 속아보자.’

이번만 속아보는 거야.

여기서 얘들까지 나를 배신하면….

그때는 굿즈를 태우는 것만으로 안 끝나.

그래서 입덕했다.

하다 보니 조금 하드하게 해버렸다.

프로필에 공개된 멤버들의 생년월일과 키, 좋아하는 것들까지 전부 다 파악하고 GH에서 마련한 굿즈 샵에서 올리오스 멤버들의 간단한 포토카드까지 시리즈별로 수집할 정도로.

그래. 입덕할 거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지.

“와…. 진짜 잘 춘다.”

김다빈은 무대 위에서 빛나는 올리오스 멤버들을 감상했다.

눈과 귀가 즐거웠다.

그중에서 제일 돋보이는 건 역시.

‘건하 오빠….’

건하가 그녀보다 두 살이나 어리다는 건 알고 있지만, 상관없다.

멋있으면 다 오빠지.

특히 그는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더 빛이 났다.

노래가 끝나는 그 순간, 김다빈은 소리쳤다.

“건하오빠아악!!!”

그 목소리를 들은 건하가 눈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기절할 뻔했다.

건하 오빠가 날 봐줬어.

‘아, 난 성덕이야.’

이대로 죽어도 좋아.

*    *    *

무대가 끝나고, 우리는 오늘도 선배들이 있는 대기실을 찾아 돌아다니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올리오스입니다!”

아이돌 선배, 유명 가수, 연차가 있는 선배들 모두 우리의 인사를 부드럽게 받아줬다.

“기세 좋더라. 열심히 해.”

“감사합니다!”

발라드 가수로 유명한 선배의 조언에 신나하고, 같은 아이돌 선배의 격려에 기뻐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대기실.

“안녕하십니까! 올리오스입니다!”

“어, 그래. 빨리 가라.”

귀찮은 티 팍팍 내는 선배 아이돌.

솔로로 데뷔한 업계 선배였다.

이름이 백찬우였던가.

원래 유력한 1위 후보였던 그는 이틀 전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라이언 때문에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1등을 뺏기면 누구나 그렇겠지.

오래 있기 어려운 분위기에 살며시 닫으려고 하는데.

“어? 뭐야. 올리오스 너희 왜 여기에 있냐?”

갑자기 나타난 강윤석 PD.

그가 나타나자마자.

“윤석이 형!”

백찬우가 대기실을 박차고 나왔다.

“어, 여기 있었구나.”

“형, 나 이번에 1등 맞지?”

“그건 말 못 하지.”

“아이, 그러지 말고. 말 좀 해줘. 그래도 내가 1등이지? 아무리 라이언이라도 말이야. 얘들 앨범 나온 지 이틀 됐어. 그런데 무슨 1위 후보야.”

“파급력 못 봤냐? 걔네 뮤비 너튜브 올리고 하루 만에 300만 찍었다.”

“해외 팬들 빨이지.”

“너는 없냐?”

“하아. 그래도 좀 알려줘. 나 진짜 궁금해 미치겠다. 오늘 형 연출도 좋았잖아. 아까 리허설 때도 분위기 좋더만.”

“아부한다고 뭐 안 줘.”

“하아.”

백찬우가 한숨을 퍽 내쉬었다.

그는 뒤늦게 후배인 우리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들리지 않게 혀를 찼다.

“오늘 너희 잘했다.”

강 PD는 그런 백찬우에게 시선을 거두며 우리에게 엄지를 척 올렸다.

그러고는 쿨하게 사라졌다.

감사하다는 인사도 전하기 전에 황급히 다다다 달려갔다.

뭐 그리 바쁜 건지, 육중한 몸을 뒤뚱거리며 사라졌다.

“하아, 씨발….”

강 PD를 바라보며 내뱉는 백찬우의 욕설이 나지막하게 들렸다.

그는 우리를 잠시 바라보더니, 인상을 팍 찌푸렸다.

“뭘 봐? 꺼져.”

“고생하십쇼.”

인성이 글러먹었네.

얘는 1등 하긴 글렀다.

강 PD가 굳이 안 알려준 거 보면 각이 보인다. 보여.

저런 아이돌은 되지 말아야지.

앞과 뒤가 다른 사람은 되는 거 아니다.

그리고 뮤직 에어의 1등은 당연하게도 현장을 찾아오지 않은 라이언이 차지했다.

카메라에 백찬우의 일그러진 표정이 찍힌 건 덤이었다.

-백찬우 표정 왜 저럼?

-후배한테 밀렸다고 저러는 거야?

-지 실력이 딸리는 걸로 표정 관리 못 하는 거 봐라ㅋㅋㅋ

인터넷에 제대로 박제를 당했다.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니까.

*    *    *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점점 많아졌다.

차트 순위 역시 점점 위로 올라갔다.

2주 차 차트 순위는 35위로 마무리했다.

대박! 이라고 할 정도의 성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실패 역시 아닌 성적이었다.

라이언 컴백이라는 악재가 있었지만, <주중 아이돌>과 최근 있는 핫산돌이라는 컨셉 때문인지 앨범을 듣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관심도가 올라갔다는 건 좋은 일이지.

여전히 쥐뿔도 없는 신인이지만, 적어도 우리를 알아주는 고정팬이 생겼다는 건 상당히 희망적인 일이었다.

포토존에 서서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우리를 알리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었으니까.

‘그래도 뭔가 제대로 했구나.’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성취감에 가슴이 벅차곤 했다.

내가 이렇게 감성적인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    *    *

“오늘 스케줄 다 뺐으니까, 오늘은 시간 걱정하지 말고 미팅 가져.”

“예, 알겠습니다.”

황이서가 룸미러로 우리를 바라봤다.

“뭐 곤란한 거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두현이가 현장에 있긴 하겠지만, 아직 모르는 것도 많으니까.”

“걱정마십쇼! 최대한 보조하겠슴다!”

우리는 진효원의 소속사인 블랑 뮤직의 사무실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스케줄을 협의해서 정해진 날짜가 오늘.

그래서 우리가 진효원의 작업실로 향하고 있는 거다.

“괜히 실수하지 마라. 블랑 뮤직, 그래도 쟁쟁한 기획사야. 거기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 너희 선배고. 그러니까 저번에 말한 것처럼….”

“겸손하고 항상 인사 잘해라. 맞죠?”

“잘 아네. 리더인 건하 네가 잘 인솔해.”

“에이, 프로듀서님. 저희가 무슨 애들인가요.”

“우주 네가 제일 걱정 돼. 괜히 친한 척하지 말고 인마. 알았어?”

“넵! 알겠습니다!”

몇 번이고 당부하는 황이서의 말이 끝날 때쯤, 우리는 블랑 뮤직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네 시간 뒤에 올 테니까 첫 미팅 잘 끝내.”

“네, 감사합니다.”

차를 몰고 떠나는 황이서를 보내고, 두현이 블랑 뮤직의 입구에 달린 벨을 눌렀다.

-누구시죠?

“GH 엔터의 올리오스 팀입니다. 진효원 씨와 오늘 미팅을 하기로 해서요.”

-아, 들어오세요.

그리고 허둥지둥 사무실 직원이 달려왔다.

“효원 씨가 위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를 따라가 올라간 작업실에는.

“생각보다 일찍 왔네?”

처음 보는 장비로 가득한 곳에 앉아 있는 진효원이 웃으며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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